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곡이 23세 때 과거에 장원한 논문

물음

하늘의 도를 알기 어렵고 또한 말하기 어렵다. 해와 달이 하늘에 있어, 한번은 낮이 되고 한번은 밤이 되며, 더디고 빠른 것이 있는 것은 누가 그렇게 하는 것인가. 혹 해와 달이 함께 나와 때로 일식과 월식이 생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다섯 별(五星 : 水 ·火 ·金 ·木 ·土 다섯 별)은 씨(緯)가 되고, 뭇 별은 날(經)이 되는 것을 또한 자세히 말할 수 있겠는가. 상서로운 별(景星)은 어느 때에 나타나며, 상서롭지 못한 혜성慧星이 생기는 것은 어떤 시대에 있는 것인가. 혹은 말하기를 만물의 정기가 위로 올라가 뭇 별이 된다는데, 이 말은 또한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바람이 일어나는 것은 어느 곳에서 시작해서 어느 곳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혹은 불어도 나뭇가지가 울리지 않고 혹은 나무를 꺾고 집을 쓰러뜨려 일어나며, 흩어져 다섯 가지 빛깔로 되는 것은 어떤 감응에서인가. 그것이 혹은 연기 같고 혹은 아닌 것같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은 어째서인가. 안개란 어떤 기운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것이 붉게도 되고 푸르게도 되는 것은 어떤 징조인가. 혹은 누른 안개가 사방을 덮고, 혹은 큰 안개로 낮이 어두운 것은 또 어째서인가. 우뢰와 벼락은 누가 이것을 주장하며, 그 빛이 번쩍번쩍하고 그 소리가 우렁우렁한 것은 어째서인가. 혹은 사람과 물건이 벼락을 맞는 것은 또한 무슨 이치인가. 서리는 풀을 죽이고 이슬은 만물을 적시는데, 그것이 서리가 되고 이슬이 되는 까닭을 말할 수 있겠는가. 남월南越은 따뜻한 지방이라 6월엔 서리가 내린 것은 심한 괴변이다. 당시의 일을 자세히 말할 수 있겠는가. 비란 것은 구름으로부터 내리는 것인데, 혹 짙은 구름이 끼어 있어도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신농씨神農氏 때에는 비를 바라면 비가 오는 태평한 세상이라 서른여섯 차례 비가 왔다는데, 하늘의 도道도 또한 사사로이 후하게 해주는 일이 있는가. 혹 군사를 일으키면 비가 오고, 혹 옥사獄事를 결정하면 비가 오는 것은 또한 어째서인가. 초목의 묶은 잎이 다섯인데, 눈꽃만이 홀로 여섯인 것은 어째서인가. 눈에 눕고(臥雪 : 후한 원안袁安의 고사. 눈이 길로 쌓였을 때 낙양령洛陽令이 지나며 보니 원안袁安의 집 앞만이 눈을 치지 않은 채 있었다. 얼어 죽었는가 하고 사람을 시켜 눈을 치우고 들어가 보니 방 안에 누워 있었다 한다), 눈에 서고(立雪 : 제자가 선생을 존경하는 뜻으로 쓰이는 말. 북송 때 유명游酩과 양시楊時가 정이천程伊川을 모시고 있었는데 이천伊川이 돌아가라는 말이 있을 때까지 서 있다가 막상 문 밖을 나와 보니 그 사이 눈이 한 자나 쌓여 있었다 한다), 손을 맞이하고(迎賓 : 당나라 왕원빈王元賓이 큰 눈이 올 때마다 집 앞의 눈을 치고 손님을 맞이했다는 고사), 친구를 찾은(訪友 : 진晉나라 왕자 유가 산음山陰에 살 때, 큰 눈이 내리는 날 밤, 흥에 겨워 친구를 찾아갔다가 그 집 앞에 다다르자 흥이 그만 식어버려 되돌아갔다는 고사) 일을 또한 소상히 말할 수 있겠는가. 우박은 서리도 아니고 눈도 아닌데 무슨 기운이 뭉친 것인가. 혹은 말머리만하고 혹은 달걀만 하여 사람과 새 짐승들을 죽였다는데, 또한 어느 시대에 있었던 일인가. 천지의 만상萬象에 대해 각각 그 기운을 두어 이루어진 것인가, 아니면 한 기운이 흘러 흩어져서 모든 다른 것으로 된 것인가. 혹 떳떳함에 어긋나는 것은 곧 하늘 기운이 잘못된 것인가. 사람의 일이 잘못된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해와 달이 엷어지고 먹히고 하는 일이 없고 지루한 비가 없어, 각각 그 차례를 따라 마침내 하늘과 땅이 제자리를 지키고 만물을 길러내는데 이르게 되는 것은 그 도가 어디에 있는가. 여러 선비들은 경전과 사서史書에 두루 통해 있어 반드시 능히 이를 말할 사람이 있을 것이니 각각 마음을 다하여 대답하라.

