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광경으로서의 여성

남성의 사회적 존재란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존재는 외면적이고 외부로 향한다. 반대로 여성의 사회적 존재는 여성의 자신의 내면적 태도로 설명된다. 관찰하는 것과 관찰 당한다는 것은 여성의 정체성이 어떤 것인가에 있어 생각해야 할 두 가지의 중요한 문제이다. 여성은 항상 자신을 주시해야 하며 자신 스스로의 이미지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 것들을 설득 당해온 것이다. 곧 그녀가 남성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그녀의 처우를 결정짓는다.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더보기

시각과_현대성_발제문

시각과 현대성 _ 주은우 #
3장 원근법과 현대성의 사회적 조건 20040418 수유+너머 _ 시각성 세미나 _ ‘시각과 현대성’ | 최 윤 호

3. 원근법과 권력의 응시

원근법은 초월적인 시각적 주체를 포함하며 이것은 구체적인 개인이 아니라 탈육화된 주체를 의미한다. 원근법적 시각양식에서의 주체는 개인의 주체성으로서의 측면도 있으나 그 이면에는 개인을 초월적인 주체에 종속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p323) 이 ‘종속으로서의 주체화’를 바로 원근법이 시각의 장에서 수행하는 것인데, 개별주체는 큰 타자의 응시의 위치에서 그 큰 타자의 시각으로 관찰하게 된다. 현대성의 주체가 텅 빈 형식일 때, 사회적 담론들은 그것을 채우게 되며, 푸코는 그것을 권력이 작동하는 통로로 보았고 라캉은 에고 형성을 위한 이미지의 제공통로로 생각했다. 하여간 그 둘 모두의 경우에서, 현대성의 시각 체제는 권력 체제이며 개별 주체의 시각은 큰 타자의 응시를 통해 권력의 시각에 종속됨으로써 구성된다. 17세기 이후의 절대 군주제에서 우리는 이런 권력의 응시가 작동하는 모습, 즉 원근법과 권력의 관계를 그 시대의 시각양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1) 군주권력의 응시

(1) <시녀들 _ Las meninas (Diego Velázquez, 1656, Prado, Madrid)> : 재현과 응시

푸코는 17세기 고전주의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을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시녀들’은 ‘고전주의 재현에 대한 재현’인데 그것은 그림에서 나타나듯 재현 자체를 묘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 재현의 과정들은 생략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시녀들’은 고전주의적 재현의 틀 안에서는 재현행위의 재현이 불가능함을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_-;;

http://ssall.com/MT/archives/velazquez.meninas _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이 그림에서 특징적인 것은 거울 속에 스펙터클로서 위치하는 왕과 왕비이다. 그림 속에서 왕과 왕비, 관람자인 나, 그리고 화가의 응시가 서로 수렴되는데, 실상 왕과 왕비는 그림 속에서 실체로서 등장하지 않으며, 그 숨겨진 거울 속의 응시는 관람자인 나의 응시와 같게 되는 것이고 ‘주권적인 중심’이다. 푸코는 이 중심이 재현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라고 다루고 있다. 왕과 왕비가 관념적임과 동시에 실재하는 이 점에서 관람자는 재현과 연결되고, 연계성은 관람자 자신이 아닌 그림 내부로부터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그림은 그림의 구성 자체에서 연역되며 구체적인 관람자 개인에게 준거하지 않는다는 원근법의 원리도 확인된다.

이 그림에서 주체는 생략되어있다. 시녀들의 작가로서의 주체, 관람자 자신의 주체, 돌아선 캔버스의 등장인물로서의 주체는 그림에서 드러나지 않는데, 이 생략을 푸코는 재현의 순수성과 투명성의 획득을 위해 필연적이라고 생각했다. 설은 화행이론의 관점에서 그의 입장을 비판했는데, 모든 회화적 명제가 가진 “나는 본다.”는 함축적 능동형이 그 비판이다. 즉 왕과 왕비가 이미 위치해버린 그곳에서 작가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인데, 벨라스케스가 군주의 시점에서 그림을 그리면서도 뒤돌아선 캔버스 뒤의 어두컴컴한 곳에서 실체로 드러나는 역설을 말한 것이다. 이후의 광학적 분석과 슈나이더와 코헨의 반박에서는 그 거울 속의 환영이 뒤돌아선 캔버스의 인물을 나타낸다고 하였으나 그러한 논쟁은 ‘원근법의 구성이 그림 바깥의 실제적인 관람자의 시점에 준거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기 때문인데, 벨라스케스는 이런 원근체계의 선입견을 역이용하고 있으며 그림에서 드러나는 엄격한 기하학적 구성이 그 함정?을 가려준다. 결론적으로 ‘시녀들’의 구도는 재현이 기하학적 조직화와 상상적 구조간의 계산된 불일치로 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푸코는 문과 거울의 경쟁을 지적하고 있으며 위에서 말한 불일치의 구성을 정확히 인식하고있다. 주체는 왕의 위치인 그림 외부의 중심점에서 등장하는데 그것은 권력의 시점이기도 하며 17세기의 현대성의 시각은 바로 이 권력의 시각이다.

