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딧세이

진중권의 미학_오딧세이 1권의 첫 부분인 ‘가상과 현실’ 요약본 by ssall

글머리

뒤러의 하늘 _ 독일 16C : 두발로 서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오랫동안 인간의 화폭의 역할을 했다. 검은 하늘에 빛나는 별들의 모습에 이야기를 담았다.

피타고라스의 하늘 _ 그리스 5 BC : 피타고라스학파가 신봉한 신비주의적인 오르페우스교는 영혼의 윤회를 믿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물질이 아닌 추상적인 ‘수’의 개념을 그 당시 유행과도 같았던 만물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에 대입했다. 한편으로 오르페우스(하프를 연주하는 그리스신화 등장인물)는 인류 최초의 음악가였는데 피타고라스 교단 은 그런 음악적 시각을 우주관에도 반영했다. 음의 높이는 현 길이의 비례관계로 설명되는데 그런 음간의 수의 비례는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낸다. 마찬가지로 우주의 조화는 곧 아름다운 화음과 같았다.

우리의 하늘 _ 현재 : 우리는 지금 하늘을 바라볼 때 과거의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시각을 가진다. 과거 구한말의 조선국왕이 달맞이 연회를 열었는데 참석한 외국 관원들이 저마다 망원경을 들고 그 구멍을 통해 하늘을 보는 것을 보고 “태양은 역시 맨눈으로 볼 때 아름답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 시기의 조선인들과 개화된 서양인들의 시각의 차이는 지금 우리와 고대인들 간의 차이와 비슷하다.

아무튼 과거의 그런 감각이 아직도 살아있는 부분이 바로 예술의 세계다. 이런 환상이 아직도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원시 예술 _ 가상과 현실 : 과거의 옛 사람들은 현대의 우리와는 상대적으로 실감나게 가상과 현실을 인식했다. 그런 마법과도 같았던 예술이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게 되면서 마법의 시대는 종말을 고한다.

1. 벌거벗은 눈

구석기인들, 그들은 아는 대로 그리지 않고 보이는 대로 그렸다. 그야말로 벌거벗은 눈만으로 그린 그들의 자연주의적인 시각은 (현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지적 능력이었기에 가능했다. 개념적 사유가 시지각을 지배할 정도로 발달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신석기의 농경생활은 인간의 사유능력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런 일들은 그 규모를 떠나 ‘추상’의 개념의 동반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추상적, (이집트에서의)기하학적 사유는 곧 자연에 대한 지배를 의미하고 그에 대한 인간의 신뢰는 더욱 굳건해져갔다. 벌거벗은 눈에서 개념의 지배를 받는 눈이 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아는 대로 묘사하게 되며 점점 더 불변적이고 일반적인 특징만을 추상한 기하학적 양식이 발달하게 된다.

구석기의 자연주의적 양식과 신석기의 기하학적 양식은 오랫동안 미술사를 지배하는 하나의 대립으로서 지금까지도 존재한다. (현존하는 미개부족과는 다른 부시맨의 구석기적 자연주의 양식)

2. 유희, 노동, 주술

감상을 위한 예술의 전통은 백년도 안된다. 르네상스 때조차 예술은 뚜렷한 실용적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종교미술) 동굴 속에서 발견되는 그림들은 어떤 목적이 담겨있는가?

_유희

유희기원설에서는 원시예술을 ‘남아도는 에너지를 방출하는 통로’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그럴 정도로 그 구석기인들의 수렵을 통한 삶이 편안했겠는가?

_노동

예술은 노동에서 비롯되었다. 피리는 뿔에서 나오고 노래는 힘들 때 부른다. 살아남기 위해서 절박한 때에 행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렵무를 춘다고 정말 짐승이 더 많이 잡혔겠나?