대답

하늘이 하는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며, 그 이치는 지극히 미묘하고 그 현상은 지극히 드러나 있다 하는데, 이 이론을 아는 사람은 함께 하늘의 도를 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집사執事 선생께선 지극히 미묘하고 지극히 드러난 도로써 물음의 내용을 삼아 궁리窮理와 격물格物의 설을 듣고자 하시니, 진실로 하늘과 사람을 배우고 연구한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능히 함께 이를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평소 선각자에게 들은 바로써, 밝게 물으신 것을 만의 하나라도 대답하고자 합니다.

삼가 이르노니, 만화萬化의 근본은 한 음양陰陽뿐입니다. 이 기운(氣)이 움직이면 양陽이 되고, 고요히 있으면 음陰이 됩니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해지는 것은 기운이요, 움직이게 하고 고요하게 하는 것은 이치(里)입니다. 무릇 하늘과 땅 사이의 형상이 있는 것은, 혹은 오행五行의 바른 기운을 받고, 혹은 천지의 어그러진 기운을 받으며, 혹은 음과 양이 서로 부딪치는 데서 생겨나고, 혹은 두 기운의 발산에서 생겨납니다.

이런 까닭에 해와 달과 별들이 하늘에 달려 있고 비와 눈과 서리와 이슬이 땅에 내리며, 바람과 구름이 일어나고, 우뢰와 번개가 생기는 것이 이 기운이 아닌 것이 없고, 그것이 하늘에 걸려 있게 되는 것과, 그것이 땅에 내리게 되는 것과, 바람과 구름이 일어나게 되는 것과, 우뢰와 번개가 생기게 되는 것이 이 이치 아닌 것이 없습니다.

두 기운이 참으로 조화되면 저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은 그 절도를 잃지 않고 땅에, 내리는 것은 반드시 그 때를 따라, 바람과 구름과 우뢰와 번개가 다 화한 기운 속에 있을 것이니, 이것은 이치의 떳떳한 것입니다. 두 기운이 조화되지 못하면 그 행하는 것이 절도를 잃고 그 나오는 것이 때를 잃어, 바람과 구름과 우뢰와 번개가 다 어그러진 기운에서 생기게 되나니, 이것은 이치의 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천지의 마음인지라.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도 또한 바르게 되고 사람의 기운이 순하면 천지의 기운도 또한 순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치의 떳떳함과 이치의 변함을 한결같이 하늘의 도에만 맡길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흥몽(鴻蒙 : 渾沌)이 처음으로 갈라져, 해와 달이 번갈아 밝으니, 해는 태양太陽의 정기가 되고 달은 태음太陰의 정기가 되었습니다. 양의 정기는 빨리 움직이는지라 하루로서 하늘을 돌고 음의 정기는 더디 움직이는지라 하룻밤에 다 돌지 못합니다. 양이 빠르고 음이 더딘 것은 기운이요, 음이 더디게 되는 것과 양이 빠르게 되는 것은 이치입니다. 저는 그것을 누가 그렇게 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해는 임금의 상징이요 달은 신하의 상징입니다. 그 가는 길을 같이하고 그 모이는 도度를 같이 하기 때문에, 달이 해를 가리면 일식日蝕이 되고, 해가 달을 가리면 월식月蝕이 됩니다. 저 달이 희미한 것은 오히려 변이 되지 않지만 이 해가 희미한 것은, 음이 성하고 양이 약하며 아래가 위를 업신여기고 신하가 임금을 거역하는 형상이 됩니다. 더구나 두 해가 함께 나오고 두 달이 함께 나타나는 것은, 그것이 비상한 변괴로 모두 어그러진 기운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일찍이 옛날 일을 찾아보니 재난과 이변은 덕을 닦은 다스려진 세상에는 나타나지 않고 일식과 같은 변괴는 모두 말세의 쇠한 정치에만 나타났으니, 하늘과 사람이 서로 함께 하는 관계를 곧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저 하늘의 파랑은 기운이 쌓인 것으로 정말 색은 아닙니다. 참으로 별의 찬란한 이치를 말할 수 없으면 천기天機의 운행을 이미 밝혀낼 수 없을 것입니다. 저 밝게 반짝이며 각각 자리와 차례가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다 원기元氣의 운행 아닌 것이 없습니다.

