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작가인 존 배John Bae 의 한국에서의 세번째 개인전
젊은 작가들에게 반드시 권하고싶은 전시회
3월 14일부터 5월 18일까지
로댕갤러리(시청앞 동방플라자옆)
입장료 4000원
(같은 입장권으로 호암갤러리에서의
현대미술기획전 Mind Space전을 함께 관람)
사진작품 회선Involution, 1974
높이 102cm. 뉴욕 Sigmart소장
thinks the skeleton in the cupboard

재미동포작가인 존 배John Bae 의 한국에서의 세번째 개인전
젊은 작가들에게 반드시 권하고싶은 전시회
3월 14일부터 5월 18일까지
로댕갤러리(시청앞 동방플라자옆)
입장료 4000원
(같은 입장권으로 호암갤러리에서의
현대미술기획전 Mind Space전을 함께 관람)
사진작품 회선Involution, 1974
높이 102cm. 뉴욕 Sigmart소장
문학서 100선 고전명 저자 분류
1 수이전 한국문학(설화집)
2 계원필경 최치원 한국문학(시문집)
3 파한집 이인로 한국문학(시화잡록집)
4 역옹패설 이제현 한국문학(시화잡록집)
5 송강가사 정철 한국문학(국문시가집)
….
6 열하일기 박지원 한국문학(중국견문기)
7 다산시선 정약욕 한국문학(시집)
8 구운몽 김만중 한국문학(고대소설)
9 홍길동전 허균 한국문학(고대영웅소설)
10 춘향전 . 한국문학(판소리계소설)
11 혈의 누 이인직 한국문학(신소설)
12 무정 이광수 한국문학(현대장편소설)
13 임꺽정전 홍명희 한국문학(대하역사소설)
14 삼대 염상섭 한국문학(가족사소설)
15 천변풍경 박태원 한국문학(세태소설)
16 고향 이기영 한국문학(농민소설)
17 무영탑 현진건 한국문학(장편역사소설)
18 상록수 심훈 한국문학(농촌계몽소설)
19 탁류 채만식 한국문학(세태소설)
20 인간문제 강경애 한국문학(사회소설)
21 감자 외 김동인 한국문학(자연주의소설)
22 카인의 후예 황순원 한국문학(장편소설)
23 님의 침묵 한용운 한국문학(시집)
24 김소월전집 . 한국문학(시집)
25 정지용전집 . 한국문학(시집)
26 윤동주전집 . 한국문학(시집)
27 시경 . 중국문학(시가집)
28 산해경 . 중국문학(신화집)
29 도연명 시선 . 중국문학(시집)
30 이백 시선 . 중국문학(시집)
31 두보 시선 . 중국문학(시집)
32 삼국지연의 나관중 중국문학(장편소설)
33 수호전 시내암 중국문학(장회소설)
34 서유기 오승은 중국문학(장회소설)
35 홍루몽 조설근 중국문학(장회소설)
36 유림외사 오경재 중국문학(장회소설)
37 노잔유기 유악 중국문학(장회소설)
38 아큐장전 노신 중국문학(현대중편소설)
39 자야 모순 중국문학(현대장편소설)
40 상자 노사 중국문학(현대장편소설)
41 가 파금 중국문학(현대장편소설)
42 원씨물어 무라사키시키부 일본문학(장편소설)
43 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일본문학(장편소설)
44 기탄잘리 타고르 인도문학(시집)
45 천일야화 . 아랍계 문학(구전모음)
46 변신 오비디우스 서양문학(설화시)
47 일리아드,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서양문학(장편서사시)
48 오레스테스 3부작 아이스킬로스 서양문학(희곡)
49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서양문학(희곡)
50 메데아 외 에우리피데스 서양문학(희곡)
51 리시스트라타 외 아리스토파네스 서양문학(희곡)
52 아에네이스 베르길리우스 서양문학(서사시)
53 신곡 단테 서양문학(장편시집)
54 데카메론 보카치오 서양문학(소설)
55 4 대비극 셰익스피어 서양문학(영국희곡)
56 걸리버여행기 스위프트 서양문학(영국산문)
57 오만과 편견 오스틴 서양문학(영국소설)
58 위대한 유산 디킨스 서양문학(영국소설)
59 폭풍의 언덕 브론테 서양문학(영국소설)
60 테스 하디 서양문학(영국소설)
61 젊은 예술가의 초상 조이스 서양문학(영국소설)
62 사랑하는 여인들 로렌스 서양문학(영국소설)
63 주홍글씨 호손 서양문학(미국소설)
64 여인의 초상 제임스 서양문학(미국소설)
65 허클베리 핀의 모험 트웨인 서양문학(미국소설)
66 무기여 잘 있거라 헤밍웨이 서양문학(미국소설)
67 음향과 분노 포크너 서양문학(미국소설)
68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라블레 서양문학(프랑스 소설)
69 수상록 몽테뉴 서양문학(프랑스)
70 타르튀프 외 몰리에르 서양문학(프랑스 희극)
71 페드르 외 라신 서양문학(프랑스 비극)
72 고백록 루소 서양문학(프랑스)
73 강디드 외 철학적 콩트 볼테르 서양문학(프랑스)
74 잃어버린 환상 발자크 서양문학(프랑스 소설)
75 적과 흑 스탕달 서양문학(프랑스 소설)
76 보바르 부인 플로베르 서양문학(프랑스 소설)
77 악의 꽃 보들레르 서양문학(프랑스 시집)
7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루스트 서양문학(프랑스 소설)
79 구토 사르트로 서양문학(프랑스 소설)
80 페스트 카뮈 서양문학(프랑스 소설)
81 파우스트 1부 괴테 서양문학(독일 소설)
82 도적들 실러 서양문학(독일 희곡)
83 하인리히 폰 오프더딩엔 노발리스 서양문학(독일 희곡)
84 노래의 책 하이네 서양문학(독일 시집)
85 녹색옷을 입은 하인리히 켈러 서양문학(독일 소설)
86 마의 산 토마스 만 서양문학(독일 소설)
87 말테의 수기 릴케 서양문학(독일 소설)
88 수레바퀴 아래서 헤세 서양문학(독일 소설)
89 성 카프카 서양문학(독일 소설)
90 서푼짜리 오페라 브레히트 서양문학(독일 희곡)
91 양철북 그라스 서양문학(독일 소설)
92 돈 키호테 세르반테스 서양문학(스페인 소설)
93 백년동안의 고독 마르케스 서양문학(콜롬비아 소설)
94 인형의 집, 유령 입센 서양문학(노르웨이 희곡)
95 미스 줄리, 아버지 스트린드베리 서양문학(노르웨이 희곡)
96 카라마조프 형제들 도스토예프스키 서양문학(러시아 소설)
장신구는 ‘작은 미술’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 작음은 왜소함, 빈약함, 하찮음이기도 하지만 친근함, 예민함, 소중함이기도 하다. 장신구를 통한 발언은 대중 연설이 아니다. 마주앉아 나누는 귀엣말에 가깝다. 거기에는 메가폰이 아니라 찻잔이 있다. 예민하고 즉물적인 장신구는 뼈나 근육보다는 신경에 가깝다.
작품은 작가의 분신이다 라는 말이 장신구에서처럼 실감되는 분야는 없다. 장신구는 몸과 결합된 미술이기 때문이다. 장신구 작품은 제작자의 분신이며 동시에 그것을 소장한 착용자의 분신이 된다. 그래서 장신구는 개인과 개인의 사적 관계를 엮는, 주로 개인소장의 미술로 존속해 왔다.
위부터. 이정규,윤성혜, 강연미,심현석,
전은미, 김화진,우진순, 이동춘, 전용일
장신구는 몸을 모태로 한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세계는 장신구라는 물질 위에 겹겹의 상징성을 부가해왔다. 고대부터 그것은 신분, 권력, 사회적 약속의 기호로서 기능했으며 근대 이후에는 자본주의 산업과 결합하면서 부와 소비문화의 꽃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장신구의 기호성記号性은 본연의 물질성, 시각적 장식성 위에 중첩되면서 다중의 함의를 생산하며 현대사회에 이르고 있다.
20세기 후반 약 30년 동안의 현대장신구 운동은 수년천의 장신구의 역사에서 그 어떤 시기의 변화와도 비교되지 않는다. 장신구에 대한 지적 성찰은 수많은 담론을 생산했으며 장신구에서의 모더니티의 형성은 표현적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의 모태인 몸, 그리고 장식기능으로부터의 이완을,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 장신구의 지평을 개념미술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계기를 가져왔다.
논쟁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의 문맥 속에서 많은 장신구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자율적 ‘진술’ 매체로 사용하고있다. 그들의 ‘주얼리jewelry’ 를 통해 제작자인 자신을, 자신의 사회를, 그리고 이 시대의 미술적 담론들은 발언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 교육기관과 전공자들을 보유하고있는 한국의 장신구분야는 한국사회의 다른 분야들이 그렇듯이 ‘역동성’과 ‘부실함‘이라는 두 상반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뿌리깊은 장식 문화의 전통, 수공기술의 우수성, 현대의 일반인들에게까지 이어진 장식 선호와 패션에 대한 관심은 장신구분야의 역동성을 유지하는 근원이다. 수많은 대학졸업자, 해외유학자 등의 열의 또한 이 분야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인적자원 이외의 모든 부분에서 하부구조는 취약하다. 전문 화랑과 저널의 취약성, 비평의 부재, 대학의 폐쇄성 등은 질적 발전을 더디게 한다. 장신구 소비자들의 제한된 취향과 유행 추종은 전업작가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대성의 문맥과는 거리를 갖는, 형식미에 대한 지나친 추구와 개념의 부재 등도 약점이다.
2001년 ‘장신구제안’이라는 이름으로 공동기획전를 개최한 6명의 세공가들 역시 한국적 상황 속에서 그 가능성과 문제들을 부심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3명의 작가들이 추가된 올해의 ‘장신구제안2003’ 에서 다시 이들의 다양한 세계를 접할 수 있다.