벨라스케스는 사실보다 어둡게 그림 속에 자신을 등장시킴으로써 궁정사회의 위계와 조직화를 묘사했으며 왕이 원하는 왕 스스로의 모습을 표현했다. 왕은 드러나지 않은 채 응시를 유지하는데 이로써 권력의 응시는 더욱 강력해진다.

(2) 스펙터클과 감시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군주의 권력을 가시성의 권력으로 이해하였고, 군주의 권력이 현시되는 처형장이나 프랑스 혁명 후의 길로틴과 같은 스펙터클 속에 잔존하였다. 그러나 군주의 권력을 가시성 하나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다. 앞의 그림에서도 드러나듯 권력의 응시는 근본적으로 비가시성의 영역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주의 권력은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결합, 즉 이미지 및 스펙터클의 동원과 응시 및 감시의 결합을 통해서 행사되는 것이다.

17세기 유럽의 군주제 국가들은 다양한 스펙터클들을 동원하는데, 프랑스의 궁정정원 _ 정형정원에서 드러나는 정치적인 예술형식의 이용이 대표적인 예이다. 극도로 정리된 방사형의 가로구조에서 우리는 군주의 시점과 통제를 확인한다. 가시성의 영역에 배치된 광기를 그 바깥에서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고전주의 시대의 이성의 눈, 바로 이것이 현대성의 시각이며 ‘시녀들’에서의 권력의 응시와도 같다. 그러므로 스펙터클은 감시와 분리되지 않으며 가시영역의 스펙터클은 비가시적 영역의 권력의 응시에 의해 조직된다. 17세기부터는 거리에 공공적인 조명등이 설치되는데, 그 불빛은 가시성을 부과하고 감시를 행사하는 수단이었다. 대혁명을 비롯한 19세기까지의 혁명들에서 거리의 등이 1차적인 파괴의 대상이 된 것도 그런 이유이다.

2) 부르주아 감시권력의 응시

부르주아의 시대에서 감시의 권력은 그물망을 펼친 것과 같이 보편화된다. 예전의 스펙터클과 같은 것을 넘어서 개별적인 인간들의 신체에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http://ssall.com/MT/archives/panopticon.gif

1791년 제레미벤담이 제안한 판옵티콘은 구조적으로 원형의 개별적인 방과 그 중심의 감시자를 두고 있다. 완전한 개인화와 편리한 감시, 특별히 감시되는 수감자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 감시되고 있음’을 느낄 때 그것은 상당히 경제적이다. 모든 다양한 기능들이 모두 이러한 감시를 위한 것이며 이곳에서도 역시나 관찰자인 간수는 중앙에서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벤담은 이러한 도식을 사회전체로 확산하려 몽상했는데 이것을 푸코는 훈육적 사회의 형성이라고 규정했다. 나중에 언급되지만, 심지어 벤담은 공중개방의 방법으로 이런 통제를 더욱 공고히 하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 판옵티콘에서의 권력의 응시는 원근법적인 기하구조에 기초하며, 계몽주의에 기초한다. 벤담은 루소의 꿈에서의 개개의 완벽한 소통을 통한 투명한 사회에 더해 지배적인 응시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상태를 조직했던 것이고 그것은 즉 권력의 행사라는 것이었다. 판옵티콘에서 체화된 권력의 시선은 원근법적인 시각공간에서 작동하며 그 가시성의 배치는 ‘시녀들’에서의 절대군주의 시선 및 가시성의 배치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다만 그림에서 군주가 자신의 흔적을 거울에 남겼다면, 판옵티콘에서의 응시에서는 그것마저 사라지고 그 비인격성이 전면화되어있다.

