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선거 후보들의 색깔을 보고..

모조리 물 빼버리고 빛으로 물들였으면 좋겠어요.

구케으원 선거에는 주황색도 나오더니
교육감 선거에는 초록색이 최대한계로군요.

빨간색 배경의 디자인으로 전단을 만는 후보가 나온다면

딴나라당이라도 찍어야 하는거 아닌지

자유로운 색의 자유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그런 선생님을 보고싶습니다.

런던 가봤다

런던 구경을 미루다 어제 다녀왔다.

한시간정도를 열차로 이동한 후 내린 곳은 Eastend쪽의 어느 지하철역. 갱단이 본거지로 삼을만큼 심하게 우중충한 모습은 꽤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유명한 빈촌인 그곳의 모습은 예전에 걸었던 어느 인도의 대도시와 텔리비젼으로 보던 동구권의 분위기를 섞어놓은듯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영국 땅인데, 백인 콧배기도 안보이는 것을 보는건 참 신기한 일이었다.

역 앞 보도에 늘어선 가판대들에서는 터번을 머리에 두른 시크교도 상인들이 물건을 파느라고 바쁘다. 간혹 지나가는 하얀 모자의 무슬림사람들은 그 옷의 색 때문인지 대체로 어두운 영국의 거리풍경에서 단연 눈에띈다.

소호와 테임즈강가 주변을 이리 저리 돌기도 했다. 높에 솟아있는 하얀 옛 건물들은 베를린에서 본 고풍스러움과 비슷했지만 좁고 오밀조밀한 런던의 도로사정 때문인지 무척 답답해보였다. 서울의 높은 빌딩에 비하면, 또는 그 높다는 뉴욕의 그것에 비하면 한참이나 낮은 아담한 건물들이지만 그 속에서 많은 인파를 피해 지나가는 기분은 마치 정글을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러고보면 내가 사는 브라이튼이란 곳이 시골이 맞긴 맞나보다.

런던, 아담한 중심부 사이즈에 이것저것 몰려있는 품새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오밀조밀’이라고 해야 할 듯 하다. 베를린의 시원스럽고 편안한 느낌과는 뭔가 다르다.. 좁은나라의 특성은 여기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밀리니엄아이라는 황당한 물건이 그 오래되고 칙칙한 컬러의 웨스트민스터 앞에 버티고 서있는 것, 테이트모던 앞의 다리를 건너 건물모양의 가짜천막이 쳐진 대성당 앞으로 오면서 ‘그래 맞아,, 이건 정말 큰 놀이공원같아.’라고 중얼거렸다.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베를린에서 그냥 막연하게 느끼던 독일인에 대한 동질감(이건 정말 상대적인거다.)과는 다른, 영국인들에 대해서 느껴지는 이질감이랄까.. 아무튼 그런게 있는것같다는것. 세상의 리더라는 인식은 그들에게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막연히 느끼는 열등감인걸까.

파란갱이?

나 스스로, 날이 갈수록 파란색에 대한 선입견이 높아져서 걱정이다. 이러다 나이를 먹으면, 누굴 보고 파란갱이.. 파란갱이…. 그러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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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기념관 소장. 고종황제가 미국인 외교고문 데니에게 하사한 태극기. ⓒ2004 네이버 백과사전

선관위에서 프리챌의 노란색을 열린우리당의 상징색과 같다는 이유로 경고조치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의 보통 승용차는 모두 자민련 차량이고, SK텔레콤은 한나라당인가..?

각 정당에서 색을 이용하는 것을 먼 산 보듯 바라보다가, 불쑥 노란색에 대한 트집을 잡는 일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 선거운동에 어떤 이미지를 도입하느냐, 마느냐는 논란거리임에 틀림없지만, 선관위에서는 사전에 일관적인 기준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요즘의 선관위는 기준 없이 왔다 갔다 하는 통에 그 의도를 파악하기도 힘이 든다.

현대사회에서 광고의 효과는 실로 막대하며, 미디어수단이 발달할수록 광고방법은 더욱 더 직관적, 선정적으로 변해간다. 광고시장에서는 그에 맞춰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일정한 규칙이란 것이 있다. 상표와 의장에 관련된 법률도 그중의 하나이다. 법률은 기업들이 자신의 기업이미지나 상품에 대한 아이덴티티 작업에 투자한 노력을 지키기 위해서 일정한 규칙을 적용한다. 그러나 치열한 기업들의 광고시장에도 색에 대한 원초적인 규제는 없다. 색의 분류란 것은 그 소유권이 어디에 있다고 가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용되는 과정에서의 도안(디자인)작업을 통해서 그 권리가 생겨난다.

그렇기 때문에 선관위가 말한 진노란색 위주로 사이트를 구성한 것‘에 대한 규제는 잘못된 것이며, 잘못되다 못해 바보스럽다. 혼란한 상황에 대해서 일정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명확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기준이 먼저 만들어졌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번의 선거를 통해서 어떤 색에 대한 우리나라사람들의 보편적 인식이 왜곡될 것 같아 안타깝다. 색채에 대한 선입견은 한 나라의 시각문화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이다. 얼마간 논란거리였던 ‘살색과 인종차별’에 관한 문제가 색 하나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이야기했던 것 처럼,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이 빨강색을 쓰는데 자유스럽지 않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태극기의 빨강과 파랑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혹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나는 나이가 먹어서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빨강, 초록, 파랑, 노랑, 거기에 더해 주황색까지 선거전에 모두 뛰어든 지금의 현실은, 정책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 부실한 정치권의 단면을 보여준다. 디자이너로서, 요즘의 정치권에서 색깔론, 색깔론 하며 색 운운하는 것은 그래서 더 짜증난다.

색 장난 좀 그만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