이정규는 재료에 대한 직관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재질의 구사, 조합에서의 통제력이 형식미를 만들며 근작에서는 사실적 불상형태의 도입으로 정적이며 명상적인 아우라를 부가하고있다. 정체성과 관련된 서술적 장신구를 제작하는 윤성혜는 창, 이중적 공간, 개폐구조 등을 통해 작가의 시선과 내면, 개인의 영역 등을 암시하며 미니어춰의 세계속으로 시선을 끌어들인다.
강연미 역시 인간의 얼굴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자화상을 통해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일관되게 묻고 있다. 르네 라릭의 몽환적 얼굴을 연상시키는 인물은 풍부한 색채감과 함께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도로표지판이 갖는 공공성과 평면성을 브로치의 형식으로 차용한 심현석은 텍스트의 부분적 변형을 통해 개인적 메시지를 삽입한다. 친숙한 사물과 ‘비틀기’, 몸과 관련된 텍스트가 유머를 던진다.
전해주조방식을 사용하는 전은미는 비정형적이며 물성을 강조한 장신구를 통해 원초적이고 유희적인 공간감을 추구한다. 표면의 의도적 흔적들은 재료와 완성된 작업 사이의 과정을 함께 드러낸다. 김화진의 경우는 기법에 더 무게가 실린다. 아프리카 가나의 전통기법이며 유럽작가들에 의해 소개된 아샨티방식은 선감기에 의한 입체성형으로 강한 시각성을 만든다. 현대장신구의 세계에서도 기법은 여전히 유효함을 실감할 수 있다.
그동안 철판과 접기방식에 의한 장신구를 발표해왔던 이동춘은 ‘변주된’ 연작들을 보여준다. 이전에 강조했던 조직과 구조는 다분히 해체적인 방식으로 이완되고 있으며 소뼈, 유색의 돌과 같은 재료들의 도입에 의해 색채감과 회화성이 조성되고 있다. 옵티칼한 조형미를 추구해 온 우진순은 근작에서 외부도형들을 ‘묘사’하는 새로운 시도를 보인다. 도입된 외부 형태가 격자패턴과 마치 2진법의 디지털언어와 같은 막힘과 뚫림이라는 ‘투각透刻‘ 코드에 의해 분해되고 합성되어 있다. 전용일의 작업은 공간, 몸에 관한 것이다. 평면으로부터 돌출되고 늘어진 형상은 평면성의 부정, 중력, 공간간의 소통을 암시하며, 동시에 이들 관계가, 성기를 통한 배뇨와 같이 인간의 몸에서도 동일함을 보여준다.
이들 9인의 작업을 일반화하거나 이들로부터 한국 장신구의 특성을 살피려는 시도는 성급하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젊고’ -연령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각 출품작들을 완성된 개체라기보다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의 장신구 분야가 아직 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신구에 대한 탐구, 이를 지속하려는 진지함이 유지된다면 이들의 시도는 한국에서 장신구 논의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인 일의 확장과 정착은 단계적 과정과 시간을 요구한다. 한국의 장신구는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현대의 미술적 환경에 진입하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더 많은 개성 있는 작가들의 출현, 담론을 만들려는 지적 노력들, 치열한 자기검증, 이 같은 조건들이 성숙될 때에 비로소 이 땅의 장신구는 우리 시대 미술운동의 한 지류로서 자리매김을 할 것이다. 장신구제안전은 우선 작가들 자신을 향한 제안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글/전용일
2003장신구제안전 도록서문
전시회; 2003년 4월 서울 인사아트센타와 부산 포갤러리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유럽과 미국의 현대장신구의 흐름과 주요 작가들을 개관한 글
2002월 2월 전용일작성
각주 생략
[서구 현대장신구의 형상성 연구 - 1]
1. 현대장신구
2. 독일의 선구자들과 교육
3. 네델란드의 작가들
4. 영국의 현대장신구
5. 이탈리아의 작가들
6. 미국의 표현주의
7. 기타 국가에서의 동향
8. 80년대의 현황과 조망
1. 현대장신구
장신구jewelry는 주로 의상이나 인체에 착용되어, 착용자나 관람자에게 정신적 감응을 일으키는 소형의 조형물들이다. 이 정신적 감응을 통하여 장신구제작자는 자신의 제작의도나 작품 속의 특정한 이미지를 타인에게 전하고 나눈다. 이 정신의 교환은 제작자와 착용자, 착용자와 관람자, 제작자와 관람자 등 다자 간에 발생한다. 매우 개인적 관계를 지향했던 장신구에서의 소통의 의미는 현대사회의 각종 미디어를 통해 한 작가와 불특정 다수와의 커뮤케이션을 가능케하고 그 의미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장신구의 제작의도 속에는 전통적으로 중요시되던 의상의 한 부분으로서의 기능, 신체 혹은 의상과의 시각적 조화 혹은 강조, 그리고 종교, 권력, 사랑, 사건 등등을 표상하는 기호로서의 의미, 장신구 재료의 희소성과 재화성, 골동성 등등의 복합적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현대의 장신구 작가들은 이들 전래의 가치들을 수용하거나 배격하면서 현대 장신구의 새로운 가치매김을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장신구는 인체나 의상에 착용되어, 이들 장신구의 ‘환경’과의 관련성을 통해 그 최종적인 의미를 완성한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장신구들은 이러한 관계를 벗어나 장신구가 그 자체로 하나의 자율적인autonomous 조형물로서 의미를 갖고있다. 이들은 소형 오브제, 소형 조각, 테이블 조각 등의 여러 가지 이름으로 현대 장신구의 중요한 지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현대장신구의 개념을 형성하였던 1960년대부터 80년대초까지의 서구 유럽과 미국에서의 형성 과정과 주요 작가들을 개관한다.
20세기 전반의 유럽에 있어서 바우하우스에 뿌리를 둔 모더니즘 디자인의 지배는 장식과 장신구의 거부로 이어졌다. 산업화와 대량생산은 기능성과 실용성을 최고의 가치로 선택했으며 장식과 상징성을 뒷전으로 밀어내거나 비윤리적인 것으로 폄하했다. 장식적인 성격이 강하며 화려하고 섬세한 장신구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착용자의 재력과 사회적 위상을 상징하며 미술품으로서의 유일성까지 겸비했던 장신구는 산업사회와 민주주의 확산, 계급사회의 몰락으로 인해 오직 장신구 소재의 물질적 재화가치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60년대 이후부터의 포스트모던적 경향 그리고 탈물질주의적 경향은 치장과 장식 그리고 상징과 서술에 새롭게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실생활에 쓰이는 것들의 디자인과 건축에서의 획일적이고 합리적인 대량생산 대신 다시 그들은 개성적인 조형과 그것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찾게 했다. 현대장신구는 신체장식 그리고 재화적 가치라는 전래의 범주를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에 대해 물음을 시작했다. 변화하는 시대의 문화적 코드를 생산하는 가장 개인적이고 섬세하고 또한 기술적인 이 독특한 기호로서의 장신구에 관한 진지한 탐험이 시작된 것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 유럽의 장신구분야에서는 많은 새롭고 흥미진진한 현상들이 나타났다. 60년대까지 만해도 장신구 작가의 수는 유럽과 미국에서 매우 적었으나 70년대 중반까지 수백의 미술대학에서 졸업생들이 배출되었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장신구 작가들은 장신구가 ‘성적性的 스테레오타입’에 얽매이거나 신분적 의미로 간주되기를 거부했고, 본래의 가치가 거의 없다 할 소재들을 평등하게 취급했다. 장신구와 조각, 의상, 심지어 행위예술이 만나는 경계선이 연구되면서, 이제 장신구는 몸치장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예술적 실험을 위한 매체로서 자리매김했다. 모험심이 강한 구매자들이 증가하자 이에 힘입어 논쟁의 소지가 다분한 작품들도 등장했다.
이들 중 일부는 패션계에서 성공을 거두기를 원하지만 대부분은 그들의 장신구 작업이 별도의 장르의 예술로서 인정되길 바랬다. 이러한 바램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것는 이 새로운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기존의 상업장신구, 예를 들면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종류의 장신구들에 대한 강한 반발이다.
주로 보수적인 이들 상업장신구들에서는 보편적으로 디자인이 가장 덜 중요한 요소이다. 그들은 행사나 이벤트를 빛내기 위한 목적이 크며 약혼식, 결혼식, 결혼기념일 등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여기서는 외시적으로 강하게 눈을 끌며 비싸 보여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상업 장신구는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 디자인된다. 한때 새롭고 신선하게 보여졌던 아이디어도 곧바로 진부한 것이 되고 만다. 대부분의 상업장신구의 디자인은 보석과 귀금속에 집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 후 많은 귀금속분야의 공예가들이 그들의 작업을 진부한 것으로부터 구해내려 애썼다. 예를 들면 독일 세공가 폰 스칼Hubertus Von Skal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체코생으로 독일에서 활동했던 스칼은 유럽의 가장 중심적인 작가로서 활동하면서 장신구에서의 새로운 디자인을 발표했다. 70년대 후반 주로 귀금속과 보석을 사용했던 그의 작업은 당시의 현대장신구의 주류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동료들로부터 존경받는 작가로 영향력을 지켜갔다.
현대 장신구의 새로운 경향은 1961년 포르츠하임에서 개관한 슈무크무제움Schumuck Museum으로 예견되었으며 같은 해 런던의 골드스미스 홀Goldsmith Hall 에서는 ‘국제 장신구전시회’가 개최되어 참가국 28개국에서 1000점 이상의 작품이 한 자리에 모임으로서 현대 장신구의 새 지평을 여기는 계기를 마련했다. 1971년에 개관한 런던의 엘렉트럼 갤러리Electrum Gallery와 1976년에 개관한 암스테르담의 갤러리 라 Gallery Ra 와 같은 상업화랑도 장신구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장으로서 한 몫을 했다.
2. 독일의 선구자들과 교육
독일(서독)은 현대 장신구의 정착에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뛰어난 작가이며 교수였던 세 사람의 교육은 특히 중요하다. 윙어Herman J nger, 베커Friedrich Becker, 라일링Reinhold Reiling등이 그들이다.
윙어는 50년대부터 장신구 작가로서 활동하면서 약 30년 동안 동시대 작가들에게 미적 영감을 제공하고 장신구의 형식과 제작기술에서 새로움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 주로 수채화와 선 드로윙으로부터 시작되는 그의 작업은 엄정함과 자유로움이 섞여있으며 동양적인 여유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작업의 표현성은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두 축에서 온다.
