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로서의 디자인 – 미술 공예 운동

* 디자인정글 아카데미의 자료입니다. 작성한 강사분의 이름은 알 수가 없네요.

19세기 산업사회

19세기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가장 특이할 만한 것은 바로 대박람회(Great Exhibition)이다. 대박림회는 The 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ies of All Nations의 줄임말로 말 그대로 세계 여러나라의 산업 제작물을 전시하는 거대한 박람회였다. 영국은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났고 그에 따른 산업의 발전이 가장 앞선 것을 다른 나라에 과시하고 이를 토대로 세계를 계속 지배하려는 야심찬 제국주의적인 전략의 일환으로 삼았다. 1851년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처음 개최 하였으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의 기술력을 총결집시켰다. 이 대박람회는 중세적인 궁전을 디자인하는 등 5개월 반동안 전시 기간을 가졌으며 국내외에서 600만명의 관람객이 참여 하였다. 실상 산업혁명으로 새로이 지도층으로 등극한 부르조아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그들이 새로운 지도층으로 자리잡은 것은 사실이나 정신 문화적으로 아직 미흡한 상태였으므로 대박람회와 미술관 등 각종 전시회 및 행사를 통해 그들의 정신적인 지도력의 부재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19세기는 산업화에 따른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본격적으로 촉진되던 사회였으며, 이에 따라 귀족의 전유물이였던 예술이 물건의 소비를 위해 디자인의 형태로 일상생활에 침투하였다. 새로운 지도층인 부르조아와 노동자 계급이 형성되었으며 아직까지 중세의 귀족 제도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채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미술 공예 운동(The Arts and Crafts movement)

이러한 산업사회에서 미술 공예 운동은 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사회사상가, 건축가, 디자이너, 공예가 등이 참여하여 시작되었다. 미술 공예 운동가들은 19세기 후반 산업사회의 삭막함에 반기를 들고 미술 공예 건축 등을 통해 사회를 정신적으로 보다 조화롭게 만들고자 하였다. 따라서 미술 공예 운동에서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작품의 특징도 보다 자연적인 것을 모티브로 삼았는데, 형태와 모양은 단순하고 식물의 줄기에서 보이는 선적이거나 유기적인 형태로 제작되었다. 예를 들면 식물, 새, 동물의 형태을 패턴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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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에드워드 번 존스(Edward Burne-Jones),스테인레스 창, 1880
▲ (우) 존 러스킨의 ‘허영의 세상에서의 이상의 실현’(The Realization of the Ideal from Vanity Fair), 1871

그들이 주장한 주요한 슬로건은 세 가지로 예술가들의 창작성(Individualism), 기계가 아닌 손으로 물건을 생산하는 것, 디자인 재료로 사용되었던 기존의 것을 재 평가하자는 것이였다. 즉 물건을 생산하는 데에 있어 인간의 유기적인 공동체성이 기계의 대량생산으로 인해 파괴되었다고 생각하고, 산업사회에 접어들어 피폐화된 공동체성을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기계가 아닌 손으로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산업혁명 직후 생산된 물건들은 기계의 속이 훤히 보여서 미적인 측면을 상실하였고, 대량생산을 위해 다양한 디자인을 추구할 수 없었다.
따라서 미술 공예 운동의 목적은 산업화가 가져온 폐해를 극복하기 위하여 중세의 성당 건축과 마찬가지로 건축가, 디자이너, 공예가가 결합하여 일상생활에서 사용되어지는 물건까지도 예술가의 손으로 만들어 보다 공동체적이며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에 있었다. 사실 이러한 이념은 산업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적인 사고에 기반한 것이다.

