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가 172살

우표, 우체국, 크리스마스 카드, 박람회, 박물관, 영국식 디자인 교육제도 …… 이 모든 것의 시작에 헨리 콜(Henry Cole)이란 만물상같은 작자가 있다. Sir Henry Cole로 부르기도 하는데 영국에선 그만큼 먹어주는 인물이란 얘기.

19세기의 영국은 산업자본주의가 정점에 달하던 시기. 그는 상업과 교육 분야에 ‘국가’ 발전의 해법이 있다고 믿었고 일개 관료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일들을 집적거렸다. 로우랜드 힐(Rowland Hill)이란 인물의 조수로 일하면서 최초의 우표와 우체국 시스템인 페니 포스트(Penny Post)를 고안했고, 연말 편지를 직접 쓰기가 귀찮아서 최초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고안해내기도 했다. (사진 참조, 1843년)

그의 역작은 말 할 필요도 없이 1851년 수정궁(Cristal Palace)에서 열린 대박람회(Great Exhibition)인데 국제 규모로 열린 최초의 박람회, 즉 최초의 엑스포같은 것이었다. 그는 이 때 전시된 물건들을 정리해서 최초의 – 공공 교육 – 박물관인 사우스 켄싱턴 뮤지엄을 만들었고(현재의 V&A), 디자인 학교를 박물관과 함께 운영하는 영국식 디자인 교육 시스템(현재의 RCA+V&A)을 정착시켰다.

어쩌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냈다는 그는 이렇게 생겼다.

 

헨리 콜(Henry Cole, 15 July 1808 – 18 April 1882)
헨리 콜(Henry Cole, 15 July 1808 – 18 April 1882)

 

나오미 클라인의 노-로고가 아니라 셀프리지의 노-노이즈

셀프리지 노-노이즈 프로젝트, 셀프리지 웹사이트 이미지.

2012년 세계 백화점 협의회(Global Department Store Summit in Paris)에서 최고의 백화점으로 선정되었다는 영국 셀프리지(Selfridges)가 시작한 신년 프로젝트 노-노이즈(NO-NOISE, http://nonoise.selfridges.com). 나오미 클라인의 저서 <NO LOGO>를 오히려 꽤 ‘심오하게’ 응용한 이 프로젝트의 첫 마디는 이렇다.

쏟아지는 정보와 자극으로부터 무방비상태가 된 우리들, 세상은 더 시끄러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판매를 뛰어넘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여러분을 초대해 ‘조용한 힘’의 탄생을 축하하려고 합니다. 북적임 속에서 차분함을 발견하시고 기능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말 그대로 ‘조용한 가게The Quiet Shop’에는 “세계 최고의 인지도를 자랑하는 브랜드”만 골라 로고를 지운 특별 콜렉션이 준비되어있다. 하인즈에서는 노-노이즈 케첩과 베이크드빈을 각각 2.99 파운드와 1.99 파운드에 내놓았고 리바이스에서도 노-노이즈 501 청바지를 115파운드에 준비했다.

무인양품을 떠올리다가 이 프로젝트를 살펴보니, 이제 이런 종류의 마케팅도 여간 세련되지 않으면 통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패셔너블한 클래식 디자인 콜렉션이 그림의 떡이었다면, 그리고 런던에 있다면 바로 구입하시라. 가격도 무척 착하다.

덧. 셀프리지 백화점의 창립자인 헨리 고든 셀프리지(Harry Gordon Selfridge, 1864~1947, 위키피디아 링크)의 이야기를 다룬 텔레비젼 드라마가 영국 민영 ITV에서 2013년 1월 방영된다. 아래는 트레일러.

No Logo: 브랜드 폭격

No Logo
No Logo *photo:Flickr _ KayVee.INC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원제 <No Logo>, 나오미 클라인 지음, 2000년 초판 발행)>의 6장을 요약한 메모.

다국적 기업들은 다양성에 대해 말하지만 실상 눈에 보이는 것은 마케터들의 말대로 유니폼을 입고 아무 생각 없이 쇼핑몰로 행진하는 10대 무리뿐이다. 다인종 이미지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시장 주도형 세계화는 다양성을 원하지 않는다. 만화경처럼 쏟아지는 ‘다양성이 통합된 거리’ 이미지부터 “어디로 가고 싶어요?”라고 묻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꼬임까지, 우리는 매일 광고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경제면에 나오는 세계는 검정색 하나뿐이고, 사방의 문은 모두 쾅 닫혀 있다. 새로운 회사 매입 소식도 있고, 갑작스런 부도 소식에 대규모 합병 이야기도 들린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선택지가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어디로 가고 싶어요?”라는 질문의 본 뜻은 “내가 원하는 곳에 당신이 가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이다. No Logo: 브랜드 폭격 더보기

오빗은 런던의 에펠탑이 될 것인가?

