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잃어버린 화두(話頭) _ 이인범

삶의 축복, 예술의 배반

무릇 예술들의 이념이 현실 일탈을 방법적 과제로 삼아 저 높은 곳으로 비상하는 데 있다면, 이에 반해 공예의 꿈은 삶의 현실 안으로 깊숙히 파고들어 지금 여기 이땅에 ‘아름다움의 정토(淨土)’를 구현하는데 있다. 따라서 삶의 현실을 담지하는 좋은 공예를 갖는 민족은 어느 경우나 대단히 행복한 민족임에 틀림없다.

인간의 타고난 본능에 의한 것이든 제도화된 욕망이 낳은 부산물이든 미술계엔 늘 신화와 우상의 출몰을 기다리고 그것을 둘러싼 무성한 담론이 흐른다. 올해엔 유난히 비엔날레나 도큐멘타같은 국제적인 미술행사가 몰렸다. 베니스에선 뉴욕 거주작가 강익중이 특별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헛배 불리는 기사들과 함께 전해진다. 어쩌면 이런 것이 그림자같은 세상을 살아나가는 인간의 생활양태 같기도 하고 미술계 자체가 살아남기 위한 생존방식 같기도 하다.

이에 반해 공예계엔 이렇다 할 사건의 전개도, 스타의 탄생도, 대안적 전망제시도 없이 마치 끝없이 지속될 것 같은 고요와 적막의 연속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작품의 생산양식이나 그 수용방식상의 차이점에서 비롯되는 것일 것이다. 공예가 목적하는 바는 애초에 변혁적인 힘을 이용해 권력잡기에 나서기보다는 현실을 강인하게 긍정하고 보수하는 데에 있으며, 그 평가방식 역시 천재적인 통찰이나 해석에 의거하기보다는 무수한 단자들에 의한 일상적 삶들 속에서 귀납적으로 검증되기를 기다리게 마련이다.

그렇긴 하나 어느 나라든 살기 좋다는 나라엔 여지없이 그 나라만의 물건들이 있고 이렇다할 공예가, 건축가, 디자이너들의 이름이 등재되기 마련이다. 이태리의 솟사스, 프랑스의 삐에르 가르뎅, 핀란드의 알바알토, 일본의 하마다 쇼지…

정체성 위기와 그 대응
두말 할 것도 없이, 공예는 일상적 실용성을 바탕으로 성립하는 예술장르이다. 그런 면에서 공예는 곧 인간의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무릇 예술들의 이념이 현실 일탈을 방법적 과제로 삼아 저 높은 것으로 비상하는데 있다면, 이에 반해 공예의 꿈은 삶의 현실 안으로 깊숙히 파고들어 지금 여기 이 땅에 ‘아름다움의 정토(淨土)’를 구현하는데에 있다. 따라서 삶의 현실을 담지하는 좋은 공예를 갖는 민족은 어느 경우나 대단히 행복한 민족임에 틀림없다. 우리들의 지상적(地上的) 행복은 ‘mechanical arts’의 산물, 즉 고귀한 인격과 맛을 담는 옷이나 음식, 행복이 가득한 집과 의자, 실내, 그릇, 장신구, 무너지지 않는 튼튼하고 아름다운 다리같은 것들을 빼놓고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공예는 나날의 인간 생활과 동반한다.

이미 우리는 근대사를 통해 삶의 상실이 공예의 위기를, 공예의 위기는 삶의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확인한 바 있다. 서세동점의 문명사적 전환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물결과 제국주의적 권력이 붕괴시킨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과 공예의 연속성이다. 그렇게 우리의 현대공예는 불행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지금 이런 거시적인 역사적 틀거리 탓만 할 여유도 없다. 각종 공예학교에서 배출되는 한해 2만여명이 넘는 졸업생들의 규모와 그들의 취업문제, 이 생산력이 왕성한 시대에 저급한 공예 생산성, 예술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군소장르로서 받아야 하는 박대와 홀대와 같은 문제들은 공예계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 과제들이다.

