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현대, 오늘 만진 것, 구마 겐고 당선, 416TV

영국 JHP가 디자인을 총괄한 판교 현대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백화점은 도시 생활의 꽃이자 낙엽같은 존재.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 바로 쇼핑이란 ‘경험’이다. 그 특별하다는 설명과는 달리, 무엇이 특별한지 사진만으로는 분간하기가 좀 어렵다. 지갑을 챙기고 국내 최대의 백화점을 구경해볼까?

하루동안 만지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있나? 이 펭귄의 신간(Every Thing We Touch: A 24-Hour Inventory of Our Lives)은 투싼의 카우보이부터 일본의 갓난아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루동안 뭘 만졌는지?” 묻고 사진 평면으로 기록한 것. 이런 종류의 책을 보면 고생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일본 올림픽 위원회가 이미 취소시킨 바 있는 자하 하디드의 설계안 대신 구마 겐코의 디자인안을 최종 설계안으로 결정했다. 구마 겐코는 <삼저주의>와 같은 저서를 통해 ‘작고’, ‘낮고’, ‘느린’ 건축을 주장해온 건축가다.

종이든 디지털 언론이든 다들 입다물어버린 상황이 되자 아버지가 직접 나섰다. 이름하여 416TV. 아버지는 촬영하고 어머니는 편집을 한다고. 뉴스타파에서 촬영한 이 영상이 그나마 ‘바이럴’ 전파에 성공했다. 다들 잊지 말자. 기억은 영원하고 그 아픔의 치유는 어차피 우리 몫이다.

 

여전히 불평등한

세 번 정도 여행했다. 1997년과 1999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1년. 누군가에게 여행이 기억에 남을 일이라면 아마도 다른 음식이나 얼굴 색, 풍경과 같은 그런 것일텐데, 종종 그걸 뭉뚱그려 ‘문화의 차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는 그걸 몇 번의 해외여행과 유학 생활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남들은 방안에서도 알만한 일을.

마지막으로 인도에 들렀을 때 찍은 이 사진을 지금의 나의 시선으로 관찰하면 세 가지 정도의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발코니석과 일반석을 나누는 소득 수준의 차이,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성별의 차이, 그리고 이런 풍경을 바라보며 사진으로 남긴 무관심한 여행자의 시선과 실재하는 현실의 차이 정도.

돌이켜보면 그저 우리와 다른 모습이 신기했기 때문에 촬영한 사진이다. 남녀를 구분하는 조선시대의 관습 정도를 떠올리긴 했지만, 사진 속에 엉켜있는 수많은 차별과 불평등을 읽어내지도 못했던. 내가 했던 마지막 인도 여행은 딱 그 정도였다. 그저 다른 문화라는 걸, 그러니까 ‘문화의 차이’ 정도를 애매하게 이해하는데 세 번의 배낭여행이라는 기회를 소비한 셈이다.

외신을 통해 전해지는 인도는 여전히 불평등한 것 같다. 그리고 단지 드러나는 방식이 다를 뿐 한국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 하다. 그런 차이를 옛날 서구인들이 동방을 유람하듯 여행하면서 꼭 확인해야 하는지는 … 잘 모르겠다.

도시의 시대 : 도시가 엄청난 디자인의 도전이 된 까닭

급속한 확장 … 국경선도 라고스의 확장을 막을 순 없다. * 사진 : 데이비드 레빈David Levene

전례없는 도시화 경향의 와중에서, 디자이너는 도시가 쾌적한 환경의 수용 뿐만 아니라 그것을 거주민에게 제공해야 할 이들임을 증명해야만 한다.

국제연합UN, 도시화는 멈추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지난 주의 가디언지 헤드라인으로 등장했다. 당신은 이 헤드라인에서 어떤 걱정의 분위기를 감지해낼 수 있는가? 이건 거의 “지구 온난화는 멈추지 않는다.”라거나 “평화로운 주말과의 작별”이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 쓰여야 더 나을 것 같다. “도시화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거대한 디자인 과제다.”