뭇 별은 하늘을 따라 다니며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날(經)이라 말하고 다섯별은 때를 따라 각각 나타나며 하늘을 따라 다니지 않기 때문에 씨(緯)라 말합니다. 하나는 떳떳한 차례가 있는데 하나는 떳떳한 도수가 없습니다. 그 대강을 말하면 하늘은 날이 되고 다섯 별은 씨가 되지만 그 자세한 것을 말하려 하면 한 자쯤 되는 종이에 다 쓸 수 없습니다.

별의 상서는 아무 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거니와 별의 변괴도 또한 아무 때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상서로운 별은 반드시 밝은 시대에 나타나고 요괴스런 혜성은 반드시 쇠한 세상에만 나타납니다. 우순虞舜의 시대가 문명文明해지자 좋은 별이 나타났고, 춘추의 시대가 혼란해지자 혜성이 나타났습니다. 우순 같은 다스림이 그 한 시대만이 아니고, 춘추시대 같은 어지러움이 그 한 시대뿐이 아니니 어떻게 일일이 밝혀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물의 정기가 올라가 뭇 별이 된다고 말하는 따위는, 나는 적이 의심을 가집니다. 별들이 하늘에 있는 것은 오행의 정기로서 자연의 기운입니다. 나는 어떤 물건의 정기가 어떤 별이 되었는지를 모릅니다 여덟 필의 명마(八駿)가 방성房星의 정기가 되고, 부열(傳說 : 殷 고종의 어진 재상)이 열성列星이 되었다 하는데, 이와 같은 종류의 말은 이른바 산과 강과 땅이 그림자를 하늘에 보낸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것은 선비로서 믿을 것이 못됩니다. 별의 기운됨은 속이 텅 비어 엉긴 것으로, 그것이 혹 음기陰氣가 맺히지 못해 혹은 떨어져 돌이 되기도 하고, 떨어져 언덕이 된다는 것을 나는 소자(邵子 : 송나라의 유학자. 소강절邵康節을 말함)의 말에서 보았었으나, 만물의 정기가 별이 된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또 저 하늘과 땅 사이에 차 있는 것은 기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음기가 엉기고 모여있어. 밖에 있는 양기가 들어가지 못하면 돌고 돌아서 바람이 됩니다.
만물의 기운이 비록 ‘간(艮 : 東北方)에서 나와 곤(坤 : 西南方)으로 들어간다’고 말하나, 그 음기가 모이는 것이 일정한 곳이 없는 만큼 양기가 흩어지는 것도 또한 방향이 없습니다. 큰 덩어리(大塊 : 땅덩이. 또는 하늘과 땅 사이의 자연)가 내뿜는 기운이 어떻게 한 방향에만 얽매여 있겠습니까. 동쪽에서 일어나는 것을 기르는 바람이라 하는데, 그것이 동쪽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서쪽에서 일어나는 것을 만물을 죽이는 바람이라 하는데, 그것이 서쪽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탱자나무 굽은 가지에 새가 집을 짓고, 빈 구멍에서 바람이 온다’(송옥宋玉의 풍적風賊에 있는 말) 했으니, 그것이 빈 구멍에서 시작된다 할 수 있겠습니까.

