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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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나를 벗어나 나를 보게 되는 기회였다. 나는 또래의 다른 이들에 비해서 스스로 감내해야할 고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문제와 마주했을 때 떠난 여행을 매번 후회하게 되었지만, 그 여행이 가져다 준 경험도 만만치 않게 나의 부분을 이루어나갔음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비슷한 여행을 거듭할수록, 나는 여행이 순간의 고통을 피하는 도피가 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비참한 여행이란건 바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어딘가를 향하는 행위는 나와 잠시나마 결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아직까지 나는 현실로부터 떠나오지 않은 ‘즐거운’ 여행에 대해 들어보지를 못했다.

도미토리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진다. 폐쇄적인 내부가 되어버리는 싱글 룸에 비해서 처음에는 생소하기만 했던 도미토리는 나의 여행에서 하나의 문화적 공간이었다. 만약 어느 투숙객이 가진 것이 너무도 많다면 그는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어떤 종류의 가치이건 일단 소유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것을 지켜내기 위한 나의 투쟁도 시작된다.

내가 어떤 가치를 소유한다는 건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는 ‘불행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고, 누가 나의 가치를 빼앗을 것이라는 믿음은 내가 소유한 가치의 절대적 효용마저 잊어버리도록 끊임없이 유혹했다. 어떤 이유에서이건 일상과 거리를 두게 마련인 여행을 하면서도, 그 일상과의 거리를 좁히는 가치들을 끊임없이 찾으려는 건 여정에서 심각한 모순의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여행하면서 자주 여행지에서의 삶과 나의 실제 위치를 뒤섞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보다 못 먹는 것에 대한 연민, 나보다 잘 사는 것에 대한 부러움, 나와는 다른 가치에 대한 불신, 나와는 다른 얼굴에 대한 거부감들까지, 사소한 어느 것 하나도 비교되고 비교하기를 거듭하다보면 결국 총체적으로 다른 그들과 나의 간극을 확인하는 것으로 여행은 끝이 나버린다. 그 즈음이 되면 여행 이전의 그 떠나온 곳에 서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여행의 목적이라면 어설픈가?

되찾은 靜寂 – 자전거를 위하여

되찾은 靜寂 – 자전거를 위하여 볼프강 작스 《녹색평론》제16호 1994년 5-6월호

미래의 이미지는 현재와 대조되어 그 빛깔을 얻는다. 본래 자동차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현대인들을 짓누르는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을 자동차가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한군데 매여있거나 나날의 생활 속에 갇혀 지내면서 연약한 육체의 힘에 의존해서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을 자동차는 약속했던 것이다. 사회적 폐쇄공포증이라는 토양 속에서만 움직임에 대한 열광이 번창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대안적인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는 것은 이제 더이상 움직임이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고향상실에서 오는 번뇌였다. 바퀴에 의존하는 사회에서는 더 큰 속도나 더 많은 엔진의 힘을 약속한다는 것은 별로 매력이 없는 일이다. 도처에 자동차가 있지만 아무도 도착하는 사람이 없고, 모든 사람이 길 위에 있지만 아무와도 유대가 이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다른 종류의 욕망이 생겨난다. 어네스트 칼렌바흐는 그의 책《에코토피아》에서 자동차가 없는 유토피아를 묘사하고 있다.

나는 가방을 챙겨갖고 바깥으로 나갔다. 내가 거리로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낯선 정적이 깔려 있었다. 나는 적어도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고, 택시가 달려들며, 사람들이 도시생활의 서두름 속에서 밀쳐대는 ― 현대 도시의 부산스러움 같은 것을 기대하였다. 최초의 놀람을 극복하였을 때 내가 발견한 것은 한때 거대한 가로로서 도시를 관통하여 부두까지 뻗어있던〈시장거리〉가 수천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는 산책로로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전기택시와 미니버스와 짐수레들이 다니고 있는 차도는 이제는 2차선으로 줄어 있었다. 방대한 넓이의 나머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자전거도로, 분수, 조각, 정자(亭子), 그리고 벤치들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정원들이었다. 이 모든 것들 위에 거의 음산한 정적이 깃들어 있었고, 이따금 급히 달려가는 자전거 소리와 아이들의 외침소리가 정적을 깨트리곤 했다. 심지어 새의 노래가 들릴 때도 있었는데, 이것은 여기가 수도의 가장 복잡한 중심가로 여겨지는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 물론 소수이지만 그러나 소리높이 ― 숲이 베어지고, 동네가 찻길로 뚫어지는 것에 대하여 분노하였고, 지난 20년 동안 자연경관이 포장되는 것에 저항하여 싸워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동차와는 거의 상관이 없는 새로운 사회의 이미지를 정당하게 부각시켰다. 이러한 역사적 변화는 주민투표에 반영되었다.

