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사회보장이 독일경제 실패 원인?
[대안칼럼-14] 보수언론, 독일경제 때리기의 본질
송태수 기자
[대안칼럼]을 신설했습니다. 매주 2차례에 걸쳐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0여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할 예정입니다.(칼럼진 명단은 아래 덧붙인 글 참고) 이번에는 서울대 정치연구소 연구원인 송태수 박사가 최근 등 보수언론에서 매도되는 독일 경제의 근본적인 진단과 함께, 향후 통일이후의 경제 체제에 대한 대안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담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 편집자 주
우리는 최근 대중매체를 통해서 ‘독일의 실패’ 혹은 ‘독일병’이라는 표현을 자주 보고 듣게 된다. 한때 대안적인 경제체제로서 주목받던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체제가 언제부터인지 배워서는 안되는 ‘반면교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소득 ‘2만달러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서 우리는 독일의 ‘실패’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대두 배경이나 그 내용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특히 독일경제가 어려움에 처하게 된 원인 진단에 이르면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이들에 따르면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찾지도 않고 편안하게 집에서 빈둥거리게 만드는 독일의 실업보험제도 및 제반 사회보장제도가 바로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해고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경직적인 고용관행과 실업자에게 과도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사회보장제도가 독일경제를 망친 주범이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그리고 독일경제에게는 이제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내리막길만 남았을까? 이 글에서는 앞의 문제와 관련해서만 살펴보기로 하자.
독일 경제 침체의 주요 원인은 시장근본주의적 통일정책 때문
현재 독일경제의 침체는 이미 지난 90년대 동안 일관되게 추진되어온 시장 근본주의적 통일정책으로부터 충분히 예견되었던 것이다. 시장만능주의 혹은 시장근본주의적 주장과 달리, 1990년 이후 독일경제 침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콜 정부에 의해 취해진 시장근본주의적 통일 경제정책에 있다.
독일통일은 극히 짧은 시간 내에 동독을 세계시장경제체제에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1:5라는 시장환율을 무시한 채 1:1의 비로 맞교환되는 화폐통합의 결과, 약 8%를 제외한 대부분의 동독기업은 경쟁력을 잃고 동독지역의 경제는 붕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원칙에 충실했던 콜 정부는 동독지역 경제의 재편을 철저히 시장에 맡기는 방식으로 이루려 했다. 그러나 과도적인 현상으로서 ‘눈물의 계곡’에 곧이어 ‘경제 기적’이 올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동독기업은, 보수적인 신자유주의자들의 예측과 전혀 달리, 거의 대부분 시장에서 퇴출되는 상태에 이르렀다. 시장의 경쟁에서 버티고 생존하는 기업만 존속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내팽겨쳐지고, 탈규제만이 이들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와 달리, 이들 동독지역의 기업은 대부분 아예 시장에 진입하는 단계에서부터 서독기업에 짓밟혀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서독기업에 헐값 매각되어 생존한 기업들마저도 생산라인은 대부분 감량경영으로 축소되었다.
동독지역의 산업은 붕괴되었다. 동독지역의 경제는 서독으로부터의 막대한 자금 및 재정유입을 통해서만 유지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동독지역에는 산업공동화 현상이 초래되고 대량실업 상태로 귀결되었다. 가시적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국가의 제반 조처에 따라 인위적으로 유지되던 취업까지 포함해 약 40%에 이르던 실업률을 고려할 때, 콜 정부의 통일정책의 결과 동독지역의 산업은 그야말로 붕괴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수년간 억지로 연명되던 동독지역의 경제는 자본과 재정의 양 측면에서 서독에 의존적인 낙후지역으로 전락하고 말았고, ‘눈물의 계곡’은 영영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이 되었던 것이다.
동서독 경제체제의 극단적 이질성도 한 몫
이외에도 통일과정에서 독일경제를 취약하게 만든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동서독 두 경제체제의 극단적 이질성이다. 즉 두 경제체제의 극단적인 이질성으로 인해 독일은 통일과정에서 정책선택의 기회 구조가 극히 제한되었다. 통일의 시점에서 서독경제는 이미 프랑스와 함께 세계화의 선두에서 유럽연합이라는 기차를 계속해서 끌고갈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었다. 이 기차의 기관차 역할을 포기하는 것은 세계화 속에서 유럽과 서독 경제의 영원한 퇴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동독경제는 동유럽상호원조회의(COMECON: 코메콘) 경제체제에 긴박되어 세계시장경제와는 전혀 이질적인 상태에 있었다. 코메콘 블럭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면서 그 내부적 분업적 요구에 따라 편재되어있던 동독경제는 서독 마르크를 도입함으로써 세계시장경제에 급격하게 편입되었다.
