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소중한 연금술사들 _ 전용일

알케미스츠 ALCHEMISTS

우리 시대, 연금술사는
‘물질을 자기 믿음에 따라 다루는 자’,
‘물질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자’,
‘물질의 차원을 격상시킬수 있는 자’를 상징한다.

1.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연금술alchemy은 인간의 정신세계와 물질적 과학세계가 결합된 것이었다. 이것은 고대 화학기술, 이집트의 야금(冶金)술, 그리이스 철학의 원소(元素)사상 등 원시과학의 집합이면서 동시에 중동의 신비주의, 그리이스 철학, 점성술등이 결합된 인간 정신의 발현이었다.

인간과 물질의 관계를 규명하려했던 알케미스트들은 모든 물질은 정제를 통해 하나의 근원물질materia prima로 환원되며 여기에 다른 속성을 부여하면 별개의 물질로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 변형을 통해 귀금속이나 불로장수약의 창제도 가능하다고 가정했다. 한편, 물질변환의 시도를 하나의 상징으로 삼으며 신앙활동을 하기도 했던 알케미스트들은 구도생활를 통해 완전한 인간성을 구현하고자 했다.

천년동안 이어진 이들의 노력은 끝내 물질변형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인간과 자연(즉, 우주)의 관계를 추궁했던 철학의 한 국면을 형성하였으며, 금속가공술을 비롯한 각종 과학의 발달, 특히 근대 화학의 초석을 이루어 후세에게 물려주는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연금술이 종언을 고하는 18세기는 인간의 정신세계와 물질의 과학세계는 서로 갈라서서 줄달음질을 시작한 시기였다.

2.
‘예술과 기술’의 저자인 L. 멈포드는 인간의 두가지 위대한 능력인 상징능력과 과학능력이 역사를 만들어왔다고 했다. 상징능력은 근대까지 우위에서 인간을 지배했다. 간단한 도구를 만들었던 시기에 이미 인류는 고도의 정교한 언어체계과 의미소통을 위한 상징물, 예술품을 생산했다. 도구제작자 이전에 인간은 이미지제작자요, 언어제작자요, 꿈꾸는 자요, 예술가였다.

현명한 인류는 그러나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사고나 마음으로도 어쩔수 없는 자연계의 이치, 규칙성이 주변환경과 우주를 지배하고 있으며, 인간은 겸허하게 자기배제의 자세를 가지고 보다 큰 환경의 비인격적인 특성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은 이와 타협하며 결국 그것을 조정하는 이치를 발견해 나갔다.
과학에의 성취는 인간의 상징능력을 보조하는 수준에서 점차 대등한 관계로 균형을 이루었고 인간에게 균형감과 전체성을 제공하면서 문명을 이루도록 했다.

그러나 근대 이후 과학의 분화, 미분적인 탐구는 인간을 둘러쌌던 유기성을 서서히 해체했다. 기계문명은 인간의 정신을 점차 압도했으며 삶의 편리와 효용성을 가져다 준 대신 도시화와 인간 소외, 환경 파괴와 에너지 고갈이라는 값을 요구했다. 경쟁적 무기개발은 전쟁과 대량학살로도 이어졌다.

기계문명은 어느 새 그 조정자인 인간까지도 위협하는 거인이 되어버렸다. 한편, 파편화된 현대의 예술은 유래없는 허무주의, 가학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고, 상업주의, 선정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현대인들의 눈과 귀를 뒤덮은 각종 이미지, 매스 미디어, 가상 현실의 세계도 인간의 실존적인 삶의 질이나 의식주의 물질환경에 대한 개선과는 다른 무관하게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소통과 유대, 정신세계의 고양이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이미 과거의 용어가 된 것일까? 오랜 기간동안 상부상조하던 인간의 두 능력, 그 균형있는 동반시대로의 회기는 무의미해진 일일까? 인간의 성찰에 근거하는 물질 세계, 그리고 의식주 삶과 유리되지 않은 정신세계, 우리 시대에 이들의 통합과 균형을 보여주는 실천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걸까?

3.
공예는 가장 자유로운 인간의 정신세계와 가장 구체적인 물질세계를 연결하는 일이다. 그것은 머리를 하늘에 두고 두 발로 땅을 딛고선 인간의 모습과 같다. 공예가는 자유로운 몽상가이며 투철한 장인이며 우리의 삶을 지켜보고 개선해 나가는 실천가이다. 공예는 의식주의 실존적 삶 속에서 미적 체험을 가능케하며, 개인의 감수성과 재료의 물성과 기술의 숙련성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예술이다.

공예작업은 한 개인이 제작의 전과정에 관여함으로써 본래 통합적 인격체인 인간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는 분업화로 야기된 노동에서의 기쁨의 박탈과 인간소외 현상을 치유한다. 공예는 가장 본능적인 표현욕구의 발현이기도하며 또한 인간의 사고를 진술할 수 있는 발언의 도구로도 사용된다.

오늘 이 땅의 환경은 공예를 부른다. 폐쇄적 우월주의와 개념미술에 경도된 한국의 현대 미술에 사회적 균형 감각, 물성物性과 기능적 체험으로부터의 미적 가치를 환기하고 접목할 수 있는 것이 공예이다.

자본주의와 기업적 구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패권적 세계화, 디자인 고유영역의 해체, 소비 취향의 다변화 앞에 경직되어 있는 한국의 산업디자인에 개별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 전통과 지역성을 부가하면서 돌파구를 제공할 수 있는 것도 공예이다.

이미지의 범람과 광고의 호도, 가상세계의 와중에 있는 현대인들에게 현실공간의 구체성, 실체로서의 물질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일깨울 수 있는것도 공예이다. 세계적인 문화획일주의를 현대사회의 지나친 소비 상업주의문화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두게하는 반성적 계기도 제공할 수 있는 것도 공예이다.

21세기를 시작하는 지금, 이 땅에서 연금술사라는 이름을 되새김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역사의 승리자가 아니었던 이 ‘유사과학자들’로부터 우리는 인간의 의지와 정신으로서 물질을 지배하고 그 차원을 격상시키려고 했던 노력, 천년을 이어왔던 그 구도적인 믿음을 기리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 알케미스츠는 물질을 자기 믿음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그 차원을 격상시킬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들을 말한다. 그것은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조화롭게 다룰 수 있는 오늘 이 땅의 소중한 공예가들을 부르는 이름이다.

글/전용일
(2000년 알케미스츠 창립전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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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전용일 교수 홈페이지에서 갈무리

글쓴이

Yoonho Choi

independent researcher in design, media, and locality & working as a technology evangelist in both design and media indu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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