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한 레니 리펜슈탈과 손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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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일생을 불꽃처럼 살다가 101세를 일기로 지난 8일 세상을 떠난 레니 리펜슈탈. 독일이 낳은 세기의 여걸인 리펜슈탈은 정열과 아름다움을 뜨겁게 사랑하다가 거짓말처럼 숨을 거두었다.

그는 말 그대로 정열의 대명사이자 아름다움의 맹신도였다. 악명의 화신으로 불린 아돌프 히틀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의 문화 전사 구실을 했던 것도, 삶을 송두리째 내던져 예술혼을 불사른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사랑한 것도 알고 보면 정열과 아름다움을 향한 줄기찬 연모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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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펜슈탈은 다섯 가지의 삶을 차례로 살았던 집념의 여인으로 회자돼왔다. 뇌쇄적 미모가 눈부셨던 젊은 날에는 영화ㆍ연극배우와 무용수로서 관객을 사로잡았고, 나치 시대에는 전설적 영화감독이자 사진작가로서 명성을 날렸다. 그리고 인생의 만년에는 탐험가이자 사진작가로서 아프리카 등 오지를 찾아다니며 삶의 본질적 정체를 미학적으로 탐색했다.

이런 그가 나라 잃어 초라한 동양의 한 젊은이에게 매료된 것은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36년에 베를린 올림픽의 공식기록영화 총감독을 맡은 리펜슈탈은 우승 후보로 거명돼온 손기정이라는 식민조선의 마라토너를 처음엔 단순히 체육인으로서 주목했다. 그리고 손기정이 힘찬 모습으로 결승선에 들어오는 모습을 목격한 뒤로는 한 인간으로서 그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손기정의 골인 모습은 세계 스포츠사에 길이 남은 명장면으로 꼽힌다. 42㎞를 거침없이 내달려온 이 청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리고 이렇다할 승리의 환호도 내지르지 않은채 결승선을 향해 표범처럼 의연하게 돌진했던 것이다. 마지막 100m를 달린 시간은 11초 가량. 보통의 선수가 단거리를 전력질주했을 때의 속도로, 손기정은 마지막 순간을 장엄하고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세계 마라톤 역사상 이처럼 감격적이고 인상적인 장면을 찾긴 힘들다. 한 점 웃음기없이 무표정하기만 한 우승자 얼굴은 일거에 리펜슈탈의 넋을 흔들어놓았고, 이후 리펜슈탈은 자신의 인생에 깊은 감명을 남긴 대표적 인물로 손기정을 꼽았다. 이런 손기정이 훗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결승선에 들어오며 손 키스 장면을 연출한 황영조에게 “그것은 최선을 다하는 선수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꾸지람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히틀러와 악수를 나눈 손기정은 우승 3일 후 리펜슈탈의 대저택으로 초청받는 영광을 안는다. 그의 저택이 얼마나 웅장했던지 손기정은 회고담에서 “덕수궁과 같이 큰 규모였다”고 들려주었다. 리펜슈탈은 손기정에게 자신의 정원을 한 바퀴 돌 것을 주문했는데, 이 때 연출해 찍은 사진은 일부에서 실제 마라톤 장면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리펜슈탈이 왜 이처럼 손기정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였을까. 리펜슈탈의 사진자료를 1천여 점 가량 갖고 있는 화가 강형구 씨는 손기정의 과묵함과 정열, 그리고 동양적 면모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당시 올림픽은 독일과 미국 두 나라의 잔치판이었는데 일장기를 달고 나온 식민청년 손기정은 행사의 국제성을 높여주는 좋은 사례였다는 것이다.

리펜슈탈은 각별한 동양인 친구인 손기정의 역주장면을 그의 대표작 `민족의 제전’에 가장 많이 삽입(전체 3시간 분량 중 10여분 할애)시켰다. `민족의 제전’은 베를린 올림픽 공식기록영화로, 이렇게 아름답고 방대한 영화는 지금껏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할 만큼 유명하다. 리펜슈탈은 1956년 독일에서 열린 국제군인마라톤대회에서 20년 만에 손기정을 재회한 데 이어 1977년에는 일본TV에 나란히 출연해 베를린 올림픽을 회고했다.

히틀러가 생전에 총애했던 세 여인은 널리 알려진 에바 브라운 외에 리펜슈탈과 할리우드의 전설적 육체파 배우 말렌 디트리히였다. 나치 정권의 문화담당 특별보좌관이었던 리펜슈탈은 히틀러의 선전에 선봉장 역할을 담당하다가 2차대전 종식 후 투옥과 석방으로 은인자중하다가 1960년대 들어 복권된 다음 오롯이 예술가의 길로 매진했다.

강형구 씨는 “리펜슈탈을 전범의 대열에서 빼낸 것은 예술이었다. 독일의 현대 문화사에서 그를 제쳐놓을 수 없을 정도로 리펜슈탈은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고 평가한다. 예술이 뒷받침하지 않았다면 그는 영락없는 전범으로 이미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강씨는 `올림피아드-레니 리펜슈탈’, `레니 리펜슈탈- 다섯 가지 인생’, `레니 리펜슈탈 사진집’ 등 그의 관련자료를 다수 확보하고 있다.

리펜슈탈이 위인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남녀라는 성별을 뛰어넘어 평생 동안 집념있게 작업하며 열심히 살았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70대와 80대의 나이에 인도양 등에서 2천여 회의 수중촬영을 할 만큼 왕성한 건강을 과시했고, 100세를 맞은 지난해에도 작품을 발표할 정도로 예술혼은 뜨거웠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은퇴라는 단어가 없다고 단언하며 삶의 언덕을 힘차게 넘어왔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다시 말해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처럼 리펜슈탈은 광기에 가까운 열정으로 1세기가 넘는 삶을 파란만장하게 산 것이다. 그렇다고 볼 때 그가 좋아한 히틀러와 고흐, 손기정은 일정한 공통분모가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heeyong@yna.co.kr
(끝)

글쓴이

최 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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