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Logo: 브랜드 폭격

No Logo
No Logo *photo:Flickr _ KayVee.INC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원제 <No Logo>, 나오미 클라인 지음, 2000년 초판 발행)>의 6장을 요약한 메모.

다국적 기업들은 다양성에 대해 말하지만 실상 눈에 보이는 것은 마케터들의 말대로 유니폼을 입고 아무 생각 없이 쇼핑몰로 행진하는 10대 무리뿐이다. 다인종 이미지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시장 주도형 세계화는 다양성을 원하지 않는다. 만화경처럼 쏟아지는 ‘다양성이 통합된 거리’ 이미지부터 “어디로 가고 싶어요?”라고 묻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꼬임까지, 우리는 매일 광고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경제면에 나오는 세계는 검정색 하나뿐이고, 사방의 문은 모두 쾅 닫혀 있다. 새로운 회사 매입 소식도 있고, 갑작스런 부도 소식에 대규모 합병 이야기도 들린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선택지가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어디로 가고 싶어요?”라는 질문의 본 뜻은 “내가 원하는 곳에 당신이 가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이다.

더 많은 기업이 우리가 솜씨를 뽐내고 소비하고 집을 짓는 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브랜드가 되려고 애쓰면서, 공공장소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브랜드가 점령한 건물 안에서 대안을 모색하고 공개 토론과 비판을 가하는 일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제 1부에서 살펴본 기업의 공간 침략은 전 세계에 밀실 공포증을 퍼뜨렸다. 얼마 전에 자유와 다양성으로 가득 찬 새 시대를 약속했던 바로 그 기업들이 다국적 브랜드 쪽으로 천천히 우리의 시선을 유인하고 선택의 폭을 제한하고 있다.

복제 인간 만들기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널리 퍼진 이케아, 블록버스터, 갭, 킨코스, 더바디샵, 스타벅스 같은 체인점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인기를 끈 패스트푸드 가게와 길거리 상점, 무허가 음식점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이들 체인점은 화려하고 유치한 노란색으로 외관을 꾸미고 금빛 아치로 장식을 하지 않는다. 대신 레고 조각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산뜻하고 고상한 파란색과 진한 황갈색 건물을 짓는다. 킨코스와 스타벅스, 블록 버스터 점원들은 갭 매장에서 카키색이나 흰색 또는 파란색 유니폼을 산다. 그리고 “갭 매장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활기차게 인사를 건네는 갭 점원들은 스타벅스 에스프레소 커피로 하루를 시작한다.

기업이 문화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다들 너무 잘 아는데, 프랜차이즈와 체인점 확산 현황을 볼 수 있는 통계자료는 너무 드물다. 소매점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 각 프랜차이즈를 독립 사업으로만 다루기 때문이다. 원칙상 프랜차이즈는 가맹 사업자가 주인이다. 하지만 매장 표지판부터 정확한 커피 온도까지, 모든 세부 사항은 수백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본사에서 통제한다.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지난 10년간 소매업의 양상이 엄청나게 변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일례로 스타벅스의 경우 1986년에는 시애틀의 지역 소매점이었으나 92년에는 미국과 캐나다에 165개의 매장을 냈고 93년에는 257개로 늘렸다. 뒤이어 96년에는 1,000개, 99년에는 전 세계 12개국에 1,900개의 매장을 열었다.

블록버스터, 갭, 바디샵, 월마트 모두 비슷했다. 이러한 급성장은  당시 업계를 지배하던 세 가지 경향 덕분이다. 첫째는 경쟁사보다 가격을 대폭 낮추는 가격 전쟁, 둘째는 체인망을 이용한 경쟁사 공격, 셋째는 매장 자체를 아주 고급스럽게 꾸며 브랜드를 부각시키는 방식이다. 이러한 경향은 모두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대형 체인점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월마트가 1998년에 매출액 1,470억 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소매점이 된 비결은 아주 단순하다. 우선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경쟁사보다 두 세 배 넓은 매장을 연다. 그런 다음 제조업체로부터 제품을 비교적 낮은 가격에 대량으로 구매한다. 이를 통해 판매 가격을 대폭 낮춰 작은 소매점들이 감히 ‘매일 매일 싸게 판다.’라는 월마트의 저가 정책과 경쟁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월마트의 이런 정책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평균 매장 규모는 주차장을 제외하고도 8,547 평방미터가 넘는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월마트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할인 정책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반드시 총 경비를 줄여야만 했다. 월마트가 대부분 땅값이 싸고 세금이 낮은 도시 외곽에 창고형 매장을 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낮은 가격을 유지하는 또 다른 비결은 매장을 자사 유통센터 근처에만 여는 것이다. 160킬로미터 반경 안에 40개 매장을 열기 전에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지도 않는다. 이런 방식은 운송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고, 한 지역을 집중 개발하기 때문에 따로 광고를 할 필요도 없다.

