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날에 맞은 예술


한예종 이론 과정 폐지에 대한 논란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날 선 정치적 공세에 막연한 방어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더 답답하다. 이참에 우리 모두 당해보면 더욱 절실해지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싸움에서 그들이 그 ‘삽’에 맞서 방어에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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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교사연합 발족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입각 교육”
“현교육 평등주의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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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지향하는 뉴라이트 교사연합이 발족됐다.
뉴라이트교사연합 창립준비위원회는 23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실에서 회원 5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대회를 갖고 전국중등교사회 두영택(남성중학교 교사) 회장을 상임대표로 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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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진보 실현이라는 것도 실제로는 기득권층에서만 가능한 건 아닐까?

강정구와 공산주의


참 오래된 일인 것으로 기억된다. 북한의 김일성 생가 방문중에 방명록에다가 “만경대정신을 이어받겠다”는 투의 서명을 한 일로 불구속 기소된 동국대 강정구교수가 파면됐나보다.

알맹이가 가득한, 참된 사상일수록 대중들에게 가볍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상이 무엇이건 어떤 사람에게 강요되고 지켜나가야만 하는 것으로 무겁게 결정지어진다면 그때부터 사람은 없고 공허한 생각만이 떠도는 상황이 되기 쉽지않나 싶다.. “맥아더 동상 철거”반대의 이유를 “지나가던 갈매기가 똥이라도 쌀 수 있다”고 한 어느 아는 분의 얘기처럼 일반의 가벼운 사상토론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용인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정말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같다. 지금도 대충 살맛은 나지만..

아무튼, 한국의 예술과 디자인 분야에 상상력이 부족하다면, 그 이유중에는 부족한 생각의 다양성도 들어갈거다. 그야말로 공산주의는 커녕 사회주의의 벽도 넘지 못한 한국의 민주주의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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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한 글입니다.

강정구 교수가 컬럼비아대 교수였다면
[해외리포트] 학자의 학문적 발언에 대한 두 대학의 다른 태도
강인규 _ 미국 위스콘신대 언론학 강사

미국의 컬럼비아대학과 한국의 동국대학. 두 대학교 모두 각 사회에 큰 기여를 해 온 유서 깊은 명문사학이다. 특히 동국대학교가 지식인과 학생들을 배출함으로써 한국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바는 컬럼비아대학이 미국사회에 미친 영향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에 속한 학자의 발언을 둘러싸고 보인 두 학교의 태도는 여러 모로 상반된다. 의 저자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컬럼비아대학교 비교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사회적 발언에 소극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미국 대학사회에서 사이드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는 여러모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사이드는 미국의 중동정책을 맹렬히 비판했으며,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앞장섰다. 동양에 대한 서구사회, 특히 미국이 가지고 있는 인종적이고 문화적인 편견을 거리낌 없이 들춰내던 사이드의 연구와 발언은 미국 보수층의 심기를 대단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욕 먹어가면서 소속교수 보호한 컬럼비아대학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이드였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것은 그의 ‘돌팔매질’이었다. 그는 2000년에 레바논을 여행하던 중, 국경 넘어 이스라엘군 초소에 돌을 던졌다. 레바논 남부지역의 무력지배에 항의를 표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당시 학계에 일대 파문을 일으킨 그의 행동은 컬럼비아대학의 입장표명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당시 대학은 “그 돌은 특정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었기에 위법행위가 아니며, 당연히 학문적 발언의 하나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밝히며 징계를 거부했다. 학교 측의 이런 결정은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서 내려진 것이었다. 이 결정에 반발한 사람들은 컬럼비아대학을 ‘포이즌 아이비(사악한 아이비리그 학교)’라고 비꼬았다.

미국에서 중동문제는 한국사회의 남북문제에 비견될 만큼 민감한 주제일 뿐 아니라, 유태계 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욕시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파장은 더욱 컸다. 그가 이스라엘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진이 미국언론에 공개되자, 보수언론은 물론 일부 동료교수와 학생들까지 그의 행동에 경악하며 파면을 요구했다. 그의 위험한 경거망동은 교수직을 박탈할 만한 충분한 사유가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상황은 사이드에게 대단히 가혹했다. 미국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일부 아랍 언론까지 비판에 가담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는 “아랍인들이 폭력적이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애써 온 존경받는 교수가 이런 행동을 한 데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썼다.