하나는 디자인을 본질적인 것으로 보려는 경향, 다른 것은 여기에 자유로움과 유희적인 요소를 통합하려는 경향이다. 윙어는 자연적이기도하고 화운드오브제와 유사하기도 하고 또는 수천년전의 제의적 물건들이나 연장과 유사하기도 많은 형태적 어휘를 구사했다. 한편, 그의 스승 리커트Franz Rickert의 뒤를 이어 뮨헨 아카데미의 교수로 1972년부터 재직하면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주요 작가들을 배출했다.
베커는 50년대부터 기계적 움직임과 장신구를 결합한 키네틱 장신구를 창안했다. 그는 전통적인 세공기술과 공학적 지식을 성공적으로 결합하여 장신구의 세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던 세공가였으며 키네틱 조각가였고 전후 1세대의 산업디자이너로서 창작세계와 사회를 연결시켰던 디자이너였다. 상징성, 서술성을 주 내용으로 하며 유기적 형태를 중심 언어로 사용하였던 20세기 중반까지의 서구 장신구의 전통에서, 60대부터 그가 제시한 기계미학의 장신구들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모더니즘의 기능 미학과 미니멀리즘, 기하학적 순수형태미, 구조미들이 그의 천재적인 수공기술의 의해 복합되었던 것이다. 키네틱 장신구는 이들 작업의 백미였다.
1983년에 죽은 라일링 역시 독일의 대표적인 장신구 작가로서 뛰어난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는 질감이 풍부한 무광의 금을 소재로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성격을 다소 완화시킨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60년대 독일 장신구의 양식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포르츠하임 교수로서도 소임을 다했다. 포르츠하임은 12세기 이후 독일 장신구 산업의 중심지로서 많은 공장과 스튜디오가 있으며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슈무크뮤지엄(장신구박물관)은 60, 70년대에 많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현재에도 전 세계의 장신구 작가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현대장신구에 있어서 70년대초는 모험기였다. 독일 출신의 두 작가, 부리Claus Bury와 로트만Gerd Rothman,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마이어호퍼Fritz Maierhofer는 1971년 런던 엘렉트럼 화랑Electrum Gallery에서의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아크릴을 새롭게 사용했다. 이는 현대장신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후로 플라스틱은 장신구작가 디자이너들에게 애용되었다. 그것은 단단하고 가볍고, 착용이 편하고 무엇보다 색상이 다양하다. 이 전시회에서는 또한 팝아트의 다양한 전략을 보여주었다.
특히, 부리는 혁신적 아이디어와 뛰어난 기술을 겸비한 작가로 부상하면서 영국, 북미, 호주 등에서 많은 초청을 받아 강의했다. 그의 초기작품은 금과 유색, 불투명한 아크릴을 결합했으며 70년대 중반 그는 여러 비철금속들을 실험하면서 풍부한 색감을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예루살렘의 바자렐 미술학교Bezalel Academy of Art in Jerusalem의 교수로 초빙되었다. 이스라엘의 흑백 대비의 사막은 그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으며 ‘사막조각’ 이라는 작업을 찍은 사진들은 그의 3차원 금속드로윙의 바탕이 되었다. 이스라엘에서의 실험적 시기 이후 그는 장신구분야를 떠나 1980년부터 미국에서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다.
로트만은 ‘보디프린트body print’처럼 인간의 신체 자체도 탐구대상으로 삼았다. 80년대에는 귀의 아래 부분을 주물로 떠서 귀의 뒤쪽까지 완벽하게 피부처럼 겹치는 귀고리와 실제 지문으로 장식한 인장반지를 제작했다.
70년대 영향력을 가진 독일계의 다른 작가들 중에는 로렌젠R diger Lorenzen, 무레Norbert Murrle, 바아Ulrike Bahrs, 오스트리아의 휘뵉Waltrud Viehb ck, 스쿠빅Reter Skubic, 스위스의 퀸즐리Otto K nzli, 남아프리카 출신으로 뮨헨에 근거를 두고 있는 크루거Daniel Kruger가 있다.
로렌젠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추상 조각적 장신구로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른 시각적 변화를 표현했다. 스쿠빅과 퀸즐리의 장신구에 대한 지적 성찰은 현대장신구의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스쿠빅은 장신구의 정의와 한계를 끊임없이 묻는 개념적 작업을 통하여 장신구를 인체로부터 분리된 별도의 텍스트로서 만들었다. 예를 들어 그의 작품 ‘혼란’은 장신구에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을, 금속조형물을 그의 팔뚝 속에 이식했던 작품 ‘피부 밑의 장신구’는 장신구의 착용성과 가시성에 대한 회의를 의미한다.
퀸즐리 역시 그의 신체조각적인 장신구를 통해 전통의 장신구를 둘러싸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역설적 질문을 던지는가 하면 이데올로기와 권력 등에 대한 담론을 개념적으로 다루고 있다. 80년대초 제작한 그의 연작 중의 하나는 대형 폴리스티렌 블록을 벽지로 싼 몸통을 가로지르는 대형브로치이다. 그는 이를 통해 장신구가 장신구의 정의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예상된 형태와 기능에서 얼마나 동떨어질 수 있는 가를 묻는다.
크루거의 작품은 투박한 편인데 불규칙한 형태의 거친 돌맹이에 부분적으로 금박을 입힌 펜던트는 그의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독일의 현대장신구의 특징 중 하나는 정제된 형태 속에서 드러나는 표현주의적 성향이다. 표현적 작품은 때로 매우 정교한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마로우Beatrix Mahlow의 경우 정교하게 제작된 형태들은 고고학적 발굴물을 연상시킨다. 도끼머리, 칼날, 부족적인 물건등.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그 의미가 전달되지는 않는다. 그것의 의미와 콘텍스트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무지는 때로 더 궁금증을 유발한다. 특히 아주 잘 만들어진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은유와 궁금증 그리고 아름다운 장식의 혼합물이다. 유럽의 전통에 맞추어 마로우의 작업은 독립적인 경우보다 ‘착용’되었을 때 새로운 생명력과 정체성을 갖는다.
다른 예로 뮐러Friedrich M ller의 작업에서도 좀더 거칠고 직접적인 방식의 표현적 성향을 볼수 있다. 바우어Frank Bauer의 작품은 영국의 브로드헤드나 포크처럼 부드러운soft-edge 디자인과, 스필러나 티스데일와 같은 기계미학의 중간쯤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3. 네델란드의 작가들
현대 장신구의 가장 주목할만 부분은 재료사용의 다양함이다. 여기에는 네덜란드의 영향이 가장 컸다. 전통적으로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는 네덜란드는 특유의 개방성과 열린 시각을 가지고 현대장신구의 전개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네덜란드는 가장 포용력 있게 실험적인 현대장신구를 수용했으며 현재에도 세계에서 가장 좋은 현대장신구의 시장으로서 명성을 가지고 있다.
화란의 현대장신구 전개는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 1965년부터 70년대의 레르쉼Emmy van Leersum 과 바케르Gijs Bakker로 주도된 매우 실험적인 시기가 있었으며 그리고 1974년에 결성된 BOE – Bond van obloerege edeelsmeden의 시기이다. BOE 그룹은 앞의 장신구작가들의 이성적인 미학에 반동하며 더 자유로운 스타일 추구했다.
레르쉼과 바케르는 세공가로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으나 그 전통을 깨길 원했다. 60년대 중반 그들은 일련의 칼라collar와 팔찌를 알미늄으로 제작했다. 이 재료의 사용에는 가벼움, 전성malleability과 강도 등의 실용적 이유도 있으며 사회적 미감을 위한 의도적 선택이기도 했다. 이들 작업은 ‘착용하는 조각sculpture to wear’라는 제목의 2인전으로 1966과 1967 암스테르담과 런던에서 순회전을 가졌다. 바케르는 최근 산업디자이너로 활동하지만 장신구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는 투명한 플라스틱에 꽃잎과 같은 평면적인 장식물을 배열한 대형목걸이를 비롯한 장신구를 계속 발표하고 있다. 이후 여러 젊은 장신구작가들이 이들의 뒤를 이었다. 니우벤보그Frans van Nieuwenborg, 베그만 Martin Wegman, 스타제스Marja Staajes, 히스Maria Hees 등이 그들이다.
1969년 아인호벤에서는 ‘착용하는 오브제들Object to Wear’ 전에서 개최되어 장신구의 영역을 오브제의 영역으로 확대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전시회에서 특히 Van Leersum/ Bakker ‘movement’ 가 출품되어 주목을 끌었다. 여기서는 다른 주목할 만한 세 작가가 합세했는데 베크Nicolaas van Beek, 보쉬Fran oise van den Bosch, 라미리스Bernhard Lameris이다.
이들 모두를 관류하는 공통점은 최소한의 미니멀 형태이다. 또 인체는 장신구를 그냥 거는 부분이 아니라 장신구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이다. 70년대 초 모든 사람들은 레르쉼과 바커를 신봉했으나 허스트Marion Herbst는 그들과는 다른 것을 시도했으며 그룹 BOE를 결성했다. 여기에는 보크하우트Onno Boekhoudt, 보쉬Francoise van den Bosch, 페터Berend Peter, 니홀스터Karel Niehorster 등이 함께 했다. BOE는 단명했으나 당시까지 주도적이었던 ‘무장식의 디자인’, 즉 모더니즘 주도의 장신구에 반격을 가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이후 영국으로 눈을 돌렸다.
70년대를 통해 화란과 영국의 장신구작가들 사이에는 많은 아이디어의 교환이 있었다. 브로드헤드Caroline Broadhead가 나일론등의 합성섬유를 쓰는 것이 화란에서 여러 작가들이 섬유와 유색재료들을 사용하는 데 영향을 주었으며 반면에 워킨스David Watkins나 헤론Susanna Heron등이 레르쉼, 바케르의 작업에서 영향을 받았다. BOE 자체는 계속되지 못했지만 허스트, 보크하우트 등은 계속 혁신적이며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보크하우트는 70-80년대 독일의 윙어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이며 교육자로 평가되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작업 속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절제와 자유로움(혹은 자율성 spontaneity)이다. 이것은 20세기 전반의 브랑쿠시와 무어 등의 유기적 추상조각과 흡사하다. 이 두사람이 특히 중요한 것은 교육자로서 독일의 뮨헨 아카데미와 네델란드의 리트벨트 아카데미Rietveld Academy를 통해 향후 유럽 전반에 걸쳐 활동할 가장 중요한 차세대의 작가들을 배출한 점이다.