아니쉬 카푸의 오빗Orbit 타워 공개 석상에서 디자인은 로즈의 조각상Colossus of Rhodes과 바벨탑에 비견되었다. 하지만 이런 어리석음의 역사란 그리 상서로운 것이 아니다. 과거를 더듬어 보면 로즈의 조각상은 겨우 몇 십년 간 서 있다가 지진으로 파괴되었고, 바벨탑은 창세기가 들려주듯 그걸 쌓아 올린 자들을 미화하기 위해 지어졌었다.

계획 중인 아르셀로미탈 오빗ArcelorMittal Orbit이 과연 어느 정도로 보리스 존슨, 카푸, 락슈미 미탈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될지 나 자신도 가늠하기 어렵다. 또한 올림픽의 기업 홍보적 기능이 조형물의 세부 요소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듯이 오빗은 그다지 예술 작품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차치하고서라도, 가장 거지같은 비교는 아르셀로미탈 오빗을 에펠탑과 함께 놓는 일이다. (역주 : 아르셀로미탈 철강회사는 오빗의 건축비를 후원하며, 그에 따라 이 조형물의 이름은 아르셀로미탈 오빗이다. 락슈미 미탈은 이 회사의 총수)

구스타프 에펠이 디자인한 파리의 상징적인 타워는 애초에 공공 미술 작품으로 디자인된 것이 아니다. 게다가 20년 이상 파리에 남아있을 계획도 없었다. 그건 단지 1889년의 파리 세계 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의 입구였고, 해체하기 쉽도록 디자인되었다. 에펠탑은 파리 예술계의 반대에 부딛혔지만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예술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그 실용성 때문에 사라지는 일을 면했다. 에펠탑은 20세기 초, 초기 라디오 전파의 실험에 이용되었고, 1910년에는 우주광선cosmic rays의 감지에 동원되었다. 오늘날까지 그 꼭대기는 안테나로 가득하고, 바닥은 관광객들로 인해 분주하다.

카푸가 디자인한 구조물을 에펠과 비교하면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파리의 에펠탑을 보기에 그럴 듯 하게 만드는 건, 그 형태가 바람의 힘을 감안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에 기반한 형태가 아니라. 에펠은 이렇게 말했었다.

이 타워를 디자인하면서 주로 고려한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람에 대한 저항성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저는 구조물의 다리 넷의 바깥쪽으로 만곡선을 적용했습니다. 수학적 계산 결과에 따른 이 방식은 대단히 강한 느낌과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강력함이 관찰자의 시선 앞에 드러나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자연의 힘을 따르는 방식에 의해서 에펠탑의 거대한 철골 구조는 우아함을 차츰 보여주기 시작했고, 거의 자연 환경의 일부가 되었다.

이에 비해 카푸의 구조물은 자연을 압도하는 인간의 지배력을 과시하려는 좋은 사례일 뿐이다. 그 구불구불한 모양은 마치 롤러코스터가 녹아내린 듯 한데, 어느 트위터 유저는 “그건 엉겨 붙은 창자같다.”고 말한다. 이런 끔찍함은 (또한 끔찍한) 데미안 허스트가 아니라 카푸가 디자인 계약을 따냈다는 사실을 내 마음에 곧 바로 상기시킨다.

그러나 카푸와 에펠의 비교에 있어서 최악의 부분은 런던이 쇠붙이로 만든 타워 따위에서 파리라는 경쟁자를 필요로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관념이다. 런던은 이미 2012 올림픽의 유치 경쟁에서 승리하고서도 프랑스의 상처에 소금을 바르는 짓을 하고 있다. 누군가 카푸의 오빗이 파리의 에펠탑보다 100미터가 낮을 것이고, 꼬맹이인 블랙풀 타워Blackpool Tower에 비해서도 20미터가 짧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복제된 런던판 에펠탑의 부족한 독창성은 패러디에 가까운 일이 될 뿐이다.

오빗이 런던의 스카이라인을 점유할 자격이 있는지를 결정할 진정한 요인은 그것을 받아들일 런던 사람들의 의사일수밖에 없다. 오늘날 에펠탑을 혐오하는 파리지앵들을 찾기는 어렵다. 보리스 존슨 시장은 카푸의 오빗 타워에 20년 간의 시기 제한을 두어야 한다. 그 후 공공의 의사를 묻고 그 결정에 따르도록 해야만 한다. 그리고 만일 2032년에 오빗이 스트랏포드Stratford의 거주민들에게 외면받는다면, 곧 바로 철거되어야만 한다. 오빗은 철골로 만들어질 것이므로 안전하게 재활용될 수 있다.