미술 공예 운동 사상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은 사회 사상가이자 사회주의자였던 존 러스킨(John Ruskin)으로 그는 건축에 있어서 장식은 손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 이유는 손으로 만드는 것이 인간의 감성과 노동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예술가의 창작성의 주요성을 주장하였는데, 당시 산업 생산품이 예술가를 소외시키기 때문에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에 의해 생산되는 물건의 가치를 하락시킨다고 생각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디자인은 인간의 기쁨과 행복을 반영해야 하고 이를 위해 자연적인 형태와 재료가 적합하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존 러스킨은 인간의 노동이 없는 물건은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러한 노동을 하지 않는 부르조아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였다. 부르조아는 부지런하고 단호하며, 자존심이 강하고 탐욕스러우며, 잽싸고 규율적이며, 상상력이 없고 둔감하며, 무식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을 위의 그림에서 정확히 표현하였다. 큰 머리를 가진 신사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념에 걸맞는 조직 형태는 중세의 건축가와 공예가, 미술가들의 조직인 길드(Guild)를 그 모델로 삼았다. 길드는 중세의 장인 조직으로 하나의 건축물을 건축하고 장식하
기 위해 건축가, 공예가, 미술가가 서로를 도와 통일된 디자인을 추구하였고, 새로 입회한 구성원에 대하여 교육도 병행하였다. 존 러스킨은 이러한 중세의 길드 조직을 모델로 하여 자신의 길드 조직인 세인트 조지(St George)를 1871년에 설립하여 그의 이념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세인트 조지 길드의 사장은 존 러스킨이였으며 구성원은 공동 작업와 그에 따른 이윤을 공동 분배하였으며 노동과 생활의 통합화를 추구하였다. 예를 들면 구성원은 그들의 수입 중 10분의 1을 공동체를 위해 헌납하여 그 돈은 토지을 구입하는 것에 사용되었는데,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여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야말로 사회주의 사상을 길드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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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공예 길드 노동자들(Guild of Handicraft), 1902이전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이러한 존 러스킨의 사상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 근대 디자인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윌리엄모리스(William Morris, 1834 – 1896)였다. 윌리엄 모리스는 사회주의 실천가일 뿐만 아니라 그의 동료들과 함께 길드를 조직하여 디자인을 통해 그의 사상을 실현하고 실천하였다.

윌리엄 모리스는 공동체성과 종합성이 산업화의 기계 생산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판단하고 다시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사람들의 손에 의해 물건이 생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그가 디자인이 인간의 감성 및 사고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예술가의 손에 의한 디자인에 의해 피폐화된 산업사회의 생활을 변혁하고자 하였다.

윌리엄 모리스는 1857년 확 에드워드 번-존스(Edward Burn-Jones)와 함께 런던에 자신의 스튜디오 를 개설하고 그들 스스로가 직접 일상생활에 필요한 집가나 가구 등을 디자인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붉은 집(Red House)을 건축한 것인데, 이는 윌리엄 모리스와 그의 아내 제인의 신혼집으로 집의 설계 및 건축, 그에 안에 들어가는 모든 장식품, 가구, 집기 등을 직접 디자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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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집(Red House), 필립 웹(Philip Webb), 1859 – 60

1861년에는 붉은 집 등에서 실천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기계에 의해 대량 생산된 보기 흉한 물건들과 싸울 것을 선언하고 번 존스, 매독 브라운, 필립 웹 등과 함께 그 유명한 모리스 마샬 포크너 회사 (Morris, Marshall, Faulkner & Co.)를 설립한다. 이 회사는 신고딕 및 중세양식의 스타일의 물건을 전문적으로 디자인 하였다. 1875년에는 모리스 마샬 포크너 회사를 확장 이전하여 모리스 회사 (Morris & Co)를 설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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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스 회사 (Morris & Co) 에서 제작한 ‘Saville’라는 의자, 1890

이 회사는 여러 곳에 회사를 설립하는 일종의 계열사를 두고 양탄자와 도자기 등도 생산한다. 모리스 회사의 취지문을 보면,

첫째, 벽장식. 주택이나 교회 또는 공공건물의 회화. 패턴 모양 그리고 단순한 색채배합.
둘째, 벽면에 사용되는 조각 일반.
셋째, 벽장식과 조화되는 스테인드 글라스.
넷째, 모든 종류의 금속공예와 보석세공.
다섯째, 가구, 그 자체의 디자인 혹은 지금까지 간과해 왔던 새로운 소재의 응용에 의한 조형물, 혹은 도형과 패턴 모형을 붙인 조형물 그리고 이 항목에는 다양한 종류의 자수, 압형의 피혁세공, 기타 이러한 소재의 장식 작품과 덧붙여 가정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필수품이 포함.
그리고 다음을 부가한다. 말하자면 위의 각 항목에 대한 작업은 비즈니스와 같은 작업 방식으로 견적되고 실시될 것이다. 그리고 비용의 사치로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취향의 사치를 의미하는 것으로서의 좋은 장식은 사실 생각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다. 1861년 4월 11일