윙어의 제자는 크루거Daniel Kruger, 샤린Miriam Sharlin(미국), 퀸즐리Otto K nzli, 비숍Manfred Bischoff(서독)등이며, 보크하우트는 브라크만Joke Brakman, 호닝Willem Honing, 프랜테이트Annelies Planteydt 등을 배출했다.
보크하우트의 작품은 데스틸의 미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그의 장신구는 기하학적이지 않다. 그것은 자연적인 성질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그가 금속의 물성을 다양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나 특히 재질감의 표현등은 매력적이다. 근래 보크하우트는 오브제들의 작은 콜렉션을 제작하는데 그들 중에 하나만이 착용될 수 있는 것이며 다른 것들은 물신주의적인 숭배대상으로 의도되어 있다.
보크하우트의 제자들의 작품 역시 단순하면서도 강한 표현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잘 디자인된 작업, 절제된 표현과 색상’이라는 화란 작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적절함과 부드러운 제스처가 있는데 서예와 같은 것이 보여진다. 호닝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각 재료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나의 작업의 시작이 되는 것은 이들 재료의 성질들이 아니다. 나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어떤 종류의 느낌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느낌에 따라 각 요소들을 배치하고 이들은 작품이 된다.’
화란의 데레즈Pual Derez의 작품은 전통 네델란드 의상을 연상시킨다. 70년대의 허스트Marion Herbst를 연상시키는 볼프Lam de Wolf 역시 주목할 만하다. 많은 젊은 작가들 특히 화란, 영국, 미국작가들이 저가의 재료를 사용하길 원하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그들은 보석과 귀금속이 갖는 부의 가치, 신분과 권력을 공통적으로 배격하고 있다.
4. 영국의 현대장신구
20세기의 대부분 동안 영국 장신구는 대륙과 스칸디나비아의 스타일과 패션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또한 그들의 그늘에 가렸다고도 볼 수 있다. 50년대 스칸디나비아는 디자인에서 주도권을 잡으면서 영국 시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후 유럽 대륙으로부터의 영향도 못지 않다.
50년대의 프뢱킹어Gerda Fl ckinger는 영국 장신구에서 거의 유일한 주요 작가였다. 그녀는 60년대 후반부터 표면에 용해된 듯 나선, 원구, 거품, 구멍으로 뒤덮인 독특한 표면마감을 선보였다. 1962년 영국최초로 혼시미술학교Hornsey School of Art의 주임교수로서 이 학교에 실험성을 중시한 장신구 강좌를 개설하여 포스톤David Poston, 실라스Charlotte de Syllas 등을 제자로 배출했다. 특히 포스톤은 뛰어난 작가로 70년대 초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실라스도 매우 독창적인 디자인과 뛰어난 공예적 기술을 보여주는 작업을 했다. 미나Jacquelin Mina는 금과 플래티나를 소재로 모꾸메가네 등의 일본의 기법을 사용하여 질감과 색채의 대비효과를 강조하였으며 이후 금에 플래티나 그물망을 상감한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1961년 그래험 휴Graham Hugh에 의해 큐레이팅 되었던 런던에서의 국제장신구 전시회는 현대장신구의 돌파구를 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전시회에는 유럽전역의 젊은 작가들이 초대되어 장신구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이 되었으며 이후 현대장신구들은 활발하게 컬렉션의 대상이 되었다.
독일 태생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잔Helga Zahn은 60년대 검은 자갈에 은으로 가장자리를 장식을 두른 작품을 선보였으며, 마노를 사용한 그의 후기 작품들은 70년대의 가장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나타난다.
코트스Kevin Coates는 영국에서는 드문 구상작가이다. 그는 상징주의와 숨은 의미에서 영감을 받아, 매우 다양한 소재와 기법을 활용하면서 신화, 문학, 음악, 수학, 무의식에서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구상적인 장신구를 창작했다.
70년대에 들어 마이어로위츠Patricia Meyerowitz는 그의 작업을 통해 기계가공 방식과 산업폐기물의 사용을 보여주었다. 보석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작가로는 호프Peter Hauffe를 들수 있다. 베커Fridrich Becker의 열열한 추종자이기고 했던 그는 영국의 키네틱 장신구를 깊이 있게 다룬 작가이다.
그러나 귀금속을 창의적으로 다루면서 가장 성공한 작가는 람쇼Wendy Ramshaw 로 70년대초 가장 중요한 작가로 부상했다. 그녀는 주로 귀금속 장신구를 다루었으나 또한 대체재료를 다룬 실험적인 작업과 때로 퍼포먼스작업도 병행했다. 그녀가 고안한 반지 세트는 열 개가 넘는 반지를 한꺼번에 끼울 수 있고 또 색채와 형태의 배합을 대담하게 시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착용자의 끝없는 변주가능성을 의도한 것이다.
70년대 와 80년대초를 거치면서 세 사람의 이름이 점차 부상한다. 헤론Susanna Heron, 브로드헤드Caroline Broadhead, 워킨스David Watkins 이다. 여기에 스위스태생으로 혁신적인 인체장신작가인 드간Pirre Degan이 함께 활동한다. 이밖에도 새 이미지의 스필러Eric Spiller, 트린Gunilla Treen, 쥬리아 만하임Julia Manheim, 캐서린 만하임Catherine Mannheim, 모리스Roger Morris, 새딩톤Tom Saddington 등이 있다. 특히 헤론과 브로드헤드의 작업은 영국 장신구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했다.
그들은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는 귀한 소재가 아니며 금속이나 플라스틱보다 부드러운 형태를 연출하는 텍스타일 섬유와 직물에 관심을 돌리며 등장한 여러 작가들에 포함된다. 브로드헤드는 목면사를 꼬거나 매듭지어 부드럽고 짧고 굵은 목걸이를 제작했고 이후에는 단단하고 단순한 목장식이나 팔찌의 틀에 긴 나일론사 다발을 단 장신구를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들은 실용성과 단순미를 함께 갖춘 것들이었다. 또 웨어러블 컬렉션도 발전시켰다. 브로드헤드의 작품은 지나칠 정도로 단순해 보이지만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장식성을 드러낸다. 그녀의 작품은 브링크Mecky van den Brink와 포크Nora Fok와 같은 작가들에 영향을 준다.
1976년 헤론은 아크릴로 된 팔찌세트를 제작했다. 이들은 단순하면서도 독특함과 힘이 있는 작업이다. 1977년에는 축제목걸이라고 그녀가 불렀던 작품들, 합성수지를 이용한 신축성 있는 팔찌와 여러 가지 클립식의’clip on’작업들을 발표했다. 이들의 기본형은 대칭적 비대칭이었다. 80년대 헤론의 작업은 브로드헤드, 만하임 등과 같이 웨어러블’wearables’로 발전했는데 그녀의 경우 섬유 혹은 종이로 된 동양적인 미감을 보이는 미니멀한 형태의 모자와 같은 형태들로 나타났다. 이 작업들은 더 이상 장신구 영역이라기 보다는 조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워킨스는 새로운 소재의 사용에서도 관심을 가졌는데 60년대 중반 그의 부인 램쇼Wendy Ramshaw와 함께 다양한 색채의 ‘섬씽 스페셜something special’을 제작했다. 이는 구입자가 평면상태에서 직접 조립하도록 되어있다.
워킨스는 초기 작업에서는 데스틸의 조형원리들이 강하게 나타나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갔다. 그는 테크놀로지 이미지에 근거를 둔, 극도의 단순성과 정밀한 형태미를 대변하는 작품을 제작했다. 예를 들어 유색 아크릴 막대에 금속 밴드를 상감하여 경첩 등의 이음장치로 연결하거나 또는 여러 층의 원형 강철선에 기하학적이고 장식적인 부착물을 붙인 다음 전체를 선명한 색채의 네오프렌neoprene을 코팅한 목걸이를 들 수 있다. 워킨스, 브로드헤드, 만하임, 헤론 등의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흥미 있는 점은 조임장치나 체인, 클립 등의 배제이다. 이들은 순수한 디자인 미감의 창조를 억제하고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추상적 구성과 색상의 조화면에서 위킨스는 스필러와 함께 뛰어난 감수성을 갖춘 작가라고 할수 있다.
스필러Eric Spiller의 작품은 테크놀로지의 미감을 다룬다는 면에서 시대성을 갖는다. 최고의 기술인 항공이나 우주 통신사업에서 보여지고 있다. 이들은 수리적이며 섬세하게 만들어지고 기계를 이용해 제작되었다. 우연성은 아니지만 임의성은 이들이 착용되면서 다르게 보여지는 결과에 맡겨지고 있다.
현대장신구의 확장에서 특히 중요해진 인공재료의 사용을 말할 때, 플라스틱의 원색성과 유기적 형상을 극대화한 창Peter Chang의 작업은 빼놓을 수없다.
‘나는 내가 살고있는 시대를 반영하는 어떤 것을 원한다. 그리고 저렴한 재료를 사용하기를 나는 원한다. 그리고 항상 재료의 물질성을 나는 중요시 해왔다. 나무와 같은 자연재는 그것 자체의 성격을 내세운다. 나무의 무늬결은 작품의 아이디어를 파괴할 수 있다. 반면 플라스틱은 ‘무명’의 재료이다. 그것은 작가가 부여한 이름을 갖게되는 것이다.’
창의 작업은 많은 현대장신구들이 그렇듯이 대중적인 호소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의 혁신성은 오트쿠튀르의 손에서 빛을 발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영국의 패션디자이너 리팟 오즈벡에 의해, 또 다른 아방가르드 작가 앤드류 로건의 작품은 디자이너 잔드라 로즈에 의해 패션쇼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새로운 장신구를 형성하는데 있어 이상 살펴 본 바와 같이 유럽 중심국들의 영향 특히 화란,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공헌의 결정적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디자인에서의 진부함을 피하고 흥미 있고 강하며 값싸고 남녀가 모두 착용 할 수 있게 하며, 신분과시용을 배격하고 신체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장신구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다. 이러한 ‘신체와의 조응working-with-the-body’ 정신은 1983년의 프로젝트인 The Jewelry Project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것은 장신구작가 헤론Susan Heron이 모은 유럽의 현대장신구 작품들과 영국의 사진작가 워드David Ward가 함께 마련한 것으로가 뉴욕의 콜렉터인 냅 부부Sue and Malcolm Knapp을 위해 준비한 것이다.