일찍이 공예로부터 화려하게 가출한 순수예술, 그리고 산업사회안에서 적극적인 역할 수행으로 각광받고 있는 디자인, 그 사이 어디에 좌정해야 할지를 모른채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에 공예는 그나마 남은 재산관리에도 실패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후기 산업사회로, 뉴 미디어 사회로 급격한 사회변동이 일어나고 물질적 환경 자체에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인 변화는 언제나 재료와 기법을 바탕으로 단단한 반석위에 놓여 있던 공예의 지반마저 결코 안전한 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린다. 한마디로 말해 오늘의 공예는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위기는 그 자체가 지적인 긴정과 논쟁을 요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만 무거운 침묵과 정적만이 흐른다. 사실 공예는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그 존재 자체가 자명성을 지닌다. 그것은 때로는 소피스트적인 어법을 동원하지 않고는 자기변명이 쉽지 않고, 때로는 그러한 수사법 자체나 허구성이 본질을 이루기도 하는 그 흔한 예술들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크게 다르다. 그런 공예자체의 당위성과 우리 현대공예가 당면한 현실적 위기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예를 둘러싼 담론의 부재는, 이미 군소장르로 몰릴대로 몰린 공예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려 한들 얻어낼게 뭐냐는 세속적인 태도도 필경 한 몫 할 것이다. 설혹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공예를 논한다는 일이 그렇게 홀가분한 일은 아니다. 원하든 원치않든 공예의 정체성에 관해 섣부르게 정의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급기야는 공예상황을 훨씬 더 딱딱한 껍질 속에 가두어 그나마 공예를 문화일반의 총체적 흐름으로부터 단절 고립시켜 게토화시킬 위험 역시 적지않게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Guilty Pleasures’-공예와 미술의 범주적 혼돈이 가는 길
탈장르주의적인 영역 넘나들기가 일반화되어 이미 소위 공예가들이라 불리는 적지 않은 작가들이 울타리를 넘어 예술계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있는 현실 속에서 공예장르를 예술 일반의 문제 속에 해소시켜 다루는 태도에 그린 의구심만을 갖을 일도 아닌 듯 싶다. 그러나 ‘공예는 공예이다’. 오늘날 공예의 극심한 정체성 위기가 바로 그러한 공예와 미술의 범주적 혼돈에서 주로 기인되고 있다고 판단되는 지금은 더더욱 단호하게 그렇다.

그러한 혼돈은 우리에게 많은 인식론적 오류를 안겨주고 현장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실천적인 좌표를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적지않은 혼란을 야기시킨다. 공예를 공예로 언급하기를 꺼리는 순간, 공예의 궁극적인 이념과 그에 따른 방법론은 단지지엽적인 미술의 매체론의 차원에 갇혀지고 말 뿐이다. 따라서 최소한의 목적론이 고려되지 않는 공예에 대한 논의는 의미없는 일이다. 그럴 경우 공예의 외면적 양상에 다가설 수는 있을지라도 진정한 공예의 내재적 에너지를 밝히긴 어렵다.

공예와 미술의 관계는 이른바 순수예술의 발생적 기원이 다름 아니라 공예에 대한 저주와 부정에서 였다는 점에서 그 뿌리가 깊고 긴밀하다.(‘미술’이라는 개념으로 번역되어 지는 fine art개념은 르네상스에스 18세기 중엽에 이르는 기잔중에 기능술(mechanical arts)로 분류되던 미술이 liberal arts로의 승격을 기도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그 이전의 미술, 공예의 미분화 상태를 크게 보아 공예로 취급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애초부터 재산목록을 챙겨 공예라는 본가를 떠난 순수예술의 입장에서는 몰라도, 그것을 잃은 공예의 입장에서는 미술에 대한 애증관계를 청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미술 콤플렉스는공예의 숙명이나 다를 바 없다. 순수예술과 어떻게 관계를 설정할까 하는 문제는 식상할대로 식상한 이야기이지만 그래서 늘 공예가 자기 얼굴을 비치는 거울이자 공예논의에 끼여드는 감초같은 재료이다.

