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와 공산주의

참 오래된 일인 것으로 기억된다. 북한의 김일성 생가 방문중에 방명록에다가 “만경대정신을 이어받겠다”는 투의 서명을 한 일로 불구속 기소된 동국대 강정구교수가 파면됐나보다.

알맹이가 가득한, 참된 사상일수록 대중들에게 가볍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상이 무엇이건 어떤 사람에게 강요되고 지켜나가야만 하는 것으로 무겁게 결정지어진다면 그때부터 사람은 없고 공허한 생각만이 떠도는 상황이 되기 쉽지않나 싶다.. “맥아더 동상 철거”반대의 이유를 “지나가던 갈매기가 똥이라도 쌀 수 있다”고 한 어느 아는 분의 얘기처럼 일반의 가벼운 사상토론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용인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정말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같다. 지금도 대충 살맛은 나지만..

아무튼, 한국의 예술과 디자인 분야에 상상력이 부족하다면, 그 이유중에는 부족한 생각의 다양성도 들어갈거다. 그야말로 공산주의는 커녕 사회주의의 벽도 넘지 못한 한국의 민주주의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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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한 글입니다.

강정구 교수가 컬럼비아대 교수였다면
[해외리포트] 학자의 학문적 발언에 대한 두 대학의 다른 태도
강인규 _ 미국 위스콘신대 언론학 강사

미국의 컬럼비아대학과 한국의 동국대학. 두 대학교 모두 각 사회에 큰 기여를 해 온 유서 깊은 명문사학이다. 특히 동국대학교가 지식인과 학생들을 배출함으로써 한국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바는 컬럼비아대학이 미국사회에 미친 영향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에 속한 학자의 발언을 둘러싸고 보인 두 학교의 태도는 여러 모로 상반된다. 의 저자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컬럼비아대학교 비교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사회적 발언에 소극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미국 대학사회에서 사이드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는 여러모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사이드는 미국의 중동정책을 맹렬히 비판했으며,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앞장섰다. 동양에 대한 서구사회, 특히 미국이 가지고 있는 인종적이고 문화적인 편견을 거리낌 없이 들춰내던 사이드의 연구와 발언은 미국 보수층의 심기를 대단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욕 먹어가면서 소속교수 보호한 컬럼비아대학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이드였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것은 그의 ‘돌팔매질’이었다. 그는 2000년에 레바논을 여행하던 중, 국경 넘어 이스라엘군 초소에 돌을 던졌다. 레바논 남부지역의 무력지배에 항의를 표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당시 학계에 일대 파문을 일으킨 그의 행동은 컬럼비아대학의 입장표명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당시 대학은 “그 돌은 특정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었기에 위법행위가 아니며, 당연히 학문적 발언의 하나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밝히며 징계를 거부했다. 학교 측의 이런 결정은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서 내려진 것이었다. 이 결정에 반발한 사람들은 컬럼비아대학을 ‘포이즌 아이비(사악한 아이비리그 학교)’라고 비꼬았다.

미국에서 중동문제는 한국사회의 남북문제에 비견될 만큼 민감한 주제일 뿐 아니라, 유태계 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욕시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파장은 더욱 컸다. 그가 이스라엘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진이 미국언론에 공개되자, 보수언론은 물론 일부 동료교수와 학생들까지 그의 행동에 경악하며 파면을 요구했다. 그의 위험한 경거망동은 교수직을 박탈할 만한 충분한 사유가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상황은 사이드에게 대단히 가혹했다. 미국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일부 아랍 언론까지 비판에 가담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는 “아랍인들이 폭력적이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애써 온 존경받는 교수가 이런 행동을 한 데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썼다.

