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Korea plans to withdraw one-third of troops from Iraq


[Captured Article] The Hindu News Update Service

Seoul, Nov. 18.(AP): South Korea plans to bring home about one-third of its troops from Iraq next year, the Defense Ministry said Friday.
Defense Minister Yoon Kwang-ung reported the plan to withdraw about 1,000 troops from Iraq to the ruling Uri Party on Friday, the ministry said. About 3,200 South Korean troops are stationed in northern Iraq to help rehabilitate the country, making Seoul the second-largest U.S. coalition partner contributing forces after Britain.

The announcement comes a day after South Korean President Roh Moo-hyun met U.S. President George W. Bush in the South Korean city of Gyeongju, where the leaders insisted their countries’ alliance was strong and agreed to work together to curb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ambitions.
South Korea’s move caught the White House by surprise. “They have not informed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of that,” said National Security Council spokesman Frederick Jones.
Jones said Roh didn’t raise the subject of troop withdrawals with Bush when they met Thursday in Gyeongju.
“This issue was not raised,” Jones said. “Just the opposite.”
He said Bush expressed appreciation for the South Korean troops and Roh expressed pride in the accomplishments of the South Korean forces.

미군 WMD 수색팀, 아무 성과없이 다음달 이라크 떠날 예정


평화주의자로 그저 잠시동안 둔갑했던 우리들에게 저주를.. -_-

【서울=뉴시스】
대량살상무기(WMD) 수색을 위해 이라크에 파견돼 7주 간 수색활동을 했던 미군 태스크포스팀이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좌절한 채 다음달 이라크를 떠날 예정이라고 미국 일간 가 11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은 ‘미군팀 좌절한채 이라크 떠날 예정’이라는 제목과 ‘어떤 무기도 찾지 못한 태스크포스’라는 부제하에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군 수색팀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금지 무기를 보유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채 작업을 접는 중이라고 전했다.

공식명칭 ‘제75 개척 태스크포스(The 75th Exploitation Task Force)’의 이 특수수색팀은 처음부터 이라크가 숨겨둔 무기를 찾아내 공개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대였으므로 이들이 다음달 이라크를 떠난다는 것은 이라크 전쟁의 주요 목적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태스크포스 팀장 리처드 맥피 대령은 개전 직전 미국 정보부로부터 사담 후세인이 부하들에게 화학무기 사용 명령권을 부여했다는 경고를 받았다며 그러나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사용하려면 일단 사용할 무기가 있어야 하는데 수색팀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현장사정팀을 이끌고 있는 로버트 스미스 대령은 태스크포스 지도자들이 더이상 화학무기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그 일을 위해 여기 왔으나 이제 더이상 능력이 없다”고 사실상 실패를 시인했다.

수색팀에 따르면 미 행정부가 확인한 목표물들을 지속적으로 수색했으나 이들 대부분이 부정확하거나 약탈이나 방화 등으로 유실됐다.

미 중부군사령부가 전쟁 시작 전 이라크 무기 은닉 장소로 지적한 19곳 중 수색하지 않은 곳은 현재 2곳만 남아있으며 특수 무기와의 연관성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단서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목된 ‘비(非) 대량살상무기 현장(non-WMD sites)’ 68곳 중 45곳의 조사를 마쳤으나 역시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좆같은거 몰랐냐?’


오늘은 외무부 모 과장으로 근무하는 사촌형이 우리집에 놀러왔었다.
어머니와 함께 그 형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이라크 파병이야기를 주제로 새벽 2시 반까지 토론?을 거듭했다…-_-;;(너무하군,, 이거,,,)

어쩌다보니 촛불시위 할때 구경 갔던 것이 들통난 나는 있는 말 없는 말 써가며 어머니와 새벽까지 격론?!을 거듭하였다… 사촌 형은 믿을만한 얘기(외무부에서 판단한 정설이라니 믿을수밖에…)를 근거로 들어가며 노대통령 파병 발표시의 북한 공격 위기설을 나에게 조목 조목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별루 생각이 나지를 않고,,,

아뭏든 형은 마지막에 이런 얘기를 하더군..

