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착유공정

‘총균쇠’ 요약문_18. 남북아메리카가 유라시아보다 낙후된 원인

정복의 궁극적 요인인 식량 생산과 가축화ㆍ작물화의 상관성 : 1492년 당시 유라시아에는 가축화된 13종의 대형 포유류가 있었지만 남북아메리카에서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는 단 1종(라마)이었다. 작물화에서는 동물성 먹거리의 생산만큼 불균형이 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북아메리카는 유라시아에 비해 수렵 채집민이 차지한 지역이 훨씬 더 넓었다. 아메리카에는 가축화ㆍ작물화할 만한 야생 동식물이 없었고 지리적 생태적 장애물로 인해 아메리카의 다른 지역에서 작물화된 식물이나 가축화된 소수의 동물들이 도입될 수도 없었다.

정복의 직접적 요인 – 병원균, 기술, 정치 조직, 문자 : 식량 생산에서의 이러한 차이점으로부터 정복의 직접적 요인들이 파생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들은 바로 병원균, 기술, 정치 조직, 문자 등의 차이였다. 이 가운데 식량 생산의 차이와 가장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요인은 병원균이었다. 유라시아에는 가축의 종류가 많아서 그런 세균도 많이 생겼지만 남북아메리카에는 둘 다 별로 없었다. 또 하나의 직접적인 요인으로서 병원균에 버금가는 요인은 바로 모든 기술적 측면에서의 차이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같은 차이는 식량 생산에 의존하는 사회(인구가 조밀하고 경제적으로 전문화되고 정치적으로 중앙 집권화되며 또한 상호 작용을 하면서 경쟁하는)의 역사가 유라시아 쪽이 훨씬 더 길었기 때문에 생긴 차이였다.

유라시아와 남북아메리카 역사의 궤적 : [도표]에 의하면 식량 생산으로 먹거리의 많은 부분을 충당하기 시작한 시기는 유라시아의 발상지들이 남북아메리카보다 5000년쯤 빨랐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식량 생산과 촌락 생활이 영국에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아주 길었지만(5000년) 그 이후 영국이 추장 사회, 국가, 문자, 특히 금속기를 받아들이는 데 걸린 시간은 훨씬 짧았다(금속 보급은 2000년 철기 보급은 250년).

왜 남북아메리카는 유라시아에 비해 늦었을까? : 네 가지 이유. 우선 남북아메리카는 유라시아에 비하여 출발부터 늦었고, 가축화ㆍ작물화에 적합한 야생 동식물이 적었으며, 확산의 장애물이 많았다. 그리고 인구가 조밀한 지역들이 비교적 좁았거나 고립되어있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가축화ㆍ작물화 경쟁력 : 그러나 더욱 명백한 지연 요인은 가축화ㆍ작물화할 만한 야생 동식물의 문제였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중국에 비해 남북아메리카에서는 초기 식량 생산이 수렵 채집에 대해 경쟁력이 부족했는데, 거기에는 가축화할 만한 야생 포유류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유라시아의 문물 확산을 도운 동서 축 방향 : 또 하나의 이유는 아메리카에 비해 동물, 식물, 아이디어, 기술, 사람 등의 확산이 용이했다는 점이다. 아메리카의 남북 축과 달리 유라시아의 주요 축은 동서 방향이므로 위도 변화와 그에 따른 환경 변화를 겪지 않고도 각종 문물이 확산될 수 있었다. 유라시아의 동서 너비가 전체적으로 넓은 데 비해 신세계는 중앙아메리카, 특히 파나마에서 폭이 좁아졌다. 더구나 아메리카는 식량 생산이나 조밀한 인구에 적합지 않은 지역이어서 그 분열이 더 심했다.

남북아메리카의 지리적 분열이 언어 분포에 미친 영향 : 남북아메리카의 지리적 분열은 언어의 분포에도 반영되어 있다. 유라시아의 언어 중에서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는 여남은 개의 어족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아메리카 북극 지방의 에스키모알류트 어족과 알래스카, 캐나다 서북부, 미국 서남부의 나덴 어족을 제외하면 남북아메리카에는 언어학자들이 널리 인정하는 대규모 언어 팽창의 사례가 별로 없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아메리카로 이동한 의미 : 스칸디나비아인들이 그린란드와 아메리카를 식민지화하지 못했는데, 그 까닭은 결국 그들의 발원지(노르웨이)와 목표지(그린란드와 뉴펀들랜드) 및 시대(A.D.984년~1410년)문제로 인해 유럽이 가지고 있던 식량 생산, 기술, 정치 조직 등의 잠재적 이점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인들의 남아메리카 식민지 정책 : 남북아메리카를 식민지화하려는 유라시아인들의 두 번째 시도가 성공을 거둔 까닭은 발원지, 목표지, 위도, 시대 등에 있어서 유럽의 잠재적 이점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르웨이와 달리 스페인은 탐험을 지원하고 식민지에 뒷돈을 댈 수 있을 만큼 부유하고 인구수가 많은 나라였다.

남북아메리카의 스페인 소유지는 식량 생산에 매우 적합한 아열대 지방이었다. 처음에는 주로 아메리카산 농작물을 재배했지만 유라시아의 가축, 특히 소와 말도 함께 키웠다. 스페인이 대서양 건너편에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한 것은 1492년부터였고 15세기는 항해술, 돛, 선박 설계 등 구세계의 여러 사회(이슬람,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가 발전시킨 기술들을 결합한 유럽의 해양 선박 기술이 급속히 발전한 시대였다.

스페인이 신세계에 식민지를 개척하자 곧 유럽의 대여섯 국가가 동참했다. 아메리카에 생긴 최초의 유럽 정착촌들은 1492년 콜럼버스가 세운 정착촌을 필두로 서인도 제도에 몰려 있었다. 이들 섬의 인디언 인구는 ‘발견’ 당시 100만 명이 넘었지만 질병, 추방, 노예화, 무차별 살인 등으로 대부분의 섬에서 전멸되고 말았다. 1508년경 아메리카 본토에서는 처음으로 파나마 지협에 식민지가 건설되었다. 그 이후 본토의 대제국이었던 아스텍과 잉카가 정복되었는데, 각각 1519년~1520년과 1532년~1533년의 일이었다. 두 경우 모두 유럽인들이 퍼뜨린 유행병(천연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황제를 포함하여 전체 인구의 많은 부분이 그 병으로 죽었고 나머지는 말을 탄 스페인인들이 처리했다. 비록 숫자는 적었지만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우월성을 지녔으며 아울러 원주민들의 분열 상태를 교묘히 이용하는 정치적 기술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16세기와 17세기에는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북부에 남아 있던 원주민 국가들마저 유럽에 정복당했다.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발전된 원주민 사회는 미국 동남부와 미시시피강 유역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들 사회를 파멸로 이끈 것은 주로 유럽의 초기 탐험가들에 의해 전파되어 그들보다 앞서 전진한 각종 병원균이었다.

글쓴이

ssall

Independent Researcher & Writer in Design +++ Digital Content Director at Ahn-graphics Ltd.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