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쿤회의 시위 한국농민 할복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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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쿤=연합뉴스) 김영섭 특파원= 제5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10일 멕시코 휴양지 칸쿤에서 개막된 가운데 현지에서 WTO협상 반대시위를 벌이던 이경해(56) 전 한국농업경영인 중앙연합회(이하 한농연) 회장이 흉기로 왼쪽 가슴을 찔러 칸쿤 시내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숨졌다.

이씨는 이날 낮 12시50분께(한국시각 11일 새벽2시50분께) 각국에서 온 1만여명의 WTO 반대 시위대가 칸쿤 시내에서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반대를 외치며 교외 해변가에 위치한 회의장으로 진입을 시도하며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한국 농민대표 및 시민단체 관계자 150여명과 함께 시위를 벌이다 흉기로 가슴을 찔렀다.

이씨와 함께 시위에 참가했던 한농연 전남회장 이복흠씨는 “이경해씨가 갑자기 `나는 염려하지 마라. 열심히 투쟁하라’고 외친뒤 흉기로 가슴을 찔렀다”고 말했다.

이날 이씨는 상여를 메고 진입을 시도한 한국 투쟁단을 선두에서 지휘하며 철제 저지선에 다가선뒤 `WTO반대! 투쟁!’이라고 적힌 머리띠를 매고 이복흠씨와 함께 약 2m 높이의 철제 저지선 위로 올라가 `농업 부문을 WTO DDA 협상에서 제외시켜라’는 뜻의 영문이 적힌 플래카드를 걸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흉기로 가슴을 찌르고 곧바로 떨어졌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이경해씨는 곧 칸쿤 시내 종합병원으로 후송돼 곧바로 수술을 받았으나 출혈이 심해 이날 오후3시15분께 숨졌다.

이씨를 담당한 의사는 “흉기가 좌심방 4㎝ 깊이까지 들어갔으며, 과다출혈로 숨졌다”고 말했으며, 칸쿤 종합병원은 현재 이씨의 부검을 실시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7일 저녁 개인 자격으로 입국했으며, 10일 새벽3시께 숙소로 돌아온뒤 이날 오전 아침식사를 정상적으로 하는 등 별다른 이상징후는 없었다고 한농연 관계자는 말했다.

이씨는 전북 장수 출신으로 89년 농어민 후계자로 선정됐고, 91년부터 전북 도의원으로 처음 당선돼 지난해까지 3선 의원으로 활동한데 이어, 지난해 장수군수 선거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현재는 한국농어민신문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 지난 2월25일부터 한달동안 제네바에 있는 WTO 본부 앞에서 단식농성을 했으며, 90년 제네바 UR 협상 때도 제네바에서 할복자살을 기도한 바 있다.

한국칸쿤 투쟁단(단장 정광훈 민중연대 대표)은 긴급 성명을 내고 “이 전 한농연 회장의 사망은 단순 사고나 우발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면서 “이는 WTO와 초국적 자본에 의한 한국경제의 침탈과 농업의 피폐화,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말살에 항의하기 위해 분명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이 발생하자 주 멕시코 한국 대사관 관계자가 종합병원에 도착, 수술상황을 지켜봤고, 헤수스 메나 파우야다 칸쿤 경찰서장이 목격자들의 증언을 청취했다.

또 병원 앞에는 멕시코 농민단체 `비아 캄페시나(농민의 길)’ 소속 회원을 비롯해 각국 NGO 관계자 1천여명이 밤늦게까지 `WTO 반대’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라파엘 알레그리아 `비아 캄페시나’ 회장은 “이 전 회장의 죽음은 한국 농민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의 농민을 위한 것”이라면서 각국 시민.농민단체들이 연대해 WTO 반대 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한국대표단 공동 수석대표를 맡고 있는 허상만 농림장관과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은 성명을 내고 “고인은 평소 우리 농민과 농업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보여주었고 이를 깊은 고뇌속에서 실천해온 분”이라면서 “대표단은 우리 농업의 어려움과 농민들의 우려가 협상 결과에 반영되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대표는 이날 칸쿤 종합병원을 방문해 담당 의사로부터 사건 경위를 들은뒤 향후 대책 등을 논의했다.

한편 칸쿤 각료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루이스 에르네스토 데르베스 멕시코 외무장관은 이씨의 자살과 관련, 성명을 통해 유감을 표명했고, 수파차이 파닛팍디 WTO 사무총장은 이번 일로 인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멕시코 유력일간지 엘 우니베르살이 보도했다.

멕시코 경찰당국은 사태가 곧바로 발생하자 칸쿤 시내와 회의장소로 통하는 주요통로를 전면 봉쇄하는 등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

멕시코 당국은 또한 이날 밤 늦게 칸쿤 공항에 도착할 예정인 한국의 전농 관계자 43명의 명단을 긴급히 입수한 것으로 알려져 한국 농민들의 입국을 저지할 의도가 있는게 아닌지 의심이 간다고 투쟁단 관계자는 전했다.

이번 각료회의는 농업시장 개방을 위한 협상세부원칙의 기본틀을 마련하는 중요한 회의로, 우리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농업분야 협상원칙 기본틀에 있어 관세상한 설정 조항을 없애고 저율관세 의무수입량(TRQ)의 증량에 반대한다는 협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조국가 그룹들과 비공식 접촉을 벌이고 있다.

이날 한국 농민들은 DDA 협상으로 농업시장이 전면개방되면 한국 농업의 운명은 끝났다는 의미로 상여를 메고 시위를 벌였으며, `WTO반대’와 `DDA협상에서 농업부문의 완전 제외’ 등을 요구했다.

한농련 관계자들은 이씨의 장례식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세계 농민장’으로 장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있음)
kimys@yna.co.kr
(끝)

글쓴이

Yoonho Choi

independent researcher in design, media, and locality & working as a technology evangelist in both design and media industries

“칸쿤회의 시위 한국농민 할복 자살”에 대한 2개의 생각

  1. 급속도로 물리적 연결이 강화되어가는 이 때에 정신적으로나 문화, 정치적으로나 세계화란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의문이다. 한 나라의 가족화, 국가화마저 위태로운 시대에 무슨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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