_주술

동굴 벽화에는 창이나 도끼로 가격당한 짐승의 그림이 있다. 가상과 현실을 동일시했던 그들은 그런 주술적 소망을 그림에 직접 표시했는데 그런 행위가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그것이 실제로 실용적인 학습과 정보전달의 효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그런 행위와 결과들 사이에서 어떤 논리적인 연관성을 발견하지는 못했는데 이런 상황은 예술을 주술과 동일시하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예술은 주술과 같았고 당시로서는 유일한 지식체계였던 것이다.

3. 황금가지

_인간들 신을 살해하다

그들은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다. 사계절의 순조로운 운행을 위해 자연현상을 주술로 재현했다. 일정한 규칙을 통해 뽑은 ‘신이자 인간이다 사제이자….수목의 정령..’인 그놈의 상태가 안 좋아질 때면 그의 목을 베고 새로운 신을 만들었다. 신을 처음 죽인건 니체가 아니다.

_비극의 탄생

그런 신의 죽음 앞에서 정작 신들은 자신을 보호해야만 했다. 그래서 숲속의 이야기는 설명된다.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아들을 찢어 죽인 것이나 디오니소스 축제, 그리고 유럽에서 행해졌던 카니발은 이런 신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그들은 신의 죽음으로 인해 신의 영험함을 얻을 수 있었고 기뻐했던 것이다. 그 뒤로는 동물들이 신의 죽음을 대신하게 된다. 고대 비극은 ‘양’과 어원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탄생했다.

_신상의 탄생

집시들의 농경에서 짚단의 목을 베는 풍습은 과거 신석기 때 사람의 목을 베었던 것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그 사람의 목은 이후엔 인형의 목으로 대치되었는데 화려한 파르테논의 대리석 신상들도 이런 것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닐까?

(인도의 종교행사 _ 살아있는 양의 목을 자르고 그 피를 아이들과 자신의 이마에 바른다.)

?에셔의 세계 1

칼레이도치클루스란 kalos(아름다움) + eidos(형상) + zyklus(원), 곧 ‘아름다운 형상으로 이루어진 고리’란 뜻이다. 이 고리는 안에서 밖으로 뒤집을 수가 있는데 이를 반복할 때마다, 예를 들어 정삼각형으로 이루어진 정사면체라면 정사면체의 네 면이 조합을 이루며 그때마다 다른 모습을 창조해 낸다. (미학 오디세이 p.134)

4. 피그말리온

_예술, 종교, 철학

초기의 주술은 순기능이 많았지만 수없이 생겨나는 제약들은 인류에게 새로운 시도를 요구했다. 주술로 소망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달은 인간은 이제 신을 위대한 존재로 만들어 이 위대한 존재의 권능에 매달리게 된다. 이렇게 종교가 발생했다. 신은 위대해지고 인간은 더없이 초라해진다. 신을 죽이던 인간은 이제 신 아래에서 살고 죽는다.

주술이나 신화가 사물들 사이의 비유적 연관을 설정하는 데 반해 철학자들은 비유를 제거하고 사물들의 ‘진짜’ 연관을 알기위해 노력했다. 이것이 철학을 낳았다. 과거에 주술은 사물에 영혼을 부여했지만 (과거엔 철학이 과학을 포함했으나) 우리의 과학은 영혼까지도 사물화한다.

예술, 주술적 기능에서 풀려난 그것은 그야말로 ‘주술’이 아닌 것이 된다. 그래서 예술은 현실과 가상이 분리되는 순간에 탄생한다. 디오니소스의 제사의식은 이제 가상이 되어 연극이 되고 예술이 된다.

이후의 시대마다 이런 세 가지중 하나가 힘을 발휘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는 신의 힘을, 중세는 종교로서 과학과 예술을 가지고 놀았으며 현대는 과학의 오만함으로 이루어져있다.

_아름다운 가상

예술이 가짜라는 플라톤의 미학보다 예술은 그 인생이 더 길었다. 가상이 진리를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예술과 진리와의 연결의 탐색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미학적 테마이다.

_이카루스의 추락

미학사의 중요한 두갈래인 ‘가상’과 ‘진리’라는 개념을 둘러싼 두 가지의 노선이 있다. 바로 플라톤의 ‘예술우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상우선’이다.

