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Logo: 공장 폐쇄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원제 <No Logo>, 나오미 클라인 지음, 2000년 초판 발행)>의 9장을 요약한 메모.

이제 기업은 브랜드에 깊고 내밀한 의미를 담아내려고 하며 광고대행사는 자신이 제품을 선전해서 파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대신 참된 가치를 짜내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브랜드 구축자들은 지식경제에서 제 1의 생산자들인 셈이다. 고용 환경은 변화했다. 슈퍼 브랜드 기업들은 영혼을 세우고 성가신 육체를 잘라냈다. 슈퍼 브랜드 구축과 운영에 드는 엄청난 비용을 생산 관련 투자비의 축소로 해결했다. 기업의 우선순위가 바뀌자 공장 노동자와 장인으로 대표되는 실제 생산자들의 위치가 불안해졌다. 과거 생산가:소매가 1:1에 만족했던 기업들은 이제 1:4의 이윤율을 낼 정도의 저가생산처를 찾아다닌다. 생산과정과 생산자는 평가절하되고 있으며 브랜딩은 부가가치를 독차지한다.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배설물처럼 다뤄진다. 기업들은 제품 생산을 마치 자원 취급 기업이 구리나 나무를 조달하는 것처럼 제품을 조달한다. 생산 부문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제조업체가 노동 인력을 책임진다는 전통적 사고도 함께 빠져나간다. 세계적인 브랜드들은 근로 조건에 대한 책임을 하청 업체에게 떠넘긴다. 그리고 그저 물건을 아주 싸게 만들라고 말하면 끝이다. No Logo: 공장 폐쇄 더보기

투명한 의자 디자인, 허먼 밀러 회사 _ Herman Miller Company

글 : 2010년 4월 5일, 라이언 아담스Ryan A. Adams _ 텍사스 대학교 디자인사 연구실

marshmallow-so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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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40년대, 디프리D.J. Defree와 그의 장인 허먼 밀러Herman Miller는 허먼 밀러 회사Herman Miller Company를 키워냈다. 이 둘은 성공을 보장받기 위해 잘 나가던 당대의 가구 디자이너들을 고용했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최신의 모더니즘 디자인을 통해 가정과 사무용 가구들, 그리고 작업 공간의 격을 높이는데 집중했다.

허먼 밀러 회사에서 일했던 디자이너들 가운데 가장 유력했던 인물로 조지 넬슨George Nelson을 꼽을 수 있다. 그는 디프리에 의해 허먼 밀러 회사의 디자인 디렉터로 선임되어 회사의 초창기 디자인을 이끌었다. 넬슨은 흔히 그의 디자인 방법론과 관련하여 모험가로 불리며, 어떤 이들은 그가 디자인을 재정립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예일 대학교Yale Univ.와 로마에서 건축을 배우긴 했지만 그가 가장 성공한 분야는 글 쓰기와 가구 디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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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 요약문_2. 환경 차이가 다양화를 빚어낸 모델 폴리네시아

Polinesian Triangle
Polinesian Triangle

1장에서는 소위 ʻ문명ʼ을 지닌 인간이 나타나기 직전의 세계상을 다루면서 일부 대륙(유라시아)에서의 발전이 그 외의 곳들보다 빨랐다는 사실을 여러 고고학적 근거를 들어 설명했다. 2장에서 저자는 19세기 중반의 폴리네시아에서 모리오리족이 멸족한 사건을 예로 들어 환경-역사 간의 연결고리가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총균쇠’ 요약문_2. 환경 차이가 다양화를 빚어낸 모델 폴리네시아 더보기

‘총균쇠’ 요약문_18. 남북아메리카가 유라시아보다 낙후된 원인

정복의 궁극적 요인인 식량 생산과 가축화ㆍ작물화의 상관성 : 1492년 당시 유라시아에는 가축화된 13종의 대형 포유류가 있었지만 남북아메리카에서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는 단 1종(라마)이었다. 작물화에서는 동물성 먹거리의 생산만큼 불균형이 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북아메리카는 유라시아에 비해 수렵 채집민이 차지한 지역이 훨씬 더 넓었다. 아메리카에는 가축화ㆍ작물화할 만한 야생 동식물이 없었고 지리적 생태적 장애물로 인해 아메리카의 다른 지역에서 작물화된 식물이나 가축화된 소수의 동물들이 도입될 수도 없었다. ‘총균쇠’ 요약문_18. 남북아메리카가 유라시아보다 낙후된 원인 더보기

‘총균쇠’ 요약문_17. 동아시아와 태평양 민족의 충돌

남중국으로부터 자바나 뉴기니로의 이주, 즉 ‘오스트로네시아인의 팽창’은 지난 6000년 동안의 최대 인구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남중국인들은 어떻게 인니 전역으로 이주하여 원주민을 교체하고 폴리네시아인이 되었을까? 왜 그 반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것일까? ‘총균쇠’ 요약문_17. 동아시아와 태평양 민족의 충돌 더보기

The Revival of Handicraft

Artisanal handicrafts of Provence
Artisanal handicrafts of Provence * Source: Flickr public domain

For some time past there has been a good deal of interest shown in what is called in our modern slang Art Workmanship, and quite recently there has been a growing feeling that this art workmanship to be of any value must have some of the workman’s individuality imparted to it beside whatever of art it may have got from the design of the artist who has planned, but not created the work. The Revival of Handicraft 더보기

Iwangjik Crafts Work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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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ttle translated excerpt from <Iwangjik Crafts Workshop and Contemporary Crafts in South Korea>, written by Gongho Choi

The development of modern crafts has not been investigated due to the lack of historical records and researches. It is a lucky that I’ve got recently found design sketches and photographs of Iwangjik’s products, so that now it has become possible to see the production process of Iwangjik though limited.

The workshop, titled as Hansung(the name of capital since the beginning of Chosun dynasty) Crafts Workshop, founded in 1908, had ran its business for 30 years till the era of Japanese occupation in Korean peninsular faced its end, in other words the end of WW2. It was a facility producing crafts and played a crucial roll in developing modern Korean crafts.

It was when various traditional, cultural values were to be destructed that the workshop was established, and the modernization in Korean peninsular was initially began in this era by external influence. the workshop’s official aim was “to encourage the nation’s craft tradition” while this institution actually restored some bits of traditional craft skills as fine as the product quality of Kyoung-gong-jang(light factory)s, which had produced for long times various office and domestic goods only for governmental bodies. Also, it was a crucial moment in the modern history of Korean crafts that the workshop, as a semi-institutional body, trained a number of craftspeople who was to make the nation’s crafts tradition survived and who later became profound influences on the restoration of previously-demolished craft traditions.

In addition, this organization claimed that “the designs planned here should be made on possible traditional ways though production processes had to be modernized” as opposed to the dominated mood of modernization or Japan-ization in Korea. This was apparently a bold, important approach to restore and cherish tradition and was when nationalistic intelligentsias were influenced by Dong-Do-Seo-Gi(Eastern world take morality or inherited identity while Western world has science or technology), which was a widespread idea for the restoration of national sovereignty at the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