“럼즈팰드등의 미국 매파들은 거의 깡패로 보면되.. 부시도 텍사스에서 온 깡패아니냐.., 세상 좆같지.., 넌 몰랐어?”

그렇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세상이 좆같지 않다는 아주 가느다란 기대…’를 포기해야만 하는걸까?

ps.죄송합니다…-_-;; ‘좆’이라는 혐오스러운 단어를 보신분들께, 에구…

뉴스는 이미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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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거나
광고기획자가 되었어야 할 사진기자의 이야기로군요..
지나간 연합뉴스 / AP 포토 아카이브에서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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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타임즈가 2일 사고를 통해 지난 31일 1면에 게재된 이라크전 관련 사진이 조작 됐다고 밝혔다. L.A 타임즈는 이라크전쟁에 특파된 자사 사진기자 브라이언 월스키 (Brian Walsky)는 바스라 인근에서 영국군병사가 이라크 민간인을 제압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 2장(사진 위쪽)을 극적인 사진으로 만들기 위해 합성을 했다고 밝혔다. 월스키 기자는 2일 해고됐다.

2003.4.3 (서울=연합뉴스)

호세 안토니오 구티에레스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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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내에서 두번째로 사망한 해병대 소속 호세 안토니오 구티에레스(27) 일병.
ⓒ연합뉴스

남미출신 미군 전사자에게 주어진 ‘미국 시민권’

지난 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로미타의 한 성당에서는 과테말라 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미 해병대원인 호세 안토니오 구티에레스(28)의 장례식이 열렸다. 그는 지난 3월 21일 이라크 남부 움카사르 전투에서 전사했다.

계속…..

과테말라에서 태어난 구티에레스는 8살때 고아가 됐다. 과테말라 내전의 와중에 부모를 잃었던 것이다. 그들 가족은 원래부터 찢어지게 가난했다. 구걸, 도둑질, 매음이 판치는 과테말라 시티의 슬럼가에서 살던 구티에레스는 생존을 위해 누이와 함께 길거리에서 구걸을 해야 했다.

그러나 구티에레스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과테말라와 온두라스에서 거리의 아이들을 돌보던 한 사회복지단체의 도움을 받게 됐다. 여동생은 다른 집에 입양됐다.

구티에레스는 이 단체에서 축구선수로 활동했고 영어도 배웠다. 그는 대학에 가고 싶었고 나중에 건축가로 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난한 과테말라에서, 더구나 고아인 그가 꿈을 이룰 수는 없었다.

구티에레스는 22살이 되던 때 인생의 큰 결심을 했다. 또래의 다른 청소년들이 그렇듯이 미국으로 밀입국하기로 했다.

그는 차를 얻어 타거나 화물열차 짐칸에 몰래 올라타기도 하면서 미국 국경에 이르렀다. 무려 4000㎞에 걸치는 여정이었다. 구티에레스는 결국 리오그란데 강에서 미국 이민국 직원들에게 붙잡혔다.

그러나 그는 붙임성있고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17살이라고 미국 이민국 직원들을 속였다. 구티에레스는 우여곡절 끝에 본국으로 추방되지 않고 한 남미계 가정으로 입양됐다.

미국 생활은 순조로운 듯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 미국 시민권을 얻고 싶었다. 고국에 남아 있는 사랑하는 누이를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소수계 인종이 미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군 입대였다. 마침내 구티에레스는 미 해병대에 입대했다.

새해 초 그는 과테말라 시티에 살고 있는 누이에게 전화를 했다. “잘 지내. 나는 전쟁터로 간다. 신이 우리를 지켜줄 거야. 나는 살아오겠다.” 이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지난주 움카스르 전투에서 가슴에 총탄을 맞았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지난 4월2일 전사한 뒤 1주일만에 그에게 미국 시민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죽어서 진정한 미국인이 된 구티에레스는 미국에 묻히지 않는다. 그의 시신은 전사의 대가로 주어진 미국 시민권을 안고 7년만에 다시 그가 태어났던 과테말라로 돌아갈 예정이다.

/ 김태경 기자 / 오마이뉴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