이처럼 윌리엄 모리스는 주거에서 공공건물에 이르기까지 실내에서 사용되는 가구 및 생활용품은 예술가의 손에 의해서 생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는 예술의 정신이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종합화 되어야 한다는 그의 유토피아적 이념을 반명한 것으로 윌리엄 모리스 뿐만 아니라 근대 아방가르드들의 꿈이기도 하다.

윌리엄 모리스와 미술 공예 운동의 특징

윌리엄 모리스와 미술 공예 운동의 특징은 일상생활에서 예술의 혼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시작하였으며 이를 과거 예술이 귀족이나 종교에 복무하였던 한계를 넘어서 일상생활로 침투하려했다는 측면에서 근대적인 운동이지만 반면에 점차 대두되는 기계화를 거부하려 하였기 때문에 반근대화 운동인 측면도 있다. 즉 디자인을 통한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지향하였지만 이를 실천함에서 예술가 자신의 연합과 실천에만 그치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디자인 양식도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과거 중세의 양식을 모방하거나 절충하는 것에 그쳤다. 또한 손으로 물건을 디자인한 것은 기계로 대량생산된 것보다 값이 저렴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그 물건을 구입할 수 없었고 이는 그들의 추구한 사회주의 꿈에 반대하는 커다란 모순이기도 하였다.

이 대목에서 과연 디자인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사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가속화된 20세기 부터는 디자인이 철저히 자본주의 체계에 예속되었는데, 즉 디자인의 이상이 상실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윌리엄 모리스와 미술 공예 운동의 이념이 상실되고 디자인이라는 것이 단순히 물건을 외관상으로 보기 좋게 만드는 것에 국한 되었다. 과연 과거 선조들이 지향하였던 디자인의 이념이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가하는 것이다.

길드, 사회주의의 꿈

당시에 많은 길드가 조직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1882년에 맥크머도(A.H. Mackmurdo, 1851 – 1942)가 설립한 센츄리 길드(Century Guild)이다. 맥크머도는 이 센츄리 길드를 설립하기 전에는 존 러스킨과 함께 이테리와 프랑스 등을 탐방하면서 유기체적인 디자인이 어떤 것인가를 연구하였다. 맥크머도는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보다는 디자인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윌리엄 모리스의 사상이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부적절하다고 비판하고 노동자을 위한 클럽 및 중산 계층을 위한 집 등을 설계하였다. 센츄리 길드는 기계적인 대칭과 빅토리안의 장식적인 양식을 배제하고 디자인에 있어서 간결하며 리듬감 있는 역동성을 자연의 식물 줄기 등에서 찾아서 표현하였다. 이러한 센츄리 길드의 양식은 아르노의 양식을 개척하는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윌리엄 모리스와 달리 기계 전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고 기계를 적절히 사용한다면 디자인에 있어 보다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센츄리 길드는 구성원들 간의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통한 종합적인 디자인을 추구하였는데 특히 자신들의 전문성과 구성원간의 동료애 또는 형제애를 중요시 하였다.

1884에는 레더비 (William Richard Lethaby, 1857 – 1931)에 의해 예술 노동자 길드 (Art-Workers Guild)가 설립되었다. 이 길드는 센츄리 길드와 마찬가지로 미적 예술의 통합을 디자인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였고 포럼을 통해 구성원들 간의 사상과 이론 등을 교환하였다.

1888년에 애슈비(Charles Robert Ashbee, 1863 – 1942)는 수공예 길드(Guild of Handicraft)와 수공예 학교(School of Handicraft)를 설립하였다.

