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진흥원은 영국의 현대공예를 홍보합니다. 공예진흥원은 영국예술진흥원의 자금지원으로 운영되는 독립기관이며 국민과 공예인에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공예진흥원의 새로운 사업방향
공예진흥원은 공예가 사람들에게 하나의 전문적 직업으로서 인식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즉, 즐거움을 위한 현대공예의 구매나 그것에의 투자, 공예품의 전시나 판매, 현대공예에 관해 더 많이 배우는 일, 또는 간단하게 그들이 살고있는 주변에서 공예를 소중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MORE »
Published on February 26, 2006 9:25 PM.
BY ALEJANDRO RODRIGUEZ
In April 2000, Aguas de Tanari, a large multinational corporation, was due to take over the privatised water works in Cochabamba. Water prices were to increase and laws were passed to make it illegal to catch and use rain water. Water would be out of the reach of the majority of residents, 65% of whom live below the poverty line. Mass demonstrations erupted, roads were blocked and running battles where fought with the police and the army until the government gave in. The sell-off was defeated. MORE »
Published on February 21, 2006 9:2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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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현대 컨셉슈얼 건축에서 ‘더욱 더 특별해지려고 하는 것’이나 ‘컨셉슈얼한?아이디어를 작품에 밀어넣으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일본 창작계의 ‘컨셉슈얼’이란, 아마도?언급된 바와 같은 부정적 의미들을 가지고있지 않은듯하다.?그들은 아직 컨셉슈얼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기 보다는 ‘개발하기 위한 객체’로서 생각한다. MORE »
Published on February 11, 2006 8:00 PM.
광경으로서의 여성
남성의 사회적 존재란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존재는 외면적이고 외부로 향한다. 반대로 여성의 사회적 존재는 여성의 자신의 내면적 태도로 설명된다. 관찰하는 것과 관찰 당한다는 것은 여성의 정체성이 어떤 것인가에 있어 생각해야 할 두 가지의 중요한 문제이다. 여성은 항상 자신을 주시해야 하며 자신 스스로의 이미지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 것들을 설득 당해온 것이다. 곧 그녀가 남성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그녀의 처우를 결정짓는다. MORE »
Published on February 8, 2006 11:40 PM.
Ozzyz님이 어디선가 가져온 광화문에서 분신한 그 분의 전단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선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가자! 광화문에 동학혁명 정신으로!
-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연구 중단사태 진실규명을 위하여.
-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연구 재개를 위하여.
- 황우석 박사의 세계적 줄기세포 연구업적 진실조작 및 음해 도적질 음모세력 처단을 위하여.
- 나는 위와 같은 사태를 두 눈을 뜨고서는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
- 저 한줌의 무리들을 처단하지 않고 서는 우리들은 물론이고 자녀들의 미래는 없다.
- 진실을 조작하고 국민을 기만한 mbc의 매국질을 처단하자.
- 친일 매국질 수구어용 나팔수 반민족 반통일 반민주 반개혁 친외세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를 처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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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지 못해 뉴스만 가끔 보면서 내용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6개월 전에 이곳에 왔음) 뭔가 내용이 심각하게 뒤틀려져있다는 느낌이랄까, 상당히 묘한 느낌을 주는 내용이었다. 사람이 죽음을 결심하기까지의 진정성을?왈가왈부하는 것은 참 미안스러운 일이지만, 등장하는 정치적인 내용의 어구들이 서로 묶여있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천천히 살펴보면 위의 유서에는 (그나마)진보적이라는 MBC가 조중동과 한 배를 탔고, 줄기세포연구와 더 나아가 황우석이라는 인물 두 부분은 개혁과 진보성, 통일과 반외세의 민주적 요소로 떠올라있다.
나의 한국 정치판을 바라보는 인식이 잘못된 것일까?, 그것도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어찌보면 모든 일에 진보와 수구를 대입시켜야 뭔가 확실히 드러나보인다는 불안함이 내 머리속에서도 꿈틀대니까. 그야말로 Ozzyz님의 말대로 ‘어설픈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것은 나또한 예외가 아니다. 사실 내가 알고있는 여러가지 분야의 각 요소들에 드러나는?’진보’나 ‘수구’란 개념들이 완전히 통하는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런 진보와 수구성을 판단하는 건 어떤 기준에 따라야 할까. 노무현이 ‘진보’일까, 아니면 한나라당이 ‘수구’일까? 그리고 나는 진보적이기 때문에 어떤 ‘진보성’에도 찬성하고 지원해야만 하는 것일까?
짧은 기간이나마 외국에 떨어져서 한국을 보고있어서인지, 혹은 그 6개월이라는 해외체류중에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 관해 갑자기 무관심해졌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속칭 황까, 황빠간의?집단적인 여론몰이는 너무나 위험해보이고 그런 방식으로만 사안의 해결을 기대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나는 진보적이고 싶지만 진보의 탈을 쓴?집단적 생각몰이는 별로 관심 없다.
책장에 꼽혀있는 얼마안되는 책 중에 수전손택이 쓴 ‘타인의 고통’이란?책이 있는데,?이런 상황에 약간 들어맞는 구절이 있다.?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그것을 일종의 ‘구경꺼리로 소비’해버리고?말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저반의 특권에 저항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아야겠다. 어설픈 연민은 해결책이 아니다.
Published on February 5, 2006 2:35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