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정리 대작전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어찌되었건 하나하나 준비하던 것들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인 듯 하다.

2003년 초, 마지막 정규 직장이었던 얼리어답터를, 그것도 완전한 나의 부족함으로 나온 이후가 제일 황당했던 때였다.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경험은 그 이전에도 많았었지만 그것이 벽으로 느껴진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뭐, 물론 고등학교 때 성적이 시원찮게 변했을 때에도 만만치 않았었지만 그것이 그다지 벽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별로 높은 성적을 내고 싶지 않았었던 것이 아닐까.

아무튼 그 부족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좋은 ‘글’을 써내기 위해 필요한 지혜와 지식이었는데, 나름대로 내 ‘생각’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완벽한 오산이었다. 키보드를 두드릴 손은 있지만 그 손을 움직일 머리가 없었던 것이다. 어떤 불만이 가치를 가지는 건 제시될 대안을 통해 그 상황이 나아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누구나 알듯이. 그렇다면 어떤 것이 쉬울까? 불만을 말하는 것과 대안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일들 중에서 말이다. 분명히 나는 불만과 대안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믿었거나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정말 ‘몸’이 안따라준다는 누구의 말에 동감할 정도로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엔 크나큰 절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_- 여기서 또, 물론.., 그러한 나의 절망이 보통사람이나 혹은 대단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어려움에 비해서 상당히 특별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스스로 힘들어하는 상태라고 하면 옳겠다.

한동안 신문사를 들어가보겠다고 토플공부를 하다가(신문사 들어가려면 250은 너끈히 넘어야 했다..), 이라크전이 터지고 난 후엔 이스라엘이나 중동권의 저널리즘학교를 도전해볼 생각도 했었다. 저널사진등등.., 얼마 후 무어의 볼링포콜럼바인이라는 우끼는 영화가 나왔는데, 그걸 본 후 나는 저널리즘이나 기자와 관련된 망상을 접게 되었다. 언론이 만능은 아닌것 처럼, 세상에 만능박사나 도깨비 방망이같은 ‘즉효’의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다들 알고 있고 나고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때, 바로 몸으로 알게되었다는 얘기다. 누구 말대로 세상은 정말 요지경 속이다. 무언가 확연히 드러나는 길이 보인다거나, 답이 생겨주기를 바라는 것, 결정적인 절대진리를 일깨워주는 책이나 사람을 만나게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이치나 순리, 논리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에 지금까지의 시간을 소비했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일까.

확실히 앞으로 할 일을 2003년 당시의 생각에 기초하여 판단하기는 이제 무리가 있다. 먼저 접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그들의 대응이 어떠했을까, 그들은 디자인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지, 또는 부여하려고 시도하는지 살펴보고 싶다. 대충이나마 더욱 구체적인 할 일들을 생각해두고 있지만, 이런 일들, 특히 살아보지 않은 곳에서 생길 일들에 대한 예상은 어긋나기 마련이다. 많이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과 틀려진 또 다른 것을 얻어야만 한다. 결국엔 정해진 길을 따라 예상된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 준비의 과정에서 하나를 얻고, 그것과는 별개의 빗나간 결과를 통해 더욱 중요한 둘을 얻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글쓴이

최 윤호

Independent Researcher & Writer in Design +++ Visit my PROFILE page to find out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