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날에 맞은 예술

한예종 이론 과정 폐지에 대한 논란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날 선 정치적 공세에 막연한 방어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더 답답하다. 이참에 우리 모두 당해보면 더욱 절실해지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싸움에서 그들이 그 ‘삽’에 맞서 방어에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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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파내줄께!

대충 말해 그 삽 날에 맞은 것은 예술이기보다는 등장한 용어가 지목하고 있듯이 ‘이론가’와 ‘비평가’들 쯤 되겠다. 하지만 그 ‘이론’이 무엇이고 ‘비평’이 무엇인지가 모호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야기의 단초가 된 변희재씨와 진중권의 논쟁이란 것이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적합한 결론에 이르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의 삽질이 그 범위를 예상하기 힘들듯, 니놈 내놈 가릴 것 없이 옴팡 뒤집어 쓰는 건 아닌지.

예술이 취해야 할 가치는 어떤 걸까? 사람들은 예술을 보면서 그것이 그들의 것이라 느낄까? 아니면 그건 아직 또 다른 ‘그들의 놀음’일 뿐이라고 생각할까? 우리가 만나는 예술은 과연 사회적 현실에 근거한 걸까? ‘이론’은 또한 그것을 학문적 관점에서 충실히 해석하고 생산적인 비판활동을 해왔을까? 한예종의 애처로운 싸움이 ‘그들만의 싸움’으로 느껴지는건 왜일까?

권력은 교체되고, 또 그렇게 되었다. 그런 처지에 “너희들 무식해” 정도의 말로 상황이 반전되기를 바라긴 어렵다. 한예종을 ‘자신’이라고 느끼는 분들이라면 이런 이데올로기적 투쟁에 끼게 된 처지가 비정상적이고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회피형 읍소’에 그치지 말고 제대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 싶다.

뜬금 없게도, 종속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 디자인에서 이론과 역사를 읽고 비판적 시각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삽 날이 누구에게 날라갈 지 아무도 모르니까.

글쓴이

Yoonho Choi

independent researcher in design, media, and locality & working as a technology evangelist in both design and media indu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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