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의 기술

4. 관찰자의 기술 _ 최윤호 발제 (수유연구실 예술세미나 자료)

19세기 초의 괴테에 이르러 잔상과 같은 주관적 시각현상은 과거의 소외된 위치에서 벗어나 광학적 진리의 위치를 획득한다. 이런 ‘주관적 현상에 일치하는 새로운 객관성’이 갖는 의미는 아래와 같다.

# 잔상의 특권화로 인하여, 인간은 감각적 지각을 외부지시체와 어떤 필연적인 연계가 단절된 것으로 여기게 된다.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의 감각의 출현, 잔상과 그것이 수반하는 변조는 주체에 의해서 생산되고, 주체 안에서 생산된 자발적인 시각의 이론적이고 경험적인 본보기가 되었다.
# 시간성이 관찰의 구성요소가 되다.”’

그 당시, 시간 속에서 경험한 자기 자신의 주관성이 전환되는 과정은 ‘보는 행위’와 동의어가 되었다. 이는 대상에 완전한 초점을 두고 있는, 관찰자에 대한 데카르트적 이상을 해체시켜갔다. 잔상과 주관적 시각의 시간성의 문제는 19세기에 큰 인식론적 이슈가 되었다.

# 셀링(Schelling)의 ‘일시적 중첩에 기초한 시각’의 묘사 : … 단편적인 방식으로 조각조각 생산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 스스로 완성하기 위해서 각각의 사물은 특정 순간들을 통과해 간다. – 서로를 따라가는 과정들의 계열이, 뒤의 것들이 언제나 앞의 것을 포함하며 각각의 사물들을 성숙시키는 것이다.
# 헤겔 : 로크적 지각을 거부하고 일시적이고 역사적인 펼쳐짐 안에 지각을 전개. “진실은 조폐국에서 틀에 맞춰 발행되는 동전과 같지 않으며 … ” 감각지각의 명백한 확실성을 공격.
# 괴테 : “일종의 대립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눈은 극단과 극단을, 중간적인 것과 중간적인 것을 대조시키는 속에서 이런 대립적인 인상들을 조합한다. 인상이 연속적이건 동시적이건 전체를 구성하여 하나의 이미지를 이룬다.”

로크와 꽁디악이 관찰을 감각들의 연속체로 이해했다면 괴테와 헤겔은 관찰을 힘과 관계들의 상호작용이라고 보았다. p154 당시의 다른 작가들은 지각을 연속적 과정, 일시적으로 퍼져있는 내용들의 흐름으로 묘사했다. 앙페르 : “연속적인 차이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결과”

허바트(Johann Friedrich Herbart)는 정신적 경험을 지배하는 수학법칙을 공식화함으로써 “자극-반응 심리학의 정신적 아버지”가 되었다. 칸트가 경험을 종합하고 배열하는 정신의 수용능력을 고려했다면, 그는 주체의 내적 비일관성과 탈조직화에 대한 경계를 드러냈다. 그에게 있어 의식은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무질서한 흐름으로부터 시작한다. 관념들은 이전이나 동시에 발생한 관념들 또는 ‘현시’와 융합되고 희석되며 뒤섞인다. 그는 관념들의 충돌과 융합의 과정에서 진실을 추출해낸다. 이런 지각을 수학화, 계량화하려는 복잡한 시도는 이후의 수량적 감각 연구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으며 한편으로 그의 작업은 훈육적, 도덕적인 관념의 주입과 관련한 그의 교육학적 이론과도 결부되어있었다.

1820년대까지 유럽 전역에서는 잔상에 대한 계량적 연구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독일의 푸르기니에는 잔상의 지속과 변조에 관한 괴테의 연구를 이어가게 되는데, 그의 연구는 잔상의 지속시간과 조건에 따른 변화와 관련한 것이었다. 다음세대의 연구자들은 푸르기니에의 경험적 연구와 허바트의 수학적 방법을 병행할 것이었다. p158,159그림 푸르기니에는 최초로 잔상의 상이한 형태를 구분했는데 그의 그림은 주관적인 시각현상이 역설적으로 객관적인 것임을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연구는 17-8세기의 굴절계의 투명성에 관한 담론이 아니라, 유효성과 적합성이라는 다양한 영역을 가진 생산적 영토로서 눈을 재배치했다.

