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공예진흥원 사업방향 개괄


공예진흥원은 영국의 현대공예를 홍보합니다. 공예진흥원은 영국예술진흥원의 자금지원으로 운영되는 독립기관이며 국민과 공예인에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공예진흥원의 새로운 사업방향

공예진흥원은 공예가 사람들에게 하나의 전문적 직업으로서 인식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즉, 즐거움을 위한 현대공예의 구매나 그것에의 투자, 공예품의 전시나 판매, 현대공예에 관해 더 많이 배우는 일, 또는 간단하게 그들이 살고있는 주변에서 공예를 소중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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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구의 공예는 어떤 사회적 기능을 가졌었을까?


서구공예가 영국에서의 그것만을 일컫는 것은 아닐테지만, 자본주의의 본류를 이곳에서 찾듯,?그 변화의 대표성을 영국에서 찾는 것도 최악의 방법은 아닌 듯 하다.

아직까지 새로운 문헌이나 자료를 접한 것은 아니지만, 기존에 알고 있었듯이 산업자본의 폭증기에 들어선 영국의 모습은 예전의 왕실직영체제의 주류 장식물제작체계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생산기반의 변화였다.?수요의 증가에 기여한 요소들은 여러가지인데, 간단히 보자면 부르주아계층이 증가한 것과?식민개척으로인한 시장확대를 들 수 있다.?이런 변화는 생산체계의 변화를 요구하였고?이후 공장들은 대량생산체계를 도입하게 된다. 당시 영국의 사업가였던 웨지우드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업적 성공을?핵심적인 생산체계의 개편으로부터 일궈내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전문화된 산업디자이너의 개념이 서서히 만들어져갔다고 볼 수 있다.

왕실공방 이외에 존재했던 하층민들의 물건들처럼, 산업혁명기?공장들에서 만들어졌던 시민계급(부르주아)들을 위한 물건들 이외에도 노동자들이 주로 소비했던 물건들의 그룹이 존재했을 것이다. (이 점은 찾아봐야겠다.)

사회적으로 깊숙한 연관성을 가지는 예로서 미술공예운동을 들 수 있다. 이 운동은 잘 알려진바와 같이 윌리엄모리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벌어졌지만, 그 사상적 뿌리는 칼라일-러스킨과 같은 반 자유주의, 반 산업주의에 있다. 이를 표면적으로, 한 시기의 디자인사조로만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정치활동에서부터 생활용품 제작에 이르기까지 윌리엄모리스와 그 추종자들이?행한 일련의 활동들은, 앞서 언급되었듯 반산업주의적인 시각에서?대안적 생활방식으로서의 예술을 찾는데 집중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를 만드는 일”이 당시 사람들의 예술적 취미를 바꾸는 것보다 더 급선무라고 말한 점은 그런 그의 활동을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당시의 일반적 물건들이 기능하는 모습은 현재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대부분의 물건들은 – 윌리엄모리스의 그것마저도 -?부유한 시민계급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런 예술의 부정적 이용?!을 막으려 했던 것도 또한 미술공예운동과 같은 반 산업주의적 문예운동의 방향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소비의 틀 속에서 노동자계층이 차지하는 부분은 예전과 달리 너무나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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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 현대?영국의 공예와 디자인. 영국에도 현대공예와 전통공예의 구분이 있는가?

공예생산체제의 디자이너들


초기의 대량 생산체제에서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디자인하기’가 존재하게 된 정확한 시기를 집어내는 것과 그 쓸만한 사례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현대 디자이너의 기원을 찾는 일은 특별히 어려운데, 왜냐하면 그것은 개인이나 – 혹은 디자인 과정에 개입된, 그리고 대량 생산체제의 구조를 변화시킨 – 개인들의 직업구분이 불명확하게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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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005 52-305 전


서울대학교 금속공예과 4학년들의 전시입니다.
많은 참석 부탁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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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가 뭐였드라..


공예는 여느 예술처럼 개인에 의해 창작되어지는 사물이며 표현의 가능성을 담고있다. 하지만 예술과는 또다른 근본적 제약인 기능성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반영된다. 한편으로 공예의 요건인 표현과 기능성 사이의 긴장관계는 공예 스스로가 짊어진 여러가지의 딜레마중 하나이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미 제도권에서 예술이 사회적으로 기능하는 것에 대한 일반의 이해는 성립되어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공예가 예술과는 구분되는 일종의 다른 체제로 이해되려면 필연적으로 기능에 대한 공감대가 요구되어질 수 밖에 없다.

요소인 기능 자체에 대한 논의 또한 또다른 문제를 낳는다. 포괄적으로 기능의 범위를 ‘쓰일 수 있는 정도’로 본다면 이에 해당하지 않을 사물이란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쓰레기’ 또한 ‘좋지 않은 기능’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듯이 하나의 표현수단으로서 충분히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하여 보편화된 공예의 쓰임이란 것은 무한정한 쓰임이라기보다는 실재하는 쓰임, 더 나아가서 그저 보통사람에게도 편하게 쓰여질 쓰임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말장난과도 같은 이런 상황들이 생기는 이유는 다름아닌 공예의 ‘중간자’적 위치 때문이다.

중간자적인 공예의 특성은 다양한 층위에서 발견된다. 그러고보면 공예의 쓰임은 변해왔다고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공예는 지역적으로도 상이한 모습으로 발전되거나 쇠퇴해왔고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어져왔다. 때로는 건축의 치장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지만, 어떤 곳에서는 빈민에게 새로운 직업으로서 교육되어지기도 하며, 때로는 정치적 운동의 실천방식이 되었었고, 어딘가에서는 부유층 소비자들의 또다른 욕구충족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런 연유로 인해 공예는 전시장에서만 보여져야 할, 또는 시장에서만 팔려야 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단지 그것이 위치한 시대적 지역적 위상 안에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으면 그 존재가치는 획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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