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와 지자체의 진정한 만남 _ 이인범

청주의 국제공예 비엔날레 개최와 공예산업단지 조성, 광주·이천·여주의 도자박물관 건립, 국제도자엑스포·비엔날레프로젝트, 그리고 공예진흥원 설립, 국립현대미술관의공예부문 전시, 서울 시립미술관의, 그 밖에 목포 등 각 지방자치단체들에 의해 추진되는 공예관련 프로젝트들….

최근 들어 걷잡을 수 없이 넘쳐나는 이들 공예관련 공공 프로젝트와 이벤트만으로도 그동안 쓸쓸하기 그지없던 한국공예계가 갑작스레 장미빛으로 뒤덮인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애초 지방자치제가 채택될 때부터 예견되던 일이다. 지방자치가 민주화·국방·외교같은 거대 서사보다는 시민을 위한 생활정치의 회복에 중점이 주어질 수 밖에 없을진대, 이때 ‘삶의 예술’인 공예야말로 비할 바 없이 훌륭한 지방자치의 기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숨이 차고 말문이 막히는 것은 왜일까? 무엇보다도 이러한 야심에 찬 프로젝트들이 과연 근대 이래 한국의 공예분야가 처해왔던 위기 상황이나 현재의 구조적인 문제점들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으며 그것들을 해소하는데 얼마나 기여하게 될까하는 생각에 이르면 더욱 그렇다. 수요나 공급 그 어느쪽 가릴 것 없이 최근 공예를 앞에 놓고 드러내는 의욕이나 욕망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공예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진정 무엇이며 그것들이 온당한 방법과 절차를 따라 소기의 목적에 다가서고 있는지가 다소 의문스럽다.

그동안 정치·경제·사회적인 변화의 조짐은 커녕 일상생활에 대한 소박한 관심에서마저 멀리 떠났던 공예계가 아닌가. 어떻든 공예계로선 왜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 요구되고 있는지, 그 궁극적인 목적과 요구되는 역할이 무엇인지, 그 가능성과 한계는 무엇인지를 따질 여유조차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당연해 보이는 공예계의 역할수행이 초점이 빗나가고 있는 듯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각 공적 영역들의 요구들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대개는 그럴듯한 축제가 없을까 궁리하다 마지못해 착안한 경우인데다가 문화산업 지상주의의 만연속에 문화를 거들먹거리면서도 큰 부담없이 정치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시킬 수 있으리란 착각들로 가득차 있기 일쑤다.

이때 결코 간과해선 안될 일은 공예와 지방자치의 진정한 만남은 인간의 행복한 ‘생활세계’라는 일치된 관심사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을 망각하는 사례역시 여기저기 눈에 띈다. 어떻든 공예는 행복한 삶의 추구라는 명제 아래에서만 이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지방자치와 함께 설 공동의 지반을 얻는다. 따라서 그러한 자각이야말로 그러한 만남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설혹 그렇더라도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다. 잘 알다시피 우리의 삶은 식민지 전락, 동족간의 전쟁, 군부독재체제 속에서 진행된 근대화·서구화 과정에서 무너질 대로 무너져내렸다. 그 상처들이 고스란히 각인되어 얼룩진 곳이 다름아닌 공예분야이자 지방자치 분야이고 보면 여기서 다시 그 세계를 강건하게 복원해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지방자치와의 만남은 공예로서는 결코 누리게 될 단꿈이 아니다. 오히려 그 생존의 가능성을 마지막으로 가름하거나 식민화된 상태를 떨쳐버릴 비장한 결단을 요구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결국 주시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는 또다시 생활세계의 문제다. 그 회복은 전승공예와 현대공예, 미술과 공예, 산업디자인과 공예, 학교공예와 현장공예, 전시공예와 생활공예 등 심각한 분열상을 드러내는 우리 공예계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그 모든 분열을 진정한 삶의 세계를 되돌릴 때에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이미 공예라는 이름 밖의 미학적 순수주의에 빠지거나 맹목적 전통고수로 해결 가능한 문제는 결코 아니다.

삶이 그렇듯 공예 역시 애초에 순수한 것이 아니라 혼잡스런 것이다. 그것은 뜨겁거나 차갑거나 어둡거나 밝은 그 무엇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의식주의 생활세계,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할 것 없이 온갖 세계가 그렇듯이 즐겁거나 슬프거나 혹은 격렬한 그런 것이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순수한 공예형식, 우리들의 혼을 앗아가는 우리 앞에 즐비한 대형프로젝트들에 기대는 것으로 그 온기가 되돌아올 리 만무하다.

우리 공예가 어떻게 해야 ‘삶’의 풍요로운 대지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되돌아가 그 대지에서 다시 새싹을 틔울 수는 있을까? 다만 이 자리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 결합과 융합의 가능성이 허구적이고 분열적인 우리 공예의 중심을 비우고 대신 삶의 다양한 콘텐츠 웨어를 중심으로 끌어들일 때 열리리란 것이다.

지금 한국공예의 현주소는 그 분주함만큼이나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기를 자각하는 공예인들이 점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가닥의 희망이다. 모처럼의 기대에 부응하며 이들이 공예계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는 날, 지방자치 역시 시민의 삶을 배반하지 않고 미학적 완성의 길을 갈 것이다.

2000년 월간아트 특집글
이인범 / 1955년 출생. 홍익대 회화과 및 동대학원 미학과 석·박사과정 졸업. 국립 현대미술관 및 석남미술재단 학예 연구원, 동경예대 비교예술학연구소 연구원 역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 예술연구소 연구위원, 홍익대 강사.

글쓴이

최 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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