지난날의 약속이 그 가치를 잃어버렸고, 개인 자동차의 대중적 소유는 온갖 강제와 임무의 그물을 수반하였으며,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더욱 힘들어졌다. ― 이러한 경험은 1960년대 이후 계속하여 증가되어왔고, 그리하여 전통적으로 구가되던 자동차주의가 이제는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토대가 되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변화에 민감한 것은 아니다. 주민투표에서, 교육받은 젊은이들은 본질적으로 일치된 반응을 보여주었다. 고등학교나 대학교육을 받은 스무살에서 서른 다섯살 사이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자기네 아버지들의 믿음을 포기하고 있다. 따져보면 1960년대는 이들이 정치적으로 형성되던 연대였다 ― 그들은 자동차의 부족이 아니라 지나침에 대하여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희망을 보여주던 경제적 기적의 시기에 자란 이 아이들이〈성장〉에 대한 그들 아버지들의 열광에 대하여 나타낸 것은 경멸뿐이었다. 비슷한 역사적 체험으로 인하여 그들이 갖게된 공통한 견해는 그들로 하여금 단순한 세대집단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집단으로서〈진보라고? 사절합니다!〉라고 하는 새로운 수정주의적 상호적 삶의 감각 속에 뭉치게 하였다.
이들의 경멸감을 자극한 것은 무엇보다도 끈질기게 남아있는 옛 열광의 표시였다. 즉, 고속도로의 새로운 연장은 사람들에게 강한 비판적 감각을 불러일으켰고, 도로를 내기 위하여 나무들이 베어넘어지는 일은 복종적인 시민들까지도 환경운동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자동차는〈환경의 적(敵) 제1호〉가 되었다. 운전거리 십만킬로미터마다 자동차가 공기중에 일킬로의 납을 불어넣을 때, 콘스탄스호(湖)주변 도로들로 말미암아 그곳 경관이 평균 6.3평방킬로미터의 고립된 섬들로 바뀌고, 그렇게됨으로써 보행자는 3킬로미터마다 또다른 교차로에 맞딱뜨려야만 하게 될 때, 그리고 서독에서만 거의 50만의 인명이 자동차를 위한 제단(祭壇)에 희생당해 왔다면, 자동차의 문화적 발흥을 부추겨왔던 진보에의 믿음은 어느날엔가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도시의 그린벨트 또는 목재로 지어진 오두막의 보존문제를 둘러싼 갈등들은 개별적인 사례가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동력을 얻는다. 실제로, 위험에 처한 나무 앞에 완강히 버티고 선 사람들은 흔히 그전에는 너도밤나무와 떡갈나무를 구별할 수도 없었던 사람들이다.
이러한 대립들을 통하여 분명하게된 것은 19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유지되어왔던 진보에의 환상이 깨어진 일이다. 그 환상에 의하면 미래는 약속에 가득찬 것으로서 언제나 현재를 능가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역사를 상승시키는 데는 재화의 수효에 있어서 꾸준한 증가가 계속되면 족하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베어넘겨진 나무와 해체된 오두막은 이러한 진보가 실상은 불균형한 비용전가(費用轉嫁) ― 운전자의 즐거움을 위하여 사회는 쓰레기장으로 되고 마는 ― 에 의존하고 있다는 통찰의 상징이 되었다.
쓰레기가 증가함에 따라 삶의 질이 떨어졌다.〈더 크게, 더 멀리, 더 빨리〉가 우리를 좋은 삶에 좀더 가까이 데려다 주었다는 믿음, 미래에의 강박적 관심 ― 이것이 없었다면 신기한 것과 스트레스에 대한 중독은 말할 것도 없고, 속도에 대한 광분도 번창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은 끝나버렸다. 진보와 더불어 퇴보가 나란히 행진해왔고, 테크놀로지는 사람들을 노예화함으로써 해방시켜왔던 것으로 보였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도피할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린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었다. 되돌아 갈 길도 막혔고, 대안들은 파괴되었으며, 미래는 식민지화되었다. 이른바 객관성의 명령이 지배하는 곳에서 미래는 그 희망과 함께 완전히 소진되어버렸다. 총체적인 자동차 사회로 전락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선택은 그 사회를 관리하는 것 뿐이다. 아무런 미래도 없다. 소수의 사람들이 말해온 것이 이제는 인구의 대다수 속에서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알렌스바하의 한 조사에 의하면, 1956년에 56퍼센트가 여전히〈사람들은 보다 나은 미래로 가고 있다〉라고 믿었는데, 1980년에는 오직 28퍼센트만이 그러한 믿음을 고수하고 있다.