컬럼비아대학 측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사이드 교수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두고 교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회의와 토론을 벌여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대학은 학자의 발언을 보호해야 한다”는 결정이었다. 당시 교수대표였던 조나단 콜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대학의 역할 가운데 학자 개인의 자유로운 발언을 보호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학자는 사회의 다수가 믿고 있는 정치적 신념에 억눌려 자유로이 의사를 표현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황 교수와 강 교수에 대한 이중적 태도

컬럼비아대학의 결정이 사이드의 행동을 지지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니듯이, 적어도 이 순간 글의 목적은 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옹호하는 데 있지 않다. 이 글이 말하고 있는 바는 단 하나, 대학 내에서 지식인의 발언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자들의 발언마저 법의 이름으로 처벌하는 사회가 일반대중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한국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밝히는 작업은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만큼이나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접근이 필요한 영역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인 근대사 연구는 줄기세포 연구보다 훨씬 큰 위험부담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대학의 역할이 사회의 통념을 재생산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학자들의 발언에는 일상적 담론 이상의 자율성과 관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맹목적 민족주의 담론이 황우석 교수를 성급하게 영웅으로 만들었듯이, 한국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반공주의는 한 지식인을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 ‘매국노’로 만들었다. 한국 언론이 줄기세포의 근본적 한계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황 교수팀의 업적을 찬양하기에 여념이 없었듯이, 강정구 교수의 견해를 객관적으로 고찰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매도하기에 바빴다.

보수언론과 정계는 ‘국가를 위협하는 발언까지 학문적 발언으로 보호해줄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를 위협하지 않는 학문적 발언’이 어디까지인지를 누가 판단할 것인가? 논문이나 강의록 초고를 들고 국회나 법원, 혹은 신문사 편집부로 먼저 달려가라는 주문이 아니라면, 그 판단은 온전히 학계에 맡겨져야 한다.

사이드가 돌을 던진 뒤 5년 후 한국

에드워드 사이드는 2003년 9월, 오랫동안 앓아 온 백혈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가 사망했을 때 모든 언론은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며 그의 ‘돌팔매’와 컬럼비아대학의 지지발언을 함께 거론했다. 이후로도 사이드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컬럼비아는 그의 지성을 지켜 낸 자유의 정신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국대학교는 법원이 강 교수에 대해 국가보안법 기소결정을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강 교수를 직위해제했다.

강정구 교수를 둘러싼 ‘논란’의 주범은 강 교수 자신만이 아니다. 오히려 학자의 발언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진지한 성찰과 토론을 이끌어 낼 인내심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회가 일으킨 소란이다. 한나라당의 의원도 말하지 않았던가. ‘한국이 성숙한 사회라면 강 교수의 주장을 무시했어야 한다’고 말이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학자 한 명의 발언으로 ‘전복’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도리어 체제에 대한 확신이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동국대학교는 이번 논란의 ‘주범’인 한국사회와 맞서기보다는 한 사람을 대학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간편한 길을 택했다. 물론 동국대학교로서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특정 교수의 수업을 들은 졸업생들에게 취업상의 불이익을 준다’는 기상천외의 발상(이야말로 반민주적인 발언이 아닌가)이 통용되는 사회 속에서 학교 측이 겪어야 했을 고통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어 낼 미래의 한국사회가 동국대학의 이번 조처를 어떻게 기억할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동국대학교 측의 현명한 재고를 기대한다.

2005-12-27 15:50
ⓒ 2005 OhmyNews

1960 – 1997 한국현대사 연표

Chronology of Korean Modern History #
제 2 공화국(1960~1961 )

1960년
8월
제2공화국 대통령에 윤보선(尹潽善) 선출.
14일, 북한 김일성, 남·북 연방제 제의.

1961년
2월
대일정책결의안(선국교·후경제 등) 채택

5월
군사정변. 군사혁명위원회 발족(의장 장도영·부의장 박정희)
장면내각 총사퇴. 혁명위,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편(18)

7월
경제재건 5개년 계획 발표

8월
박정희 최고의장 8·12성명(정권 이양시기˙국회 구성문제 등) 발표

12월
첫 학사자격 국가고시 실시.

1961년
1월
공용년호를 서력으로 변경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성안

3월
원자력연구소 원자로에 첫 점화

윤보선 대통령 사임

증권시장, 약 500억 환의 5월분 수도 결제 불이행(증권파동)

제2차 통화개혁(10대 1로 평가절하, ‘환’을 ‘원’으로 변경)

제 3 공화국(1963~1972 )

1963년
1월
민간인 정치활동 재개

2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2·18성명(민정 불참선언 및 정국수습 9개 방안 제시) 발표

10월
서울 가정법원 개원

12월
박정희 제5대 대통 령 취임, 제6대 국회 개원.

1964년
8월
한국기자 협회 발족

10월
한·월남, 월남지원을 위한 국군 파견에 관한 협정 체결.