어쨌건 예술이 마술이었던 시대는 이제 위와 같이 끝이 나버렸다. 이카루스가 떨어지듯이.

III. 중세예술과 미학 _ 가상을 넘어

중세예술의 특징은 감각세계의 ‘가상’을 포기하고 그 너머의 초월적 세계를 드러내는 데 있다.
에셔의 석판화 중심부에 표현되는 ‘빛‘에 주목할 것! p122

1. 빛과 어둠

_ 일자(一者)와 유출

태초에 근원적인 일자가 있었다. 여기서 밝은 빛이 흘러나와 플라톤의 이데아와 비슷한 정신(nous)이 되고, 거기서 다시 빛이 흘러나와 거대한 세계령(世界靈)을 만든다. 플라톤은 ‘레테의 강’으로 이데아와 감각의 영역을 구분했으나 플로티노스는 이 두 세계를 빛의 유출(존재론)로 연결한다. 한편으로 이 유출과는 상대적인 상승의 기운이 있으니 이것은 인식론과 대응된다. p124

_ 프시케와 에로스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에로스(큐피드),
빛(일자) + 엑스터시> 정신 > 영혼 > 감각세계.. 자연주의..
우리가 어떤 것을 볼 수 있으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그것과 비슷해야 한다. 우리가 감각세계의 아름다움에서 출발해 일자를 볼 수 있게 된다면, 우리 자신을 물질로부터 ‘정화’하여 더 높고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

_ 빛의 상징주의

플로티노스가 보는 미는 균제(부분들 사이의 수적관계)가 아니다. 빛, 정신, 영혼 등은 모두 질적 의미이지 부분이란 개념은 없다는 것. 미란 대상의 속에서 빛나는 질적인 어떤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플로티노스의 이론은 곧 ‘빛의 상징주의’가 된다.

_ 영혼의 거울

예술가의 영혼은 정신세계 속의 ‘원형’을 보고 창작을 한다. 곧 질료에 그 원형을 부여해 아름다운 형태를 만드는 것이며, 작품 속의 아름다움의 근원은 가시적이 아닌 예술가의 내면-정신세계에 있다.

플로티노스는 플라톤과 같이 예술을 이데아와 감각세계의 다음에 놓지 않으며 그 사이로 생각한다. 예술은 우리의 영혼이 감각세계에서 일자로 올라가는 계단인 것. 예술은 영혼의 거울!

페이디아스는 제우스상을 플라톤의 비판과 같이 가시적 모방의 의도로 만든 것이 아닌 ‘제우스가 우리에게 그렇게 보여 지도록 원할만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_ 미와 예술

예술자체 -> 예술가 내면의 심상 -> 예술작품

플로티노스는 미를 사물의 모방이 아닌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봄으로써 그 당시의 고대인들이 예술과 미를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했던 데 반해 미를 예술, 조형예술과 분명히 연관지었다. p127

_ 두라 에우로포스

플로티노스의 예술 – 원근법과 같은 실사의도의 무시
정신은 빛이고 물질은 덩어리이자 어둠이다. 곧 어둠이 없는 빛으로 고유의 색과 세부를 묘사한다. p128 그림

_ 절대자의 신성한 빛

그의 예술론은 페이디아스 p74 와 같은 그리스조각에서 출발하지만 오히려 적수격인 중세의 기독교미학의 핵심이 되어버린다. 비잔틴 예술은 외부세계의 재현을 부정하고 예술가의 내면형식과 그 원형인 정신세계의 아름다움을 담을 것을 주장했다. 비잔틴을 비롯한 중세 서유럽의 예술정신은 바로 기독교적으로 해석된 플로티노스의 정신인 것이었다. ‘가시적인 것 속에서 빛나는 절대자의 신성한 빛!’ p130 그림

2. 아뉴스 데이

_ 교부철학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 찬 성서에서 수미일관한 신학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당면한 큰 문제였다. 기독교를 받아들인 로마의 아우구스티누스는 ‘빛의 철학’을 기독교에 대입시킨다. 정말 비슷한 두 체계 p134

_ 나 여기 있소

단일성, 동등성, 일치, 비례, 조화, 질서.. 등의 아우구스티누스가 강조한 아름다움의 속성은 사실 고대 그리스의 균제미와 같다. 모든 미는 수로 귀착된다.

