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안토니오 구티에레스의 귀향

Jose Gutierrez

▲ 미군내에서 두번째로 사망한 해병대 소속 호세 안토니오 구티에레스(27) 일병.
ⓒ연합뉴스

남미출신 미군 전사자에게 주어진 ‘미국 시민권’

지난 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로미타의 한 성당에서는 과테말라 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미 해병대원인 호세 안토니오 구티에레스(28)의 장례식이 열렸다. 그는 지난 3월 21일 이라크 남부 움카사르 전투에서 전사했다.

계속…..

과테말라에서 태어난 구티에레스는 8살때 고아가 됐다. 과테말라 내전의 와중에 부모를 잃었던 것이다. 그들 가족은 원래부터 찢어지게 가난했다. 구걸, 도둑질, 매음이 판치는 과테말라 시티의 슬럼가에서 살던 구티에레스는 생존을 위해 누이와 함께 길거리에서 구걸을 해야 했다.

그러나 구티에레스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과테말라와 온두라스에서 거리의 아이들을 돌보던 한 사회복지단체의 도움을 받게 됐다. 여동생은 다른 집에 입양됐다.

구티에레스는 이 단체에서 축구선수로 활동했고 영어도 배웠다. 그는 대학에 가고 싶었고 나중에 건축가로 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난한 과테말라에서, 더구나 고아인 그가 꿈을 이룰 수는 없었다.

구티에레스는 22살이 되던 때 인생의 큰 결심을 했다. 또래의 다른 청소년들이 그렇듯이 미국으로 밀입국하기로 했다.

그는 차를 얻어 타거나 화물열차 짐칸에 몰래 올라타기도 하면서 미국 국경에 이르렀다. 무려 4000㎞에 걸치는 여정이었다. 구티에레스는 결국 리오그란데 강에서 미국 이민국 직원들에게 붙잡혔다.

그러나 그는 붙임성있고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17살이라고 미국 이민국 직원들을 속였다. 구티에레스는 우여곡절 끝에 본국으로 추방되지 않고 한 남미계 가정으로 입양됐다.

미국 생활은 순조로운 듯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 미국 시민권을 얻고 싶었다. 고국에 남아 있는 사랑하는 누이를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소수계 인종이 미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군 입대였다. 마침내 구티에레스는 미 해병대에 입대했다.

새해 초 그는 과테말라 시티에 살고 있는 누이에게 전화를 했다. “잘 지내. 나는 전쟁터로 간다. 신이 우리를 지켜줄 거야. 나는 살아오겠다.” 이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지난주 움카스르 전투에서 가슴에 총탄을 맞았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지난 4월2일 전사한 뒤 1주일만에 그에게 미국 시민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죽어서 진정한 미국인이 된 구티에레스는 미국에 묻히지 않는다. 그의 시신은 전사의 대가로 주어진 미국 시민권을 안고 7년만에 다시 그가 태어났던 과테말라로 돌아갈 예정이다.

/ 김태경 기자 / 오마이뉴스, 연합뉴스

글쓴이

Yoonho Choi

independent researcher in design, media, and locality & working as a technology evangelist in both design and media indu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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