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와 천재성

태어날 때 나디어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나 이 여자 아이가 2살이 될 때쯤 부모는 이 아이에게 뭔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디어는 눈 마주치기를 피했고 엄마가 말을 걸거나 웃어 주어도 반응이 없었다. 심지어 엄마를 알아보지 못하기도 했다. 아이가 6개월이었을 때 하루종일 자신의 의사를 전혀 표시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 굼떴으며 하루종일 종이를 찢는 놀이를 반복했다.

그러나 3살 반이 됐을 때 나디어는 펜을 집어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되는대로 끄적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어떤 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아이는 미술교육을 받은 성인들이 그릴 수 있는 수준으로 말이 질주하는 모습을 스케치해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윤곽을 먼저 그리면서 말을 그려나가는 것과는 달리 아이는 말의 어떤 부분이건 생각나는대로 자세히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발굽을, 다음에는 갈기 부분을, 그리고 마구를 그렸다. 이렇게 부분 부분을 자세히 묘사한 후 최종적으로 이 부분들을 연결해 말의 모습을 완성해 냈다. 나디어는 ‘자폐성 천재’이었던 것이다. 통상 6살 이전에 갑자기 나타나기는 하나 매우 드문 현상이다. 불가사의한 재능을 갖고있지만 사회성 결핍등을 포함한 정신적 미숙을 동반하는 게 특징이다.

(A)
autism3.jpg

(A)천재적 재능을 가진 3세
자폐아가 그린 그림.
나디어가 그린 말 그림으로 세부묘사가 정확하게 돼 있다.

(B)
autism2.jpg

(B) 4세 정상아가 그린 그림.
정상아는 윤곽을 먼저 그리고 머리, 눈, 다리 등 세부를 완성한다. 스나이더박사에 따르면 정상아들은 먼저 말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후 형태를 재창조한다.

이 같은 자폐성 천재의 능력은 놀라울 정도이기도 해 뉴스의 대상이 되곤 한다. 자폐증 환자중 엄청난 천재성을 보인 사람은 조셉이라고 불리는 남자로, 1988년 만들어진 ‘레인맨’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배우 더스틴 호프먼이 조셉으로 열연했다. 조셉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즉석에서 대답할 수 있었다. “숫자 1,234,567,890을 만들려면 어떤 수와 어떤 수를 곱해야 하지?” 그는 바로 “9 곱하기 137,174,210″이라고 대답했다. 또 트레버라는 6살난 아이는 어느날 형이 피아노 치는 것을 한번 듣고 바로 피아노 앞에 앉아 형보다 더 훌륭하게 연주를 해냈다. 에릭이라는 아이는 수십 가지의 소리를 내는 수십개의 스피커로 가득찬 방안에서 어떤 스피커에서 어떤 음색의 소리가 나는지를 정확하게 구별해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러한 비상한 재능에 대해 ‘강박적인 학습’이라는 간단한 설명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호주 국립대학의 정신연구센터 소장인 앨런 스나이더 박사는 이런 비상한 재능에 대해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모든 사람에게는 내부에 이러한 천재성을 지니고 있다”며 “그러나 대부분의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무의식 속에 잠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천재란 두뇌의 뛰어난 처리능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예컨대 눈으로 보기 같은 간단해 보이는 것조차도 상당히 복잡한 정보처리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인간이 어떤 물체를 볼 때 뇌는 즉각 양쪽 망막에 맺힌 두개의 상 사이에 미묘한 차이점을 분석해 물체까지의 거리를 계산해낸다. 실제로 컴퓨터로 이 과정을 일으키려면 막대한 속도의 메모리와 빠른 연산처리장치가 필요하다. 사람의 얼굴 인식과정을 봐도 이 과정을 통해 뇌는 피부의 재질감, 눈, 턱뼈, 입술 모양 등의 수많은 상세정보를 분석해 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인식하지 못한다. 스나이더 박사에 따르면 그러나 자폐성 천재들은 뇌의 작용과정 중 제일 윗부분(개념적 사고, 결론처리능력)이 어떤 과정을 통해 없어진 사람들이다. 이 윗부분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정확한 세부사항을 기억해 내고 빛의 속도와 같은 빠르기로 계산을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발산되는 것이다. 스나이더박사는 이 이론을 근거로 다소 과격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는 언젠가는 자폐증세가 없는 사람이라도 이러한 놀라운 능력을 발산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나올 것으로 믿고 있다.