_ 전체성의 미학

아우구스티누스는 한편으로 추함도 아름다움의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사실 신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했는데 그 속에도 추한 모습은 있을 수 있다는 일종의 변신론과 같다.

_ 상승의 미학

앞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진 모순되는 균제미의 사용은 바로 이중적인 기준으로 설명된다. 감각적 세계와 초감각적 세계는 다른 원리가 적용된다고 본 것. 이것은 플로티노스가 가시적인 세계의 균제로 근원적인 아름다움(일자)를 설명한 것과 같다.

_ 가상의 진리

아우구스티누스도 예술은 모방이 아니라 내면의 형상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예술은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이므로 가시에서의 실현체가 거짓(모방)이 아니라고 변호한다.

_ 아뉴스 데이

중세예술의 임무는 감각적인 것으로 ‘초월적 진리’를 표현하는 데 있었다. 그 방법은 바로 알레고리(풍유, 우의)이다. 알레고리에서 눈에 보이는 껍데기는 아무 의미도 없다. 아뉴스데이(신의 양)도 그런 알레고리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 피타고라스적인 신비, 우주론적 미학을 상징, 신학적 미학으로 변화시켰다. 이제 감각적인 세계에서 신의 빛으로 나가는 ‘빛의 상징주의’가 도래한다.

3. 돌로 된 스콜라 철학

_ 무덤을 깨고

카타콤 p141 의 벽화는 솜씨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각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막스 드보르작에 의하면 중세 예술은 예술사의 퇴보가 아니다. 사실묘사에서는 물질세계를 희생했으나 영혼을 파고드는 힘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예술은 다른 모습으로 카타콤에서 부활한다.

_ 바실리카

중세예술의 가장 큰 특징 = 영적인 세계를 담으려는 시도. 신상을 세우지 않기 위해서 로마의 공회당(바실리카)의 형식을 차용하는데 이것이 뒷날 서유럽 성당건축의 바탕이 된다. p143 그림

_ 로마네스크 : 신의 성채

11세기 서유럽에는 로마네스크라는 새로운 건축풍이 분다. p144 바실리카의 고대식 기둥 대신 주로 아치공법을 사용했다. 이것은 아주 육중해서 ‘성채’로 불렸고 이는 바로 속세와의 투쟁을 의미했다.

_ 고딕 : 거룩한 성

중세말기에 고딕이라는 새로운 형식이 또 등장. 특징적으로 고딕은 늑재궁륭이라는 기술을 이용했다. p146 구조가 드러나고 끝이 뾰족해지며 벽이 얇아져서 빛을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되었고 스테인드글라스가 도입된다. 고딕성당은 요한계시록에 묘사되는 예루살렘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로마네스크식 성당이 악의 무리로부터 보호받는 곳이었다면 고딕성당은 속세를 초월한 별세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_ 마음이 가난한 자의 성서

라틴어성경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조형예술은 그림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수단이 되었다.

_ 빛의 상징주의

빛의 미학을 표현하기 위해 화려한 색채와 채광이 사용되었고 이는 모방론이라는 고대관념을 저버린 플로티노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자연모방에서 해방된 중세회화는 원형의 색채와 형태에서 벗어나게된다. p151 그림 이것은 현대회화의 중요한 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위대하다!!