이러한 길드 조직은 자신들의 이념과는 달리 대중과 멀리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1880년대 중반 부터는 길드 간의 교류 및 대중으로의 접근을 위해 공동 전시회 등을 개최한다. 길드 조직들은 민주적인 원칙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일반 대중의 생활의 풍요와 윤택함을 위해 물건을 디자인 하였다. 이처럼 길드 조직은 미술 공예 운동가들에게 있어 그의 이념을 실현하는 가장 구체적인 실천 양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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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윌리엄 모리스의 Kelmscott Press, 1894
▲(우) 예술 노동자 길드(Art-Workers Guild) 잡지, 1893

왜 현대 디자인 개념을 미술 공예 운동에서 찾는가?

윌리엄 모리스는 그의 소설 유토피아 소식(News from Nowhere)에서“불평등의 시대에는 부르조아계급은 그들 생활의 근본적인 조건으로부터 자신들의 생활을 장식하는 데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려고 하지 않고, 그들이 더럽고 궁핍한 생활을 강요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만들도록 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1883년 사회당에 가입하면서 말한 바 “만약 당신이 예술을 노동자와 공유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교양있는 사람도, 문화시민도 아니다. 예술은 사람에게 일용할 양식과도 같은 것이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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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의 주장, 세속의 역설(Earthly Paradox), Fun 잡지, 1888

당시 산업 사회의 사람들의 생활과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그저 산업 제품을 보기 좋게 꾸미고 그것을 포장하고 선전하기 위해 잡지와 포스터 등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이 그 생명력을 갖는 것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든 물건 및 기호 등이 인간 생활의 정서와 감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 공예 운동 및 길드 조직의 활동 방식에는 우리는 현대 디자인의 이념과 그 한계를 명확히 볼 수 있다. 그들은 인간 생활의 변혁을 디자인을 통해 추구하였고 그 구체적인 실천을 물건을 디자인하는 것에서 뿐만 아니라 길드 조직을 민주적으로 운영함으로서 실현하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디자인은 길드 조직 자체에 한정되어 있었으며 예술가 스스로가 일반인들보다 우월하다는 자기 도취 의식은 이미 기계사회로 변화해가는 사회를 거부하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대중으로 부터 오히려 소외되는 한계를 나았고 그들이 디자인한 값비싼 물건을 일반 대중은 구입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이 혐오하던 부르조아만이 그들의 고객이 되었다. 기계에 의해 대량생산된 볼품없는 물건은 일반대중의 노동에 의해 생산되었고 그들 스스로가 그 물건
의 소비자가 되었다.

이처럼 미술 공예 운동은 대중을 위한, 대중에 의해 디자인되어야 한다는 현대 디자인 개념 뿐만 아니라 그것이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와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글쓴이

Yoonho Choi

independent researcher in design, media, and locality & working as a technology evangelist in both design and media industries

“유토피아로서의 디자인 – 미술 공예 운동”에 대한 4개의 생각

  1. 좀 안맞는 경우일런지도 모르지만, 어느 수업 도중 한 선생은 포스트 모던 이후의 세계문화를 퓨전의 시대라고 했는데 그에 대응되는 디자인은 어떤 모습인지?

  2. 위에서 언급된 시기의 미술공예운동을 살펴보면, 디자인은 그 자체가 사회적인 발언의 수단, 사회운동의 하나로써 진행된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마지막에 ‘예술가 스스로가 일반인들보다 우월하다는 자기 도취 의식은 이미 기계사회로 변화해가는 사회를 거부하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대중으로 부터 오히려 소외되는 한계를 나았고 그들이 디자인한 값비싼 물건을 일반 대중은 구입할 수 없었다.’ 라고 나오듯 스스로에 대한 인식의 부족과 고집 때문에 원하지 않았던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디자인, 공예의 근저에는 사회주의적인 대중운동의 기운이 엿보이기도 하니 흥미로운 점..

    그렇다면 상업화의 발달 가운데 서있는 현재의 디자인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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