5. 이탈리아의 작가들
20세기 후반에 와서도 이탈리아에서는 유럽의 다른 지역과 달리 여전히 금을 선호했다. 특히 파도바에서는 보석장식 없이 무광의 금으로 안정되고 우아한 양식을 전개했다. 50년대에는 조각가 마리니Marino Marini의 제자였던 프뢰하우트Anton Fr hauf, 핀톤Mario Pinton, 역시 조각가였던 포모도르 형제Gio & Arnaldo Pomodoro가 새로운 장신구의 선두주자들이었다. 포모도르형제는 그들의 조각과 장신구에서 가장 창의적이었는데 오가닉하며 자연적인 디자인은 유럽 장신구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영국에 그 영향은 강했다.
핀톤Mario Pinton이 파도바의 국립미술학교와 피에트로 셀바티코 미술학교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이 도시는 이탈리아의 예술적 장신구를 대표하는 도시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태리에서의 주요 장신구 작가들 중에는 조각가가 많다. 이것은 전형적인 이태리적인 모습으로 그들의 재능있는 디자이너나 아티스트들은 교육배경에 따른 인위적인 장벽으로 인해 구분되거나 억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1967년 몬테벨로Gian Montebello는 밀라노에 독특한 공방을 시작하고 국제적인 조각가 화가들을 초청해 몬테벨로 보석공장Gem Montebello Laboratory과 협력해 장신구디자인을 하도록 했다. 채택된 디자인들은 장인들에 의해 원형prototype이 제작되었는데 디자이너 중에는 에른스트Max Ernst, 세자르Cesar, 에르테Erte, 마타Matta, 세인트 팔레Niki de Saint Phalle, 폰타나Lucio Fontana 등이 포함되었다. 제작된 원형은 소수의 한정생산으로 판매되었다.
60년대 후반 마르티나찌Bruno Martinazzi는 여러 가지 인간과 관련된 주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토리노에서 활동하는 그는 섬세한 모델링을 특징으로 하는 장신구를 제작한다. 이는 그의 대형 조각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신체부분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새로운 감각을 전한다. 그의 접근법은 철학적 사고를 강하게 반영하는데, 예를 들어 손가락과 손은 창조력과 우정을 가리키고, 측량장치를 통해 신중히 배열한 선과 숫자는 인간이 주변의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을 전한다. 그의 장신구들은 아주 세밀히 제작되었으며 일견 관능적이다.
더 젊고 작가군에는 바베토Giampaolo Babetto가 있다. 마리오 핀톤의 뒤를 이은 바베토는 전통적이면서 동시에 세련된 작업을 보여준다. 그는 입체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에 기초한 작품을 제작하는데 니엘로나 유색 아크릴 수지도 병용한다. 파반Francesco Pavan의 작품은 바베토와 유사하나 표면효과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인다.
안티코Italo Antico의 선적인 장신구는 이태리 디자인의 특징인 예민한 감각과 확실한 컨셉트의 여유로움 등을 볼 수 있다. 그는 또한 주요 미니멀리스트 작가로서 장신구에서는 불가능한 공간적이며 은유적인 조각을 제작하고 있다. 안티코, 마르티니찌, 바베토, 파반등은 모두 70년대에 많은 활동을 했다.
6. 미국의 표현주의
미국에서 미니멀한 디자인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유럽과 미국의 조형적 취향의 차이에 관해 미국의 금속공예가이며 조각가인 그리핀Gary Griffin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다.
‘유럽의 작업들은 미국에 비해 훨씬 미니멀하다. 그것들은 디자인의 정제과정distillation process을 보여주는데 그를 통해 미니멀(환원적) 미학 reductivist aesthetic을 낳는다. 굳디자인과 창의적 디자인은 그 자체가 유러피안 어프로치의 목적이다. 이 점은 미국에서의 이미지나 서술성의 활용과 비교할 때 중요한 점이다. 여기서 우선순위는 바뀐다. 이미지는 중요하며 컨셉은 조형요소들의 자리를 대체한다. 작가의 개인적 철학이 주요하며 그것은 디자인 아이디어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
장신구는 꼭 착용하는 것인가. 그렇게 확정적이진 않다. 적어도 미국의 현대장신구의 경향에서는 그러하다. 이들은 많은 경우 장신구를 착용해야만 하고 착용을 통해 드러내야하는 장식물로 보다는 미니어쳐 조각으로 인식한다. 마치 상업장신구의 경우처럼 신체와 옷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서구유럽에서의 현대장신구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네덜란드의 두 선구자 레르숨이나 바커의 생각이 그랬듯이 장신구와 신체와의 관계이다.
장신구의 독립된 진술statement(陳述)의 도구로 인식하는 시각은 미국의 작가 메트캐프Bruce Metcalf의 자전적 글에서도 잘 나타난다.
‘나는 스스로를 공예가이며 동시에 서술적인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둘 사이에 어떤 모순도 느끼지 않는다. 정성스럽게 가공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내 작품들은 그 자체가 공예이며, 한편 우리 시대 안에서의 모든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포함한 나의 사고를 상징화한다는 점에서 나의 작업은 하나의 미술품일 것이다…
나는 작은 사물을 만든다. 나는 바깥세상의 사람들과 쉽게 연결될수 있는 사물을 만든다. 그리고 나는 나의 작업에 분명한 미국적 냄새를 담는다. 만화적으로 양식화된 언어을 차용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연구와 성찰을 통해 나의 작품 속에 ‘의미’를 가득 채울 것이다. ‘내용contents’이라고 불리는 것을 나는 계속 강조할 것이다. 나는 한 개인과 사회가 맞닿는 경계에 대하여 진술하며, 마음의 상태가 개인들이 현실속에서 활동할 때 미치게 되는 영향 또는 통제에 관해 나는 진술할 것이다…’
장신구를 독립된 소조각으로 보는 미국작가들의 개념은 1898년 필라델피아생인 콜더Alexander Calder에게로 까지 수렴된다. 콜더는 1931년 모터로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고 곧 모터 없이 자연 공기에 의한 모빌을 만들었다. 콜더는 또한 장신구에 관심을 가져 다른 화가나 조각들이 실패했던장신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한동안 장신구는 그의 작업에서 주요 부분이된다. 별다른 설비 없이 몇 개의 공구만으로 은과 구리 선의 단조로 솜씨 있게 장신구를 제작했다. 목걸이, 팔찌, 빗, 브로치 등이 제작되어 1940년 후반 뉴욕의 빌라드Willard 화랑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1964년 죽은 파타Margaret de Patta는 바우하우스와 모홀리 나기의 영향으로 새로운 보석세팅을 선보여 미국현대장신구의 주요인물이 되었다. 그녀는 공간의 문제, 선과 면의 움직임에 관한 문제, 빛과 투명함에 대한 관심을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전통이 없었던 여러 미국의 선구적인 장신구 작가들은 ‘스스로’ 배웠기 때문에 새로운 접근 방식이 가능했다.
미국 장신구에서 가장 중요한 경향는 아쌍브라쥐의 채택이다. 이것은 특히 1961년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렸던 The Art of Assemblage 전을 통해 크게 고조되었다. 장신구에서의 아쌍블라쥬는 1958년 초현실적 펜단트를 보여주었던 크라머Sam Kramer에 의해서 예견되었다. 그것은 전통적 재료와 함께 박제로부터 얻었던 노랑, 검정의 동물의 눈을 사용한 작품이다.
60년에 이르러 앗쌍블라쥬의 주된 작가는 보울Fred Woell로서 그는 주로 화운드오브젝트를 사용했다. 60년대에는 작가군이 형성되었는데 피쉬Arline Fisch, 쉬크Marjorie Schick, 에벤도르프Robert Ebendorf, 레친Stanley Lechtzin 등이 그들이다. 특히 레친은 잘 알려진 세공가로 처음으로 전해주조를 실험한 작가이다.
드 라지Edward de Large는 영국생으로 미국에서 거주하며 활동한다. 그 역시 테크놀로지의 영감으로 작업하면서 타이타늄 애노다이징 연구를 통해 회화적으로 매우 정교하고 풍부한 일루젼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알미늄 애노다이징을 전문적으로 구사하는 미국의 티스데일David Tisdale의 장신구는 그것의 기능을 드러냄으로서 특징적인 요소를 찾는다. 예를 들어 팔찌구조를 드러내어 강조한 그의 팔찌는, 구조를 드러내 강조한다는 점에서 표현적이라고 할수 있다. 그의 작업은 매우 미국적으로 자율적인 성격이 있지만 같은 알미늄 애노다이징을 다루는 네덜란드의 뮬더Coen Mulder는 재료와 기능에서 더 단순하며 착용되었을 때 빛을 발한다.
미니멀한 형태속에서의 절제된 표현은 유럽장신구의 공통적 성향이나 미국의 퀴글리Robin Quigley와 같은 작가의 작업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것은 독일의 윙어의 작품과 유사하다. 형태는 단순한 디자인인데 유희적이며 주술적인 요소는 칸딘스키를 연상시킨다. ‘자유로움spontaneity’이란 이 경우 임의성이나 통제되지 않은 제스처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표현의 유창함으로 이것을 가능케 하는데는 두 가지 조건을 요구한다. 기술적 능숙함과 디자인의 분별력이다.
단순한 형태감속에서의 강한 표현은 퀴글리 외에도 샤린Miriam Sharlin, 레작Suzan Rezac 등의 작품에서도 명료하게 나타난다. 레작의 작업은 금속공예기술과 20세기 추상회화로부터의 장식성이 결합되어있다. 다양한 금속의 콤비네이션은 무언의 풍부한 느낌을 전하는 데 이는 기하형태와 잘 어울린다. 추상회화의 암시는 미국 작품들 중 많은 곳에서 드러나는데 대표적으로 베넷Jamie Bennet의 작품을 들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마치 추상화를 작게 축소한 듯하다.