컬럼비아대학 측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사이드 교수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두고 교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회의와 토론을 벌여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대학은 학자의 발언을 보호해야 한다”는 결정이었다. 당시 교수대표였던 조나단 콜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대학의 역할 가운데 학자 개인의 자유로운 발언을 보호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학자는 사회의 다수가 믿고 있는 정치적 신념에 억눌려 자유로이 의사를 표현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황 교수와 강 교수에 대한 이중적 태도

컬럼비아대학의 결정이 사이드의 행동을 지지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니듯이, 적어도 이 순간 글의 목적은 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옹호하는 데 있지 않다. 이 글이 말하고 있는 바는 단 하나, 대학 내에서 지식인의 발언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자들의 발언마저 법의 이름으로 처벌하는 사회가 일반대중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한국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밝히는 작업은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만큼이나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접근이 필요한 영역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인 근대사 연구는 줄기세포 연구보다 훨씬 큰 위험부담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대학의 역할이 사회의 통념을 재생산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학자들의 발언에는 일상적 담론 이상의 자율성과 관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맹목적 민족주의 담론이 황우석 교수를 성급하게 영웅으로 만들었듯이, 한국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반공주의는 한 지식인을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 ‘매국노’로 만들었다. 한국 언론이 줄기세포의 근본적 한계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황 교수팀의 업적을 찬양하기에 여념이 없었듯이, 강정구 교수의 견해를 객관적으로 고찰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매도하기에 바빴다.

보수언론과 정계는 ‘국가를 위협하는 발언까지 학문적 발언으로 보호해줄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를 위협하지 않는 학문적 발언’이 어디까지인지를 누가 판단할 것인가? 논문이나 강의록 초고를 들고 국회나 법원, 혹은 신문사 편집부로 먼저 달려가라는 주문이 아니라면, 그 판단은 온전히 학계에 맡겨져야 한다.

사이드가 돌을 던진 뒤 5년 후 한국

에드워드 사이드는 2003년 9월, 오랫동안 앓아 온 백혈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가 사망했을 때 모든 언론은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며 그의 ‘돌팔매’와 컬럼비아대학의 지지발언을 함께 거론했다. 이후로도 사이드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컬럼비아는 그의 지성을 지켜 낸 자유의 정신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국대학교는 법원이 강 교수에 대해 국가보안법 기소결정을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강 교수를 직위해제했다.

강정구 교수를 둘러싼 ‘논란’의 주범은 강 교수 자신만이 아니다. 오히려 학자의 발언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진지한 성찰과 토론을 이끌어 낼 인내심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회가 일으킨 소란이다. 한나라당의 의원도 말하지 않았던가. ‘한국이 성숙한 사회라면 강 교수의 주장을 무시했어야 한다’고 말이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학자 한 명의 발언으로 ‘전복’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도리어 체제에 대한 확신이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동국대학교는 이번 논란의 ‘주범’인 한국사회와 맞서기보다는 한 사람을 대학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간편한 길을 택했다. 물론 동국대학교로서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특정 교수의 수업을 들은 졸업생들에게 취업상의 불이익을 준다’는 기상천외의 발상(이야말로 반민주적인 발언이 아닌가)이 통용되는 사회 속에서 학교 측이 겪어야 했을 고통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어 낼 미래의 한국사회가 동국대학의 이번 조처를 어떻게 기억할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동국대학교 측의 현명한 재고를 기대한다.

2005-12-27 15:50
ⓒ 2005 OhmyNews

파란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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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 날이 갈수록 파란색에 대한 선입견이 높아져서 걱정이다. 이러다 나이를 먹으면, 누굴 보고 파란갱이.. 파란갱이…. 그러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 독립기념관 소장. 고종황제가 미국인 외교고문 데니에게 하사한 태극기. ⓒ2004 네이버 백과사전

선관위에서 프리챌의 노란색을 열린우리당의 상징색과 같다는 이유로 경고조치했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의 보통 승용차는 모두 자민련 차량이고, SK텔레콤은 한나라당인가..?

각 정당에서 색을 이용하는 것을 먼 산 보듯 바라보다가, 불쑥 노란색에 대한 트집을 잡는 일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 선거운동에 어떤 이미지를 도입하느냐, 마느냐는 논란거리임에 틀림없지만, 선관위에서는 사전에 일관적인 기준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요즘의 선관위는 기준 없이 왔다 갔다 하는 통에 그 의도를 파악하기도 힘이 든다.

현대사회에서 광고의 효과는 실로 막대하며, 미디어수단이 발달할수록 광고방법은 더욱 더 직관적, 선정적으로 변해간다. 광고시장에서는 그에 맞춰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일정한 규칙이란 것이 있다. 상표와 의장에 관련된 법률도 그중의 하나이다. 법률은 기업들이 자신의 기업이미지나 상품에 대한 아이덴티티 작업에 투자한 노력을 지키기 위해서 일정한 규칙을 적용한다. 그러나 치열한 기업들의 광고시장에도 색에 대한 원초적인 규제는 없다. 색의 분류란 것은 그 소유권이 어디에 있다고 가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용되는 과정에서의 도안(디자인)작업을 통해서 그 권리가 생겨난다.