이런 기본 절차는 적어도 한 번 런던의 다른 상징물에 적용된 적이 있다. 거대한 관람차인 런던 아이London Eye는 공학적 솜씨와 우아한 형태가 결합된 것으로서 애초에 임시 관광시설이었다. 런던 아이는 그 후 시험 기간을 거쳐왔고, 이제 당분간 테임즈 강변에 머물게 될 것이다. 이로써 런던은 이미 에펠에 대적할 수 있는 경쟁 상대를 가진 셈이다. 파노라마처럼 런던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이미 런던 아이에서 가능한 일이다.

건축 비평가인 톰 다이크호프Tom Dyckhoff는 카푸의 오빗을 일컬어 “거대한 쓰레기 씨Mr Messy”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차분히들 생각하시라. 그래야 카푸의 오빗이 거대한 혈전(막혀버린 피 덩어리)처럼 당신의 혈압을 높이게 되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당신이 오빗을 좋아하건 혐오하건 간에, “오빗이 구스타브 에펠을 압도할 거”라고 말한 존슨 시장에게 최후의 발언을 해야만 한다. 거기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via Will the Orbit become London’s Eiffel? | John Graham-Cumming | Comment is free | guardian.co.uk.

세계 최대의 도시들, ‘거대 광역 도시’를 형성 _ 국제연합UN 리포트

홍콩, 선전, 광저우가 연결되어 형성된 세계 최초의 메가시티mega-city 모습, 총 인구는 1억 2천만이다. * 사진: NASA

글 : 영국 <가디언>지 2010.3.22일자 기사  _ 환경 전문 에디터 존 바이달John Vidal

전 세계의 대형 도시들이 거대한 ‘거대 광역mega-regions’을 형성하기 위해 통합되고 있으며, 그 결과로 도시는 국경을 가로질러 수 백 킬로미터나 확장되는 동시에 1억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게 될 것이라고 국제연합UN의 리포트가 전했다. 세계 최대의 도시들, ‘거대 광역 도시’를 형성 _ 국제연합UN 리포트 더보기

도시의 시대 : 도시가 엄청난 디자인의 도전이 된 까닭

급속한 확장 … 국경선도 라고스의 확장을 막을 순 없다. * 사진 : 데이비드 레빈David Levene

전례없는 도시화 경향의 와중에서, 디자이너는 도시가 쾌적한 환경의 수용 뿐만 아니라 그것을 거주민에게 제공해야 할 이들임을 증명해야만 한다.

국제연합UN, 도시화는 멈추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지난 주의 가디언지 헤드라인으로 등장했다. 당신은 이 헤드라인에서 어떤 걱정의 분위기를 감지해낼 수 있는가? 이건 거의 “지구 온난화는 멈추지 않는다.”라거나 “평화로운 주말과의 작별”이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 쓰여야 더 나을 것 같다. “도시화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거대한 디자인 과제다.”

기사는 국제연합-하비타트(UN-Habitat : 국제연합의 거주 문제 해결 프로그램)가 최근 세계 도시들의 상황을 정리해 발표한 자료에 관한 것으로, 몇몇 도시들이 “거대 지역mega-reigion”을 형성하기 위해  마치 수은 방울처럼 모여 통합될 것이라고 예측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개중엔 서부 아프리카의 라고스Lagos, 이바단Ibadan, 롬Lome, 아세라Accera 등 도시들이 통합을 선전포고하고 있는 내용도 있었다. 다 괜찮다. 하지만 이 통합과정이 나이지리아, 베닌, 토고, 가나 등의 국경선을 가로지르며 제멋대로 퍼져나갈 것이라는 점은 문제다.