한 때 사람들이 유토피아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인 것은 터널과 비행기의 항로로 둘러싸인 세계였고, 환상은 어디서나 관통할 수 있는 공간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보다 명상적인 이미지가 흔하게 되었다. 녹색의 풀과 자전거와 분수와 조각들, 그리고 당연히 새들의 노래로 둘러싸인 아파트 구역의 이미지가 그러한 것이다. 위기의 시기에 있어서 창조성은 낭만적 전통에 뿌리내려진 개념들과 함께 꽃피어난다. 기계들의 위압적인 힘에 의해서 건드려지지 않은 채 유지되는 삶에 대한 욕망 ― 이것은 반핵 및 평화운동뿐만 아니라 교통주민운동 속에 흐르고 있는 라이트모티브이다. 논쟁의 주의제(主議題)는 이제 진보의 과실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삶의 식민화를 어떻게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이다.〈객관성〉의 지배에 맞서는 투쟁에서〈자연〉,〈건강〉,〈자율성〉이 관건적인 단어가 되었다. 숲을 보호하려는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건 건강식품에 열광하는 사람이건 또는 풀뿌리자원봉사자이건 그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은 경제적 제국주의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삶을 유지하는 일이다. 욕망의 역사는 이제 자동차의 역사에 결별을 고하려고 한다. 바퀴(자동차)로부터 아직도 자기자신을 떼어놓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나쁜 믿음〉으로 괴로움을 당해야 할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보다 부드러운 사회에 대한 새로운 열망은 자동차와 공유하는 것이 없다. 그 열망은 자전거에 훨씬 더 많이 애착을 갖는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타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완벽하게 이동할 수 있는 대가들이 아닌가? 한 때 운송(運送)의 신데렐라였던 자전거는 이제 별안간 인간적인 기술의 한 상징으로서 부각되었다. 그 체인과 볼 베아링과 가벼운 금속 뼈대를 가지고 자전거는 진보된 기술의 이점(利点)을 제공하면서, 환경을 위협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은 자연과 인간을 손상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율성을 파괴하지 않는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행위는 힘이 드는 일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기자신의 힘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기도 하다. 자전거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자기자신에게 달려있다. 자동차에서처럼 몸과 두뇌가 안락한 구조물 속에 들어앉아 있지 않다. 자전거타기는 기계에 우선하는 도덕적 기초를 확보하기 위하여 자연과 육체성(肉體性)을 요구한다. 이것이 자전거의 정치적 의미이다. 자기자신의 삶의 방향을 제어하고, 단순한 고객과 소비자로서의 생존을 넘어가기를 원하는 사람들 ― 그들은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는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함부르크에 사는 카롤 카를 – 짐은 1982년에 잡지《브리기테》에서 설명하였다.