정자程子의 말에 ‘올해의 우뢰는 일어나는 곳에 일어난다’고 했는데. 나 또한 나뭇가지가 흔들거리는 것은, 기운에 부딪혀 일어났다가 기운이 멈추면 그치는 것으로 처음부터 나가고 들어오고 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다스려진 세상에는 음양의 기운이 퍼져 맺히지 않기 때문에 그 흩어지는 것이 반드시 화하여 불어도 나뭇가지를 울리지 않고, 세상의 도의가 이미 쇠하면 음양의 기운이 엉기어 퍼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 흩어지는 것이 반드시 격하여 나무를 꺾고 집을 쓰러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순한 바람은 화하여 흩어지는 것이요, 회오리바람은 격하여 흩어지는 것입니다.

성왕(成王 . 주무왕周武王의 아들)의 한번 잘못된 생각으로 큰 바람이 벼를 쓰러뜨리고, 주공周公의 여러 해 덕화로 바다에 파도가 일지 않았으니 그 기운이 그렇게 한 것은 또한 사람의 한 일에서 온 것입니다.

산천의 기운이 위로 올라가 구름이 되는 것이니 좋고 나쁜 징조를 이로 인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옛 임금은 영대(靈臺 : 문왕文王이 세운 일종의 천문대)를 만들어 운물雲物을 바라보고 그로써 길흉의 징조를 살폈습니다. 대개 좋고 나쁜 일은 갑자기 그날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올 징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름이 희면 반드시 떠나 흩어지는 백성이 있고 구름이 푸르면 반드시 곡식을 해치는 벌레가 있습니다. 검은 구름이 어찌 수재水災의 징조가 아니며, 붉은 구릉이 어찌 전쟁의 징조가 아니겠습니까. 누른 구름은 풍년이 들 징조이니 이것이 곧 기운이 먼저 나타난 것입니다. 저 연기도 아니고 안개도 아니면서 뭉게뭉게 보기 좋게 일어나, 곱게 피어올랐다가 깨끗이 흩어진다면, 홀로 지극히 환한 기운을 얻어 성왕聖王의 상서가 되는 것이니, 그것이 오직 상서구름(虞慶)일 뿐입니다. 참으로 백성의 재물을 넉넉하게 해주고 노여움을 푸는 덕이 없으면 이것이 이르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찌 물과 흙의 가볍고 맑은 기운이 한갓 백의창구(白依蒼拘 : 구름이 흰 옷처럼 보이다가 푸른 개처럼 보이는 것)가 되는 것에 견주겠습니까.

안개란 것은 음기가 새어 나가지 못해, 김이 서려서 된 것입니다. 만물의 음기가 모인 것도 또한 능히 안개를 만들어 냅니다. 다 산천의 해로운 기운인데 그것이 붉으면 병혁兵革이 되고 그것이 푸르면 재앙이 되는 것은 모두 음기가 성해질 징조입니다.

역적 왕망이 천직의 자리에 오르자 누른 안개가 사방을 둘러쌌고, 천보의 난(당 현종 때 안록산의 난) 때에는 큰 안개로 낮이 어두웠으며, 한고조漢高祖가 백등白登에서 포위되었을 때와 문산(文山 : 文天樣)이 시시(柴市 . 북경 북쪽에 있는 지명)에서 죽을 때는 모두 캄캄한 흙비가 내렸습니다.

혹 신하로서 임금을 배반하거나 혹 오랑캐가 중국을 침방하거나 하면, 이같은 일로 다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저 양기가 발산한 뒤에 음기가 양기를 싸서 양기가 나갈 수 없으면 분격하여 우뢰와 번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뢰와 번개가 반드시 봄과 여름에 일어나는데, 이것은 천지의 성난 기운입니다. 빛이 번쩍번쩍하는 것은 양기가 나와 번개가 되는 것이며, 소리가 우렁우렁하는 것은 두 기운이 부딪쳐 우뢰가 되는 것입니다.

