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시대 : 도시가 엄청난 디자인의 도전이 된 까닭

급속한 확장 … 국경선도 라고스의 확장을 막을 순 없다. * 사진 : 데이비드 레빈David Levene

전례없는 도시화 경향의 와중에서, 디자이너는 도시가 쾌적한 환경의 수용 뿐만 아니라 그것을 거주민에게 제공해야 할 이들임을 증명해야만 한다.

국제연합UN, 도시화는 멈추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지난 주의 가디언지 헤드라인으로 등장했다. 당신은 이 헤드라인에서 어떤 걱정의 분위기를 감지해낼 수 있는가? 이건 거의 “지구 온난화는 멈추지 않는다.”라거나 “평화로운 주말과의 작별”이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 쓰여야 더 나을 것 같다. “도시화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거대한 디자인 과제다.”

기사는 국제연합-하비타트(UN-Habitat : 국제연합의 거주 문제 해결 프로그램)가 최근 세계 도시들의 상황을 정리해 발표한 자료에 관한 것으로, 몇몇 도시들이 “거대 지역mega-reigion”을 형성하기 위해  마치 수은 방울처럼 모여 통합될 것이라고 예측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개중엔 서부 아프리카의 라고스Lagos, 이바단Ibadan, 롬Lome, 아세라Accera 등 도시들이 통합을 선전포고하고 있는 내용도 있었다. 다 괜찮다. 하지만 이 통합과정이 나이지리아, 베닌, 토고, 가나 등의 국경선을 가로지르며 제멋대로 퍼져나갈 것이라는 점은 문제다.

역사상 처음으로 교외보다 도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게다가 2050년 까지는 인류의 75% 이상이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도시의 휘황찬란한 전등 불빛을 향해 이동하지만 그곳엔 끔찍한 부분이 존재한다. 이런 확장 경향이 있는 도시들 대부분은 이미 수백만이 거주하는 빈민지역을 갖고 있는 것이다. 뭄바이Mumbai, 델리Delhi, 카라치Karachi, 상해Shanghai, 사웅파울루Sao Paulo, 킨샤샤Kinshasa 등 세계적으로 급속히 성장하는 도시들, 이런 도시들 대부분은 2025년 까지 2000만 이상의 인구를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 시간에도 라고스라는 도시는 시간 당 67명 분의 주거지를 확보해야만 한다. 만일 이들 이주민을 위한 디자인을 지금 시작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비극은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예컨대 런던, 파리, 로마 등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도시들은 긴 역사에 걸쳐 서서히 성장해왔다. 마치 다른 종류의 제품인양,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은 새로운 도시 공간을 ‘제조’하고 있는 지점이다. 1960년대,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공간은 새로운 상품”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런 상황을 예견했었다. 그는 단지 추측만 하는 주식이나 지분이 아닌 도시의 파편들에 주목했다. 요약하자면, 그의 이론은 150여년 간의 산업화 과정이 도시화로 대체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산업화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의 이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또한 도시의 시대로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도시공간의 상품화는 르페브르가 살던 시기로부터 급속하게 진행되어왔다.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그 어떤 죄책감으로부터도 벗어나게 했던 규제의 철폐는 마찬가지로 도시의 얼굴 또한 변하게 만들고 있다. 자유무역이라는 허울은 수많은 도시의 공적인 공간들을 그저 체인형 상점에서 쇼핑을 하거나 코스타 커피에서 음료를 마시는 장소가 되도록 강요하고, 때로는 사설 경비원들의 감시 아래에서 그 짓을 하도록 만든다. 공공 서비스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적 공간의 사유화는 정부가 민주적인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틈새를 열어주는 하나의 술수일 뿐이다.

르페브르도 도시가 이 정도로 상품이 되는 상황을 예측하지는 못했다. 요즘엔 어떤 고객이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달라고 유명한 건축가에게 고작 전화 한 통을 걸어 주문을 할 수가 있다.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아부다비Abu Dhabi의 친환경 도시 마스다Masdar나,  런던의 아럽Arup사가 디자인한 인기있는 친환경 도시 동탄, 그리고 천진이 그러하다. 향후 20년 간 3억의 도시 거주민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에서, ‘그냥 지으면 사람이 온다’는 따위의 방식 이외에는 답이 없다.