나는 매일 아침 사무실까지 15분 동안 자동차를 운전해 가야 하고, 주차할 곳을 찾느라고 그 구역 주변을 같은 시간 만큼 소비해야 하는 데 지쳐버렸다. 나는 혼자 말하였다. 함부르크는 평평하고, 비교적 많은 자전거 길을 가지고 있다. 자전거를 타면 언제든 내리고 싶을 때 내릴 수 있고, 신경을 쑤셔대는 교통혼잡 속에 앉아 있지 않아도 된다. 자전거 타기로써 한결 개운해진 몸으로 사무실에 도착하게 되고, 시간도 돈도 절약할 수 있다.

자전거와 더불어 갑자기 오래된 동기(動機)들이 되돌아왔다. 내리고 싶을 때 내리고, 우회하거나 멈출 필요가 없고, 짜증나는 교통혼잡 속에서 기다리며 앉아있을 필요가 없는 상황 ― 통근자와 승객의 시대에, 독립성에 대한 욕구가 자전거를 찾게 하는 것이다. 꽉 메인 거리도, 지각하는 일도, 수리공장으로의 방문도, 지불해야 할 보험료도 이제 더이상 없다. 자동차의 대중화로 말미암아 특이한 물건으로서의 자동차의 위엄이 박탈되고, 그것이 단지 하나의 자동 운송기계로 전락해버린 이후에 한때 자동차와 철도 사이의 대조를 규정하던 경험적 모티프가 자전거와 자동차 사이의 대조 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교통체증, 고속도 경사로, 주유소, 하부구조계획, 송유관, 유조선 등등으로부터 독립한 존재로서 자전거가 등장한 것이다.
결국 자동차는 겉보기에만 자동적인 것이었다. 개인 자동차를 갖고 우리는 서로서로에게서 갈수록 독립적으로 되었는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는 더욱 의존적으로 되었다. 석유 공급이 중단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동에서 한 암살자가 어딘가에서 자신의 목표물을 습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부구조의 힘에 대한 조용한 두려움이 자전거에 자율성의 분위기를 부여한다. 자전거라는 것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 비용도 거의 들지 않고, 그러면서도 재빠르다. 자동차 한대를 사는 것은 수송기계에 대한 예속의 몸짓인 것에 반해서, 자전거 한대를 산다는 것은 사람 자신의 힘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는 일이 된다.
실제로, 자동차를 포기한다는 일은 사회적 우월성의 한 상징이 되기까지 한다. 그것은 흔히 자전거가 상품광고의 배경으로서 기능한다는 사실에 시사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골롸즈 담배를 위한 한 광고에서, 한 젊은이가 자동차들로 몹시 붐비는 거리에서 자전거에 비스듬히 걸터앉은 채 조용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광고의 설명문에는 자동차 없이 지내는 한 생활스타일이 칭송되고 있다.〈이 남자는 어디서든 더 빨리 갈 수 있기 때문에 천천히 다닌다. 그는 마력(馬力)의 도움 없이 이렇게할 만큼 충분한 인격을 지니고 있다. 그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힘을 얻는다. 그는 진정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운운.〉 ― 요컨대 그는 남들보다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교통체증, 스트레스, 승객으로서의 일반적인 운명에 직면하여, 자전거 타기는 전체적으로 새로운 사회적 우월성의 표지가 된다. 자전거 타기로써 독립성과 정숙(靜肅)함과 신체적 자신감 ― 간단히 말하여 비순응주의 ― 을 실천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함으로써 자기자신들이 아직도 자동차를 포기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자동차 운전자들과의 사이에 거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자동차 대중화 사회에서 그들 자신이 장거리와 속도의 지배아래 살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주권(主權)확보의 분위기가 자전거를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진실로 자기자신의 주인들이다. 그들은 강제적 수송체계에 코웃음을 칠 수 있으며, 연료비의 상승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사정이 허락한다면 그들은 자동차 구입을 위한 돈을 저축하기 위해서 임금노동에 뛰어들 필요가 없다. 주 30시간으로써 그들은 더많은 여가시간을 즐길 수 있다! 이제 자동차 없이 지내는 생활스타일이야말로 희소성의 꽃다발을 받는다. 대다수가 자동차를 운전하도록 강요되고 있는 곳에서 자동차 없는 사람들의 삶은 새로운 매력의 힘이 된다.

1920년대에 베르너 베르겐그루엔은 자전거를 타면서 경험하는 지각(知覺)의 풍부성에 관하여 말하였다.

내가 자동차를 가지고 있지 않고 오직 자전거 한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은 내게 동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것은 짜증나는 일이다. 실은, 나는 자동차를 원하지 않는다 ― 내게는 속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게 중요한 것은 여행의 강도이다. 여행의 강도에 기여하는 것은 가장 미세한 차이들, 뉴앙스에 대한 경험이다 ― 자동차 운전자는 다만 큰 것들의 움직임 또는 조잡한 차이들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한 풍경에서 다른 풍경으로 또는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점진적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소한 세부를 경험한다.