기사는 국제연합-하비타트(UN-Habitat : 국제연합의 거주 문제 해결 프로그램)가 최근 세계 도시들의 상황을 정리해 발표한 자료에 관한 것으로, 몇몇 도시들이 “거대 지역mega-reigion”을 형성하기 위해  마치 수은 방울처럼 모여 통합될 것이라고 예측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개중엔 서부 아프리카의 라고스Lagos, 이바단Ibadan, 롬Lome, 아세라Accera 등 도시들이 통합을 선전포고하고 있는 내용도 있었다. 다 괜찮다. 하지만 이 통합과정이 나이지리아, 베닌, 토고, 가나 등의 국경선을 가로지르며 제멋대로 퍼져나갈 것이라는 점은 문제다.

역사상 처음으로 교외보다 도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게다가 2050년 까지는 인류의 75% 이상이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도시의 휘황찬란한 전등 불빛을 향해 이동하지만 그곳엔 끔찍한 부분이 존재한다. 이런 확장 경향이 있는 도시들 대부분은 이미 수백만이 거주하는 빈민지역을 갖고 있는 것이다. 뭄바이Mumbai, 델리Delhi, 카라치Karachi, 상해Shanghai, 사웅파울루Sao Paulo, 킨샤샤Kinshasa 등 세계적으로 급속히 성장하는 도시들, 이런 도시들 대부분은 2025년 까지 2000만 이상의 인구를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 시간에도 라고스라는 도시는 시간 당 67명 분의 주거지를 확보해야만 한다. 만일 이들 이주민을 위한 디자인을 지금 시작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비극은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예컨대 런던, 파리, 로마 등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도시들은 긴 역사에 걸쳐 서서히 성장해왔다. 마치 다른 종류의 제품인양,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은 새로운 도시 공간을 ‘제조’하고 있는 지점이다. 1960년대,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공간은 새로운 상품”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런 상황을 예견했었다. 그는 단지 추측만 하는 주식이나 지분이 아닌 도시의 파편들에 주목했다. 요약하자면, 그의 이론은 150여년 간의 산업화 과정이 도시화로 대체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산업화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의 이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또한 도시의 시대로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도시공간의 상품화는 르페브르가 살던 시기로부터 급속하게 진행되어왔다.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그 어떤 죄책감으로부터도 벗어나게 했던 규제의 철폐는 마찬가지로 도시의 얼굴 또한 변하게 만들고 있다. 자유무역이라는 허울은 수많은 도시의 공적인 공간들을 그저 체인형 상점에서 쇼핑을 하거나 코스타 커피에서 음료를 마시는 장소가 되도록 강요하고, 때로는 사설 경비원들의 감시 아래에서 그 짓을 하도록 만든다. 공공 서비스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적 공간의 사유화는 정부가 민주적인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틈새를 열어주는 하나의 술수일 뿐이다.

르페브르도 도시가 이 정도로 상품이 되는 상황을 예측하지는 못했다. 요즘엔 어떤 고객이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달라고 유명한 건축가에게 고작 전화 한 통을 걸어 주문을 할 수가 있다.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아부다비Abu Dhabi의 친환경 도시 마스다Masdar나,  런던의 아럽Arup사가 디자인한 인기있는 친환경 도시 동탄, 그리고 천진이 그러하다. 향후 20년 간 3억의 도시 거주민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에서, ‘그냥 지으면 사람이 온다’는 따위의 방식 이외에는 답이 없다.

물론 도시의 생산은 역사를 갖고 있다. 지난 세기의 전환기에 있었던 에베네처 하워드Ebenezer Howard의 공원도시 운동Garden Cities movement의 결과로 레치워스Letchworth라는 도시가 만들어졌고, 미국에서는 뉴 어버니즘New Urbanism이 트루먼 쇼The Truman Show의 배경이 되었던 플로리다 주의 시사이드Seaside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사례들은 도시를 혐오하던 사람들이 디자인한 회피론자들의 판타지에 불과했다. 더 들어맞는 사례들로는 정치적인 염원을 영웅적으로 그려낸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Astana, 그리고 이 모두를 짬뽕한 두바이가 있다. 경제 침체 이후로 두바이가 폐기된 건 한 줄기 빛이었지만, 제품이나 브랜드로서의 도시를 확연히 보여주는 사례로는 두바이만한 곳도 사실 없었다.