물론 도시의 생산은 역사를 갖고 있다. 지난 세기의 전환기에 있었던 에베네처 하워드Ebenezer Howard의 공원도시 운동Garden Cities movement의 결과로 레치워스Letchworth라는 도시가 만들어졌고, 미국에서는 뉴 어버니즘New Urbanism이 트루먼 쇼The Truman Show의 배경이 되었던 플로리다 주의 시사이드Seaside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사례들은 도시를 혐오하던 사람들이 디자인한 회피론자들의 판타지에 불과했다. 더 들어맞는 사례들로는 정치적인 염원을 영웅적으로 그려낸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Astana, 그리고 이 모두를 짬뽕한 두바이가 있다. 경제 침체 이후로 두바이가 폐기된 건 한 줄기 빛이었지만, 제품이나 브랜드로서의 도시를 확연히 보여주는 사례로는 두바이만한 곳도 사실 없었다.

브랜드 컨설턴시는 근대 도시의 숨은 실력자이다. 그들은 시장의 역할을 자임하기도 하는데,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앨범 표지를 디자인한 광신적 디자이너 피터 사빌Peter Saville에게 그런 임무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는 몇 년 전 맨체스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캐나다의 디자인 구루 브루스 마우도 그러하다. 그는 “메카(성지)의 미래 비전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등장했고, 이제 그것은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라는 명제가 되었다. 고수익을 보장하는 행사들인 올림픽, 유럽 문화 수도, 세계 디자인 수도 등이 선정되는 전지구적인 경쟁체제 속에서, 그의 명제는 도시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세계의 부를 만들어내는 엔진과도 같은 도시, 그것은 본 바탕인 국가들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묻고자 하는 것은 이거다. 우리는 빽빽이 사람들이 들어찬 컨테이너와 같은 곳이 아니라 쾌적하고 공평한 삶의 공간으로 도시를 창조할 것인가? 도시로의 값싼 이동 수단을 제공하는 이지젯과 같은 것 때문에 수많은 수도들 간이 바로 연결되는 도시문화 특유의 상황을 누군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신이 꿈 꾸고 있는 이상향이 이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도시에서의 차별과 사회적 양극화는 점점 더 극단화로 치닫고 있고,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이 될 것이 분명하다. 국제연합UN의 자료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제 도시 구축은 우선적인 과제가 되었다. 정치인들은 디자이너들에게 믿음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마지막 사반세기로부터 우리가 배운 점은 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평등이라는 가치를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via The Guardian | The urban age: how cities became our greatest design challenge yet | Justin McGuirk.

 

서른 명의 디자인 전문가들, 질문에 답하다

Thirty Conversations on Design 이라는 웹 도큐멘터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제목이 말하는 것 처럼, 디자인과 관련된 약간은 바보스런 질문에 인터뷰이가 대답하는 걸 담은 것이 전부인 이 사이트. 짧은 필름들이 돌아가고 방문자들은 오른 편에 코멘트를 남길 수 있다. 서른 명의 디자인 전문가들, 질문에 답하다 더보기

디자인으로 발언하기

디자이너, 돈 잘 벌고 폼나는 직업

Happy Birthday to Mr. Philippe Starck * Source: Flickr public domain
Happy Birthday to Mr. Philippe Starck * Source: Flickr public domain

한국에서 디자인은 ‘생산될 제품의 이익을 극대화’할 때 효용성을 인정받는다. 창작물의 가치가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믿는 디자이너들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극한 경쟁의 자본주의 기업사회에서 생존해야만 하는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독립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어렵고, 자신의 사회적 발언을 창작물에 담는 것을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해왔다.

한편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미디어에 의해 화려하게 포장되어왔다. 언제부터인가 ‘디자인’이란 단어는 ‘고급스러움’으로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었고, 그런 이미지는 디자인을 마치 기업가에게는 ‘돈 더 벌어주는 기술’로, 그리고 일반 대중에게는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이노디자인의 김영세씨 처럼 유명세를 갖고 나타났던 소위 ‘잘나가는 디자이너들’ 이후, 디자인계는 ‘스타디자이너만들기’에 혈안이 된지 오래인데, 이것은 연예계의 스타만들기와 정말 비슷하다.