오랫동안 자동차의 유리창을 통해 바라봄으로써 거의 감각이 죽어버린 사람들이 자전거 안장에 올라타게 될 때 그들은 자기들이 뚫고 지나가는 세계가 얼마나 다양하고, 다면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가를 알고 놀란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숨겨진 길과 뜻밖의 광경을 발견한다. 세상은 그 작은 세부의 풍성한 보물을 자전거 타는 사람에게 드러내준다. 자동차의 핸들 위에 앉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냄새나지도 않는다. 자동차의 앞창을 통해서 보는 시각(視覺)은 공간을 죽이고, 모든 공간을 단순한 수송 루트로만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자전거 타는 사람에게는 가까이 있는 모든 것들이 보다 예각화되어 나타난다. 자전거와 보조를 맞추는 것은 멀리 가닿는 응시가 아니라 근접한 것에 대한 주의(注意)이다.
게다가, 자전거 여행은 자동차와 같은 단조롭고 직선적인 장거리 통과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자전거 여행은 작은 모험과 단절을 동반하면서 진행된다. 자전거는 4 내지 5 킬로미터 거리내의 집앞에서 집앞까지 사람을 싣고 가는 어떤 다른 수송수단보다도 더 다루기 쉽고, 분명 더 빠르다.《브리기테》잡지 보고기사에서 한 응답자는 말하였다.〈내 자전거는 결과적으로 나에게 보다 많은 자유를 주었습니다. 나는 내게 더 자주 말하지요 ― 어떻든 내가 그 근처를 가니까 그걸 실어야지, 또는 그쪽에 볼일이 있어 가는 동안 내 여자친구도 방문해야지. 자동차라면 내가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주차할 곳을 찾아서 그 구역주변을 세번이나 돌아다녀야 할테니까요.〉
자전거로 인해 가까이 있는 세계를 우리가 소유할 수 있게 된만큼, 자전거는 탈자동차 시대의 한 이상을 대변한다. 즉, 근접지역이 우리의 집으로 탈바꿈된다는 이상 말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거리, 동네 구멍가게들, 녹색의 잔디밭, 옥상의 정원들, 태양열 집열기들 ― 우리의 희망은 도시가 이렇게 삶의 공간으로 생태적으로 탈바꿈하는 데로 향하고 있다. 이것은 자동차에 의해 강제되어온 낡은 생활양식에 반대되는 이미지들이다. 자전거는 지역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주체적 참여를 필요로 하는 테크놀로지의 모범이 된다. 자전거는 보행자보다도 몇배나 큰 이동성을 모든 사람 ― 부자나 가난뱅이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 이 누리게 하면서도, 그 움직임의 자유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제약을 받지 않게 하는 민주주의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자전거의 부흥은 진보의 개념에 강박적으로 붙들린 정신으로부터 해방된 사회를 찾는 사람들의 노력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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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작스 (Wolfgang Sachs) ― 독일 에쎈에 있는 Institute for Cultural Studies 의 연구원. 本誌 제8호(1993년 1-2월호)에〈개발 – 파멸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연속에세이의 일부가 소개된 바 있다. 이 글은 최근 英譯 출간된 그의 새로운 책 For Love of the Automobile : Looking Back into the History of our Desires (1992)의 한 장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돌아보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수동적인 마음가짐처럼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있을까 싶다. 모든 회피의 과정들을 신통치도 않은 껍질로 덮는 일도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나는 벽을 피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디자인이라는 일을 벗어나서 그것을 바로 보는, 최대한 충실하게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일들을 해야 할까? 몇권 안되는 책읽기?, 근처의 사람들 만나보기?, 이름 좀 있는 사람들과 친분 쌓기?.. 디자인이 하찮아보이는,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방향으로 큰소리 쳤던 디자인공부에 방해가 되기만 하는 그런일들은 아마도 나의 생각의 방향과 현실의 살아가는 모습간에 틈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돈이 필요한가? 직장이라고 부를 만한 곳에서 멀어졌다는 소외감은 생각보다 크다. 한편으로는 통제받지 않는 생활을 스스로 제어하는 모습을 나 스스로 보이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봄. 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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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광화문을 오가는 아침형 인간 쌀.
겨울동안 주체할 수 없을만큼 불어난 몸을 어떻게건 가볍게 만들어보려는 시도로,
12월을 마지막으로 창고에 모셔뒀던 자전거를 꺼내어 시험운행을 시작했다.

첫날, 신설동 로터리에서 바퀴살이 하나 빠지는 대형사고 발생. 택시비 5000원 + 수리비 5000원 날리다.

둘쨋날(오늘), 조금 더 진전된,,, 숭인동 지하철공사장 부근에서 어이없게도 페달 축 부러지는 사고 발생. 택시비 3500원 + 수리비 15000원 날리다.

총 25000원… -_- 중고 자전거 하나 사도 될듯..

출혈이 컸지만, 자전거 타고 맞는 햇볕은 기가 막히더군요.

어제와 오늘

을 되새기는 말들.

부모님을 이해하고 사랑하자.
국회는 탄핵결정을 되돌려야한다.
정말 귀가 따갑지만 술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먹자.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
독선과 신념의 차이는 습자지 한장만큼의 두께에도 못미친다.
서로의 벽은 높아지는데 타고넘을 줄이 점점 짧아지는건 무엇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