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이슈로 난리법석이네요.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는데요, 뭐냐하면, ‘Biased / Unbiased Training’ 입니다. 영국이라고 특별히 배우는 것도 아닌 ‘상대방 입장 훈련’정도의 내용입니다. (특별히 영국과 그리 관련있어보인다는건 아님) 아무튼 그 연습을 한 일주일 내내 주제로 삼아서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복잡한 건 아니구요,

‘공개처형에 반대하냐…마냐’ 등의 웬지 심각한 주제를 설정해놓고 우선 자기 입장을 확실하게 정한 후 세미나를 진행합니다. 막상 세미나에서 발언할 때는 이미 정했던 자신의 원래입장과 정 반대의 입장에서 토론을 진행하게 됩니다. 아이디어로만 생각해보다 직접 해보니 생각외로 흥미진진해졌습니다. 당연히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많은 이해가 뒤따르게 되었구요. 그야말로 ‘남 생각좀해..’라던지, ‘내입장이 되어봐봐.’와 같은 경험이 되는 것이죠. 책 몇권 읽어보면서 진리를 발견할수는 없는 것 처럼, 자신의 생각만 되풀이하면서 갇혀버리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랬습니다.쉬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나를 바라보는 일, 치우치지 않는 일.. 정말 뭔가를 공부하기에 앞서 해결해야 할 작업이란 생각도 들고요.

이곳에 와서 지내는 한국인들, 중국인들, 스페인인들, 대만인들, 일본인들에 이르기까지, 만나본 사람들 나름대로 느끼는 인종적 선입견들도 참 많습니다. 다들 이곳에서 오래들 산다기보다는 잠깐 살다 나갈 사람들이다보니, 생활하다 어떤 문제에 부딛히면 문제의 쟁점을 인종적 차이로 돌리게 되는… 누가 꼭 죽고 다쳐야 인종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인 차별은 차별 당하는 사람조차도 항상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우석씨 관련 내용으로 전국이 난리법석인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없어지기를 바라는 ‘네이버 뉴스’를 꼬박꼬박 살펴보다보니 그렇게 되더군요. -_-, 이런 종류의 ‘모여있는 것 보기’는 편하긴 하지만 정말 위험한 일이죠. 아카이브마 도서관마다도 특유의 시각이 있다면서 조심하면서 신중한 자료찾기를 권하던 어느 상급학생의 말도 생각났습니다.

이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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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집 방 값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밥값이라도 줄여야 하는 신세가 되다보니 이번달을 마지막으로 이사를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몇주전부터 새로 살 집, 아니 ‘방’을 알아봤었는데, 마침 나온 좋은 방을 얻게 되어서 계약을 했고 이번주에는 잠깐이나마 정들었던 이 집을 떠나야 할 듯 합니다.

지금 살고있는 집의 주인아저씨의 성은 Mans Bridge입니다. 이름은 Steve. 뭔가 다리와 연관이 있을듯한데요, 그래서인지 집 앞에는 런던가는 기차가 지나가는 굴다리가 있습니다.

첫 날에 도착해서 처음 알게된 것은 주인아저씨가 부엌에 못들어간다는 사실과, 아주머니가 감자를 참 좋아하시는구나… 하는 거였습니다. 메쉬포테이토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하얀 물체를 보고 당황했던 것이 엇그제인데 이제는 없어서 못먹는 것이 되었습니다. 배고프니 별것이 다 맛있습니다. 후추와 소금만 있다면 세상에 못먹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후추’란 양념에 왜 유럽사람들이 광분했던 건지 조금 알것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아무튼 주인아저씨처럼 저도 부엌의 경계를 넘어본 일이 없습니다.

우리 주인아저씨 스티브는 한국전 때 영국군으로 참전했던 사람입니다. 영국 땅에 와서 생각지도 않던 한국전 참전군인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냥 저절로 수고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땡큐를 연발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이걸 아신다면 윤호가 영국가서 철들었구나 하시겠죠. 누군가는 당연히 전쟁히 필요하다고 하듯, 심각한 고민 없이 전쟁을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내나라에서 생사를 건 경험을 했다는 실제인물을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생각으로야 뭘 못하겠습니까. 그동안 말만 신나게 해왔던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아무튼 주인아저씨가 전쟁을 싫어하는 이유는 정치적인 것도 아니고 경제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은 운 좋게도 살아왔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저세상으로 간 친구들이 참 많다는 겁니다.