사실 그들의 모습은 대다수의 디자이너들, 즉 스텝 디자이너staff designer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유명하고 ‘잘나가는’ 그들은 이미 독립적인 기업이나 디자인 컨설턴시를 운영하는, 이를테면 ‘자본가’ 부류의 말단에 선 이들이고, 게다가 이미 ‘예술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한국의 디자인이 가진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찾기는 힘들다. 그들의 성공사례는 일종의 ‘신화’가 되고, 미술학원을 기웃거리는 입시생들이 디자인을 미래의 직업으로 삼는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 자료에 관심을 둔지 정말 오래이지만 다시 꺼내보면, 한국의 디자인관련대학 졸업자수는 미국과 비슷하며 영국보다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다.

국가명 / Part-time, 2년제 / Full-time, 4년제 / 총 인구
한국 / 125,413 / 91,539 / 48,598,175
미국 / 220,000 / 33,000 / 293,027,571
영국 / 2,795 / 48,245 / 60,270,708

*주의: 건축을 제외한 공예(도예, 금속, 염직, 목), 산업(공업, 시각, 제품)디자인, 기타 응용미술학과를 포함. *출처: (1999, KIDP), (1999-2000, 미연방교육통계청), (2002-2003, 영국고등교육통계원), (CIA World Fact Book 2004.7).

디자이너 노조를 들어본 일이 있나요?

많은 수의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그저 보통의 ‘노동자’로 불리기에 앞서, ‘잘나가는’ 그들처럼 ‘예술가’적 디자이너가 되기를 꿈꾼다. 디자이너 노조를 들어본 일이 있는가? 디자인이 애써 노동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무얼까? 한번은 어떤 디자이너가 “비싼 화실이나 미술학원에는 같이 다녔는데..”라고 비교를 하면서 어차피 그리는 직업이니 “하는 것도 예술가처럼 해야..”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같이 화실에 다녔으니, 그래서 돈좀 들였으니, 그래서 “우리도 예술가처럼 세상을 등지는것”이라는 간편함. (사실 진정한 예술가들처럼 사회적인 사람들도 없다.) 획일적인 미술대학입시는 이런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요즘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적어도 80~90년대를 화실에서 보냈던 오늘날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그렇게 입시의 과정을 거쳤다. 그야말로 겹겹으로 복잡스러운 것이 바로 디자이너의 자아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 때문인지는 분간하기 힘들지만, 디자인 잡지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사상 최초의 ‘디자인’지면을 만든 조선일보에 이르기까지, 매주 매월마다 상당히 고상한 투로 하나하나의 디자이너들을 독립 예술가, 혹은 연예인의 반열에 올려놓으려 무진 애를 써왔다. 또한 오세훈 시장이 추진한 ‘디자인 올림픽’ 준비가 한창인 지금, – 디자인에 올림픽이 생겼으니 이제 모든 디자이너들은 바통들고 달리기 시합을 준비해야 하는거다! 디자인 선수촌이라도 만들어서! – 디자인은 이제 권력과의 융합을 막 시작했다. 바야흐로 경쟁의 시대인지라 디자이너도 그 선진국형 경쟁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그렇다면 그렇게 중요하다는 디자인을 바라보는 대중의 판단은 어떤가? 정부나 기업, 그리고 스스로 경쟁대상이라고 여기는 ‘오리지날 예술’의 평가는 어떤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새 디자인은 썩 잘 알려지지만 ‘디자인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 따위의 움직임들은 미미하다. 아니, 활발한가 싶다가도 어느새 털털거리는 것이 ‘공공디자인/미술’ 분야다. 그나마 ‘공공디자인’처럼 무형의 탈을 뒤집어쓰지 않고서 대중의 삶 속에서 디자인에 대한 반응을 찾아내는 것은 참 어렵다.