브랜드 컨설턴시는 근대 도시의 숨은 실력자이다. 그들은 시장의 역할을 자임하기도 하는데,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앨범 표지를 디자인한 광신적 디자이너 피터 사빌Peter Saville에게 그런 임무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는 몇 년 전 맨체스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캐나다의 디자인 구루 브루스 마우도 그러하다. 그는 “메카(성지)의 미래 비전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등장했고, 이제 그것은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라는 명제가 되었다. 고수익을 보장하는 행사들인 올림픽, 유럽 문화 수도, 세계 디자인 수도 등이 선정되는 전지구적인 경쟁체제 속에서, 그의 명제는 도시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세계의 부를 만들어내는 엔진과도 같은 도시, 그것은 본 바탕인 국가들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묻고자 하는 것은 이거다. 우리는 빽빽이 사람들이 들어찬 컨테이너와 같은 곳이 아니라 쾌적하고 공평한 삶의 공간으로 도시를 창조할 것인가? 도시로의 값싼 이동 수단을 제공하는 이지젯과 같은 것 때문에 수많은 수도들 간이 바로 연결되는 도시문화 특유의 상황을 누군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신이 꿈 꾸고 있는 이상향이 이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도시에서의 차별과 사회적 양극화는 점점 더 극단화로 치닫고 있고,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이 될 것이 분명하다. 국제연합UN의 자료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제 도시 구축은 우선적인 과제가 되었다. 정치인들은 디자이너들에게 믿음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마지막 사반세기로부터 우리가 배운 점은 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평등이라는 가치를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via The Guardian | The urban age: how cities became our greatest design challenge yet | Justin McGuirk.

 

지표화된 삶의 질과 도시디자인

* 타 프로젝트에 활용한 자료를 재구성하였습니다.

‘삶의 질’이 의미하는 바가 다양함에도, 일반적인 수준에서 어떤 도시가 우수한가를 가늠하는 지표들이 매년 발표된다. 각각의 지표들은 통상 지역 내의 경제, 사회, 문화적 활동을 뒷받침하는 기반 환경을 분석하여 거주민의 이해에 부합하도록 조성되어 있는지를 검토하고 그로 인해 얼마나 거주민의 복리를 향상시키고 있는가를 평가한다. 지표화된 삶의 질과 도시디자인 더보기

Olivetti MP1 휴대용 타자기

올리베티 MP-1
올리베티 MP-1

알도 마그넬리Aldo Magnelli가 디자인한 이 타자기의 디자인에는 사무용 기기로서는 거의 처음으로 스타일링 개념이 적용되었는데, 한마디로 ‘이뻐지기’ 시작한 첫 사무용품이라고 할 수 있다. Olivetti MP1 휴대용 타자기 더보기

Draisine – 최초의 자전거와 여성

최초의 자전거를 가리는 건 쉽지 않지만 오늘날의 자전거에 큰 영향을 미친 물건으로 꼽는 것이 사진에 보이는 ‘드레이지네’라는 물건이다. 당시에는 이렇게 굴러가는 물건들, 즉 인력거나 풍력거등의 개발이 붐을 이루는 때였다. 비슷한 여러가지의 물건들이 참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드레이지네가 좀 다른 건 앞바퀴를 좌우로 비틀어 조향이 가능하다는 것.

드레이지네

"드레이지네(Draisine)" by Karl Friedrich Freiherr Drais von Sauerbronn (1817) - Courtesy of Deutsches Zweirad- und NSU-Museum
“드레이지네(Draisine)” by Karl Friedrich Freiherr Drais von Sauerbronn (1817) – Courtesy of Deutsches Zweirad- und NSU-Museum

독일의 삼림관리원인 ‘칼 폰 드라이스’가 만든 이 물건은 프랑스 빠리의 쎄느강 남쪽에 ‘룩셈부르크공원’에서 귀족들을 대상으로 1817년에 처음 시연되었다. 드라이스는 넓은 숲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여러가지의 ‘구루마’를 만들어 시험했다. 요즘에도 열차선로에 얹어서 쓰는 인력구동차량을 영어로 ‘Drasine’이라고 부르는데, 이름처럼 그가 발명한 것이다. 하지만 사진에 보이는 드레이지네라는 물건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진 못했고 재빠른 런던의 사업가들이 불법 복제해서 대 히트를 치게 된다. 특허를 내고 자전거 판매를 시도하던 드라이스는 결국엔 병에 걸려서 말년을 보내다 죽고 말았다.