아무튼 아저씨와 같이 살면선 돈 얘기도 (물가가 너무 비싸다보니 그렇겠죠.)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영국의 한 노파가 주민세를 안내고 버티다가 감옥에 가게 되자 신문과 뉴스에 그 이야기가 연일 보도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가 가장 절정이었던 듯 합니다. 한국을 나서기 전 들었던 말대로, 사람 손이 간 모든 것들이 참 비쌉니다. 피쉬엔 칩은 피쉬엔 익스펜시브..라고 해야 적당할 듯 하고, 대형 수퍼마켓들은 장보는 사람들로 넘치는 반면에 작은 가게들은 모두 죽어가는 분위깁니다. 이런건 한국보다는 이미 훨씬 진행이 더 된 상태인것같습니다. 지방도시인 이곳에도 수많은 수퍼스토어들이 성업중이니까요.

쎄인즈버리 (정육점으로 시작, 역사가 150년이 넘었다.)
아스다 (최저가가 다 모이는 곳, 몇년 전 미국 월마트가 인수)
테스코 (말 그대로 테스코… )
좀머필드
웨이트로스
코옵

B&Q (청계천같은 곳)
Comet
PCWORLD
등등,, 정말 많습니다.

아저씨는 가디언 대신 선데이미러나 아거스라는 지방지를 즐겨봅니다. 제가 한번은 구경삼아 가디언 일요판을 사간적이 있는데, 아저씨는 ‘이 신문은 비즈니스맨들이 보는거야. 난 워커라서이런건 안봐.’라고 하시더군요. 정말 상반되는 것이, 한국에서는 금기에 속하는 계급에 대한 언급이 이곳에서는 공공연하게 일반적으로 대화속에 많이 포함된다는 겁니다. 아저씨의 말 처럼 말이죠. 한국서도 중산층이나 서민이라는 말들을 하긴 하지만 ‘나 서민이라서 이거 안봐.’라거나 ‘저 학교는 주로 중산층들이 다니는 곳이야.’라는,,, 등의 얘기들을 그냥 하지는 않으니까요.

안그래도 해변가의 눈부신 하얀 절벽(화이트클립) 바로 옆에는 유명한 사립학교가 있습니다. 건물이나 환경이 정말 눈부십니다. 그 학교에 한국의 로열패밀리들이 많다는 얘기를 아저씨에게서 들었습니다. 블레어는 미들클래스이지만 노동당수로서 워킹클라스인 척 하면서 살아가고, 내가 다니는 학교의 한 교수는 자기 집안이 부유한 정치가문이었지만 좌파집안인 탓에 큰 저택에서 살면서도 불을 안피우고 살았다는 등의 약간은 낮선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택에서 살지만 불을 안피우는 좌파운동가라…., 계급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지 않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런 차이에 의한 계급간의 반목과 같은 것을 찾기 힘들다는 것 등등이 저에겐 참 생소합니다.

‘서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있니?라고 저에게 아저씨가 물었을 때, 전 그냥 열심히 살고있는 아저씨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 약간 부정적으로 답했습니다. ‘잘들 살지만 아직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다’고 말이죠. 솔직하게 생각해본다면 지금 살고있는 이곳 또한 달동네여서인지, 예전의 월곡동 사람들처럼 삽니다. 쪼그만 집에 오래된 가구들, 모든 것들이 너무 오래 된지라 거의 매주마다 이것 저것 직접 수리하면서 살아갑니다. 수리공을 부르는 건 엄두도 못내지요.

수퍼스토어의 다양성

hochan.NET

이윤에 대한 동기는 가게들이 더 커지는 경향을 만든다. 그러나 가게들이 더 커질수록 서비스는 개인적이지 않게 되고, 다른 작은 가게들은 살아남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머지않아, 그런 경제체제 안에 있는 가게들은 거의 완전히 체인점이나 프랜차이즈에 의해 운영된다.

타인의 욕구에 정확히 맞춰진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건 오만인 듯 싶습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대다수 서비이쓰!들의 목표이긴 하지만요.

