Modernism, 형태와 기능을 둘러싼 이야기들

루이스 설리번이 디자인한 웨인라이트(Wainwright) 빌딩, 미국 세인트루이스, 1891. *출처: 플리커 크리에이티브커먼스 이미지 by whitewall buick
루이스 설리번이 디자인한 웨인라이트(Wainwright) 빌딩, 미국 세인트루이스, 1891. *출처: 플리커 크리에이티브커먼스 이미지 by whitewall buick

* 타 프로젝트에 사용된 자료를 재구성하였습니다.

형태와 기능(form and function)에 대한 고민은 모던 디자인 운동에서 빠지지 않는 화두였다. 더욱 정확히 하자면, 20세기 전반에 걸쳐 확산되어 오늘날의 현대적 풍광과 생활환경의 구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모던디자인운동의 초기, 기능주의(Functionalism)의 이념과 맞닿은 질문이었다. 20세기는 모더니즘, 혹은 모던디자인운동이 지배한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만 그 모더니즘만으로 설명하기에도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오늘날의 디자인이다. 실제로 요즘의 시장에서 팔려나가는 소비재들 가운데 기능 이외의 다른 특별함으로 성공하는 경우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고, 소비자의 요구 또한 날이 갈수록 복잡해져서 일련의 해석 과정을 필요로 한다.

모더니즘 디자인 논의에 자주 등장하는 두 개념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아돌프 루스가 1908년에 주장한 “장식은 범죄(ornament is a crime)”라는 개념, 그리고 미국의 조각가인 호레이쇼 그리너에 의해 처음 논의되고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이 1896년에 주장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ever follows function)”는 개념이 바로 그것. 기능이 없는 장식이 지닌 무의미함을 비판함과 동시에 기능성에 근거한 조형을 강조하는 이 두 가지 개념은 – 예컨대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건물의 장식은 건축주나 입주자의 목적과는 상관이 없는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거리를 지나는 행인은 장식을 통해 그 건물을 다른 건물과 구별할 수도 있는 등의 – 이견이 없지 않았음에도 기능주의의 원리로 정착되어 이후의 20세기 모던디자인 경향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철 골조로 디자인된 마천루건축을 처음 확립한 인물이었고,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모더니즘의 아버지’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루이스 설리번. 그는 19세기 말엽부터 미국에서 고층빌딩의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수행했던 인물이다. 당시의 미국은 엘리베이터와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 철과 같은 신소재의 대량생산, 새로운 취향에 대한 요구, 강성해진 경제력 등이 한꺼번에 융합되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도시는 보다 대규모의 건축물을 필요로 했다. 건축가였던 그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형태가 관습을 따라(form follows precedent)” 과거의 경향을 답습하던 당시의 건축에 반대하고, 목적에 근거한 건축디자인, 즉 건물의 사용목적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더도 덜도 없는 기능적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가 디자인한 웨인라이트 빌딩은 완전한 모더니즘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장식적 문양을 차용하는 등 절충적 형태를 취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합목적적 디자인’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이후 설리번의 합목적적 디자인상은 제자였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비롯한 수많은 건축가, 디자이너들에 의해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계승되었다. 예컨대 1950년대에 자동차나 기관차와 같은 운송수단의 디자인에 폭넓게 유행한 유선형(streamlining) 스타일에서도 공기역학적인 합목적성을 추구한 기능주의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여기서 시점을 현재로 옮겨보면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된 합목적성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의 주장이 되어버린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선언 대신 “형태는 재미를 따른다(form follows fun)”거나 “형태는 감성을 따른다(form follows emotion)”는 주장들, 혹은 “형태는 욕망을 따른다(form follows desire)”는 다소 비판적인 내용에 이르기까지, 현대사회 속에서 디자인의 의미를 이야기할 때마다 이 명제는 거듭 변형되고 있다. 달리 말해 이러한 현상은 모더니즘 이후의 디자인에서 어떤 ‘가치’들이 기능을 대신해 중요시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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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icy Salif, 레몬 스퀴저, 필립 스탁 디자인, 알레시 제작, 1990. *출처: 플리커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이미지 by Just Bru

형태가 기능을 따르지 않는 경우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필립 스탁의 ‘주시 살리프(Juicy Salif)’를 꼽을 수 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즙 짜개’라는 엄연한 기능을 갖고 있는 주시 살리프. 알레시가 1990년부터 제조하기 시작한 베스트셀러 주시 살리프는 우리나라의 백화점에서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주시 살리프는 그 불합리성 때문에 더 유명해졌고 역으로 이러한 엉뚱함이 판매를 지속시키는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이다. 영국의 디자인학자 가이 줄리어(Guy Julier)가 다소 비꼬아 기술한 주시 살리프에 대한 해석은 그 불합리성을 잘 설명해준다.