대개 월마트의 싼 가격 때문에 쇼핑객들이 교외로 빠져나가 지역 공동체가 무너지고 소규모 사업체들이 도산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실제로 소규모 매장들은 처음부터 월마트와 경쟁이 안 되었다. 월마트의 소매 가격은 소규모 업체들이 도매로 들여오는 값보다 싸다. 이외에도 오늘날 규모의 경제를 활용하는 소매점은많다. 홈 데포와 오피스데포, 베드 배스 앤드 비욘드 역시 ‘파워 센터’라고 불리는 대형 쇼핑몰을 운영한다. 소매업계에서 ‘카테고리 킬러’로 유명한 이들 업체는 강력한 구매력을 무기로 단일 품목을 대량으로 사들여 소규모 경쟁사들을 무너뜨린다.

따라서 이런 소매 방식에는 항상 논쟁이 뒤따랐고 1920년대에 처음 일어난 반 체인점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A&P와 울워스 같은 할인점이 확산되자 영세 상인들은 체인점들이 거대한 규모를 이용해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들여와 소매가격을 낮추는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려고 나름 애를 썼다. 당시 이들이 했던 얘기는 (요즘) 월마트 신규 매장 설립을 발표할 때마다 북미 지역에서 일어나는 반대파들의 주장과 아주 흡사하다. 이에 따라 독점식 사업 관행에 대한 소송도 빈번했다.

볼품은 없고 덩치만 큰 매장, 자동차로만 갈 수 있는 지리적 위치, 창고 분위기를 풍기는 외관 등, 사실 가격이 싸다는 것만 빼면 월마트는 큰 매력이 없었다. 그래서 도시 외곽으로 뻗어 나가면서도 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꼈다. 고풍스러운 마을 광장, 많은 사람이 모여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 상호 교류와 감각적인 자극이 넘치는 소매점의 모습을 갖추고 싶었다. 결국 이런 욕망이 스타벅스와 버진 메가스토어, 나이키 타운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새로 등장한 브랜드 체인점들은 나름대로 규모를 유지하며 제품을 높은 위치에 올려놓았다. 월마트의 가격이 낮은 만큼 브랜드 제품의 위상은 올라갔다. 대형 할인 매장이 지역사회의 가치를 할인과 바꿨다면, 브랜드 체인점들은 이를 재창조해 다시 비싼 가격으로 판매했다.

군집화 : 스타벅스

스타벅스 같은 뉴에이지 체인점들은 이전에 등장했던 획일적인 쇼핑프랜차이즈와 분명한 차별화 전략을 구사한다. 대량생산되는 싸구려가 아니라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가구, 정치 참여자로서의 화장품, ‘구세계 도서관’를 대변하는 서점,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고 관계를 맺는 커피숍으로 자기만의 매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starbucks
starbucks *photo: Chris Cofer at flickr(7447774@N08)

그러나 사실 월마트와 스타벅스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첫인상과는 달리 공통점이 참 많다. 스타벅스가 지난 13년간 빠르게 확장해 간 매커니즘과 월마트의 독점 전략은 상당히 비슷하다. 우선 스타벅스는 도시 외곽에 커다란 창고를 짓지 않는다. 그 대신 이미 식당과 커피숍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도심에 매장을 열고 자기들의‘집단’을 만든다. 그런데 이 전략은 월마트만큼이나 규모의 경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경쟁사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동일하다. 그들은 전 세계 혹은 북미 모든 도시에 매장을 여는 대신, 한 지역을 완전히 포섭할 수 있을 떄까지 기다리며 확장을 해 나간다.

스타벅스 매장은 서로 치열하게 판매 경쟁을 벌이고, 결국 모두 판매율이 떨어지는 한계점에 이를 때까지 해당 지역을 스타벅스 매장으로 가득 채운다. 그러나 경영진은 이러한 (밀집 지역의 상호) 고객 잠식이 새 매장 투자에 따른 수익과 판매 증가로 충분히 보상되었다고 본다. 이 말은 각 매장의 매출액은 크게 증가하지 않아도 체인점 전체 매출액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95~97년 사이 총 매출액은 배로 증가했다.

이 잠식 전략은 다른 스타벅스 매장뿐 아니라 주변 커피숍과 식당에도 똑같이 (그들의 매출마저 함께 잠식당하는) 영향을 미쳐 스타벅스의 전체 매출 증가에 일조했다. 이러한 대형 체인점들의 의도적인 군집화를 업체들은 신 시장 개척일 뿐이라며 부인한다. 하지만 대형 체인점의 공격적인 확장 전략이 경쟁사들을 몰아내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스타벅스는 이외에도 좋은 입지의 일반 커피숍 임대권을 빼앗는 부동산 전략을 구사했다. 맥도날드나 갭 등도 마찬가지다.