자폐증의 원인은 초기 뇌의 발달과정에서 생긴다고 믿어지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 3년 동안 인간의 뇌는 엄청난 속도로 발달한다. 자폐아들에게는 신경 단위 세포들이 무작위로 연결돼 있어 광범위한 이상증세가 나타나게 된다. 특히 사고와 운동을 연결해주는 소뇌와 경험을 특정한 감정과 연결시켜주는 대뇌 변연계(邊緣系)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뇌의 이런 부분에서의 이상은 환경적,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한 관심을 막는 것으로 보인다. 자폐아들은 관심의 영역이 좁고 타인의 얼굴을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얼굴을 볼 때 전체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얼굴 중 일부분만을 본다. 이미지 연구에 따르면 자폐아들이 눈에 익은 얼굴을 볼 때 이들의 뇌활성화 패턴은 정상아들과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좁은 관심영역으로 인해 단순하고 반복적인 활동에 끊임없이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이를테면 의자에 앉아서 몸 흔들기, 세탁기 안의 빨래 돌아가는 것 지켜보기 등이다. 자폐아 10명중 1명이 이러한 특별한 재능을 보인다.

autism1.jpg

▲ 천재적 재능을 가진 아이가 그린 그림.
현재 27세가 된 자폐아가 10살 때 그린 영국 런던의 자연사 박물관 전경. 이 아이는 현재 기성작가로 성장했다.

지난 1999년 발표된 논문에서 스나이더 박사팀은 자폐아들의 천재적 행동에 대한 강박적 행동 원인론을 주장했다. 뒤집어 말하면 이들과 똑같은 능력이 보통사람에게도 생물학적으로 내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샌디에고대학 뇌인지연구소 소장인 빌라야누르 래머챈드런 박사는 “세상의 모든 사람은 회의적이다”라며 “스나이더박사는 자폐아의 천재적 능력이 인간의 습성과 창의성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평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스나이더박사의 연구실에는 나디어의 말그림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스나이더박사의 자폐증에 대한 관심은 그의 빛과 시각 연구에서 비롯한 것이다. 물리학 전공자로서 그는 섬유광학을 수년간 연구했으며 빛이 어떤 과정을 통해 길을 찾아가는 지를 연구했다. 한때 그는 곤충에 눈의 입장에서 자연섬유광학을 연구하기도 했다. 광학연구에서 자폐증 연구로 넘어가게 된 이유는 빛이 인간의 망막에 도달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눈으로 들어오는 광신호가 어떤 과정을 통해 변환돼 뇌에서 이미지로 변환되는가? 스나이더박사는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이뤄내는 뇌의 연산능력에 매료된 것이다.

1987년 캠브리지에서 안식년을 가질 때 그는 래머챈드런박사의 지각과 광학적 착시현상에 대한 연구를 섭렵했다. 이 연구를 통해 뇌가 어떻게 물체의 3차원 형태를 도출해내는지를 알았다. 빛은 물체에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뇌는 이 그림자를 분석해 물체의 형체를 알아낸다. 스나이더박사는 “보통 이런 과정에 대해 다들 모르고 있다”며 “공을 볼 때 왜 공이 원으로 안보이고 구로 보이는지에 대해 모르고 있다. 이는 뇌가 공의 주변에 생기는 미세한 그림자를 분석해 형태를 추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의 뇌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능력을 내재하고 있지만 예술가들만이 이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그림자를 이용해 볼륨감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스나이더박사는 여기서 10년 동안이나 풀지 못했던 문제에 부딪힌다. 어떻게 뇌의 개념적 사고를 지나쳐 기본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해석되지 않은 상태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까. 시각처리시스템에 심어진 가정을 벗어버린 방법은 무엇일까 .

그후 몇년 뒤 그는 올리버 색스의 책을 통해 나디어의 이야기를 읽게 됐다. 아마도 나디어처럼 지각에 의한 입력정보를 정리할 능력이 없는 누군가가 근본적인 인식작용의 특성을 밝혀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스나이더의 이론은 예술적 능력을 토대로 출발했지만 그는 음악, 수학, 공간지각력 등 모든 천재적 재능이 사물을 시간, 공간, 형태의 세가지 면으로 똑같이 분석하는데서 기인한다고 믿게 됐다. 시간을 분할하는 천재적 재능을 가진 자폐아는 시간의 연결고리사이를 정확하게 나눌 수 있으며 , 이렇게 해서 에릭과 같은 자폐아가 수백만분의 1초 차이가 나는 음향을 구별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나디어는 공간을 분할하는 능력으로 말그림에서 말굽과 마구가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배열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숫자를 분할해 사고하는 능력 때문에 수학에 천재성을 보이는 자폐아들은 10자리가 넘는 수를 쉽게 곱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강박적인 습관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재능을 더 강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스나이더 박사는 습관만으로는 이러한 현상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 증거로 천재적 재능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는 현상을 들고 있다. 올랜도 세렐이라는 소년은 10살 때 야구공에 머리를 맞고 나서 몇달 후 차의 번호판, 장문의 시, 일기예보 등을 줄줄 외우는 능력을 보이게 됐다.