가냘픈 세 다리는 섬세한 발목 위로 뻗어 올라간다. 이상하리만치 높은 무릎에서 꺾인 곡선은 세로로 홈이 파인, 중앙의 눈물 방울처럼 생긴 덩어리와 맞닿는다. 항공공학적인 형상을 지닌 거미 모양의 받침은 그것을 감탄의 시선이 향할 천상의 위치에 올려놓는다. 최상의 ‘외관’을 갖도록 완벽하게 만들어진 이 삼각대는 이 도구의 알뿌리 같고도 남성숭배적인 머리의 노골적인 모습을 하늘 위로 떠받들고 있다. 사용하려면 기술과 힘 모두 필요하다. 누군가 과일을 쥐고 비틀고 누르기를 반복할 때면 이 레몬스퀴저의 받침은 약간 기우뚱거린다. 레몬은 아래로 부서져 내리고, 손은 힘으로 쥐어짠 후 남겨진 찌꺼기로 범벅이 된다. 머리를 장식하는 홈들을 따라 흘러내린 과즙은 아래의 뾰족한 부분으로 천천히 흘러 모여든다. 그 후엔 반짝이는 흘러내림, 그리고 배설의 만족스러움이 깃든 소리와 함께 아래의 그릇으로 떨어진다.

가이 줄리어는 주시 살리프의 기능적 불완전함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금속(알루미늄)으로 제작된 이 도구는 실제 사용에 있어서 특징적인 형태로 인해 사용자에게 과도한 집중을 요구한다. 또한 개방된 구조나 강산성인 레몬과 화학적으로 반응하는 재질 때문에 비위생적이기도 해서 부엌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물건이다. 그렇지만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알레시가 꾸준히 주시 살리프를 판매할 수 있는 이유는 다름아닌 형태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담긴 독특한 상징성 때문이다. 가이 줄리어의 말대로 주시 살리프는 “성 도착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디자이너인 필립 스탁 스스로 주시 살리프의 “또 다른 기능”이라고 이야기한 ‘스타가 디자인한 물건 써보기’ 정도의 의미를 떠올릴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재미 삼아 사용해보려고 이 물건을 구입할 것이다. 변형된 설리번의 명제들로 이 제품을 설명하자면, 주시 살리프는 “형태가 욕망을 따른” 경우이거나 “형태가 재미를 따라” 디자인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가이 줄리어는 비판적인 시각이긴 해도 이러한 주시 살리프의 다양한 ‘변태적 의미들’ 자체가 이 제품의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듯 하다.

이미 형태와 기능을 고민하는 디자인은 ‘공식적’으로 폐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걸까?

글쓴이

ssall

Independent Researcher & Writer in Design +++ Digital Content Director at Ahn-graphics Ltd. PROFILE........

  • 모던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잘 드러나있는 글 잘 보았습니다. 포스트 모던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http://blog.lge.com/240

    • 디자인의 모던, 모던디자인, 그리고 그 이후의 포스트모던 디자인, 이런 이야기들 모두는 디자인 분야에 국한해서 평가될 수 없고 평가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고요, 이건 제품을 만드는 글로벌 기업이던 그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던 간에 상관없이 모두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포스트모던이 모던의 대안이 되는가를 생각하기에 앞서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문화와 사회 곳곳에서 모더니티가 과연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봐야 하겠죠. 지금 한창 고민 중이랍니다. -_-;;

      위에 쓴 글은 그러고 보니 서구의 디자인을 구경하는 입장에서 써본 낙서에 불과한 것 같아 부끄럽네요. 아무리 글로벌한 시대라지만 다른 언어와 전통, 생활상을 가진 우리가 기계적으로 그걸 우리의 상황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이라는 곳에서 한국의 디자인 유산을 연구하는 등 (물론 이 또한 논거리가 되었지만) 과거와 달리 많은 분들이 근대 한국 디자인의 역사를 연구하고 공론화하고 있으니 관심을 가져봐야 할 것 같아요.

      아무튼 들러주셔서 반갑습니다. 디자이너이신가요? 흥미로운 소식 있으면 저에게도 알려주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