각각 이질적인 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양 국가체제의 통합과정이란 전혀 다른 블럭경제의 작동원리와 작동메커니즘을 강제 통합하는 것이었고,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한쪽에 의해서 다른 한쪽을 배제함으로써만 가능했다. 코메콘체제에 긴박되어있던 동독경제는 더이상 유지될 수 없었고, 서독의 중심축인 세계시장에 흡수될 수밖에 없었다. 코메콘체제의 중심적 역할을 하던 동독이 세계시장경제로 흡수됨으로 인해 코메콘체제는 붕괴되고, 그 결과 동독지역의 자본설비는 일거에 ‘고철’로 폐기돼야 했다. 산업과 경제는 상호 연관적이고 결과는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독일경제 후퇴의 이러한 근원적인 원인들 외에 단기적 경기변동의 차원에서 최근 독일 경기가 어려움에 처하게 된 데에는 달러화의 불안의 결과 초래된 유로화 강세가 한몫 하고 있다. 한국 못지 않게 수출의존적인 독일경제가 최근 유로화 강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당연하다.
동시에 현재 유럽연합 차원에서의 일관된 통화정책을 위해 유럽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의 중요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국적 차원의 경기부양책이 불가능하게 되어있는 상황도 경기후퇴의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요컨대 독일경제의 현재의 어려움은 ‘고비용 저효율’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던 신자유주의적 통일정책의 결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지 독일경제 시스템의 근원적 문제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남한경제는 통일 전 서독경제 못지 않게 대외의존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는 반면, 북한의 자주적 경제체제는 지나치게 폐쇄적이면서 자급자족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경제체제가 지속된다면 향후 경제시스템의 통일, 통합의 시기에 우리 민족이 선택할 수 있는 정책선택의 폭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남북한 경제체제는 상호 동질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독일의 예에서 보듯이 한쪽의 논리나 작동메커니즘은 다른 한쪽의 고유한 논리에 의해 배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통일비용은 현재 진행 중인 남북경제교류 협력의 방향과 방식이 어떠한 것인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독일의 ‘고비용 저효율’통일과정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남북한 각각의 경제체제 또는 구성은 상호 동질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재벌기업 및 대기업집단 중심의 경제구조는 그 외연적 팽창을 전제로 하는 동시에 이러한 팽창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내적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세계경제의 부침에 명운을 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기의 세계화’에 치명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남한경제는, 중소기업을 강화하여 내수시장 지향적인 산업구조로 전환돼야 한다.
반면 현재의 북한경제는 세계경제체제에 지나치게 폐쇄적이어서 산업적 분업체계가 기형적일 정도로 자급자족적인 산업구성체계가 특징적이다. 이것이 현재 북한의 개혁개방에 가장 중요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모두 주지하는 바이다. 북한 경제체제는 세계경제에 개방적인 구조로 변화돼야 할 것이다. 이때 그 개방구조는 가능한 남한과 공동의 경제권역 내에서 형성돼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개방적 경제체제로의 지향은 남북한 양측에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남한은 세계경제체제와의 연관성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필요성은 1997년 이후의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의 강화 내지 일관된 관철이 소수의 중심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 초래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보면 더욱 더 절실해진다. 이른바 ‘세계화’는 20:80 사회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불안정’을 ‘세계화-전면화-일상화’하고 있다. 그 불안정은 중심국의 지위에 있는 극소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에, 그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만큼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통일은 관념이 아닌 현실의 문제로부터 출발해서 사고돼야 한다. 우리가 독일통일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고비용’의 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독일통일의 ‘고비용’의 문제는 정확하게 시장근본주의적 정책과 두 경제체제의 상호 극단적 이질성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보수 기민당 콜 수상의 통일정책이야말로 ‘고비용 저효율’의 원인이었다.
남북한 통일비용은 북한경제의 개혁개방의 성공 여하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통일비용은 산술적 계산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통일비용은 통일을 준비하는 현재, 남북한 경제정책 철학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