판옵티콘에서 수감자는 중앙의 감시자의 위치에서 스스로 자신을 봄으로써 훈육된 주체, 길들여진 신체, ‘정신예방적인 주체‘가 된다. 한편 주체는 자신의 에고 역시 필요한데 ’시녀들‘에서 거울에 반영된 군주의 이미지가 그것이며 19세기 이후에 부르주아 체제가 스펙터클을 배제하지 않는 것은 판옵티콘에서는 그런 대칭적인 응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판옵티콘은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설득하는 학교로서 고안되기도 했는데, 그런 점에서 ‘감시의 옆에서는 그것과 나란히 상징적인 의미의 스펙터클이 계몽의 이름으로 ….’라는 말도 설명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위의 논의를 통해 이성은 감시, 현대성의 시각은 곧 권력의 시각이었다고 이해될 수 있다. 또한 그 권력의 응시는 원근법적인 기하공간의 구도 속에 자리를 잡고 가시성의 배치를 조직하는 중심축으로서 기능했으며, 그것은 시각의 문제를 사회 정치적인 문제와 나누어 생각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시각적 권력은 교묘하다.

* Author / Gathered from : 최윤호

관찰자의 기술

4. 관찰자의 기술 _ 최윤호 발제 (수유연구실 예술세미나 자료)

19세기 초의 괴테에 이르러 잔상과 같은 주관적 시각현상은 과거의 소외된 위치에서 벗어나 광학적 진리의 위치를 획득한다. 이런 ‘주관적 현상에 일치하는 새로운 객관성’이 갖는 의미는 아래와 같다.

# 잔상의 특권화로 인하여, 인간은 감각적 지각을 외부지시체와 어떤 필연적인 연계가 단절된 것으로 여기게 된다.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의 감각의 출현, 잔상과 그것이 수반하는 변조는 주체에 의해서 생산되고, 주체 안에서 생산된 자발적인 시각의 이론적이고 경험적인 본보기가 되었다.
# 시간성이 관찰의 구성요소가 되다.”’

그 당시, 시간 속에서 경험한 자기 자신의 주관성이 전환되는 과정은 ‘보는 행위’와 동의어가 되었다. 이는 대상에 완전한 초점을 두고 있는, 관찰자에 대한 데카르트적 이상을 해체시켜갔다. 잔상과 주관적 시각의 시간성의 문제는 19세기에 큰 인식론적 이슈가 되었다.

# 셀링(Schelling)의 ‘일시적 중첩에 기초한 시각’의 묘사 : … 단편적인 방식으로 조각조각 생산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 스스로 완성하기 위해서 각각의 사물은 특정 순간들을 통과해 간다. – 서로를 따라가는 과정들의 계열이, 뒤의 것들이 언제나 앞의 것을 포함하며 각각의 사물들을 성숙시키는 것이다.
# 헤겔 : 로크적 지각을 거부하고 일시적이고 역사적인 펼쳐짐 안에 지각을 전개. “진실은 조폐국에서 틀에 맞춰 발행되는 동전과 같지 않으며 … ” 감각지각의 명백한 확실성을 공격.
# 괴테 : “일종의 대립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눈은 극단과 극단을, 중간적인 것과 중간적인 것을 대조시키는 속에서 이런 대립적인 인상들을 조합한다. 인상이 연속적이건 동시적이건 전체를 구성하여 하나의 이미지를 이룬다.”

로크와 꽁디악이 관찰을 감각들의 연속체로 이해했다면 괴테와 헤겔은 관찰을 힘과 관계들의 상호작용이라고 보았다. p154 당시의 다른 작가들은 지각을 연속적 과정, 일시적으로 퍼져있는 내용들의 흐름으로 묘사했다. 앙페르 : “연속적인 차이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결과”

허바트(Johann Friedrich Herbart)는 정신적 경험을 지배하는 수학법칙을 공식화함으로써 “자극-반응 심리학의 정신적 아버지”가 되었다. 칸트가 경험을 종합하고 배열하는 정신의 수용능력을 고려했다면, 그는 주체의 내적 비일관성과 탈조직화에 대한 경계를 드러냈다. 그에게 있어 의식은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무질서한 흐름으로부터 시작한다. 관념들은 이전이나 동시에 발생한 관념들 또는 ‘현시’와 융합되고 희석되며 뒤섞인다. 그는 관념들의 충돌과 융합의 과정에서 진실을 추출해낸다. 이런 지각을 수학화, 계량화하려는 복잡한 시도는 이후의 수량적 감각 연구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으며 한편으로 그의 작업은 훈육적, 도덕적인 관념의 주입과 관련한 그의 교육학적 이론과도 결부되어있었다.

1820년대까지 유럽 전역에서는 잔상에 대한 계량적 연구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독일의 푸르기니에는 잔상의 지속과 변조에 관한 괴테의 연구를 이어가게 되는데, 그의 연구는 잔상의 지속시간과 조건에 따른 변화와 관련한 것이었다. 다음세대의 연구자들은 푸르기니에의 경험적 연구와 허바트의 수학적 방법을 병행할 것이었다. p158,159그림 푸르기니에는 최초로 잔상의 상이한 형태를 구분했는데 그의 그림은 주관적인 시각현상이 역설적으로 객관적인 것임을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연구는 17-8세기의 굴절계의 투명성에 관한 담론이 아니라, 유효성과 적합성이라는 다양한 영역을 가진 생산적 영토로서 눈을 재배치했다.