그렇기 때문에 선관위가 말한 진노란색 위주로 사이트를 구성한 것‘에 대한 규제는 잘못된 것이며, 잘못되다 못해 바보스럽다. 혼란한 상황에 대해서 일정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명확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기준이 먼저 만들어졌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번의 선거를 통해서 어떤 색에 대한 우리나라사람들의 보편적 인식이 왜곡될 것 같아 안타깝다. 색채에 대한 선입견은 한 나라의 시각문화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이다. 얼마간 논란거리였던 ‘살색과 인종차별’에 관한 문제가 색 하나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이야기했던 것 처럼,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이 빨강색을 쓰는데 자유스럽지 않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태극기의 빨강과 파랑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혹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나는 나이가 먹어서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빨강, 초록, 파랑, 노랑, 거기에 더해 주황색까지 선거전에 모두 뛰어든 지금의 현실은, 정책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 부실한 정치권의 단면을 보여준다. 디자이너로서, 요즘의 정치권에서 색깔론, 색깔론 하며 색 운운하는 것은 그래서 더 짜증난다.

색 장난 좀 그만 치자.

생각은 자유..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폴러첸이 한 말.

“한국방송(KBS)의 K는 김정일의 K인 것 같다”
“남한에서도 북한처럼 방송이 나서서 주민들에 대한 의식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느꼈다”

폴러첸은 어떤 미디어를 통해 그모양으로 의식화되었는지…
정말 생각은 자유다. 인정.

‘태극기 휘날리며’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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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를 들고 들어간 극장 안에서 나는 왼편의 스피커 옆에 앉아있었다. 영화는 이미 시작되었는지 어느 노인이 등장하다가 이내 해방 이후의 거리로 바뀌었다. 오십년대의 시장통에서 벌어졌을법한 수수한 일상, 그 속에서 살던 한 가족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왼편의 스피커가 웬지 이상하더라니, 영화를 보는 내내 깜짝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총소리가 작을 수 있겠느냐 마는, 꼭 전투가 시작되는 첫 총성에 나는 화들짝 놀라서 앞사람의 의자를 치기도 하고, 놀라서 고개를 돌리느라 중요한 장면을 놓치기도 하였다. 그만큼 이 영화는 소리조절과 화면조절을 상당히 급박하게 전환되도록 만들어진 것 같았다.

나는 전쟁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평소엔 영화를 정말 안보는 편이지만, 전쟁영화는 그나마 찾아서 본 편이다. 나는 전쟁영화를 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평온한 세상을 확인하고 안도하지만, 그런 안도감의 이면에는 상황을 언제건 뒤바꿀 수 있을 불안요인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함께 느끼게 된다. 전쟁영화의 시나리오나 원작이 얼마나 사실에 근거하는지 알 수 없으나 무작정 그것은 다큐멘터리라고 믿어버리기도 한다.

어설픈 점이 보였다. 반합도 모자랐을 시절에 등장하는 반짝거리는 스테인리스 식판, 많이 들어서 알고 봤던 어색한 전투기 그래픽들, 그리고 잔인하게도 – 형제가 같이 끌려가서 서로 겨누다가 동생이 살아오는 – 전체적인 스토리 또한 그리 놀랍지는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눈을 적시게 된 이유는, 그런 어설픈 부분에 비해서 너무나 고마운 진일보한 균형감각 때문이었다. 형의 동생 살리기는 그래서 더 눈물겹다.

우리는 헐리우드의 눈을 통해서, 혹은 과거 군사정권의 시각을 빌린 영화들을 통해서 2차대전과, 한국전쟁을 만났었다. 그 모든 전쟁에는 선악이 뚜렸했다. 하다못해 그 태극기마저 윗쪽의 빨간색보다 아랬쪽의 파란색이 크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원래 빨갱이만 들고 있어야 할 죽창을 들고 어색하게도 빨갱이들을 죽이는 장면과, 웬지 하면 맞을것 같은 말인 “씨팔 일정때는 나라지킬라고 싸웠지만 지금 이게 뭐하는 지랄이냐. (필자 주)”라는 공형진의 대사는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부분, 형이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북쪽을 향해서 다시 총질을 해대고, 그런 형으로 인해 동생은 남쪽으로 살아 돌아와 어머니를 만난다. 그러고 보니 그 땅,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땅이 바로 남한 땅이다. 그런 총질로 만들어진 긴장의 땅인가보다.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는 남쪽에서 만들어졌으니 당연히 남쪽으로 돌아오는 동생으로 그려졌겠지만, 언젠가 시간이 더 흐르면 그 반대편 북쪽의 눈물나는 전쟁스토리도 들어볼 날이 있을 것이다.

덧말 : 나도 한번 아주 길게!! 써보자는 다짐으로 키보드를 두들겼는데 결과적으로 뭐 만족스럽진 못하다. 하지만 대충 내가 이 영화를 본 느낌 중에서 중요한 몇몇은 드러난 것같다. 이런것도 막상 써보려니 어렵네그려..

아, 그리고… 이 영화속, 전장에서의 장동건의 모습은 해안선이라는 영화를 다시 생각나게 하였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