미국의 선구적인 작가인 파타 Margaret de Patta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모티Eleanor Moty 역시 평면과 3차원공간, 그리고 돌과 금속을 효과적으로 연출한 주요 작가이다. 초기 작품에서는 미국의 자연 풍광과 사진 이미지를 사진부식photo etching기법을 통해 환상적으로 표현했으며 최근에는 보석의 추상적 형태와 투광성을 절제된 형태속에서 효과적으로 다루고 있다.
미국장신구의 표현주의적 요소는 미국의 일상생할, 광고, 포장, 자동차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또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장식주의Ornamentalism 등과 같이 절충주의를 향한 건축에서의 경향과도 맥을 같이한다.
메트캐프는 표현주의적 경향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장신구에서부터 테이블조각까지 폭넓은 어휘를 사용해 다양한 이야기를 서술한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들은 선명하기도 한가하면 추상화되어 모호한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물신주의적 요소들은 외설, 폭력등의 이미지를 함께 동원하면서 놀라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제공한다.
하퍼William Harper의 작품은 강한 표현성과 함께 원시적이고 주술적이다. 칠보기법의 대가인 그는 베넷Jamie Bennet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 칠보작가이다. 특유의 선명하고 강한 원색들의 클로이조네 칠보로 제작된 몸통에, 거친 질감효과를 내 금, 수정, 바로크 진주를 함께 사용하여 추상적이니 형태 이면의 주술성 연상의 상징성을 품은 환상적인 구성을 연출한다.
장신구와 신체의 관계에 주목하는 작업은 주로 유럽에서 이루었으나 미국의 장신구에서도 신체조각body sculpture, 착용하는 조각sculpture to wear, 신체미술body art등의 용어는 자주 등장한다. 특히 피쉬Arline Fisch, 게티Nilde Getty, 메리트Barry Merritt, 젤마노프Marci Zelmanoff 등의 작업이 그러하다.
신체조각의 주된 변혁은 주로 유럽에서 현재 일어나지만 미국의 쉬크Marjorie Schick는 이 분야의 가장 흥미있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자신의 색칠한 나무 작업을 ‘착용 가능한 조각적인 스틱stick 드로윙’이라고 말한다. 그것들은 매우 표현적으로 원시 부족적이며 제의적이다. 크기가 커지면 더욱 극적이다.
왜 바디오너멘트가 미국 장신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이유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보수적 장신구 전통의 부재는 새로운 것을 찾게 하는 요인이며 아메리칸 인디언의 문화의 영향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그것은 특히 깃털과 여타의 유기물질과 형태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덧붙여 30년대부터의 미국의 문화 특히 뉴욕의 그것은 유럽 이민자들에 의해 풍부해지는데 그들이 가져온 아이디어와 재능 등은 때로 당시 그들의 본국에서는 억압되었던 것들이다. 또한 미국인들이 가진 스펙터클하고 쇼맨쉽에 대한 재능과 요구들이 미국 장신구의 주요 원천이 되었다.
미국과 유럽 장신구의 간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모즐리Richard Mawdsley의 고딕식의 작품들이다. 그는 펜단트, 핀, 팔찌를 제작했는데 모두 기능이 있다. 너무 무거워 착용할 수 없는 그의 펜단트는 그의 ‘기능’에 대한 생각을 암시한다. ‘그는 기능을 국자핸들의 꼭지장식처럼 다루었다’ 라고 평론가 코플로스Janet Koplos는 American Craft Magazine지에서 말한 바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 ‘향연Feast’ 팔찌는 하나의 조각작품으로 만족할 수 있으나 기능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내용이 가득 차 있으며 시각적으로 보는 이들을 압도하기 때문에 착용할 수 하더라도 그것은 정상적인 장식의 효과 혹은 인체와 대등한 관계를 이룰 수 없다.
유럽과 미국의 차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작가 라플란츠David LaPlantz는 중요한 논쟁거리가 될 수있다. 그는 80년대 중반 현재 가장 성공적으로 박물관의 콜렉션의 대상이 된 작가로 작업의 발전은 진화적이어야 하며 점진적이어야 한다는 생각하는 유럽의 작가들에게 그의 작업은 의아한 대상이다. 장신구작가이며 미국 흄볼트대학교 교수인 그는 오랫동안 금속공예가로 활동했으나 최근 장신구 작업을 하고 있다. 애노다이징, 혹은 페인팅한 알루미늄으로 강한 색상 위에 조각을 해서, 그 나타난 선들은 은색처럼 표현되고 있다. 그는 거의 드로윙을 하지 않으며 즉흥성을 선호한다. 그는 또한 같은 방식을 학생들에게 교육한다. 예를 들면, 학생들에게 문제를 던지고 3시간 안에 작업을 마치도록 한다. ‘누가 당신에게 도끼를 던진다면 너는 어떻게든 반응해야한다. 그 대응이 잘못되었다면 너의 다음 결정은 그것을 수정할 것이다.’ 라고 그는 말한다.
라플란츠의 작업들은 착용할 수 있지만 웨어러블 아트로서 착용성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본능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작업을 끝낼 때까지 그것에 관해 알지 못한다. 이것은 마치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다 마치고 나서, 아 그것 괜찮은데..’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 라플란츠의 작업이 주목되는 것은 ‘빠르고, 열심히 제작하며, 계속되는 변화’ 와 같은 점들이 미국 장신구의 새로운 특징들로 나타난다는 점에서이다. 세심한 주의caution, 절제reductivism가 유럽의 그것이듯.
라플란츠의 도끼 비유는 아직도 많은 유럽선생들에게 적절하게 들리지 않는다. 많은 유럽의 교육은 아직 바우하우스에 깊은 뿌리를 둔다. 특히 스위스 선생 요하네스 이텐의 접근 방식이 그러하다. 이텐은 자율성spontaniety과 관련하여 그의 저서 Design & Form에서 좋은 예를 보여준다. ‘양치식물 fern을 일주일 동안 매일 아침 30분씩 연구한다. 그것은 특징적인 형태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마지막날 화분을 치우고 드로윙을 한다. 하나의 느낌에 15분씩 동안 제작된다.’ 이때 유럽에서 말하는 자율성spontaniety은 라플란츠의 그것과 다르다.
유럽의 것들은 마치 중국의 서예와 같이 동작은 단숨에 이루어지지만 많은 이해를 요하는 것과 같다. 어느 점에서 라플란츠와 같은 미국적 작업방식은 지나치게 엄격한 유럽식 접근의 중화제 같을 수 있다. ‘하나의 질문에 나는 적어도 5-6개의 답을 줄 것이다. 자주 선생들은 단 하나의 ‘진실’의 답만을 가지고 있는 신처럼 행동한다.’라는 그의 말은 일리를 갖는다. 그러나 미국의 표현주의적 작업과 관련하여 말한 평론가 도머Peter Domer의 아래와 같은 글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최고급의 작품들에는 언제나 ‘꼭 필요한 당위성necessity’를 보여준다. 즉, 조금이라도 고치면 그 작품이 약해질 것 같은 느낌. 표현주의의 함정은 그것의 임의성arbitrariness이다.
7. 기타 국가에서의 동향
스웨덴의 은세공가이며 디자이너였던 페르손Sigurd Persson은 장신구작가로도 60년대에 뚜렷한 활동을 했다. 1964년 그의 저서 현대장신구Modern Jewelry에서 영국의 평론가 휴Graham Hughes는 ‘페르손의 냉정하고 건축적인 장신구는 라릭의 작품이 아르누보에 그러했던 것처럼 이 시대에 중요하다.’ 라고 말한 바있다.그의 전형적인 스칸디나비안 모던의 디자인들은 영국과 중부유럽에 큰 영향을 주었다.
벨기에의 스풀리Emily Spouly는 60대, 70년초 바우하우스와 데스틸 미학에 바탕을 두고 유럽에서 활동한 영향력이 있는 작가로 특기할만하다. 더 근래에 들어, 노르웨이의 비겔란Tone Vigeland은 금속고리를 이용하여 유연한 체인 갑옷을 선보였는데 초기 작업때눈 타출성형한 강철 드롭과 길쭉한 금 비드로 만든 깃털 모양 덮개를 체인 갑옷에 덧붙이기도 했다.
동구권의 체코에서는 두 명의 뛰어난 장신구 작가를 배출했다. 카살리Svatopluk Kasaly와 체프카Anton Cepka가 그들이다. 카살리는 특히 70년대 체코의 특산물인 유리를 재료로 활용했다. 그의 형태들은 네델란드의 레르쉼과 같이 단순하고 미니멀했으나 또한 따뜻하고 리드미칼하다. 70년대부터 체프카의 장신구는 더욱 조각적이다. 매우 세련된 색상 그리고 레이더나 라디오 장치와 같은 기계장치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이스라엘의 작가 노벨Esther Knobel의 전사戰士들의 모습을 그린 장신구는 유럽에서 열열한 호응을 얻었다. 그의 작품들은 반드시 인체에 착용함으로써 완성된다고그는 말했다. 주석깡통을 펴서 오려낸 인체와 병정들의 모습은 정치적이면서 또한 유희적이며 팝아트적인 요소를 복합적으로 함축한다. 필연적으로 이스라엘과 주변국의 전쟁을 연상시킴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들은 장식적이고 즐겁다. 악셀로드Avner Axelrod 역시 이스라엘 작가로서 그의 메달과 소형조각작업을 통해 정치적 비유를 암시하는 흥미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
현대 장신구를 만들어 오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서구유럽과 미국의 비중은 앞으로 변화될 것이다. 여러 타 국가에서의 발전 때문이다. 캐나다에서는 1983년에 그리너웨이Suzanne Greenaway가 운영하는 Prime Canadian Crafts Gallery에서 혁신적인 전시회였던 Jewelry in Transition가 개최되어 모든 캐나다 작가들이 출품했는데 특히 찬Kai Chan, 에반스James Evans, 카피신 Richard Karpyshin 등이 전통장신구를 대신하는 새로운 장신구들을 출품했다.