1820년대 중반부터는 그동안의 경험적인 잔상연구의 결과로 수많은 광학기구와 기술들이 발명되었다. 초기에 그것은 과학적 관찰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곧 대중의 오락물이 되었다. 그런 기구와 기술들은 지각이 순간적이지 않다는 개념과 대상 사이가 분리되었다는 개념을 사용했는데, 잔상연구는 감각이 혼합되거나 융합되는, 그런 ‘보는 행위와 얽힌 지속성’을 통해 지각의 변조와 통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p161,162그림 회전판(thaumatrope, 1825 John Paris) _ “… 1/8초 동안 잔상이 지속된다. …” 이런 “철학적 장난감”의 단순함은 이미지의 직조되고 환각적인 본성과 지각과 그 대상 사이의 단절 모두를 명확하게 해주었다.

로제트(1825)와 물리학자 패러데이(Michel Faraday)는 회전하는 바퀴의 착시현상을 연구했으며 1820년대 후반에 벨기에의 플라토(Joseph Plateau)도 잔상의 실험을 실시했다. 그는 매우 유력한 “시각의 잔존” 이론을 만들었다. p166 1830년대 초 그는 페니키스티코프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로제트와 페러데이 등의 연구와 그의 연구를 통합한 것이었다. p164,166그림 이후의 쉬탐페의 스트로보스코프아래그림와 호너의 주트로프도 유사하다.

이런 장비의 영화사적 맥락에서의 접근은 각각의 장치가 가진 개념적이고 역사적인 특이성들을 무시한다. 시각의 잔존이라는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설명력을 갖고 작동하는 조건과 환경들, 그리고 그것이 가정한 역사적 주체/관찰자이다. p169 모든 연구들에서 조사의 대상은 관찰자 자신의 자기-관찰과, 생활에서의 경험들이었다.

페니키스티스코프는 19세기에 “기술이 복잡한 훈련들로 인간의 감각중추를 지배해왔다.”는 벤야민의 주장을 구체화시킨다. 이 도구가 관찰자에게 요구한 물리적 위치는 ‘즉시 구경꾼이 되어버리는 개별적 육체’, ‘경험적 연구와 관찰의 주체’, ‘기계 생산의 한 요소’라는 세 가지의 혼재였다. 이점이 스펙터클과 감시가 대립하는 푸코의 주장이 미치지 못하는 지점이다. p171 19세기 관찰자의 생산은 규율과 규제의 새로운 절차와 일치했다.

# 디오라마 : 움직이지 않는 관찰자를 기계 속에 통합. 자발성 제거 p172,173

1815년 브루스터경이 발명한 만화경은 페니키스티스코프의 훈육적인 구조와는 급진적으로 달라보였는데 그것은 보들레르에게는 근대성 그 자체와 부합되는 것이었다. “의식을 부여받은 만화경”이 되는 것은 “보편적인 삶을 사랑하는 사람”의 목표였다. 한편 맑스와 엥겔스에게 만화경에서의 다중성은 거울의 속임수에 불과했다.

사진술을 제외하면 19세기 시각이미지의 가장 중요한 형태는 입체경이었는데 그것은 공간이 천부적인 것인지에 관한 당시의 공간지각 논쟁과 관련이 깊다. 1830년대에 과학자들은 보는 육체를 양안적이라고 규정하고 두 시각축의 각도상의 차이를 양화했으며 생리학적 근거를 설명했다. 특별히 1833년에 휘트스톤은 ‘근접한 대상’에 있어서의 시각축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의 이론에 의하면 지각경험은 본질적으로 ‘두 눈의 차이에 대한 이해’이다. 브루스터도 그런 차이에 대해서 ‘그건 마술과 같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라고 확신했다. p183@ 휘트스톤은 입체경을 통해 회화와 같은 것과는 다른 시각에서 물리적 물체의 존재를 ‘흉내’내려고 했다. 그는 이미지와 대상의 완전한 등치를 추구했고, 그런 면에서 디오라마에서 이용된 회화의 기술들과 달리 입체경의 ‘가까운 대상’이 더 생생하다고 생각했다. ‘만질 수 있는..’ 19세기의 어떠한 재현의 형태들도 실제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을 그만큼 융합시키지 못했다.