얘기가 좀 벗어났지만, 아무튼 직접 디자인을 한다는 사람들, 또한 그걸 해보겠다고 덤비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직종의 단편성은 사회에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속 ‘커리어우먼’의 단골 직업으로 등장하고, 언제나 인테리어디자이너들은 불우한 가정의 집을 새로 ‘리노베이션’해주거나 아무런 도움도 필요하지 않는 ‘경제적 성공’을 과시하기도 한다. 절대로 쪽방에서 웹사이트 코딩과 디자인을 함께 하는 라면매니아 최모 디자이너나 한달에 50만원 받고 일하는 제품디자이너 김모양과 같은 얘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과연 디자이너란 앞서의 성공적 모습과 최저임금의 두 모습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more (poor) people
more (poor) people * Source: Flickr public domain

사회적 발언으로서의 디자인, ADBUSTERS

1차 걸프전이 벌어졌을 당시, 애드버스터즈 재단의 잡지인 애드버스터를 도서관에서 본 적이 있었다. 다니던 학교의 디자인도서관에는 매달마다 각종 분야의 디자인잡지를 구비해놓았었는데, 한쪽 구석에 떡하니, 이라크전에서 폭발한 미군차량에 널려있는 미군의 시체를 찍은, 끔찍스런 사진이 나와있는 것이었다. 디자인잡지코너의 한 부분을 차지한 이색적인 이 잡지에 자연스레 눈길이 가버렸다. 의외였던 것은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잡지’스럽지 않은, 세련되고 깔끔한 모양새였다.

영국에 도착한 이후 도시에서 가장 크다는 보더스BORDERS 서점에서 난데없이 그 잡지를 다시 만났다. 부시의 모습이 파란 표지를 장식한 그 잡지는 여기에서도 예술문화잡지가 가득한 서가 한쪽을 장식하고 있었다. 뉴레프트리뷰New Left Review나 보다 더 급진적인 빨갱이 잡지나 저널들이 화려한 잡지들과 뒤섞인 풍경은 정말 나에겐 낮선 모습이었다. 이 잡지는 ‘광고 뽀개기’라는 잡지이름이 말해주듯 미국중심의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파생된 소비문화나, 그와 연관된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는 잡지이다. 따라서 잡지 내부의 광고 페이지들에도 실제 기업주를 위한 광고는 없고, 다국적 기업의 유명광고를 패러디한, 그러나 그런 거친 내용을 담아낸 지면의 구성은 여느 상업지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 정갈한 구성과 짜임새를 보여주는 지면으로 채워져 있었다. 반자본적인 잡지의 내용상 당연한 일이지만, 광고에 쓰인 글꼴의 저작권도 단체의 공격대상이기 때문에 실험적인 잡지용 글꼴들이 새로이 만들어져 편집에 이용되기도 한다.

디자인의 효용성이 반자본주의적 매체인 애드버스터즈에 효과적으로 이용되는 이유는 바로 ‘디자인’이 가진 자본주의와의 밀접한 관계 때문이다. 현대적 광고의 세련된 모습이 비틀어져 이용되는, 그러나 여전히 세련된 애드버스터즈만의 편집디자인을 통해서, 그들의 메시지는 보다 파괴적으로 변화된다. 이 애드버스터즈재단은, 디자이너들에게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일 저작권이나 사회적인 이슈들에 관한 급진적 메시지를 아이러니컬하게도 잘 ‘디자인’된 틀 속에 담고있다. 상식의 거부, 다시말해 디자인을 저작권 혹은 경제적 이익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인식의 파괴를 통해서,소비문화의 비판이라는 단체의 명확성이 더욱 잘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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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전문인들의 참여를 통한 빈곤구제의 사회화, Big Issue

Certified Big Issue Seller
Certified Big Issue Seller *Source: Flickr public domain

