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균쇠’ 요약문_17. 동아시아와 태평양 민족의 충돌

남중국으로부터 자바나 뉴기니로의 이주, 즉 ‘오스트로네시아인의 팽창’은 지난 6000년 동안의 최대 인구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남중국인들은 어떻게 인니 전역으로 이주하여 원주민을 교체하고 폴리네시아인이 되었을까? 왜 그 반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것일까?

오스트로네시아 어족 네 개 어파의 동질성 : 자바, 인니, 필리핀 거주민들은 대체로 동질성을 지녔고 외모와 유전자는 남중국인과 유사하며, 말레이반도 등 열대 동남아시아인과는 더욱 유사하다. 언어 또한 동질성을 지녔는데 인니, 필리핀의 374개 언어는 모두 ‘서말레이폴리네시아’ 준어파로 같은 범주에 들어있다. 한편, 현대의 인니인들은 호주, 뉴기니인들과 닮은 것이 아니라 (소수만이 그러하다) 열대 동남아시아, 남중국인들과 더 닮았다. 또한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4개 어파 959언어 중 3개 어파가 타이완에 집중되어있고 나머지의 광범위한 지역의 954/959 언어는 모두 말레이폴리네시아어파이다.

이에 미루어 볼 때 말레이폴리네시아어파는 (확산 범위가 넓지만 서로 차이가 없으므로) 비교적 최근에 분화되어 급속히 넓은 지역으로 확산된 것이다. 또한 동일 어족 4개 어파 가운데 서로 상이한 3개 어파가 집중되어있는 타이완은 동일 어족(오스트로네시아)이 가장 오래 사용된 곳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오스트로네시아인의 팽창은 타이완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타이완 타펜켕 문화의 오스트로네시아로의 이동 : 간석기와 독특한 장식으로 대표되는 타펜켕 문화(bc 4000~3000 남중국해안, 타이완)는 타이완 도착 1000년 이내에 오스트로네시아 일대로 (무문, 적색 토기 등) 변형되어 전파되었다. 이러한 토기, 석기, 가축으로 이뤄진 문화는 자바, 수마트라 일대에 B.C.1600년 경 전파된 후 (양쪽에 아웃트리거를 부착한 카누의 사용) 급속히 동진하여 1000년에 이르러 모든 폴리네시아, 미크로네시아 일대로 이동이 완료되었다. (508쪽 17-2 지도)

오스트로네시아 일대의 고고학적 언어학적 증거 : 들은 타이완 이주가 남중국 해안으로부터 시작된 팽창의 첫 단계였고 그 다음으로 필리핀과 인니로 이주했음을 입증한다. (아니라면 3개어파의 타이완 집중이 설명 안됨)

그런데 오스트로네시아인의 언어와 유전자도 뉴기니(고지대)에는 침투하지 못했다. 뉴기니에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 도착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없지 않다 (라피타 토기). 하지만 그들은 능력이 있었음에도 큰 섬들을 가까이 두고 작은 섬에 머물렀고, 내륙과 남해안으로 침투하지 않았다. 뉴기니 북해안 일대에 침투한 일조차 유전적인 이동이라기보다는 언어적인 것이었다.

뉴기니인들의 독립적 문물 수용 : 오스트로네시아인이 도착할 당시의 뉴기니는 인니와는 달리 고지대에서 수천년간에 걸쳐 식량생산이 진행되었고 인구밀도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었다. 따라서 오스트로네시아인은 이런 뉴기니인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점이 별로 없었다.

동아시아 및 태평양 일대는 환경이 역사를 형성하는 수많은 사례를 발견할 수 있어 배울 것이 많은 지역이다. 지리적 환경에 따라 가축화, 작물화, 더 나아가 인적 교류의 여건이 모두 달랐고, 이런 상황 하에서 우월한 조건을 지닌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교체했다. 또한 어느 특정 부류의 이주민들이 여러 다양한 환경에 처했을 때 그 후손들은 각각 다른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전했다.

글쓴이

Yoonho Choi

independent researcher in design, media, and locality & working as a technology evangelist in both design and media indu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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