옛 선비들이 말하기를 ‘우뢰와 번개는 음양의 바른 기운이다. 혹은 숨은 벌레를 놀라게 하고, 혹은 바르지 못한 것을 친다’고 했는데, 사람도 원래 바르지 못한 기운이 모인 이가 있고, 만물도 바르지 못한 기운이 붙은 것이 있으므로, 바른 기운이 바르지 못한 기운을 치는 것도 또한 그러한 이치 때문입니다.
공자가 심한 우뢰 소리에 반드시 얼굴빛이 변한 것도 참으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마땅히 벼락을 칠 것을 친 것으로는, 상商나라 무을武乙과 노魯나라 이백夷伯의 사당과 같은 것이니, 이런 이치가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어떤 것이 그 권세를 잡고 주장하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파고드는 것에 가까울 것입니다. 또 양기가 펴날 때 이슬이 만물을 적시는 것은 구름 기운이 내리는 것이요, 음기가 성할 때 서리가 풀을 죽이는 것은 이슬이 언 것입니다.

에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갈대는 푸르고 푸른데 횐 이슬이 서리가 된다’고 한 것이 이를 이른 것입니다. 음기가 극성하면 서리가 혹 때를 잃게 됩니다. 위주( 周 : 즉천무후則天武后가 주周라는 국호를 불인 것을 말한다)가 조정에 임하자 음양이 자리가 바뀐지라. 남월南越은 극히 따뜻한 곳인데도 6월에 서리가 내렸습니다. 생각건대 반드시 온 천하가 다 음기의 해로운 기운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무씨(武氏 : 즉천무후)의 일을 말하려면 말이 길어집니다.

비와 이슬은 다 구름에서 나오는데, 젖은 기운이 않은 것은 구름이 되고, 젖은 기운이 적은 것은 이슬이 됩니다. 음과 양이 서로 어울리면 이에 곧 비를 내립니다. 혹 짙은 구름이 비가 되지 않는 것은 위와 아래가 어울리지 못한 때문입니다.

흥범전(洪範傳 : 의 한 편명篇名)에 말하기를 ‘임금이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그 벌은 항상 음하다’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말한 것입니다. 또 양기가 지나치면 가물고 음기가 성하면 물이 집니다. 반드시 음기와 양기가 조화를 이룬 뒤에라야 비 오고 햇볕 나는 것이 때에 맞게 됩니다. 대저 신농씨 같은 거룩함을 가지고, 순박하고 밝게 다스려진 세상에 있으면서, 해를 원하면 해가 나오고 비를 원하면 비가 온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입니다. 거룩한 임금이 백성을 다스리면 하늘과 땅이 서로 화합하여 5일에 한번 바람 불고, 10일에 한번 비가 오는 것도 또한 떳떳한 이치입니다. 이 같은 덕이 있으면 곧 반드시 이 같은 감응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도가 어찌 사사로이 후함이 있겠습니까. 대개 원통한 기운은 가뭄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한 여자가 원한을 품어도 오히려 땅을 타게 만든다 했으니, 무왕이 은나라를 이긴 것은 족히 그로써 천하의 원통한 기운을 녹여 주었을 것이며, 안진경이 옥사를 판결한 것은 족히 그로써 한 지방의 원통한 기운을 사라지게 했을 것이므로 단비가 내린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하물며 태평한 세상은 본래 한 지아비 한 지어미도 그 은택을 입지 않는 사람이 없음이겠습니까. 저 크게 추운 때에 천지가 아무리 이미 닫히고 막혔다 하더라도, 두 기운이 또한 어울리지 않을 수 없는지라 비 기운이 엉기어 눈꽃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은 대개 음기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초목의 꽃은 양기를 받기 때문에 다섯 잎이 나오는 것이 많은데 다섯은 양陽의 수입니다. 눈꽃은 음기를 받은지라 홀로 여섯 잎을 내는데 여섯은 음陰의 수입니다. 이것은 또한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원안袁安이 문을 닫은 것과 구산(龜山 : 양시楊時의 호)이 뜰에 선 것과, 난한의 모임(暖寒之會 : 위 물음에 나온 ‘손을 맞이함’에 나오는 앙원빈의 고사를 가리켜 난한지회라 한다)과, 산음의 흥(山驗之興 : 위에 나온 왕자 유의 고사를 말한다)과 같은 것은, 혹은 고요함을 지키는 즐거움이 있고 혹은 도를 찾는 정성이 있으며 혹은 호사豪舍에서 나오고 혹은 방달放遠에서 나온 것으로, 모두 하늘의 도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니 어찌 오늘날 말할 거리가 되겠습니까.