영국에 도착해서 만난 또하나의 잡지 이름은 바로 BIG ISSUE. 이 잡지의 기본 아이디어는 참 흥미롭다. 첫째로, 잡지의 내용은 빈곤의 문제와 다양한 정치사회적 이슈들, 그리고 대중문화 등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잡지의 내용이 빈곤과 소수자의 고통 등에 맞춰져 있으나, 일반적인 잡지들과 비슷한 연예관련 기사등에도 소홀하지 않아서 누구나 읽어볼만 한 가벼운 잡지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둘째로, 이 잡지의 판매는 길거리의 걸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재단은 잡지를 60펜스에 인증된 걸인에게 판매하고, 이 걸인 판매자는 잡지를 1.4파운드에 거리에서 재판매한다. 독자들이 이 잡지를 사려면 속칭’걸인 빅이슈 판매인’에게 구입해야만 한다. 이쯤되면 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이 잡지는 거리 빈민(실업자만 가능)에게 일정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안정적인 일거리를 만들어주고, 잡지를 구입하는 독자들에게도 빈곤문제를 굉장히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빅이슈는 여느 한국 잡지의 편집진들보다도 탄탄한, 전문적 편집진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있다. 매주마다 발행되는 이 잡지는 글과 사진의 질, 기사의 배치와 구성 등에서, 일반 잡지에 결코 뒤지지 않으며, 편집자, 컨텐트디렉터와 아트디렉터 체계, 광고전담부서 등, 갖출것은 다 갖추고 있다. ABC부수인증(매주 지역판 포함 20만부 이상)까지 받은 이 잡지의 후원에는 방송사인 ITV와 통신사인 로이터, 그리고 전문 사진가들과 언론인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이 잡지와 재단은 작년(2007) 말에 세상을 뜬 여류 사회운동가이자, 친환경 바디샵BodyShop을 설립한 기업가인, 아니타로딕의 남편 고든 로딕이 설립했다.

국제 거리잡지 연합 http://www.street-papers.com

디자인에 ‘선진화’가 있다면, 그것은 다양한 모습의 ‘디자이너’들을 만들어내는 일

다양성은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 앞서 다룬 사례들은 여러 전문가들의 사회를 향한 표현의 결과로인해 얻어진 것이고, 그 결과의 이면에는 자기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노력한 도전적인 참여의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사회의 진보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만은 않다는 점을 위의 작은 사례들 말고도 더 찾아볼 수 있을것이다. 최근들어 시민운동의 새로운 역할모델을 찾으려는 몇몇 운동가들이 만든 새로운 형태의 연구단체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3월 정도에는 한국판 빅이슈를 만들어보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사회적인 고민에 파묻힌 수줍은 디자인 전문가들이 좀 더 용기를 갖고 그런 일들에 참여해보기를 권한다.

* 이 글은 과거 한겨레 필넷에 올려 기사화된 것을 다시 보완하여 올린 글입니다.

수레 집(Shelter in a cart)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

비영리(non-profit) 디자인 공모전을 표방한 영어권 디자인웹진 디자인붐(Designboom)의 ‘수레집(Shelter in a cart)’ 공모전 결과가 발표되었다. 여느 공모전과는 다른 이 공모전의 특징을 한마디로 줄여본다면 아마도 ‘사회적 디자인 공모전’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일반적인 공모전의 목적중 하나인 상금이 없다는 점이나, 공모전의 주제와 대상이 유럽을 비롯한 자본주의국가들의 주요이슈중 하나인 ‘노숙자의 주거문제’인걸보면 디자인공모전으로서는 과분한 사회적 의미를 담고있다고 생각되어질 수도 있다. 수레 집(Shelter in a cart)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 더보기

19세기 초기산업의 디자이너들

19세기에 걸쳐 ‘디자이너’라는 말은 명확하지 않고 혼란스러움에 둘러싸여있었다. 이른바 하나의 직업적 책임으로서, ‘디자이너’는 순수예술가, 건축가, 공예가, 기술자(엔지니어), 발명가, 기술자 그리고 낮게는 ‘고용자’로서 다뤄졌다. 19세기는 무자비한 변화의 시기였으며, 디자이너 ? 그 모든 변화들과 함께했던 – 는 패턴북을 만들어내던 18세기의 순수예술가들과, 디자인팀이나 메니지먼트 구조를 바탕으로 일하던 20세기의 산업디자이너들,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이 두 축은 그 정체성 – 19세기를 산업디자이너의 출현에 아주 중대한 기반형성기로 자리매김한 – 을 확립하기 위한 셀수없는 노력들 위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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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생산체제의 디자이너들

초기의 대량 생산체제에서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디자인하기’가 존재하게 된 정확한 시기를 집어내는 것과 그 쓸만한 사례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현대 디자이너의 기원을 찾는 일은 특별히 어려운데, 왜냐하면 그것은 개인이나 – 혹은 디자인 과정에 개입된, 그리고 대량 생산체제의 구조를 변화시킨 – 개인들의 직업구분이 불명확하게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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