역사상 처음으로 교외보다 도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게다가 2050년 까지는 인류의 75% 이상이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도시의 휘황찬란한 전등 불빛을 향해 이동하지만 그곳엔 끔찍한 부분이 존재한다. 이런 확장 경향이 있는 도시들 대부분은 이미 수백만이 거주하는 빈민지역을 갖고 있는 것이다. 뭄바이Mumbai, 델리Delhi, 카라치Karachi, 상해Shanghai, 사웅파울루Sao Paulo, 킨샤샤Kinshasa 등 세계적으로 급속히 성장하는 도시들, 이런 도시들 대부분은 2025년 까지 2000만 이상의 인구를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 시간에도 라고스라는 도시는 시간 당 67명 분의 주거지를 확보해야만 한다. 만일 이들 이주민을 위한 디자인을 지금 시작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비극은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예컨대 런던, 파리, 로마 등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도시들은 긴 역사에 걸쳐 서서히 성장해왔다. 마치 다른 종류의 제품인양,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은 새로운 도시 공간을 ‘제조’하고 있는 지점이다. 1960년대,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공간은 새로운 상품”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런 상황을 예견했었다. 그는 단지 추측만 하는 주식이나 지분이 아닌 도시의 파편들에 주목했다. 요약하자면, 그의 이론은 150여년 간의 산업화 과정이 도시화로 대체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산업화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의 이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또한 도시의 시대로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도시공간의 상품화는 르페브르가 살던 시기로부터 급속하게 진행되어왔다.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그 어떤 죄책감으로부터도 벗어나게 했던 규제의 철폐는 마찬가지로 도시의 얼굴 또한 변하게 만들고 있다. 자유무역이라는 허울은 수많은 도시의 공적인 공간들을 그저 체인형 상점에서 쇼핑을 하거나 코스타 커피에서 음료를 마시는 장소가 되도록 강요하고, 때로는 사설 경비원들의 감시 아래에서 그 짓을 하도록 만든다. 공공 서비스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적 공간의 사유화는 정부가 민주적인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틈새를 열어주는 하나의 술수일 뿐이다.

르페브르도 도시가 이 정도로 상품이 되는 상황을 예측하지는 못했다. 요즘엔 어떤 고객이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달라고 유명한 건축가에게 고작 전화 한 통을 걸어 주문을 할 수가 있다.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아부다비Abu Dhabi의 친환경 도시 마스다Masdar나,  런던의 아럽Arup사가 디자인한 인기있는 친환경 도시 동탄, 그리고 천진이 그러하다. 향후 20년 간 3억의 도시 거주민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에서, ‘그냥 지으면 사람이 온다’는 따위의 방식 이외에는 답이 없다.

물론 도시의 생산은 역사를 갖고 있다. 지난 세기의 전환기에 있었던 에베네처 하워드Ebenezer Howard의 공원도시 운동Garden Cities movement의 결과로 레치워스Letchworth라는 도시가 만들어졌고, 미국에서는 뉴 어버니즘New Urbanism이 트루먼 쇼The Truman Show의 배경이 되었던 플로리다 주의 시사이드Seaside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사례들은 도시를 혐오하던 사람들이 디자인한 회피론자들의 판타지에 불과했다. 더 들어맞는 사례들로는 정치적인 염원을 영웅적으로 그려낸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Astana, 그리고 이 모두를 짬뽕한 두바이가 있다. 경제 침체 이후로 두바이가 폐기된 건 한 줄기 빛이었지만, 제품이나 브랜드로서의 도시를 확연히 보여주는 사례로는 두바이만한 곳도 사실 없었다.

브랜드 컨설턴시는 근대 도시의 숨은 실력자이다. 그들은 시장의 역할을 자임하기도 하는데,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앨범 표지를 디자인한 광신적 디자이너 피터 사빌Peter Saville에게 그런 임무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는 몇 년 전 맨체스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캐나다의 디자인 구루 브루스 마우도 그러하다. 그는 “메카(성지)의 미래 비전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등장했고, 이제 그것은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라는 명제가 되었다. 고수익을 보장하는 행사들인 올림픽, 유럽 문화 수도, 세계 디자인 수도 등이 선정되는 전지구적인 경쟁체제 속에서, 그의 명제는 도시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세계의 부를 만들어내는 엔진과도 같은 도시, 그것은 본 바탕인 국가들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묻고자 하는 것은 이거다. 우리는 빽빽이 사람들이 들어찬 컨테이너와 같은 곳이 아니라 쾌적하고 공평한 삶의 공간으로 도시를 창조할 것인가? 도시로의 값싼 이동 수단을 제공하는 이지젯과 같은 것 때문에 수많은 수도들 간이 바로 연결되는 도시문화 특유의 상황을 누군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신이 꿈 꾸고 있는 이상향이 이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도시에서의 차별과 사회적 양극화는 점점 더 극단화로 치닫고 있고,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이 될 것이 분명하다. 국제연합UN의 자료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제 도시 구축은 우선적인 과제가 되었다. 정치인들은 디자이너들에게 믿음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마지막 사반세기로부터 우리가 배운 점은 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평등이라는 가치를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via The Guardian | The urban age: how cities became our greatest design challenge yet | Justin McGui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