예를 들어, 어떤 동네에서 수많던 예전의 가게들이 없어지면서 하나의 슈퍼스토어로 통합된 경우에 그 서비스가 가진 다양함의 절대량은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확인해봐야겠네요..

개때이즘이라..

‘명랑노트’ 필!이 말하다! 블로그 폭파. 개떼이즘의 승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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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는 가끔가다 보여주는 일기장같은거죠.., 복잡한 이바구는 트랙백을 이용한다는 것에 일백퍼센트 동의합니다. 여러모로 보아서 블로그의 퍼블리슁 특성에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국적불명의 덩어리로 변해버리는 게시판 형식의 글모둠보다는 글쓴이에게 개별적인 책임의 의미를 가지게 하는데에도 의미가 있구요.

황우석박사, 한류, 몰아치기

걸리적 거리던 몇가지를 꼽아보자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별 이유없는 몰아치기가 참 많다는거다. 광기? 라고 할 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황우석박사의 줄기세포 연구는 그 도덕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우리나라 사람들도 과학연구를 참 잘들 하는구나..’싶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거야 어떤 국적을 가지고 한반도에 살던 사람으로서 처음 생각한 동물적인 것이었다. 이후 논쟁이 벌어졌던 윤리적 문제점들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고, 그만큼이나 당장 막막할 환자들의 의견도 쉽게 무시할 내용은 아닌 듯 싶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들 하는 그 몰아주기의 결과란 어떤 것일까. 언론과 정부까지 나서서 그 연구를 무한정 지원하기 시작했을 때는 역시나 또…. 일이 벌어지는구나 싶었다. 과학자의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나 그 연구성과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것이나 이미 정해진 규칙과 공간에서 이뤄져야 한다. 누구 한 사람이 잘한다고 그때마다 ‘특별한’사례들을 만들어낸다면 한 나라의 조직과 정책은 부서질 수 밖에 없을거다. 그 황우석 박사만큼이나 같은 처지에 있을 수많은 과학자들은 ‘젠장 나는 딸리니까 접어야겠다.’라며 손가락이나 빨라는 것이니까.

이제 뉴스마다 황우석박사의 윤리적 문제를 논하는 분위기가 한창이지만, 더욱 문제는 이미 황우석박사의 연구는 보편적인 방법에 의해 논의되어지고 합의되어질 수 있는 수위를 넘어가버린 걸로 보인다는거다. 순식간에 띄워진 한사람의 과학자를 또한번의 깎아내리기로 무참하게 사살하는 걸 보는 건 참 우울한 일이 될 것 같다. 만약 황우석박사의 사례가 우울하게 마무리되었을 때, 그제서야 “과학자를 다 그렇게 보지 말자!”고 한들 누가 그걸 들어줄까…

한류라는 단어를 볼때에도 마찬가지다. 물론 내가 연예인도 아니도 일반적으로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보다 주류 예술에 가까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나라의 ‘문화’라는 것이 어디 그리 쉽게 뜨고 지고 할 수 있다고 과연 정부는, 언론은 생각하는 건지,,, 한심한 생각이 든다. 미국의 스크린쿼터 압박에는 당연한 반기를 들면서도 주변국에는 우리 문화에 대한 복종을 당연시하는, 그런 이기적 ‘문화 선진화’는 정말 허깨비같은거다.

문화에 ‘선진화 : 후진화’란 것이 말이 되는건가. 그 다른 차이를 찾고 즐기는 것이 ‘문화’란 것, ‘문화적’인 것 아니었나. 우월성을 따져서 1등 문화 되면 그걸로 뭘 할런지 모를 일이다. 문화적 혜택이란 건 돈으로 살 수 있는 자동차가 주는 즐거움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와 함께 잘 섞일 때 그 중에서 우리의 문화적 독특함도 공평하게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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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 뉴스

美 새튼 박사, 황우석 박사와 결별

[연합뉴스 2005-11-13 00:57]

(워싱턴=연합뉴스) 박노황 특파원=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줄기세포 연구자이자 황우석 박사와 1년여 동안 호흡을 맞춰온 피츠버그 대학의 제럴드 새튼 박사가 연구에 사용된 난자 취득 과정의 윤리적 문제를 들어 황 박사가 추진중인 세계 줄기세포 허브 설립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12일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