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광경으로서의 여성

남성의 사회적 존재란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존재는 외면적이고 외부로 향한다. 반대로 여성의 사회적 존재는 여성의 자신의 내면적 태도로 설명된다. 관찰하는 것과 관찰 당한다는 것은 여성의 정체성이 어떤 것인가에 있어 생각해야 할 두 가지의 중요한 문제이다. 여성은 항상 자신을 주시해야 하며 자신 스스로의 이미지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 것들을 설득 당해온 것이다. 곧 그녀가 남성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그녀의 처우를 결정짓는다.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더보기

백남준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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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술을 아틀리에에서 미디어의 영역으로 끌어낸 거장 백남준씨가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라는 이름을 남긴 채 29일(미국 현지시각) 숨졌다. 국내 예술계와 화랑들은 그의 안타까운 별세 소식을 설 연휴 마지막 날 갑작스레 맞아야 했다.

백씨의 죽음은 가족 중에 아내 구보타 시게코만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백씨는 해마다 겨울 추위를 피해 부인과 함께 11월께부터 마이애미 아파트에 머물다 4~5월께 뉴욕의 자택으로 되돌아가곤 했다고 백씨를 아는 국내 지인들은 전했다. 그는 평소 뉴욕 맨해튼의 ‘백남준스튜디오’ 등에서 젊은 작가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일을 즐겼지만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선 극히 말을 아낀 것으로 지인들 사이에 기억되고 있다.

백씨는 타계하기 직전까지도 ‘마지막 작품’에 몰두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술사가 문인희씨는 “선생님은 최근까지도 늘 드로잉을 하시면서 마지막 비디오 아트를 준비하고 계셨다”며 “마지막 작품이 아직 구상 단계인지, 아니면 완성 단계인지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백씨의 유해는 한국시각으로 31일쯤 뉴욕 매디슨 애비뉴의 병원으로 옮기진 뒤 그곳에서 장지를 결정하고 장례를 치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지가 한국 땅이 될 가능성에 대한 말들도 국내 예술계에서 조심스럽게 오가고 있다. 백씨는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등 한국 미술계 인사들에게 ‘나는 서울 창진동에서 태어나 정릉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한국 땅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또 이종선 경기도박물관장은 30일 “백남준 선생은 평소 자신이 죽으면 한국에 돌아가 용인에 묻히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그는 “백 선생은 어머니와 조국에 대한 사랑을 작품 사이사이에 담아 표현했던 한국의 예술가”라며 “경기도 용인에 건립 중인 백남준미술관과 그의 안식처가 함께 있게 된다면 이 지역은 여러 추모전·기획전들이 열리는 미디어 아트의 중심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문화재단은 2001년부터 지상 2층, 연면적 1645평의 백남준미술관 건립에 들어갔으며 이미 67억원을 들여 백씨의 레이저 작품, 비디오 아트 작품 등 60여점을 구입해 김포 대한항공 물품보관창고에 보관 중이다. 경기문화재단의 송태호 대표이사는 “그동안 미술관 건립 문제는 백씨의 조카인 켄 하쿠다가 운영하는 뉴욕의 백남준스튜디오와 상의했기 때문에 (미술관 건립은) 백씨의 사망과 관계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르면 내일 중 미국을 방문해 조문한 뒤 백씨의 유택을 미술관에 모시는 문제 등을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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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교사연합 발족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입각 교육”
“현교육 평등주의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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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지향하는 뉴라이트 교사연합이 발족됐다.
뉴라이트교사연합 창립준비위원회는 23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실에서 회원 5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대회를 갖고 전국중등교사회 두영택(남성중학교 교사) 회장을 상임대표로 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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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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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 born as Andrew Warhola, was born in Pittsburgh, Pennsylvania, to a working class immigrant family of Ruthenian ethnicity from northeast Slovakia. He showed early artistic talent and studied commercial art at Carnegie Mellon University in Pittsburgh. In 1949 he moved to New York City and began a successful career in magazine illustration and advertising. He became well-known mainly for his whimsical ink drawings of shoes done in a loose, blotted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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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ER]

Architecture for Humanity라는 단체에서 추진하고있는 재난지역(파키스탄, 캐시미르 지진지역) 쉼터 주거아이디어에 관심있는 분을은 응모하시라. 응모는 무료, 댓가는 마음의 평안? 응모작과 결정작은 공유가능 저작권인 Creative Commons Developing Nations 을 따르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할 것.

Architecture for Hum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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