유럽과 강한 유대를 갖고 생활스타일은 미국적인 호주도 캐나다와 유사하다. Crafts Board of the Australian Council 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긴밀히 유대하며 교류전을 열고 있다. 윙어, 부리, 워킨스, 람쇼 등과 같은 유럽의 중량급 작가들이 호주의 방문작가들로 체류한 바 있으며 그들의 교육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럽의 영향을 줄이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묻고 있다. 마키가와Carlier Makigawa, 호스킹Marian Hosking, 웨스트Margaret West, 튠Lyne Tune 등이 주목할 만하다. 이들 중 마키가와는 왕립멜본공과대학의 교수로, 호스킹은 모나쉬대학의 교수로서 후배의 젊은 작가들을 양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8. 80년대의 현황과 조망
‘장신구는 무엇인가? 사전이나 백과사전에 나온 정의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단지 이 대상의 전통적인 이해만을 제시할 뿐이다. 무엇이 장신구이며 무엇 때문에 개개인은 이런 장신구를 만드는 것인가? 착용되는 것은 모두 장신구인가? 장신구는 착용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착용될 수 있는 것인가? 얼마나 종종 착용되어야 하는가? 권력의 상징으로 왕관은 단지 대관식 때 한번 쓸 뿐이다. 하지만 왕가는 유행으로부터 완전히 일탈해 있거나 우리들의 고찰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결혼식을 위한 장신구는 단지 한번 착용될 뿐이다. 결혼반지는 항상 착용하지만 말이다. 착용할 수 없게 만들어지거나 착용 이외의 용도로 팔리는 장신구도 있다.’
가장 실험적인 작업을 통해 장신구에 지속적인 물음을 던져왔던 오스트리아의 작가 스쿠빅Peter Scubic의 위의 말은 80년대까지 현재장신구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 수많은 작가들의 시각과 노력을 웅변하고 있다.
영국의 평론가이며 공예문화The Cultuer of Craft의 저자이기도 한 피터 도머Peter Domer는 80년대 중반의 유럽과 미국의 ‘뉴 주어리’의 경향을 다음과 같은 세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서술했다. 이들 분류는 경계가 약간 모호하고 서로 중복되는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고가 될 수 있다.
첫째 부류로는 표현적이며 또한 매우 잘 정제된 것들 로 이 부류에는 윙어, 퀴글리, 레젝 보크하우트, 크루거 등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두 번째 부류는 표현주의 혹은 과장을 보여주는 그룹으로 자주 물신주의 혹은 제의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 부류에는 독일의 마로우Beatrix Mahlow, 벨기에의 콜프Francoise Colpe, 미국의 메트카프Bruce Metcalf와 쉬크Majorie Schick, 호주의 홀드워스Annie Holdsworth, 지우바Gabriele Dziuba등이 대표적이다.
세 번째 그룹은 디자인에 기반을 둔 부류로 가장 많은 작가들의 작업이 여기에 속한다. 형태와 패턴의 아름다운 조합을 보여주며 여기에는 단순한 기분좋은 느낌이 지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작품들은 기술에서의 특출함과 그것은 20세기 후반 기술사회에 대한 시대적 적절성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스필러Eric Spiller, 티스데일David Tisdale, 드겐Joel Degen 브로드헤드Caroline Broadhead, 데레즈Paul Derrez(화란), 포크Nora Fok(홍콩), 힐버트Therese Hilbert(스위스), 바우어Frank Bauer(서독), 알레망Jean-Paul Aleman(프랑스) 등이 이 부류의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뭔가를 표현하기보다는 어떻게 착용되는가를 중요시한다.
현대 장신구에 있어서 미국과 유럽은 문화적 취향에서의 차이를 보여준다. 또한 유럽 안에서도 차이가 있다. 화란과 스위스는 일반적으로 미니멀리스트 디자인, 거기에는 청교도적인 느낌을 갖는다. 이같은 청교도적 느낌은 물론 이태리디자인에는 없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표현주의 경향을 보여준다. 영국에서의 작가들은 디자인에 기반을 둔disign-oriented 경향이 강하다.
유럽작가들에 대한 미국의 영향은 그리 뚜렷하지는 않다. 그러나 추상미술, 그리고 디자인, 건축에서의 특정부분에서 미국의 공헌은 매우 크다. 미국의 장신구는 다양성, 기술에 대한 관심, 간혹 보여지는 성급함 등에서 독일의 기질과 가장 유사하다. 많은 젊은 작가들이 전통적 취향으로부터 일탈하고자하는 준비가 되어있으며 이점에서 미국, 독일, 호주의 작가들은 가장 앞서간다.
유럽의 현대장신구에서 기하학적 디자인은 압도적으로 비중이 크다. 새로운 소재의 도입과 물성을 소개하는 반면 그들의 작업은 주로 자르기와 접기에 집중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표현성과 구상성이 상대적으로 많은 미국 작업들은 이점에서 형태적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에서도 이제 새로운 젊은 작가들은 그들 선배들의 현대장신구를 하나의 고전으로 생각하며 장신구의 새로운 가치매김에 진력하고 있다.
전통장신구와 상업장신구에의 배격에서부터 출발한 현대장신구는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재료적 실험과 기술의 확산을 이루었으며, 장신구의 가치를 신체와 의상을 위한 장식적 기능의 일상성으로부터 다양한 의미와 이미지의 전달매체로 격상시키는 결과를 이루었다. 한편, 주로 미국의 작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장신구의 오브제화 경향은 유럽과 미국의 장신구관을 차별화하면서 장신구의 정체성에 대한 계속된 질문을 던졌으며 다원적인 장신구관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70년대와 80년대는 현대 장신구의 개화기이면서 또한 가장 극적인 변화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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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전용일 교수 홈페이지에서 갈무리
야나기무네요시와
한국의 미
그리고 신간’인간부흥의 공예’와 관련된 글
3.1운동 직후인 1919년 5월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당시로선 극히 이례적인 글이 실리게 된다. 일본 문화는 조선의 은혜를 입었다는 파격적 주장이었다.
나라(奈良)박물관의 전시품만 해도 그걸 증명하고 있지만,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 문화를 죽이고 있다는 개탄도 담겼다. 폭탄선언 ‘조선인을 생각한다’를 쓴 이는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였다. 도쿄대 출신의 종교철학자이자 휴머니스트가 그였다.
이듬해 동아일보가 그 글을 전재하며 야나기는 ‘한국인의 친구’로 성큼 다가왔다. 그 글과 ‘한국의 벗에게 보내는 글’등을 모은 단행본 ‘조선과 그 예술’ (1922년)을 펴냈던 야나기의 활동은 과연 고맙기 이를데 없었다.
과장이지만, 그가 없었더라면 얼마전 광화문 앞 월드컵 개선식도 불가능했다. 당시 광화문 해체 움직임에 급브레이크를 걸었던 공은 그의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있다. 그 야나기는 분명 아마추어 미술사학자였다. 한데도 그의 어설픈 미술이론은 과도한 영향력을 해방 후 반세기 넘은 지금까지도 행세해오고 있다. 아니 그 이상이다.
그가 주창했던 민예론은 선사시대 이후 한국미술 전체의 특징을 설명하는 거대이론으로 격상됐다. ‘무기교의 기교’ ‘질박한 아름다움’ ‘백색(白色)과 곡선으로 이뤄진 슬픔의 미학’….
어디 많이 들어본 말들의 원산지가 바로 야나기다. 그게 왜 잘못인지 어리둥절하시다고? 당연하다.
그건 ‘교육이란 이름의 최면’ 때문이다. 미술사 분야의 최고학자들인 우현(又玄)고유섭, 삼불(三佛) 김원룡, 그리고 전 국립박물관장 정양모 등이 야나기 이론을 확대 재생산해온 장본인들이었다.
그들의 찬양 속에 식민지 시절 아마추어 학자의 ‘정확지 않은 칭찬’ ‘잘못된 덕담’이 정설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걸 밝혀준 것이 지난주 일간지에서 두루 소개했던 이데카와 나오키의 저술 ‘인간 부흥의 공예’ (학고재)였다.
기억해둘 것은 또 있다. 지난해 말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가 펴낸 책 ‘한국 미술, 그 분출하는 생명력’ (월간미술)이 그점을 정면에서 지적했다. 그렇다. 강우방과 이데카와의 지적대로 ‘슬픔과 곡선의 미학’ 따위란 거의 완전한 억지다.
왜 그럴까. 야나기가 푹 빠졌던 공예 등이란 미술사의 주류가 아니다. 외려 불상.회화 등 파인아트의 걸작품들에서 미술이론의 핵심을 도출해야 하는데, 그것부터 잘못됐다.
‘한국 미술=슬픔과 애수의 미학’이란 등식은 더 어불성설이다. 한국인 특유의 못말리는 생명력 내지 에너지는 과연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를테면 월드컵 때 터져나온 에너지가 한국 고유의 것이다.
고대 이래로 우리에겐 무언가 혼란스러울 정도의 에너지가 있다고 봐야한다. 흰 옷? 야나기는 흰옷에서 슬픔의 미학을 이끌어내려 했지만, 그건 망발이다. 아랍.인도 등지에서도 흰옷을 입지만, 그걸 슬픔의 미학으로 포장하려한 시도는 유례가 없다.
따라서 야나기의 이론에는 싱싱한 인간의 냄새가 증발했다는 지적이 이 참에 터져나온 것이다. 암묵적으로 ‘유약한 한국민’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 일제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했다는 혐의도 없지 않다.
자, 결론을 내리자. 강우방과 이데카와의 책 두권의 문제제기는 간단치 않은 파장을 안겨준다.
우선 인문학의 꽃 중의 하나인 미술사, 특히 한국미술사란 거의 전면적으로 새롭게 연구돼야 한다는 점이다. 또 있다. 학문도 때로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허위의식의 집적물’일 수도 있으니 그걸 경계할 필요도 있다.
지난 시절의 연구를 재검토하는 건 이제 ‘충분한 시간을 번’ 우리 시대 지식대중들을 포함한 젊은 미술사학자들의 몫이다.
털어놓고 말하자면 지금도 한국인들 사이에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한 패배의식이 상당부분 존재한다. 그것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야나기 등 식민지 시대의 검증되지 않은 학문적 가설에 주눅들었던 결과물일수도 있으니까.