_ 이상주의와 자연주의

한편으로 13세기에 들어선 고딕은 자연주의적 경향을 띄기 시작한다. 이를 고딕자연주의라고 함. 드보르자크는 중세예술을 이상주의와 자연주의의 대립으로 설명한다. 고딕 전기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신중시(추상, 기하)경향이 강했다면, 후기에 이르러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은 현실세계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했다. ‘사물 속엔 창조의 질서가 들어있다.’ 고딕 자연주의는 이런 사회적, 철학적 분위기에서 나왔다. 고딕 자연주의는 르네상스의 조각과 구별이 잘 안될 정도로 비슷하다.

_ 중세의 가을

어찌 되었건 이런 자연주의는 기독교의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것이었다. 드보르자크는 고딕을 중세초기의 이상주의와 후기의 자연주의적 경향 사이에 놓았다.

중세예술은 중세라는 오랜 기간 동안의 모든 사상과 사회상을 담은 ‘고딕’으로 완성된다.

4. 성당에서

완전한 삼각형은 논리적으로는 눈으로 볼 수 없다.
스피리투알리스 = ‘영적인’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p159
간단한 기하도형으로도 만물을 창조할 수 있다. p161, 162 그림

_ 기하원자론 _ 현대물리학의 소립자론과 대응함.
_ 신의 창조를 따라서 _ 신의 창조를 따라서 장인들도 똑같은 작업방향을 가졌다. 기하도형에서 복잡한 만물로..

_ 칼레이도치클루스

닫혀있는 우주를 만드는 방법 = 한없이 빠져나가는 평면이 아닌 다면‘체’를 만드는 것!

5. 성자의 유혹

_ 신의 존재증명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문턱에 살았다. 중세적 사고는 해체되는 중이었고 교회는 발전하는 과학과 상대해야 했다. 아퀴나스는 ‘이성’과 ‘계시’를 분리함으로써 이를 해결했다.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고 사물의 근원이 바로 신에게 있다고 (말로) 설명했으나 그의 논리는 별로 신통치 않다. p172

_ 완전, 비례, 명료

아퀴나스는 불완전한 감각세계의 미와 완전한 신의 미를 나누었고 미를 완전, 비례, 명료 등과 같은 성질로 설명했다.(중세미학의 특징)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름답기 때문에 즐겁다.’라고 한 것과 달리 그는 ‘미란 보아서 즐거운 것’이라고 설명함으로써 바라보는 이의 ‘주관’을 강조한다.

_ 주관에 동화

비례와 같은 경우에 대한 미의 인식에 있어서 고전적인 답변은 ‘주관과 객관의 일치’. 아퀴나스는 우리 주관 속에 이미 비례와 비슷한 성질이 들어있어서 사물을 보며 그것과 자신 속의 성질이 일치할 때 쾌감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즉 ‘대상을 주관에 동화시키는 것’이 바로 미라고 본 것인데 이것은 나중의 ‘칸트’의 생각과도 비슷하다.

_ 시각과 청각

이런 ‘미적 주지주의’는 고대부터 르네상스까지 이어지는 유서 깊은 생각이었다. 우리는 미를 ‘느끼’지만 당시 사람들은 미를 ‘인식’했다. 그래서 아퀴나스도 시각과 청각을 최고로 친 것! 두 가지만이 정신에 직접 관계하니까.. ??? 촉각.. 후각??

_ 모방론의 부활

아퀴나스는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모방론’을 따른다. ‘신은 자연의 내적 원리에 따라 창조를 했지만 예술가는 자연의 외적원리에 따라 모방을 할 뿐이다.’

_ 고딕 자연주의

플라톤(?BC427~)의 이데아는 피안의 세계였다. 따라서 플라톤적으로 해석된 과거의 기독교는 신을 세계 밖에 있는 존재로 이해했다. 때문에 감각적 자연묘사보다는 초자연적인 신성의 표현이 주가 되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BC384~)는 반대로 초월적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자연 그 자체 속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이런 감각적 자연의 묘사가 바로 고딕자연주의(중세말기)를 낳은 힘!

글쓴이

Yoonho Choi

independent researcher in design, media, and locality & working as a technology evangelist in both design and media indu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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