또 우박이란 것은 거슬린 기운(戾機)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음기가 양기를 협박하기 때문에 그것이 나오면 만물을 해칩니다. 지나간 옛 일을 상고하건대, 큰 것은 말머리만하고 작은 것은 달걀만하여 사람을 상케 하고 짐승을 죽인 일은, 혹은 전란이 심한 세상에 나타나고, 혹은 화를 만드는 임금에게 경계가 되었으니, 우박이 족히 역대의 경계가 된 것은 반드시 일일이 말하지 않더라도 이를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아아, 한 기운이 운화運化하여 흩어져 만 가지 다른 것이 되니, 나눠서 말하면 천지 만상이 각각 독립된 기운이요, 합쳐서 말하면 천지 만상이 다 같은 기운입니다. 오행의 바른 기운이 뭉친 것은 해와 달과 별이 되고, 천지의 거슬린 기운을 받은 것은 흙비와 안개와 우박이 됩니다. 우뢰와 번개와 벼락은 두 기운이 서로 부딪치는 데서 나오고, 바람과 구름과 비와 이슬은 두 기운이 서로 합치는 데서 나옵니다. 그 나누임은 비록 다르지만 그 이치는 하나입니다.

집사께서 편 끝에서 또 가르쳐 말씀하시기를 ‘천지를 제자리에 있게 하고 만물을 기르는 것은, 그 도가 어디로부터 오느냐’ 하셨는데, 저는 이 말에 깊이 느낀 바가 있습니다. 제가 듣건대 ‘마음이 고르면 형체가 고르고, 형체가 고르면 기운이 고르고, 기운이 고르면 천지가 고른 기운에 응한다’고 했습니다.
천지의 기운이 이미 바르면 해와 달이 어찌 엷어지고 먹히는 일이 있고, 별들이 어찌 길을 잃는 일이 있으며, 천지의 기운이 이미 고르면 우뢰와 번개와 벼락이 어찌 그 위엄을 드러내고, 바람과 구름과 서리와 눈이 어찌 그 때를 잃으며, 흙비와 거슬린 기운이 어찌 재앙을 일으키겠습니까.

하늘은 비와 볕과 더위와 추위와 바람을 가지고 모든 것을 생성하고, 임금은 공경과 어짊과 밝음과 꾀함과 거룩함을 가지고 위로 하늘의 도에 응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제 때에 비를 내리는 것은 공경함에 따르는 것이요, 하늘이 때맞추어 추운 것은 꾀함에 응하는 것이며, 때맞게 바람이 부는 것은 거룩함에 응하는 것입니다. 이를 가지고 보면 천지가 자리를 지키고 만물이 발육하는 것이 어제 한 사람의 덕을 닦는 것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사子思가 말하기를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이라야 능히 화化하게 한다’고 하고, 또 말하기를 ‘크게 만물을 발육시켜 높이 하늘에 닿았다’고 했으며,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하늘의 덕과 임금의 도의 요점은 다만 홀로 있을 때를 조심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아아, 지금 우리나라의 동물식물들이 모두 솔개가 하늘에 날고 고기가 못에 뛰노는 자연의 화육에 고무되고 있음이 어찌 성주聖主께서 홀로 삼가시는 데 말미암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컨대 집사께서 천한 사람의 어리석은 말씀을 임금께 올려 주신다면 가난한 선비는 움막 속에서도 남은 한이 없겠습니다.

삼가 대답합니다.

글쓴이

Yoonho Choi

independent researcher in design, media, and locality & working as a technology evangelist in both design and media indu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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