1965년
1월
국무회의, 비전투병력 2,000명 월남파병 의결.

3월
단일변동환율제 실시

4월
한·일협정 반대데모대, 효창공원서 시민궐기대회.

6월
한·일 협정 조인, 국교 정상화

7월
이승만 하와 이서 사망, 23일 유해 환국.

1966년
2월
과학기술연구소(KIST) 발족

3월
국세청·수산청 발족

6월
김기수, 세계주니어미들급 챔피언이 됨

7월
한·미행정협정 조인(1967. 2. 9. 발효)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공표

10월
존슨 미국 대통령 한국 방문

1967
3월
과학기술처 신설, 원자력원을 청으로 개 칭

6월
제6대 대통령 선거(공화당 박정희 후보 당선, 7.1. 취임).

8월
제1차 한·일각료회담 개최(도쿄).

1968년
1월
1·21사태, 북한 무장공비 31명 서울 침입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원 산 앞바다서 북한에 피랍

2월
경전선 개통

4월
향토예비군 창설

5월
제1차 한· 미국방장관회의(워싱턴)

7월
문교부, 중학입시제도 폐지 발표

9월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 개막.

10월
문교부, 대학입시 예비고사제 실시 발표.

11월
시·도민증 없애고 주민등록증으로 대체

서울시의 전차 철거

12월
광화문 복원 준공

1969년
3월
국토통일원 개원

가정의례준칙 발표

김수환 대주교, 추기경에 서품

6월
3선개헌반대 학생 데모 시작

7월
경인고속도로 개통

9월
3선개헌안·국민투표법안 국회서 변칙 통과

12월
국제통화기금, 한국을 특별인출권(SDR)통과공여국 으로 지정.

1970년
4월
서울 와우시민아파트 도괴. 사망 33명

5월
서울대교 개통

금산 인공위성지구국 우주통신 중계 개시

7월
우편번호제 실시

경부고속도로 개통

10월
국토종합개발 10개년계획 확 정

1971년
2월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발표

4월
제7대 대통령선거 실시(박정희 후보 당선, 7. 3. 취임)

7월
충남 공주에서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 발굴

12월
국가보안법 국회서 변칙 통과.

제 4 공화국 : 유신(1972~1979 )

1972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최고의 고려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경(直指心經)》 발견.

8월
박정희 대통령, ‘경제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 발표(기업사채 동결)

남북적십자사, 첫 본회담 평양에서 개막

10월
계엄사, 포고 제1호로 대학휴교, 신문·통신 사전검열제 실시

11월
유신헌법 확정

12월
첫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12월 23일, 통일주체국 민회의, 제8대 대통령에 박정희후보 선출(12. 27. 취임).

1973년
2월
비상국무회의, 국정감사 폐지법안 의결.

3월
한국방송공사 발족

4월
한국 여자탁구팀 세계 제패(유고 사라예 보)

5월
어린이 대공원 개원.

8월
김대중피랍사건 발생(일본 도쿄), 한일간 긴장 야기

1974년
1월
박정희 대통령, 긴급조치 1호(개헌논의 금지)·2호(비상군법회의 설치) 선포

8월
광복절기념식장서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사건 발생. 대통령부인 육영수 피격 서거

서울시지하철(서울역~청량리역 간) 개통.

11월
유엔군사령부,
북한은 비무장지대에 땅굴을 파고 남방 1`km까지 콘크리트구조물을 구축했다고 발표.

포드 미국 대통령 내한, 한·미정상회담 후 공동성명 발표.

1975년
2월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 실시(찬성 73.11`%).

9월
여의도에 새 국회의사당 준공

민방위대 발대식

10월
영동·동해고속도로 개통.

1976년
6월
경제기획원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8월
양정모 몬트리올 올림픽 경기대회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첫 금메달 획득

북한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 서 집단 도끼만행으로 미군 장교 2명 살해

10월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송·원대의 유물 대 량 인양.

1977년
5월
하비브 브라운 미국 대통령 특사, 박정희대통령과 회담, 철군문제 협의.

