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는 인도음식이 없다.

한국의 여행 자유화 이후 많은 학생들과 여행자들이 해마다 세계의 여러 곳들을 방문하고 있다. 불과 수년전만 해도 6-7개월을 웃도는 장기여행자들은 그리 흔하지 않았으나 이젠 새까만 얼굴로 곳곳을 활보하는 한국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음식 또한 문화

그 나라의 문화를 여행자의 입장에서 느끼고 이해하며 견문을 넓히는 것은 여행 중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점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각 나라의 음식을 접하는 것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인도에는 인도음식이 없다?

인도는 엄청난 문화적 역사적 자원과 특수성으로 세계의 여러 배낭 여행자들을 불러모았다. 하지만 이제 인도에서 인도음식을 먹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식당의 메뉴를 가득 채우는 것은 순전히 여행자들을 위해 개발(?)된 음식들이다. chawmein(쵸우면), toast with jam(검게 탄 빵과 쨈), fried rice(볶음밥)…. 메뉴를 보면 중국식, 양식, 일식, 섞어찌개식에 이르기까지 종류를 헤아리기 힘든 이른바 continental 메뉴들을 쉽게 만나게 된다.

물론 거리와 도시 구석의 우중충한 골목마다에는 현지인들을 위한 식당들이 즐비하게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저 잠깐 지나치는 여행자들이 그런 음식을 접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그 반면, 여행지 숙소 주변의 이른바 ‘투어리스트 레스토랑’들은 너도 나도 여행자들의 입맛을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실제로 바라나시라는 유명한 힌두교 성지에서 한국인들은 삼계탕, 닭도리탕, 라면, 백숙 등을 먹을 수 있다. 때로는 그런 한국인용 메뉴들을 보며 ‘우리나라의 국력이 강해졌구나”라고 하는 분(?)들도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다. 중요한 점은 이런 음식을 비롯한 여행자들의 욕구들이 점점 유명한 여행지들을 ‘여행하기 안좋은 곳’으로 변모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닭고기의 씨가 말라가는 히말라야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인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유명한 트레킹 코스인 네팔의 랑탕 히말라야의 한 마을에는 한국의 KBS라는 유명 방송사에서, 그것도 헬기를 몰고 다수의 촬영진들이 올라왔던 적이 있는데 날마다 많은 수의 인원들이 삼계탕을 만들어먹느라 그들이 철수한 후에는 마을의 닭이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발췌:히말라야통신)

실제로 트레킹을 즐기는 한국인들이 네팔 고유의 닭장을 통째로 포터의 등에 지도록 하고 산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목격되기도 한다.

한국 식당들의 전장터 카트만두

카트만두에서는 한국 식당들이 경쟁적으로 생겨나기도 하는데 그 식당들은 한 식당에서 일하던 사람이 독립해서 다시 식당을 차리는 경우가 많아 서로 경쟁하며 커가기보다는 한 곳이 생기면 한 곳이 망하는 식이다.

실제로 만났던 S라는 신장개업 식당의 사장은 1년 전 인근의 K라는 식당에서 만나 이미 구면인 사람이었다. 이런 한국식당들은 거의 한국인만을 위주로 운영을 하는 이유로 수지가 맞지 않아 1-2년을 못넘기고 문을 닫기도 한다.

여행 이기주의

농촌에서 양계장을 한다는 일본인 청년 마사히로는 네팔과 인도를 여행하며 접한 거리의 쓰레기들, 산업쓰레기가 없었던 옛날에 비해 마구마구 쌓여가는 음료수병과 비닐 프라스틱 등의 처치곤란한 쓰레기를 보며 “이 쓰레기들은 정말 심각한 네팔의 문제야…”라고 하면서도 한손에는 코카콜라가 담긴 페트병을 놓는 일이 없었다.

해마다 거리에는 인터넷까페가 늘어나고 여행자를 위한 시설들이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 마치 앞집에 놀러가듯 파란눈의 아이가 아빠손 엄마손 잡고 그 더러운 골목을 이리저리 똥을 피해가며 바삐도 걸어간다.

여행자들의 욕구에 의해 곳곳에 남겨지는 조그만 것들 하나 하나가 급기야는 현지인들의 환경과 생활을, 그리고 곳곳의 아름다움 자체를 훼손하고 왜곡시키는 이유가 되지는 않을지 필자 또한 여행중 이면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001/05/31 오후 9:22
ⓒ 2001 OhmyNews

글쓴이

Yoonho Choi

independent researcher in design, media, and locality & working as a technology evangelist in both design and media indu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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