그네상스이래 근래의 콜링우드(R.G. Colling wood), 카시러(E. Cassirer)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예술론들은 자신의 진리입증을 위해 공예와의 차별성을 디딤돌로 삼았다. 그 반면에 공예에 대한 이론적인 자각이 시작된 것은 미술이 분가하여 독자적인 자리 굳힘을 하고난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이다. 공예의 자기반성이 오히려 미술의 가출이라는 자기상실을 경험한 이후의 일이라는 사실은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아다사피 정신의 우월성을 강조하던 헤겔에 맞서 예술에서 재료와 기술의 결정성을 주장한 젬퍼(G.Semper), 공예의 미술화를 통해 공예를 미술의 영역에 편입시키고자 미술공예운동을 펼쳤던 러스킨(J. Ruskin)과 모리스(W. Morris), 공예적 장식에서 작가의 예술의욕을 읽어냄으로써 라틴계의 고급미술 중심의 서양미술사학에 새로운 전기를 이룩한 리이글(A. Reigl)등은 공예라는 영토의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기도한 실천가이며 이론가들이다. 그러나 분열에도 불구하고 이후 서구미술사에서 공예와 미술이 거듭 서로의 만남을 기도함으로써 미술은 잃어버린 삶을 바라보며, 공예는 결핍된 아름다움을 향해 변증법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우리의 경우는 미술과 공예간의 그러한 상호영양사적 과정이 결락되어 있다. ‘공예craft’나 ‘미술fine art’개념은 서구문화의 번역어로서 각각 조어(造語)되고 수용되었으되 그 둘은 같은 미술대학이라는 학제속에 공존했다 하더라도 상호간에 변증법적 긴장관계나 혹은 대화적 상황에서 서로를 상대한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서양과 우리를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래서 최근 우리 현대 공예에서의 미술이라는 경계 넘나들기나 범주적 혼돈은 자발성이나 역사성을 갖기보다는 국제적인 조류에 영향받고 있다고 보여지며 공예나 우리의 삶의 영역의 확장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서구 수용의 한 사례로 보인다. 그래서 더더욱 혼잡된 양상에 대한 인식과 대응 역시 간단하지만은 않다.

공예와 미술사이의 영역 혼돈이 야기된 첫째 원인은 공예라는 말의 불명료한 사용과 모호한 의미 때문이다. 씨니피앙으로서의 ‘공예’라는 어휘와 씨니피에로서의 ‘공예’사이의 불일치로 인해 정작 공예의 위상은 매우 모호한 것이 되고 말았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공예’라는 말은 흔히 교육제도 안에서 공예과를 졸업한 사람들, 혹은 공모전, 잡지 등을 통해 공예제도권에 진입한 사람들에 의한 활동이나 작품을 총칭하는 것 같다. 그가 그림을 그리든 조각을 하든 그의 작품의 장르분류나 해석은 미학적 판단이 아니라 학벌에 따라 공예이다. 허나 사실은 의과대학을 나와 농사를 짓는 행위가 의술이 아니듯이 똑같은 의미에서 공예과를 나와 순수예술작품을 할 경우 그것이 공예일 수는 없다.

80년대 탈장르주의 이후 오늘날 미술과 공예의 경계를 분명히 하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공예는 공예이고 그림은 그림이다. 간과해서 안될 것은 탈장르주의가 예술의 왜소해진 고립을 타개하기 위해 삶은 회복하려는 몸부림에서 비롯된 것일 뿐 단번에 공예가 예술이 되는 프로그램은 아니라는 점이다. 모더니즘 적 장르의 순수성과 극단적인 전문화가 낳은 인간 소외를 벗고 삶의 총체성을 담아내고자 하는 순수예술 내의 이런 시도들은 일견 모든 장르들의 차이나 경계를 단번에 소거시킬 듯한 느낌마저 갖게 하지만, 예술은 단지 경계를 넘거나 그것을 동경한다고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철저한 자기 부정을 통해서만 아슬아슬하게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예술이다. 요즈음 베니스비엔날레 기사들에 묻어 온 국제상 수상작가 가운데 한사람인 유고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자기변명, ‘좋은작가는 나쁜작가이며, 좋은 평론가는 곧 거짓말을 잘하는 평론가’라는 한 토막 말과 그의 작업의 재미는, 뜨거운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가상적 허구로 남을뿐인 작업결과에 대한 처절한 절망과 그럼에도 예술의 현실재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 사이를 배회하는 그의 태도에서 보여지는 것이지 그가 예술을 명료하게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상을 받았다는 세속적 사실 이상으로 그의 시지프스적 시도가 지닌 의미는 그래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기에서 예술의 존재론적 숙명이 엿보인다. 예술은 자신의 원초적 불안 때문에 끊임없이 다시 반복되고 그것을 놓고 된소리든 쉰소리든 무성한 논란이 사작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