6월
국내 최초로 고리원자력 1호 발전기 점화

7월
부가가치세제 실시

1978년
4월
세종문화회관 개관

6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

제2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집회에서 박정희후보 제9대 대통령 당선

11월
한·미연합사 령부 발족

1979년
6월
카터 미국 대통령 내한. 1·2차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 발표

10월
국회, 김영삼의원 제명

마산·창원에 위수령 선포. 충남 삽교호방조제 준공.
박정희 대통령 김재규 정보부장에 의해 피격 사망(10·26사태).

대통령권한대행에 최규 하 국무총리 취임

제 5 공화국(1980~1988 )

1980년
2월
최규하 대통령, 각계 원로·중진 23명으로 국정자문회의 구성

5월
정부, 전국에 비상계엄 확대

광주학생시민대규모 데모(5.18 광주항쟁)

계엄하의 대통령 자문보좌기관으로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신설
(의장 최규하 대통령, 상 임위원장 전두환 중앙정보부장서리).

8월
컬러 텔레비전 시판 개시

최규하 대통령 하야

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 제11대 대통령에 당선

9월
대학교육개혁시안 발표 (학과별 최소 졸업정원제 채택).

11월
신문협회·방송협회, 언론기관 통폐합 결정

1981년
1월
민주정의당 창당(총재 전두환)

정부, 비상계엄 전면 해제

4월
국정자문회의 발족(의장 최규하)

5월
공정거래위원회 발족.

9월
제84차 IOC총회, 제24회 하계올림픽경기대회 서울 개최 의결.

1982년
1월
중고생 교복(83년부터)과 머리형 자율화하기로 결정

1983년
1월
공직자윤리법(고위공직자의 재산등록)발표.

6월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시작. 1만 189명 혈육 상봉

10월
미얀마 양곤의 아웅산묘소서 북한 공작원이 장치한 폭탄 폭발,
참배 준배 중이던 서석준 부총리 등 한국 고위관리 17명 순국.

11월
미국 대통령 레이건 내한(12일 1차 한·미정상회담, 14일 공동성명 발표).

88서울올림픽경기대회 휘장·마스 코트 발표.

5월
교황 바오로 2세 방한(6일 여의도에서 한국순교자 103위의 시성식 집 전).

1984년
4월
미국 대통령 레이건 한반도 안정위해 남북한과 미·중국의 4자회담 제의

홍콩서 실종된 영화배우 최은희, 감독 신상옥의 북한 납치사실 발표

5월
서울대공원 개원

1985년
6월
김영삼·김대중 회동, 민주화요구 공동발표문 채택

8월
고대 의대, 냉동정액을 이용한 수정으 로 임신된 아기가 국내에서 처음 탄생했다고 발표

9월
서울과 평양에서 이산 40년만에 고향방문단 혈육 상봉

한국이 참여한 첫 해외개발유전인 인도네시아 마두라 유전서 생산 개시

11월
한국, 남극자원보존협약 가입.

1986년
3월
납북된 최은희·신상옥,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

재무부, 덤핑방지관세제 실시

8월
새 국립중앙박물관, 구 중앙청청사를 개조해 개관

9월
제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 개막(∼10월 5일)

10월
(주)삼성전자 문태원 연구원, 세계 최 초로 초소형 4mm VTR개발.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군, 경찰고문으로 사망.

2월
과학기술원 윤한식·손태항 박 사팀, 최강력고분자 알로이섬유 세계 최초로 개발

6월
민정당, 노태우 대표위원을 대통령후보로 선출

12월
중앙선관위 노태우 민정당후보 당선 공 포.

제 6 공화국(1988~1992 )

1988년
1월
대한상의,
공산권 경제단체와는 처음으로 헝가리 상공회의소 경제협력확대를 위 한 업무협조협정 체결

2월
금호그룹에 제2민간항공인가

보사부, 국내 첫 AIDS환자 발생 발표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 제13대 대통령 취임

7월
월북작가의 해방전 문학작품에 대한 출판허용조치 발표

9월
서울장애자올림픽 개막(65개국 4,361명 참가)

11월
전두환 전 대통령,
자신의 재임 중에 일어났던 비리를 시인·사과하고 재산 일체를 국가에 헌납하 기로 발표.

1989년
2월
헝거리와 국교 수립(공산권 국가로는 처음).

3월
문익환 목사, 북경을 경유 평양에 도착, 김일성과 회담

8월
동아건설, 세계 최대규모인 리비아 2차대수로공사를 수주(53억달러)

1990년
1월
노태우 대통령·김영삼 민주당 총재·김종필 공화당 총재,
청와대에서 3당 통합 을 선언.

