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 금속공예 _ 전용일

현대 금속공예의 모습처럼 다양한 얼굴을 가진 미술형식도 드물 것이다. 작가 개인의 내면을 드러내고 전달하는 순수한 표현매체로 존재하는가 하면, 생활 속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기능과 보편적 미감을 통해 그 가치를 발산하는 생활공예품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문화상품, 혹은 패션상품이라는 이름으로 대량생산되어 널리 보급되는 디자인 제품의 일부를 지칭하기도 한다.

다양한 얼굴

비교적 독립적인 영역인 장신구는 금속 세공(細工)의 대명사로서 가장 자율적이며 작가지향적인 표현영역으로 구분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금속공예가들이 장신구작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대공(大工)으로 불리는 기물(器物)과 주거용품 제작은 인간의 식생활, 주거생활과 관련된다. 여기에는 비기능적인 장식물, 환경조형물등의 제작도 포함한다.

다른 공예 장르에 비해 산업적 성격이 강한 금속공예는 현대의 신소재와 생산기술등과도 밀접히 결합된 특성이 있다. 각종 인공수지와 신소재 등의 타재료를 혼용하는가 하면, 전해주조, 레이저빔의 사용, 캠(CAM), 알피(RP) 등 디지털방식의 성형기법들이 이 분야에 흡수되면서 전통의 수공기술과 조화를 이루어 금속공예가의 조형언어로서 활용되고 있다

한편, 금속이라는 재료의 성질은 금속공예품의 크기에 있어서 가장 큰 진폭을 허용한다. 작게는 바늘처럼 미세하고 극소적인 장신구, 귀금속공예로부터, 크게는 건축관련의 각종 부속물, 옥외의 환경조형물, 조상 등을 제작하기도 한다.(미국의 자유여신상은 프랑스의 금속공예가들이 망치성형한 판금작업이다.)

금속공예는 실처럼 가는 1차원의 금속선에서부터, 2차원의 금속판, 3차원의 금속덩어리를 함께 다루며 이외에도 금속박(箔), 금속망, 금속가루, 용해된 쇳물 등을 함께 다루니 형태적 다양성에서 이를 가능케하는 다른 재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물질인 금속은 또한 가장 단단하고 정교한 재질로 인해 금속공예가는 가장 많은 도구를 다루는 작가라고 말하여진다. 온갖 도구들로 차있는 금속공방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금속공예가의 모습이다.

현대 금속공예의 정착

한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금속공예가 본격화된 것은 대학에서의 실기교육이 체계를 잡기 시작하는 70년대 중반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도자공예, 목공예, 섬유공예 등에 비해서도 비교적 후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후발성은 한편 운신의 자유로움을 뜻하기도 했다. 70년대 후반부터 이루어진 서구식 실기교육 쳬계의 도입은 국내의 전통 금속공예 그리고 주로 일본의 영향을 받은 세공업계(금은방)의 금속공예 생산기술들과 결합하면서 대학 내의 실기교육 환경을 구축해 나갔다.

타장르의 공예에 비해 전통과 전승의 무게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점, 그리고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빈번하게 이루어진 국제적인 인적교류, 행사, 전시회 등은 짧은 기간동안 금속공예가 한국공예의 중심적인 분야로서 정착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 산업디자인, 패션산업 등 인접분야와의 연계, 귀금속장신구시장에의 진출 등 취업가능성의 우위에 편승해 1990년대부터 대학 내의 금속공예 전공은 모든 공예장르 중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공으로 뚜렷하게 부상했다.

대학과정에서 초기의 도안과, 응용미술과, 생활미술과 등에서 점차 특화된 금속공예와 장신구분야는 2001년 현재 서울과 수도권의 약 12개교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약 25개 대학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비슷한 양의 졸업생들이 또한 2년제의 전문대학에서 배출되고 있다.

한국 현대공예의 한 분야로서 금속공예는 지난 20년 동안의 양적팽창, 교육환경의 개선, 전문 인력의 배출을 지속해 왔으나, 한편으로 순수미술과 산업디자인의 틈새에서 심한 정체성의 혼돈을 겪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현재 공예가들 스스로 가진 약점과 사회적 변화에 기인한다.

금속공예의 사회화

60년대 이후 한국의 미술계에서 소위 응용미술의 원류였던 공예는 80년대부터 본격화된 산업디자인의 확대, 90년대에 가속화된 정보매체와 영상 디자인분야에 대한 폭발적 관심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위축되면서 더 이상 응용미술의 본류가 아닌 변방, 혹은 과거의 유물 정도로 치부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사회적 지명도, 대학에서의 지원자의 감소, 학내의 구조조정, 학부제로 인한 통폐합 등으로 이어졌다.

공예계 안에서의 위기의식의 팽배는 그동안 집중되었던 지나친 아카데미즘, 작가주의, 순수조형주의를 반성하며 상대적으로 등한히 했던 직업 교육, 산학연계 등에 대해 눈을 돌리게 했으며 공예가들의 상업적 활동, 특히 공방 활동을 통한 생산과 유통에 관심을 돌리게 했다.