예술에서 상투성은 허락되지 않는다. 예술을 하나의 고정 불변한 실체로 상정하고 그에 대한 동경과 모방을 통해 이룩되는 공예적 미술은 예술의 외양을 빌릴뿐 이미 예술이 아니다. 다만 그런 태도들은 일종의 ‘떳떳치 못한 쾌락 Guilty Pleasures'(1997년 4월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에서 열렸던 제 31차 연례회의 심포지움 공동 주제) 정도에 머물 뿐이다. 그러한 양상은 미술을 지향하는 공예가뿐만 아니라 화가, 조각가들의 작업들 가운데에도 숱하게 많다. 한편, 이미 예술가가 된 공예가의 작업은 공예가 아니다. 따라서 공예의 범주에서 이야기할 일이 아니다. 그때 그에게 요청되는 것은 공예가의 윤리가 아니라 철저한 예술가로서 윤리가 요구될 뿐이다. 그때 그는 철저한 자기부정과 무(無)에서 출발한다.

‘삶’-공예의 시작이자 끝인,
문제는 우리가 미술과 공예라고 하는 경계 사이에서 방황하고 실천적인 방향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동안, 공예현장에선 그 궁극 목적인 소중한 ‘삶’이 극심하게 황폐해져 간다는데에 있다. 사실, 공예에서 무엇보다도 훨씬 더 근본적이고 진정한 이야기거리는 실용성의 문제이다. 공예미의 존재론적인 토대는 유용성에 있다.
단지, 과연 실용성이라는 개념이 함축하는 의미가 그렇게 자명하고 명료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과제로 남을 뿐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삶’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공예의 영역에 남으려 할 경우 그 누구든 다양하고 심오한 여러 층의 ‘삶’의 체험과 표현과 해석에 충실하게 종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공예인 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삶의 철학자이다. ‘삶’은 공예의 시작이자 끝이며, 원인이자 궁극목적이다. 그 출생지이자 귀환처이다. ‘삶’은 또 다른 삶, 공예를 낳는 원천이다. 해명을 기다리는 목적이고, 가치이고, 역사이고, 의미이고, 구조이고, 자유이다.

나날의 생활속에서 우리의 경험을 끊임없이 생성시키고 통합시키는 ‘삶의 세계’나 ‘일상생활의 구조’는 후설(E. Husserl)이 일컫듯이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자연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에 의해 간단히 지각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통상적인 인습이나 문화적 전통에 의탁해 경험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날이 합리성을 좇아 출몰하는 공업생산품이나 전통도자기의 반복된 재현이 실용기라는 외양적 형식만으로 ‘삶’을 축복하는 공예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땐 상투적인 형식만이 ‘삶’을 지배한다. ‘지금여기에’ 있어야 할 ‘삶’의 현재성이 누락되거나 ‘삶’의 지속성과 영원성은 잃어지고 만다. 때때로 그것들이 삶을 축복하기보다는 배반하는 것은 마치 적지 않은 오브제 작품들이 예술을 축복하기 보다 예술을 배반하는 경우와 다르 바 없다. 예술에서 상투성이 허락되지 않듯이 공예에서도 삶에 대한 상투적 접근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 ‘생활세계 Lebens-welt’의 현실성의 양태를 꿰뚫으려는 나날의 관심 속에 공예정신은 우리의 ‘삶’ 한가운데에서 스스로를 체험하고 객관화하고 이해하며 성숙해 가는 것이다. 그 ‘삶’의 현실성의 양태는 매일의 식탁위를 이끌어 가는 음식들의 맛이나 기호일 수도 있고, 거기에서 어디론가 흘러가게 마련인 모종의 코드의 대화일 수도 있다. 또 때로는 거시적이고도 총체적인 사회구성체의 성격이나 생산수단과 양식, 유통 그리고 각종 제도들일 수도 있다. 사실 대상화된 공예가 우리의 삶을 축복하기 어렵듯이 이식된 서구공예는 우리의 삶 자체에 녹아들기에는 적지 않은 한계를 갖는다. 공예는 삶과 동체가 되었을 때 진정한 것이 될 수 있다.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이 늘 빠지는 함정이지만 공예문제는 결코 교실 안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현실과 시대정신이 결락된 옛 것으로의 회귀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제 위치는 우리의 ‘생활세계’ 한 가운데이다. 역사, 가치, 목적, 구조가 총체적으로 연관되는 자유를 향한 ‘삶’ 한 가운데에 있다.

(1997년 7월 미술세계의 ‘공예특집’ 글)
이인범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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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전용일 교수 홈페이지에서 갈무리

글쓴이

최 윤호

Independent Researcher & Writer in Design +++ Visit my PROFILE page to find out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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