2월
외무부, 모스크바주재 영사 처 개설을 발표

5월
교통부, 수도권 신공항입지를 영종도로 확정

6월
국무회의, 새 민방(民放)의 방송법 개정안 의결

12월
소련 방문(∼17일). 14일 양 국 정상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회담 후 모스크바선언

국회, 지방자치 법·지방의회선거법·지방자치단체선거법 등
지자제관계 3개법안 통과.

1991년
1월
정부, 걸프전의 군의료진지원조사단 26명 사우디에 파병

한국의료지 원단 현지로 출발

3월
시·군·구의회의원선거 실시

9월
유엔총회, 남북한유엔가입안을 만장일치로 통과

12월
새 민방 서울방송 (SBS) 개국.

1992년
1월
노태우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
정상회담에서 미국측의 대북한 직접협상을 배제하고 한반도핵문제는 당사자끼리 해결해야 하며, 북한은 조기에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고 국제 사찰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

2월
남북한, 두만강개발회담 실무접촉에서 나진·선봉지구개발에 공동보조하기로 합의

남북고위급회담(평양)에서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등 합의서 본문을 교환·발효

4월
정부,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을 개 방한다는 내용의 농산물협상이행계획서를 GATT에 제출

8월
황영조 (黃永祚), 바로셀로나올림픽경기대회 마라톤 우승

12월
, 김영삼후보 당선

대한민국 (大韓民國) 2

문민정부(1993~1998 )

1993년
2월
북한,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선언

4월
정부, 소말리아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약 250명의
건설공병부대를 파견하 기로 유엔측에 공식통보

5월
국회,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처리

8월
경부고속철도 차종을 프랑스 알스톰사의 TGV로 확정

금융실 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표

대전 엑스포 개막

9월
우리별 2호 발사 성공(프랑스령 기아나)

10월
전교조(全敎組), 해직교사의 복직문제와 관련하여 쟁점이 되어 온
전교조탈퇴 조건을 수용 복직

12월
한국 및 미국, 쌀시장개방안 타결.

1994년
1월
서울지검, 장영자(張玲子)를 107억원을 편 취하고 37억원의
당좌수표 중 5억원을 부도낸 혐의로 재구속

4월
김영삼 대통령과 이희창(李會昌) 국무총리,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의 갈등으로 국무총리 사표 제출

7월
평양방송, 김일성 사망(8일)을 보도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태권도 2000년 시드니 올림픽경기대회 정식종목으 로 승인

10월
성수대교 붕괴

12월
기획원-재무부, 건 설부-교통부를 통합하는 등 정부조직개편.

삼성 자동차 진출 허용

WTO비준 동의안 국회 통과

1995년
1월
부동산실명제 7월 1일부터 실시하기로 확정발표

3월
케이블TV 27개채널 본방송 개시

5월
북한에 조건없이 곡물을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고
남북 대표회담개최 제의

6월
27 일, 지방선거 실시. 서울시장 조순(趙淳) 후보 당선, 여당 참패

쌀 15만톤 북한지원 합의

서울 삼풍백화점 2개동 중 북쪽건 물 붕괴

7월
김대중 정계 복귀 선언

10월
수출 1000억달러 돌파

11월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5.18 특별법 제정 지시

12월
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

1996년
4월
한반도 4자회담 제안

5월
2002 월드컵 일본과 공동 유치

8월
한총련 사태

9월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

10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11월
조선총독부 건물 완전 철거

1997년
1월
한보 철강 부도

2월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 망명

5월
김현철 구속

8월
KAL기 괌 추락 사고

11월
IMF구제금융 공식요청

12월
IMF협상 타결 (구제금융 약 550억 달러 결정)

제 15대 대통령 선거 김대중(국민회의-현 민주당) 후보 당선

오늘의 스팸!

오늘 아침에 날라온 ‘민족사 최대비리 ( V 1.8 ) 2003-3월’이라는 이름의 스팸메일인데, 엄청 길지만 조금씩 읽으면 질리지 않고 꽤 재미있습니다. 조금씩 들 읽어보시라구요.. ㅎㅎ 오늘의 스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