여기서 스나이더박사는 천재적 재능이 한순간에 나타날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뇌속에 이러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의문을 던진다. 래머챈드런박사는 “스나이더박사의 이론은 매우 진보적(뉴에이지적)으로 들린다. 이때문에 사람들이 이론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그러나 나는 실제로 이런 능력이 한순간에 나타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동료들보다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샌프랜시스코 대학의 신경학자인 브루스 밀러박사는 이와 비슷한 경우를 치매를 앓고 있는 50~60대 노인들에게서 보았다. 이들 환자중 일부는 어느날 갑자기 음악과 미술에 관심과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뇌 스캐닝검사 결과 이들 환자들이 왼쪽 뇌의 혈압이 낮고 신진대사도 비정상적으로 늦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언어능력은 뇌의 왼쪽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이들 치매 환자들은 점차적으로 말하고 읽고 쓰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며 또한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도 잃게 된다. 반면 시각적, 공간적 처리능력을 관장하는 우뇌쪽은 상대적으로 더 잘 보존된 상태로 남는다.

스나이더박사의 이론에 동조하는 밀러박사는 “치매환자들은 사물의 언어학적 의미를 상실한다”며 “측두엽에 이상이 생긴 사람들은 고차원의 처리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특히 측두엽 이상으로 인한 치매는 사물의 이름을 기억하는 뇌의 뒷편에 손상을 일으킨다. 이들 환자들은 사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사물을 매우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다. 밀러박사는 천재적 자폐아와 이들 치매환자들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것이다. 양쪽 모두 왼쪽 뇌의 혈압이 낮고 신경이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는 설명이다 .

천재적 재능을 지닌 자폐증 환자들은 과거의 어느 한 날짜를 대면 정확하게 요일을 맞추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샌디에고 대학의 티모시 리처드박사는 몇년전 정신연령이 5세 정도 되는 40세의 중년남자가 70% 정도를 정확하게 요일을 맞춘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달력을 보고 연구할 기회도 없었다. 수학에는 재능이 전혀 없기 때문에 공식을 이용해 요일을 맞춘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날들 중의 하나를 지적하면 그때를 기억해 요일을 맞추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남자는 “오늘이 수요일이면 오늘부터 이틀후는 무슨 요일이지?” 같은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자폐아들과 정상아들의 다른 점은 또 있다. 정상적인 아이들은 물이 산 위로 흘러가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림은 그대로 따라 그리기 힘들어 한다. 자폐아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부분이 스나이더의 설명과 부합한다. 자폐아들은 그들이 본 그림을 해석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원본을 그대로 따라 그린다.

스나이더 박사는 최근 더 획기적인 실험을 진행 중에 있다. 그는 “우리는 개념적 능력을 강화하기를 원한다”며 “또 한편으로는 이 능력을 제거하고 객관성을 강화하기를 원하다”고 말했다. 그는 훈련과 기계장치를 결합해 건축사들이 새로운 개념으로 기존의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자신의 뇌파를 관찰하도록 하는 것이다. 스나이더박사는 개념적 사고를 일으키는 뇌의 일정부분을 닫은뒤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방법을 개발할 수도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언젠가 창의성을 요구하는 작업을 할 때 뇌에 슬어 있는 녹을 벗겨내 뇌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도 가능할것으로 본다”고 주장하고 있다.

디스커버-뉴시스

글쓴이

Yoonho Choi

independent researcher in design, media, and locality & working as a technology evangelist in both design and media industries

“자폐와 천재성”에 대한 3개의 생각

  1. Orlando Serrell에 대한 자료가 많이 없더라구요ㅠㅠ
    근데 이렇게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2. 정말로 필요한 자료 요긴하게 보았습니다.
    감사를 드리고요, 항상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