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골목은 정확히 말해서 1979년, 내가 일곱살 때 부터 살기 시작한 곳.
왼쪽편의 첫집에 살던 근영이네는 골목에서는 꽤 잘사는 집이었다. 근영이는 또래의 여자 아이들에 비해 키가 엄청 컸고 그당시 우리 골목의 뭇 남성들의 시선을 받는 촉망받는 여성. 다만 그 동생 녀석은 깡다구가 세었던 놈이라서 어쩌다가 내가 된통 맞은 적도 있었는데,, 아직도 생각나는 걸 보면 상당히 나쁜 기억임에 틀림없다.-_-
왼쪽편의 두번째 집에는 어떤 할머니가 살았었는데 그집의 아들이 그 유명한 ‘하석주’. 프랑스월드컵 이후로 거의 역적?이 되어버린 그의 얼굴을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아뭏든 월드컵이란 말을 들으면 그 할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할머니는 뭐하고 계시나…
그 다음 왼쪽 편의 세번째 집이 바로 우리집의 앞집이었던 어떤 아저씨네 집. 그 아저씨는 내 사진에 많이 등장했던 ‘명동이발관’의 간판을 디자인했던 사람. 지금까지도 그 일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당시의 평평한 페인트 글씨 간판이나 한겹짜리 아크릴 간판과는 다른 스폰지Back에 Color철판이 입혀진 넓은 보드를 실톱으로 재단해 만들어낸 그의 하이테크 간판이 너무도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그 아저씨가 머리에 피를 흘릴 정도로 칼부림을 해서 골목이 시끌벅적해진 적이 있었는데 자세한 것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 그 아저씨는 안보인다…
그 맞은편 집은 나의 어린 시절이 담겨있는 마당있는 한옥집.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보았을 때는 다들 그러하듯 너무도 작은 마당에 놀라기도 했었다. 하여간 그 집에는 방도 여러칸에 마루와 마당, 목욕실과 부엌까지 있고 옥상위에는 온실까지 있어서 정말 좋은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나곤 한다. 그 집에 살던 때에는 항상 멍멍이를 키웠고 마당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놀았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이 동네에서 살아온 시간 중에서 가장 즐거운 때라고 기억되는 때는 그때였던 것 같다.
내가 비록 인생에 불만이 많은 놈이긴 하지만
아파트로 이사오고 난 후에는 골목길이 그리워진다.
예상했었다. 이런 기분..,
아파트로 이사간 후 2주가 흘렀습니다.
조용해서 좋긴 한데 시끌벅적하지 않아 심심하고
깨끗해서 좋긴 한데 숨이 막히도록 답답하고
… 그렇네요.
아파트로 이사간 후 2주가 흘렀습니다.
조용해서 좋긴 한데 시끌벅적하지 않아 심심하고
깨끗해서 좋긴 한데 숨이 막히도록 답답하고
… 그렇네요.
기억을 더듬어 보면,
술래잡기나 다방구 따위를 할때 골목길로 숨어든 친구녀석들 중 간혹 밤 해떨어지고 놀이가 끝날때 까지도 행적이 묘연하곤 했는데…
십중팔구 집에가서 이미 저녁먹고 마징가나 짱가등을 보고 있었더라는…
중요한 게임 중이었다는 의식이 도대체 없었음.
걔중에는 딴동네로 길넘어가서 거기 친구들 하고 놀고있다가 발견되는 사례도 있었지요.
아파트촌으로 이사와서 처음 적응이 힘들었던게…아직도 부조화스럽긴 하지만…동네와 골목이라는 개념이 사라져 버렸다는 거죠.
어딘가 장소를 지칭할때의 그 어색함이라니.
아파트촌은 정말이지…이야기가 깃들기 힘든 공간이죠.
김현철의 “동네” 라는 노래가 생각이 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