귀족 출신의 드라이스는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는 바람에 발명품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최근의 연구들은 이 물건을 자전거의 시초라고 보고 있는데, 그동안 이탈리아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낙서를 근거로, 프랑스에서는 ‘시락’의 벨로시페드를, 영국에서는 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나온 구루마의 모습을 증거로 삼아 자기 나라가 자전거를 개발했다고 주장했으나 모조리 가짜로 판명되었다. 아직도 유럽 각국은 자기 나라가 처음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딱히 누군가가 발명했다기보다는 서서히 진화했다고 보는것이 옳다.

프리 휠Free-Wheel 이전의 위험한 자전거 사고들

페달을 계속 움직이지 않아도 바퀴가 굴러가는 장치를 ‘프리 휠(Free-wheel)’이라고 하는데 20세기에 들어와서야 개발되었다. 요즘은 프리 휠이 모두 적용되어 페달을 거꾸로 돌려도 바퀴는 그대로 앞으로 굴러가지만, 19 세기 후반의 영국에서 한창 자전거가 유행할 당시의 모습은 바퀴가 그대로 페달에 고정된 원초적인 자전거의 형태였다.  또한 상대적으로 각광받던 철도에 비해 도로들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 요즘과 같은 타이어 대신 철 바퀴를 그냥 쓰거나 통고무를 덧대어 쓰는 정도였던 초기의 자전거는 고르지 못한 길에서 흔들림을 줄이기 위해 앞쪽 바퀴가 대책 없이 커지기도 했다.

빈발하던 자전거 사고와 관련해 이런 저런 소문도 많았다. 실제로 영국의 국립기록원에서 ‘자전거’로 검색을 해보면 자전거 사고로 사망하거나 입원한 사람의 기록들이 꽤 많고, 자전거 개발자들 가운데 내리막에서 굴러 떨어져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있었을 정도였다. 당시 영국의 어떤 잡지는 “그렇게 페달을 쉴새없이 밟다보면 뼈의 형태가 변할것입니다.”라고 경고했다.

여성과 자전거, 그리고 바지

1897년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벌어진 여학생 학위 수여 반대 시위. 신여성에 대한 상징으로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여성 인형을 매달아놓았다. - Courtesy of Cambridge Daily News, 21 May 1897.
1897년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벌어진 여학생 학위 수여 반대 시위. 신여성에 대한 상징으로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여성 인형을 매달아놓았다. – Courtesy of Cambridge Daily News, 21 May 1897.

이런 자전거 역사에 빠지지 않는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여성 운동과 자전거의 관계. 자전거가 유행하던 19세기, 여성의 자전거 타기는 하나의 투쟁이었다. 다르게는 치마를 입고 타는 자전거를 만드느냐, 아니면 바지를 입고 똑같은 자전거를 타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었다.

드레이지네도 귀족의 놀잇감 정도로 소개되었지만, 당시의 자전거는 ‘천박한 장난감’으로 인식되었다. 그런 물건을 여성이 타고 즐기는 건 쉽게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발 빠른 자전거 공장들은 앞 바퀴가 큰 ‘오디너리’ 자전거를 개조해 여성이 치마를 입고 탈 수 있도록 페달이 한쪽으로만 달린 특수한 오디너리를 만들었다. 아얘 자동차처럼 사륜을 달아 ‘신사 숙녀용’의 품위 있는 자전거가 나오기도 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훗날 이 공장들은 대부분 자동차회사로 전업했다.

한편에서는 승마복과 같은 간편한 바지 복장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여성 자전거족이 등장했다. 복장을 편하게 하고 남성들과 똑같은 자전거를 타는 그들의 모습은 당시로서는 아주 충격적인 일이었다. 1897년 캠브리지 대학교에서는 여권 운동을 비판하는 대대적인 시위 자리에 자전거타는 여성을 인형으로 만들어 상징적으로 공중에 매달아놓기도 했다.

결국 자전거 형태를 아주 심하게 변형했던 모델들은 사라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가진 보통의 자전거들만이 살아남았지만 요즘에도 자전거와 여성성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남아있다. 여성이 자전거를 타면 성기능에 장애가 생긴다는 이상한 소문도 있지만, 직접 장시간 자전거를 타본 바로는 남성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적당히 타면 별 문제는 없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