조우석 출판팀장(중앙일보)
글/이인범
청주의 국제공예 비엔날레 개최와 공예산업단지 조성, 광주·이천·여주의 도자박물관 건립, 국제도자엑스포·비엔날레프로젝트, 그리고 공예진흥원 설립, 국립현대미술관의공예부문 전시, 서울 시립미술관의, 그 밖에 목포 등 각 지방자치단체들에 의해 추진되는 공예관련 프로젝트들….
최근 들어 걷잡을 수 없이 넘쳐나는 이들 공예관련 공공 프로젝트와 이벤트만으로도 그동안 쓸쓸하기 그지없던 한국공예계가 갑작스레 장미빛으로 뒤덮인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애초 지방자치제가 채택될 때부터 예견되던 일이다. 지방자치가 민주화·국방·외교같은 거대 서사보다는 시민을 위한 생활정치의 회복에 중점이 주어질 수 밖에 없을진대, 이때 ‘삶의 예술’인 공예야말로 비할 바 없이 훌륭한 지방자치의 기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숨이 차고 말문이 막히는 것은 왜일까? 무엇보다도 이러한 야심에 찬 프로젝트들이 과연 근대 이래 한국의 공예분야가 처해왔던 위기 상황이나 현재의 구조적인 문제점들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으며 그것들을 해소하는데 얼마나 기여하게 될까하는 생각에 이르면 더욱 그렇다. 수요나 공급 그 어느쪽 가릴 것 없이 최근 공예를 앞에 놓고 드러내는 의욕이나 욕망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공예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진정 무엇이며 그것들이 온당한 방법과 절차를 따라 소기의 목적에 다가서고 있는지가 다소 의문스럽다.
그동안 정치·경제·사회적인 변화의 조짐은 커녕 일상생활에 대한 소박한 관심에서마저 멀리 떠났던 공예계가 아닌가. 어떻든 공예계로선 왜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 요구되고 있는지, 그 궁극적인 목적과 요구되는 역할이 무엇인지, 그 가능성과 한계는 무엇인지를 따질 여유조차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당연해 보이는 공예계의 역할수행이 초점이 빗나가고 있는 듯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각 공적 영역들의 요구들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대개는 그럴듯한 축제가 없을까 궁리하다 마지못해 착안한 경우인데다가 문화산업 지상주의의 만연속에 문화를 거들먹거리면서도 큰 부담없이 정치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시킬 수 있으리란 착각들로 가득차 있기 일쑤다.
이때 결코 간과해선 안될 일은 공예와 지방자치의 진정한 만남은 인간의 행복한 ‘생활세계’라는 일치된 관심사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을 망각하는 사례역시 여기저기 눈에 띈다. 어떻든 공예는 행복한 삶의 추구라는 명제 아래에서만 이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지방자치와 함께 설 공동의 지반을 얻는다. 따라서 그러한 자각이야말로 그러한 만남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설혹 그렇더라도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다. 잘 알다시피 우리의 삶은 식민지 전락, 동족간의 전쟁, 군부독재체제 속에서 진행된 근대화·서구화 과정에서 무너질 대로 무너져내렸다. 그 상처들이 고스란히 각인되어 얼룩진 곳이 다름아닌 공예분야이자 지방자치 분야이고 보면 여기서 다시 그 세계를 강건하게 복원해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지방자치와의 만남은 공예로서는 결코 누리게 될 단꿈이 아니다. 오히려 그 생존의 가능성을 마지막으로 가름하거나 식민화된 상태를 떨쳐버릴 비장한 결단을 요구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결국 주시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는 또다시 생활세계의 문제다. 그 회복은 전승공예와 현대공예, 미술과 공예, 산업디자인과 공예, 학교공예와 현장공예, 전시공예와 생활공예 등 심각한 분열상을 드러내는 우리 공예계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그 모든 분열을 진정한 삶의 세계를 되돌릴 때에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이미 공예라는 이름 밖의 미학적 순수주의에 빠지거나 맹목적 전통고수로 해결 가능한 문제는 결코 아니다.
삶이 그렇듯 공예 역시 애초에 순수한 것이 아니라 혼잡스런 것이다. 그것은 뜨겁거나 차갑거나 어둡거나 밝은 그 무엇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의식주의 생활세계,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할 것 없이 온갖 세계가 그렇듯이 즐겁거나 슬프거나 혹은 격렬한 그런 것이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순수한 공예형식, 우리들의 혼을 앗아가는 우리 앞에 즐비한 대형프로젝트들에 기대는 것으로 그 온기가 되돌아올 리 만무하다.
우리 공예가 어떻게 해야 ‘삶’의 풍요로운 대지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되돌아가 그 대지에서 다시 새싹을 틔울 수는 있을까? 다만 이 자리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 결합과 융합의 가능성이 허구적이고 분열적인 우리 공예의 중심을 비우고 대신 삶의 다양한 콘텐츠 웨어를 중심으로 끌어들일 때 열리리란 것이다.
지금 한국공예의 현주소는 그 분주함만큼이나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기를 자각하는 공예인들이 점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가닥의 희망이다. 모처럼의 기대에 부응하며 이들이 공예계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는 날, 지방자치 역시 시민의 삶을 배반하지 않고 미학적 완성의 길을 갈 것이다.
2000년 월간아트 특집글
이인범 / 1955년 출생. 홍익대 회화과 및 동대학원 미학과 석·박사과정 졸업. 국립 현대미술관 및 석남미술재단 학예 연구원, 동경예대 비교예술학연구소 연구원 역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 예술연구소 연구위원, 홍익대 강사.
글 / 최공호
80년대에 극단으로 치닫던 이른바 탈기능의 조형주의 경향을 나는 러시안 룰렛 게임에 비유한 적이 있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공예판 전체를 볼모삼아 자신들끼리만 즐기면 그만이라는 소아적·가학적 태도가 그 게임의 심리와 크게 다를바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공예의 조형주의를 너그럽게 본다면, 근대 이후 수요의 주도권을 기계적 시스템에 넘겨준 데 이어 순수주의로 치달아온 미술의 중심부에서도 밀려나 설 땅을 잃은 나머지 겪게 된 정체성의 혼란으로 보아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변변한 자기 반성의 기회조차 갖지 않은 채 너무 오랜시간을 끌어왔고, 더욱이 근대 이후에 전개된 공예의 참담한 상황을 떠올린다면 변명이 궁색해질 수 밖에 없다.
퇴락한 백자의 끝물과 그나마 공출로 숨이 끊긴 일제 때의 놋그릇 이후 우리의 그릇문화, 다시말해 문화의 이름을 허용할 만한 변변한 그릇이 어디 있었던가. 플라스틱과 양은·스테인리스로, 근대에 다시 싸구려 리어카 백자로 이어진 우리의 식탁이 핏기 잃은 물건들에 점령당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개발독재시대의 값싼 기능주의나 저급한 키치가 우리삶의 조건을 도배질하는 동안 이른바 대학출신 공예가들의 존재는 그 자리에 없었다. 시대양식의 창출은커녕 오히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매몰된 채 자신의 소임을 방기한 사회적 책임을 과연 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무엇으로 예술의 이름으로 삶의 토대를 외면한 이들의 제작경향이 궁극적으로는 공예계 전체를 온통 무기력 상태에 빠뜨리고, 나아가 존립기반 자체에도 심대한 위기를 초래한 사실에 대해서는 역사적 판단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나쁜 버릇인 줄 알지만 공예를 말할때면 예외없이 감정이 격해지곤 한다. 이런 고질병을 앓은지 벌써 15년도 훌쩍 넘었다. 이제 여기서 벗어날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허송했던 세월을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시간을 아껴야 한다. 왜냐하면 공예의 지형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예를 둘러싼 최근의 담론은 과거와 비교해볼 때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한때는 미술계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역사적 퇴행으로까지 간주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문화적 생산과 유효한 경제적 활로라는 점에 모두들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동인은 공예계 내부로부터의 성과라기보다는 공예주변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러한 주변여건의 변화가 거꾸로 공예의 존재태가 바뀌기를 촉구하고 있는 셈이다. 자의든 타의든 공예가 이와 같은 구조적 변동의 중심에 놓이게 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에 대한 근거로 로우테크(Low Tech)를 말하기도 하고, 스토리(Story)론이나 문중(門中)의 개념으로 새롭게 달라진 수요환경을 들 수 있다. 산업화 이후 효율이 최선이었던 생산의 개념이 해체되어가고,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를 말하는 동안 한발 더 나아가 미래는 지극히 개별적이고 세분화된 취향으로 수요 패턴이 파편화해 갈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대량생산·대량소비가 20세기의 버전이라면, 새 세기에는 더 이상 전통의 수요·공급체계로는 대응할 수 없다는 말이다.
최근, 이른바 에밀리아식 생산방식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탈리아의 소규모 공방 시스템이라든가 북유럽 전통기술의 문맥을 잇는 수공예공방들이 누리는 국제적 명성과 고부가가치가 주목을 받는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공예의 전망을 시사해주는 작은 사례일 뿐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정부의 문화상품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나 각 지자체의 공예산업 유치를 위한 움직임 등이 부분적이나마 가시화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문화관광부뿐 아니라 노동부와 산업자원부까지 나서서 전통공예기술에 적극적인 지원의지를 보여온 것도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아무튼 근래의 이러한 흐름은 공예에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부여하였을뿐만 아니라 공예가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과감한 자기 혁신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제작의 목표를 폐쇄적인 작가주의에서 이웃의 건강한 삶으로 바꾸는 중심이동이 필요하며, 작품과 상품으로 구분짓는 이분법적 인식 태도 또한 우리 공예계가 극복해야 할 댛상이다. 그 밖에도 전시장 중심의 발표방식이라든가, 전승공예 분야와의 차별적 인식태도 등 관행화된 숱한 걸림돌을 사려깊게 찾아내 버려야 할 것이다.
위기는 기휘의 뒷면에 묻어 온다고 했다. 실로 오랜만에 주어진 기회가 헛되지 않도록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2000년 월간아트 특집글
최공호 / 1957년 출생. 홍익대 공예과 및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박사과정 수료. 문화재 감정위언 및 문화재전문위원 역임. 현재 마사박물관 관장, 서울대·홍익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