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over-prepared

산소 토치로 철골(=H빔)을 자르는 건설쪽 작업이 있다. 건물을 지을 때 땅을 파 내려가면서 주변 토양의 압력을 버티는 구조를 만드는데 철골로 짠 그릇같은 공간이다. 그 후 지하층을 포함한 지반에 해당하는 거푸집을 만들고 콘크리트를 부어 다 굳으면 바깥에 방수 처리를 한다. 마지막으로 맨 처음 만들었던 철골로 된 “그릇같은” 구조물을 산소 토치(산소와 LPG 가스를 섞어 만든 고압의 불꽃)로 하나씩 잘라내면서 크레인으로 끌어올리고, 동시에 흙을 메꾸는 작업을 하게 된다.

대학 시절 방학 때 이런 용단(용융하여 절단하는) 작업에 투입되는 용접공의 보조로 알바를 해본 적이 있다. 목동 한국통신 사옥 공사. 십여 미터는 족히 되는 길이의 철골 양 끝 부분을 1센치 정도만 남긴 후 크레인에서 내려온 앙카를 연결하고 한쪽씩 마저 잘라낸다. 한쪽을 잘라낸 후 반대편에 손톱만큼만 남은 상태로 매달려 있는 철골의 마지막 부분을 잘라낼 때엔 매우 조심을 해야 한다. 크레인에 매달려있긴 해도 철커덩 하는 굉음을 내면서 요동을 치기도 하기 때문에 운이 없으면 튕겨 나온 철골에 맞아서 크게 다치거나, 높은 곳이라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

그런데 그 시절의 안전 감각이란 이런 거였다. 내가 꽤 무게가 나가는 토치와 가스줄을 들고 삼사층 높이의 철골을 거의 기어서 가느라고 정신이 없었다면, 숙련된 용접공 아저씨는 점심 나절에 사이다컵으로 마신 깡소주에 취기가 오른 상태로 이리 저리 원숭이처럼 하늘 위를 누비곤 했으니까. 어쩔 땐 얼굴이 뻘개진 상태로 무거운 전기용접기를 들고도 그 위를 휘청거리면서 얼마나 잘 걸어다니시던지… 직접 목격을 하진 못했지만, 결국 그 용접공 아저씨도 자르던 철골에 맞아 다쳤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금속공예를 전공한 학교에서도 위험한 게 많았다. 크고 작은 기계와 날카롭고 위험한 도구들. 기본적인 안전 개념을 챙기기 시작한 건 대학원에 들어간 2000년대 이후였던 거 같다. 3학년때 교환학생으로 온 캐나다 친구가 실톱질을 할 때에도 보안경을 쓰는 걸 보고 왜 그러냐고 물을 정도로 많이 한심했다.

아마도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뭐가 달라졌을까 싶기도 하다. 그저 싸고 빠르게 내달려야만 한다는 강박과 불안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더욱 강화된 거 아닌지. 요즘 가장 어이없는 고공 크레인 사고를 보더라도 그렇고. 나도 마찬가지지만 요행으로 피할 수 있었던 위험을 무용담처럼 늘어놓기만 할 뿐이니까.

안전한 환경. 제도와 교육 외에도 어떤 문화적, 사회적 공감대가 없이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일텐데. 공무원의 수보다 대처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도, 대처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공무원의 수를 늘려야 한다는 말도 딱히 결정적인 해답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새해에는 이런 식의 황망한 죽음이 더 이상은 없기를 희망하며.

글쓴이

Yoonho Choi

independent researcher in design, media, and locality & working as a technology evangelist in both design and media industrie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