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부도, 김수근

김수근 상 _ 금누리 작, 국민대학교 조형관, 김성태 사진.
김수근 상 _ 금누리 작, 국민대학교 조형관, 김성태 사진.

공간(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이 2013년 1월 2일 부도 처리가 되었다고.

한국 현대건축의 산실 ‘공간’ 끝내 부도 :: 동아닷컴.

학부때 모 교수 연구실 조수 노릇을 했었다. 나는 김수근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속해있던 단과대학을 최고 디자인 대학 반열에 올려놓은 어마어마한 사람이라거나 올림픽 주경기장을 디자인했다고 알고 있었으니. 그런데 어느날 건축가 김수근의 동상을 만드는 일이 단과대학 안의 유일한 조각가인 교수님에게 할당되었다. 그리고 나는 흉상에 쓰일 등짝을 제공했다.

작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나는 김수근이 되었다. 그의 뿔테 안경을 만들던 선배는 내 얼굴을 기준으로 안경의 윤곽 크기를 가늠했고, 연구실의 교수 대신 흉상을 만들게된 어느 견습 조각가는 벌거벗은 내 상반신으로부터 김수근 동상의 뒷태를 끄집어냈다. 그래도 좋았다. 내가 다니는 학교를 튼튼한 기반 위에 올려놓았다니, 그것에 더해 올림픽 주경기장을 직접 디자인한 분이라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했겠나.

십여년이 흘러 나는 하고 싶었던 이론 공부를 시작했고, 그런 와중에 80년대의 디자인, 그러니까 근현대사와 디자인판 사이의 이야기들을 계속 접하게 되었다. 대략 이런 말로 요약되곤 하는데, 한국의 모더니즘, 일본풍, 권위주의, 개발독재, 신화, 대표 건축가 따위들. 그 가운데엔 독한 비판들도 많다.

김수근이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가? – 프레시안.

가장 최근에 그를 떠올린 건 몇년 전 어느 전시 기획사를 다녔을 때. 업무 관계로 연락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공간>지에서 만드는 VMSPACE의 직원들도 있었다. 이제 그가 만든 공간사가 망할 지경이라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공간 건축은 두바이에도 사무실을 만들고 관청 공사를 주로 진행했다니 아직도 김수근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것을 탓해야 하는 건지. 아직도 정릉골 어느 건물에서 서울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을 그 동상이 생각난다. 그래서 구글링을 해보니 후배가 찍어놓은 사진이 있어 덧붙인다.

2014년 9월 1일, 김수근에 관한 독한 기사 한 편을 보게 되어 아래 링크를 남긴다.

남영동 대공 분실 5층 창문의 비밀 – 한겨레.

 

[고종석 칼럼] 인문학의 위기?

또 다시 인문학의 위기가 왔다고 한다.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이 ‘인문학 위기’ 담론은 많은 논점을 생략한 채 자족적으로 선포되는 일이 예사다. 그 누락된 논점들 가운데 몇 개만 엿보자. 우선, 흔히 ‘문사철'(문학 역사학 철학)로 압축되는 인문학은 다른 분과학문들보다 내재적으로 더 가치 있는 학문인가? 6세기 한반도의 세 나라 국경을 획정하는 일이 DNA 분자구조를 해명하는 일보다 더 가치 있다고는 누구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 테다.

인문학이라는 것의 개념과 경계도 흐릿하다. 손쉽게, 인문학을 인간 자체를 탐색하는 학문이라 정의해보자. 그럴 경우 인간의 DNA 분자구조를 해명하는 일이야말로 인문학의 일감이다. 그렇다면 다시, 인문학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탐색하는 학문이라 정의해보자. 그 경우에도, 철학이나 문학 연구보다는 뇌신경학이나 인공지능 연구 쪽이 인문학의 목표에 더 적합하다.

[고종석 칼럼] 인문학의 위기? 더보기

강정구와 공산주의

참 오래된 일인 것으로 기억된다. 북한의 김일성 생가 방문중에 방명록에다가 “만경대정신을 이어받겠다”는 투의 서명을 한 일로 불구속 기소된 동국대 강정구교수가 파면됐나보다.

알맹이가 가득한, 참된 사상일수록 대중들에게 가볍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상이 무엇이건 어떤 사람에게 강요되고 지켜나가야만 하는 것으로 무겁게 결정지어진다면 그때부터 사람은 없고 공허한 생각만이 떠도는 상황이 되기 쉽지않나 싶다.. “맥아더 동상 철거”반대의 이유를 “지나가던 갈매기가 똥이라도 쌀 수 있다”고 한 어느 아는 분의 얘기처럼 일반의 가벼운 사상토론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용인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정말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같다. 지금도 대충 살맛은 나지만..

아무튼, 한국의 예술과 디자인 분야에 상상력이 부족하다면, 그 이유중에는 부족한 생각의 다양성도 들어갈거다. 그야말로 공산주의는 커녕 사회주의의 벽도 넘지 못한 한국의 민주주의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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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한 글입니다.