특히 80년대 초반부터 구체화된 금속공예 공방운동은 주로 대학교수, 강사들로 이루어진 제도권 작가들의 ‘순수조형주의’와 대조를 이루면서 “공예의 사회화”에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다. 80대 초에 시작한 조남우, 김성수의 아트웨어, 뒤이은 강덕선의 넥스트 등이 소규모 팀웍에 의한 본격적인 장신구 공방의 주자들이었으며 아원공방, 카파하우스, 툴바, 아르스, 네오크라프트, 일공구, 씀 공방을 포함한 많은 대학전공자들의 공방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기획, 생산, 유통등 일인 다역의 역할을 하며 여전히 척박한 공예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80년대 공방활동과 이로부터의 생활공예품의 품목들은 90년대 문화상품의 콘텐츠로서 흡수되면서 양적으로 확대되고 품목에서도 다변화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금속공예의 제품디자인과의 접목은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시도이다. 젊은 금속공예가들이 창업한 밀리미터 밀리그램(mmmg), 아우라 등은 공예적 배경의 디자인 벤쳐회사다. 최홍규의 최가철물은 현재 가장 성공하고 있는 공예적 제품의 생산업체이다.

문화상품 개발업체인 시우터, 모모재인, 문구, ZU 등도 활발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제품디자인회사인 212korea 도 수년전부터 디자인콘텐츠로서의 공예에 주목하면서 최근 공예전공자를 영입하는 등 문화상품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금속공예품을 유통하는 온라인 회사들이 출범되었는데, 크리에이티브 42, 씽스코리아 Thing’s Korea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90년대 공예와 문화상품의 붐은 화랑가의 변화에도 기인한다. IMF한파와 함께 몰아닥친 미술계의 불황은 화랑으로 하여금 회화중심의 유명작가들의 ‘큰 거래’ 만이 아니라 지속적인 미술상품의 개발과 거래에 눈을 돌리게 했다.

가나화랑, 현대화랑, 선화랑 등 서울의 문턱 높던 화랑들이 공예에 관심을 가졌으며 아트숍을 개장하거나 공예상품 개발을 기획하면서 현대공예 전문화랑인 크래프트하우스, 핸드 앤 마인드, 크래프트 스페이스 목금토, 아티그램, 갤러리가인로, 갤러리 브룩스 등과 함께 공예품 유통에 합류하고 있다.

전문성제고와 비젼

최근 공예에 대한 주변환경의 우호적 변화는 금속공예 전공자들로 하여금 직업적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있으며 졸업생들의 사회적 활동은 후배들의 교육적 모델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상품 제작을 중심으로 한 금속공예의 상업화 일변도의 확산은 만만치 않은 부작용도 수반하고 있다. 공예의 가치척도가 상품성으로 집중되면서 공예품의 저가 가격경쟁은 전반적인 질적 저하를 가져왔다.

고급화, 차별화를 위한 노력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며 공예상품의 질은 중간층을 형성하지 못한 채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작가의 개성을 포기한 채 소비시장의 선호도만을 좇는 많은 공예가들은 거의 제작자를 구별할 수없을 정도로 유사한 공예품을 생산해 내기도 하며, 아직도 제도적 대응이 거의 불가능한 디자인저작권의 도용, 모방은 창의적인 공예품에 대한 연구와 생산의지를 꺽고 있다.

공예계 전체를 통틀어 최근 가장 괄목할 만한 신장을 보인 장신구(art jewelry) 유통에서 이러한 문제들은 잘 나타난다. 작품들의 유사성은 자주 시비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판매에만 급급한 많은 화랑과 아트숍에서는 독창성 여부를 판단하거나 모방품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교육에 있어서도 공예의 상품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공예본연의 감수성과 창의성의 개발, 기술적 숙련의 깊이 등을 상대적으로 등한히 하게 하며, 취업을 위한 직업교육에의 지나친 강조는 공예교육 전체를 취직을 위한 도구과목으로 단순화시키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개인적 표현의 도구이면서 또한 사회적 효용가치를 갖는, 공예품이 갖는 양면적인 가치에 대한 통찰력과 균형감각을 체득하지 못한 미숙한 공예졸업생이 계속 배출되는 경우 결과적으로 공예가 사회적으로 적응력을 갖지 못하는 악순환을 되풀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현대 금속공예는 이제 방향설정의 문제보다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가지의 공예활동에서 어떻게 전문성을 확보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좀더 전문화된 작가들과 유통업자, 행정가를 이 분야가 배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함께 숙고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예에 대한 사회적 관심제고와 유통체계의 확산, 교육의 전문화, 국가적 지원체계 등 장기적 계획의 하부구조(인프라)가 요구된다.

그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공예가들 스스로 철저한 프로의식과 자기 연마의 자세를 갖출 때 비로소 전문적인 금속공예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실천하는 일이다.

2001년 전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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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전용일 교수 홈페이지에서 갈무리

글쓴이

Yoonho Choi

independent researcher in design, media, and locality & working as a technology evangelist in both design and media industries

“한국의 현대 금속공예 _ 전용일”에 대한 4개의 생각

  1. 레포트 쓰는데 좋은 도움이 됐어요.

    누구의 글인가 했더니 전용일교수님 글이었네요 ^^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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