한편 갭이 코카콜라나 맥도날드 등과 비교되는 것을 환영하는데 반해 스타벅스는 이를 강하게 거부한다. 이는 브랜드 이미지가 갖는 특성 때문이다. 뚜렷한 개성이 있는 옷에 비해 훨씬 평범한 제품인 커피를 완벽한 브랜드로 만들어 품격 높은 상품으로 내놓고 싶어 한다. 따라서 대형 체인점으로 알려지는 것을 꺼려한다.  하지만 아무리 초심이 고상하고, 진보적이고, 서민적이라고 해도 각 체인점은 조립되기 쉽도록 조각난 수백개의 작은 부분들로 구성되어있다. 모방하기 위해 찍어 낸 복제품인 것이다.

이러한 소매점이 국경을 넘어 세계시장으로 나갈 때 군집화 전략은 월마트의 가격 전쟁 전략과 뒤섞여 일종의 ‘대형 군집화 전략’을 만들어 낸다. 새로운 시장에서도 낮은 가격을 유지하려면  상품을 대량으로 들여오는 전략을 그대로 쓸 수 있어야 한다. 또 경쟁사보다 낮은 가격에 상품을 공급받으려면 한 나라게 달랑 매장 하나를 개설해서는 안된다. 결국 가장 좋은 확장 전략은 기존에 있던 체인점을 매입하는 것이다. 1994년 캐나다에서의 월마트, 1998년 영국에서의 스타벅스 진출이 그 사례다. (월마트가 영국 ASDA 인수, 2005)

상황이 이쯤 되자 기업들 사이에서는 세계적인 기업들의 먹이가 되지 않으려고 국내 브랜드끼리 합병하는 전략이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애국심과 글로벌 경쟁력이라는 기치 아해 살림을 합치고, 직원을 줄이고, 미국식 경영 기법을 도입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자신들이 온 힘을 다해 막으려 했던 세계적인 브랜드를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선발 vs. 선택

대형 매장과 군집화 전략을 결합시키자 소매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월마트 방식과 스타벅스 방식을 결합시킨 다국적기업들은 그나마 개인 사업체들이 다국적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시장마저 집어삼키고 말았다. 곧 소매업 자체가 대기업들의 전쟁터가 되었다. 소매업에서 규모는 필수 조건이 되었고 작은 상점들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었다.

스모 선수들이 체중을 늘리듯, 소매업에서 경쟁을 하려면 규모를 키우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와 식당들은 대부분 고급 주택가에 고가품의 형태로 자리잡는다. 교외의 작은 마을이나 노동자들이 사는 도심 주택가에는 자가 복제한 체인점들만 즐비하다. 이런변화는 영세 매장의 생존 문제 이외에도 매장에 진열되는 제품에도 영향을 끼친다.

소매업계를 휩쓴 또 하나의 흐름이 있다. 바로 브랜드 기업이 운영하는 슈퍼스토어다. 이는 대형 매장에 기업 브랜드 제품이 모여 있는 형태로 기업이 시너지 효과에 몰두한 결과물이다.

소매업에 나타난 이 세 가지 현상은 소비자의 구매 방식만 바꿔 놓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모이는 방식부터 일하는 방식까지, 모든 것을 바꿔 놓은 브랜드의 핵심이 여기에 담겨 있다.

서울 시내의 홈플러스 매장(대형 할인매장) 분포도
서울 시내의 스타벅스 매장(도심 브랜드 군집매장) 분포도

도시 외곽의 대형 할인 매장과 도심의 브랜드 군집 매장이 성장하게 된 배경을 파악하려면 말보로 금요일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두 가지 형태가 함꼐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저가 정책과 브랜드 구축 정책 사이에 생긴 균열 때문이었다.

브랜드 추락 직전 월마트는 놀라운 매출 증가(말보로 금요일 1년 전, 161개 신규매장 오픈)를 기록했다. 이후, 고객들은 광고비 때문에 값이 오른 브랜드 제품 대신 저렴한 월마트표 제품을 사는 것에 만족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나이키 타운과 디즈니 스토어, 스타벅스 매장이 퍼져나갔다. 이는 소수 엘리트 집단이 다시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를 찾고 있다는 뜻이었다. 고급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제품의 비싼 가격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패션, 스포츠, 엔터네인먼트 업계에서는 당연히 이러한 소비자들의 브랜드 욕망을 이용했다. 테마 파크로 꾸민 대형 쇼핑몰은 이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다. 이는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글쓴이

Yoonho Choi

independent researcher in design, media, and locality & working as a technology evangelist in both design and media industries

댓글 남기기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