강정구 교수가 컬럼비아대 교수였다면
[해외리포트] 학자의 학문적 발언에 대한 두 대학의 다른 태도
강인규 _ 미국 위스콘신대 언론학 강사

미국의 컬럼비아대학과 한국의 동국대학. 두 대학교 모두 각 사회에 큰 기여를 해 온 유서 깊은 명문사학이다. 특히 동국대학교가 지식인과 학생들을 배출함으로써 한국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바는 컬럼비아대학이 미국사회에 미친 영향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에 속한 학자의 발언을 둘러싸고 보인 두 학교의 태도는 여러 모로 상반된다. 의 저자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컬럼비아대학교 비교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사회적 발언에 소극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미국 대학사회에서 사이드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는 여러모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사이드는 미국의 중동정책을 맹렬히 비판했으며,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앞장섰다. 동양에 대한 서구사회, 특히 미국이 가지고 있는 인종적이고 문화적인 편견을 거리낌 없이 들춰내던 사이드의 연구와 발언은 미국 보수층의 심기를 대단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욕 먹어가면서 소속교수 보호한 컬럼비아대학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이드였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것은 그의 ‘돌팔매질’이었다. 그는 2000년에 레바논을 여행하던 중, 국경 넘어 이스라엘군 초소에 돌을 던졌다. 레바논 남부지역의 무력지배에 항의를 표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당시 학계에 일대 파문을 일으킨 그의 행동은 컬럼비아대학의 입장표명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당시 대학은 “그 돌은 특정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었기에 위법행위가 아니며, 당연히 학문적 발언의 하나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밝히며 징계를 거부했다. 학교 측의 이런 결정은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서 내려진 것이었다. 이 결정에 반발한 사람들은 컬럼비아대학을 ‘포이즌 아이비(사악한 아이비리그 학교)’라고 비꼬았다.

미국에서 중동문제는 한국사회의 남북문제에 비견될 만큼 민감한 주제일 뿐 아니라, 유태계 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욕시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파장은 더욱 컸다. 그가 이스라엘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진이 미국언론에 공개되자, 보수언론은 물론 일부 동료교수와 학생들까지 그의 행동에 경악하며 파면을 요구했다. 그의 위험한 경거망동은 교수직을 박탈할 만한 충분한 사유가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상황은 사이드에게 대단히 가혹했다. 미국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일부 아랍 언론까지 비판에 가담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는 “아랍인들이 폭력적이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애써 온 존경받는 교수가 이런 행동을 한 데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썼다.

컬럼비아대학 측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사이드 교수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두고 교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회의와 토론을 벌여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대학은 학자의 발언을 보호해야 한다”는 결정이었다. 당시 교수대표였던 조나단 콜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대학의 역할 가운데 학자 개인의 자유로운 발언을 보호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학자는 사회의 다수가 믿고 있는 정치적 신념에 억눌려 자유로이 의사를 표현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황 교수와 강 교수에 대한 이중적 태도

컬럼비아대학의 결정이 사이드의 행동을 지지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니듯이, 적어도 이 순간 글의 목적은 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옹호하는 데 있지 않다. 이 글이 말하고 있는 바는 단 하나, 대학 내에서 지식인의 발언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자들의 발언마저 법의 이름으로 처벌하는 사회가 일반대중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한국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밝히는 작업은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만큼이나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접근이 필요한 영역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인 근대사 연구는 줄기세포 연구보다 훨씬 큰 위험부담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대학의 역할이 사회의 통념을 재생산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학자들의 발언에는 일상적 담론 이상의 자율성과 관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맹목적 민족주의 담론이 황우석 교수를 성급하게 영웅으로 만들었듯이, 한국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반공주의는 한 지식인을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 ‘매국노’로 만들었다. 한국 언론이 줄기세포의 근본적 한계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황 교수팀의 업적을 찬양하기에 여념이 없었듯이, 강정구 교수의 견해를 객관적으로 고찰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매도하기에 바빴다.

보수언론과 정계는 ‘국가를 위협하는 발언까지 학문적 발언으로 보호해줄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를 위협하지 않는 학문적 발언’이 어디까지인지를 누가 판단할 것인가? 논문이나 강의록 초고를 들고 국회나 법원, 혹은 신문사 편집부로 먼저 달려가라는 주문이 아니라면, 그 판단은 온전히 학계에 맡겨져야 한다.

사이드가 돌을 던진 뒤 5년 후 한국

에드워드 사이드는 2003년 9월, 오랫동안 앓아 온 백혈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가 사망했을 때 모든 언론은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며 그의 ‘돌팔매’와 컬럼비아대학의 지지발언을 함께 거론했다. 이후로도 사이드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컬럼비아는 그의 지성을 지켜 낸 자유의 정신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국대학교는 법원이 강 교수에 대해 국가보안법 기소결정을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강 교수를 직위해제했다.

강정구 교수를 둘러싼 ‘논란’의 주범은 강 교수 자신만이 아니다. 오히려 학자의 발언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진지한 성찰과 토론을 이끌어 낼 인내심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회가 일으킨 소란이다. 한나라당의 의원도 말하지 않았던가. ‘한국이 성숙한 사회라면 강 교수의 주장을 무시했어야 한다’고 말이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학자 한 명의 발언으로 ‘전복’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도리어 체제에 대한 확신이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동국대학교는 이번 논란의 ‘주범’인 한국사회와 맞서기보다는 한 사람을 대학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간편한 길을 택했다. 물론 동국대학교로서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특정 교수의 수업을 들은 졸업생들에게 취업상의 불이익을 준다’는 기상천외의 발상(이야말로 반민주적인 발언이 아닌가)이 통용되는 사회 속에서 학교 측이 겪어야 했을 고통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어 낼 미래의 한국사회가 동국대학의 이번 조처를 어떻게 기억할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동국대학교 측의 현명한 재고를 기대한다.

2005-12-2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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