입체경의 조사

이미지 안의 두 시각축이 수렴하는 각도에서 중요한 변화를 요구하는 지점들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이것은 물체로 가득 찬 공간이어야 하고 당시의 부르주아들이 가졌던 비어있음에 대한 공포와도 연관된다. p178그림 이런 이미지에서의 깊이는 사진이나 회화에서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또한 입체경에서의 이미지를 조직하는 것은 ‘평면’이다. 물체들 사이의 공간은 점진적인 후퇴가 아니며 형태는 불확실하게 분리되는데 이것은 고전적인 무대 디자인과도 유사하다.
입체경은 근본적으로 통합되지 않은 채 모여 있기만 한 장(場)을 드러낸다. 우리 눈은 3차원 전 영역을 완전히 파악하기보다는 분리된 지역에 대한 국지경험으로서 인식한다. 19세기 회화의 범위는 집단들과 평면들 간의 비일관성에 주목했는데, 입체경과 회화에서는 동일하게, 새로이 구축된 시각공간의 출현과 광범위한 관찰자의 변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p191

재현의 수단으로서 입체경은 ‘외설적’이다. 그것은 카옵의 극장적인 배치에서의 무대장치 같은 관계, 즉 눈과 이미지와의 거리를 파괴했고, 벤야민이 ‘근대성의 시각문화’에서의 핵심으로 보았던 것의 완성이었다.

1838년 휘트스톤의 문제는 ‘물체 그 자체’와 평평한 표면에 투사되는 ‘그것’에 관한 것이었다. 입체경을 통해 보는 것은 이미 재생산된 조각난 세상을 두 개의 비정체적인 모델이며 기계적인 재구축을 통한 것이었다. p193 탈중심화된 관찰자와 입체경의 분산-중복된 기호들의 제도화는 수세기동안 관찰자와 대상에 상호 부여되었던 ‘조망점’의 근절을 뜻한다. p193그림 ‘바르뜨의 준거적 환영??’p194

입체경은 육체적 ‘근접성’과 ‘부동성’을 요구했다. 19세기가 시작되면서 눈과 시각기구 사이의 관계는 하나의 ‘환유’가 된다. 둘은 동일한 활동 평면에 있는 인접한 장치였다. p195 시각장치는 맑스의 ‘도구’와 같은 변화를 겪는다. “적절한 도구가 인간에 의해 채택되는 순간, ….기계는 단순한 도구들을 대체한다.” p197 도구는 인간주체의 타고난 힘과 환유적인 관계였다. 19세기의 도구주의는 “인간의 본성은 도구가 되는 것, 그의 소명은 그의 지위에 의해 설정되고 일하기 위해 배치된다는 은연중의 가정”에 기초한다. p198

1830, 1840년대의 광학기구들의 결정적인 특징은 그들이 수반하는 억압의 형태와 작동구조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광학적인 경험은 기구 안의 이미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따라서 페나키스티스코프나 입체경들이 사라졌을 때 그것은 발명과 개선과정의 일부로서가 아니었으며, 그 초기의 형태들이 당대의 욕구와 용도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라짐의 이유 중 하나로 ‘요술환등기’를 들 수 있는데, 그것과 달리 입체경에서는 그 생산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생산이 엄폐되지 않는’ 입체경은 기구의 물리적 성질에 의존했다. 그 허상은 더욱 완전한 보전을 하는 형태에 자리를 내어준다. 카옵에서는 자유로운 주체가 아직 사실적이라는 허구를 재생산하고 지속하게 했다. 사진은 자연스러운 그림코드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여겨졌는데, 사진은 좁은 범위의 기술적 가능성에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카옵에서의 관찰자와의 관계성을 이미 없애고 단일한 것이 되었으며 새로운 카메라를 관찰자와는 기본적으로 독립된 별개로 취급했다. 그러나 카메라는 자신을 대상과 관찰자 사이의 비물질로 가장하고 있었다.

스펙터클의 앞선 역사, 그리고 모더니즘의 순수지각은 새롭게 발견된, 완전히 드러난 관찰자의 영역에 위치한다. 그러나 양자의 최종적 승리는 시각의 바탕으로서의 ‘육체의 부정’과 그 맥동 및 환영에 의존하고 있다.

* 관찰자의_기술을 요약함.

글쓴이

Yoonho Choi

independent researcher in design, media, and locality & working as a technology evangelist in both design and media indu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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