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룩디자인전 한겨레신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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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쪽은 니나 파카체가 만든 이색 벤치인 〈좀더 가까이 와〉. 떠다니듯 이동하는 깔판에 앉아 사람들과 자유롭게 만나라는 속뜻을 담았다. 아래쪽은 사물-인간의 소통방식에 대한 상념을 일깨우는 테조 레미의 〈당신의 기억을 내려놓을 수는 없을 거야〉.

드룩 디자인 회고전
“아니, 이런 것도 디자인이 될 수 있는 거야?”

1993년 4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가구 박람회는 시끌시끌했다. 관객과 평론가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두 네덜란드 디자이너의 발칙한 출품작에 경악을 금치못했다. 도심 낡은 주택 안 전시장에는 낡은 서랍묶음, 누더기 옷들로 만든 의자, 보통 알전구로 만든 샹들리에 등이 디자인의 이름을 걸고 전문가들의 시선을 희롱했다. 깔끔한 겉모습으로만 디자인을 생각하던 이들에게 제도적 권위를 부정하고 기성품을 새 시선으로 뜯어고치는 세기말 디자인의 한 흐름이 등장한 것이다. 두 주역은 레니 라마커스와 하이스 바케르는 . 현대 디자인의 역사는 이들을 기존 재료와 디자인 개념을 재사용, 재해석, 재개념화해 검소하고 명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드룩(건조하다는 뜻) 디자인의 창시자로 기록하고 있다.

93년 이후 각종 프로젝트와 전시, 교육과정 운영 등을 통해 21세기 세계 디자인의 주축으로 성장한 드룩 디자인 그룹의 역대 작업들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전시가 예술의전당 디자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9일까지 열리는 드룩 디자인 전은 창립 10돌을 맞은 이 전위 디자인 그룹의 최초 회고전. 90년대부터 근작까지 가구, 도자기, 조명, 생활기기 등의 각종 작품 100여 점을 망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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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전구 85개로 만든 로디 그라우만스의 샹들리에 디자인. 서울 예술의전당 제공

출품작들은 ‘드라이 테크’(1995~96), ‘호텔 드룩’(2002) 등 10년간의 프로젝트별로 소개되는데, 단순 기능이나 우아하고 미니멀한 외양을 내세운 기존 디자인과는 시각이 다르다. 고전이 된 테조 레미의 서랍장 묶음(91년)은 낡은 서랍장 십여 개를 단단한 가죽끈으로 묶은 형태일 뿐이다. 그러나 이 허름한 모습 속에서 관객들은 서랍 속 내용물에 얽힌 기억들을 떠올리며 미묘한 문학적 울림을 느끼게 된다. 85개 알전구로 만든 샹들리에, 우유병에 착유기 모양 램프를 넣어 조명등을 만든 발상은 변모하는, 허접한 일상기물에 대한 집요한 소통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첨단소재를 실제 생활 용기에 평이하게 결합시켜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드라이테크 프로젝트의 작품들도 눈맛이 삼삼하다. 델프트 대학 항공우주공학 실험실과 함께 한 이 프로젝트에서는 첨단 합성수지 소재로 말랑말랑한 꽃병을, 탄소성분으로 섬유를 꼬은 듯한 의자를 만들었다. 전시장 다른 부분에서는 기성품이나 재활용품, 심지어 쓰레기나 배설물 등을 새로운 각도로 해석해 새로운 디자인 미학을 창출하는 노력도 보인다. 말린 압축소똥으로 튤립꽃 포장상자를 만든 안드레아스 묄러의 디자인이나 99년 독일의 17세기 고성 오라닌바움을 복원하기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에 쓰인 주르겐 베이의 공원벤치는 그런 성공사례다. 주르겐 베이의 벤치는 폐자재, 나무 찌꺼기 등으로 만들어 시간이 흐를 수록 서서히 썩어 없어진다는 설정이 더욱 흥미롭게 와닿는다. 이와 달리 2000년의 두 크리에이티브 프로젝트는 사용자의 직접적 행동을 유발하는 혁신적인 디자인 개념으로 화제가 됐던 작품들이다. 사용자가 표면을 긁어야 제 구실 하는 조명등, 물건들을 받쳐야 똑바로 서는 삐딱의자 등은 의도적인 행위를 통해 기물의 쓰임새를 찾아주어야 하는 개념틀의 신선함이 돋보인다.

드룩 디자인은 17세기 이래 데스틸 그룹 등의 엄숙한 형식주의 운동으로 세계를 주름잡은 네덜란드 디자인 전통에 대한 반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제방 관리와 도시계획을 통해 물과 싸워온 네덜란드인의 시종일관한 합리주의 세계관에 질식감을 느낀 일부 삐딱한 디자이너들이 좀더 자유로운 조형정신을 꾀하면서 빚어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내게는 디자인이 우리 주변 세상과 대화함으로서 커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레니 라마커스의 말이 이런 그들의 지향점을 암시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획자 김상규 씨는 “기존 모더니즘 디자인의 경직성을 극복하기 위해 사물과의 새로운 소통개념을 개발하고, 사회변화와 전문성을 끊임없이 일치시키려는 노력들은 시사점이 크다”고 말했다. (02)580-1539.

한겨레신문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글쓴이

최 윤호

Independent Researcher & Writer in Design +++ Visit my PROFILE page to find out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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