1820년대 중반부터는 그동안의 경험적인 잔상연구의 결과로 수많은 광학기구와 기술들이 발명되었다. 초기에 그것은 과학적 관찰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곧 대중의 오락물이 되었다. 그런 기구와 기술들은 지각이 순간적이지 않다는 개념과 대상 사이가 분리되었다는 개념을 사용했는데, 잔상연구는 감각이 혼합되거나 융합되는, 그런 ‘보는 행위와 얽힌 지속성’을 통해 지각의 변조와 통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p161,162그림 회전판(thaumatrope, 1825 John Paris) _ “… 1/8초 동안 잔상이 지속된다. …” 이런 “철학적 장난감”의 단순함은 이미지의 직조되고 환각적인 본성과 지각과 그 대상 사이의 단절 모두를 명확하게 해주었다.

로제트(1825)와 물리학자 패러데이(Michel Faraday)는 회전하는 바퀴의 착시현상을 연구했으며 1820년대 후반에 벨기에의 플라토(Joseph Plateau)도 잔상의 실험을 실시했다. 그는 매우 유력한 “시각의 잔존” 이론을 만들었다. p166 1830년대 초 그는 페니키스티코프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로제트와 페러데이 등의 연구와 그의 연구를 통합한 것이었다. p164,166그림 이후의 쉬탐페의 스트로보스코프아래그림와 호너의 주트로프도 유사하다.

이런 장비의 영화사적 맥락에서의 접근은 각각의 장치가 가진 개념적이고 역사적인 특이성들을 무시한다. 시각의 잔존이라는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설명력을 갖고 작동하는 조건과 환경들, 그리고 그것이 가정한 역사적 주체/관찰자이다. p169 모든 연구들에서 조사의 대상은 관찰자 자신의 자기-관찰과, 생활에서의 경험들이었다.

페니키스티스코프는 19세기에 “기술이 복잡한 훈련들로 인간의 감각중추를 지배해왔다.”는 벤야민의 주장을 구체화시킨다. 이 도구가 관찰자에게 요구한 물리적 위치는 ‘즉시 구경꾼이 되어버리는 개별적 육체’, ‘경험적 연구와 관찰의 주체’, ‘기계 생산의 한 요소’라는 세 가지의 혼재였다. 이점이 스펙터클과 감시가 대립하는 푸코의 주장이 미치지 못하는 지점이다. p171 19세기 관찰자의 생산은 규율과 규제의 새로운 절차와 일치했다.

# 디오라마 : 움직이지 않는 관찰자를 기계 속에 통합. 자발성 제거 p172,173

1815년 브루스터경이 발명한 만화경은 페니키스티스코프의 훈육적인 구조와는 급진적으로 달라보였는데 그것은 보들레르에게는 근대성 그 자체와 부합되는 것이었다. “의식을 부여받은 만화경”이 되는 것은 “보편적인 삶을 사랑하는 사람”의 목표였다. 한편 맑스와 엥겔스에게 만화경에서의 다중성은 거울의 속임수에 불과했다.

사진술을 제외하면 19세기 시각이미지의 가장 중요한 형태는 입체경이었는데 그것은 공간이 천부적인 것인지에 관한 당시의 공간지각 논쟁과 관련이 깊다. 1830년대에 과학자들은 보는 육체를 양안적이라고 규정하고 두 시각축의 각도상의 차이를 양화했으며 생리학적 근거를 설명했다. 특별히 1833년에 휘트스톤은 ‘근접한 대상’에 있어서의 시각축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의 이론에 의하면 지각경험은 본질적으로 ‘두 눈의 차이에 대한 이해’이다. 브루스터도 그런 차이에 대해서 ‘그건 마술과 같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라고 확신했다. p183@ 휘트스톤은 입체경을 통해 회화와 같은 것과는 다른 시각에서 물리적 물체의 존재를 ‘흉내’내려고 했다. 그는 이미지와 대상의 완전한 등치를 추구했고, 그런 면에서 디오라마에서 이용된 회화의 기술들과 달리 입체경의 ‘가까운 대상’이 더 생생하다고 생각했다. ‘만질 수 있는..’ 19세기의 어떠한 재현의 형태들도 실제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을 그만큼 융합시키지 못했다.

입체경의 조사

이미지 안의 두 시각축이 수렴하는 각도에서 중요한 변화를 요구하는 지점들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이것은 물체로 가득 찬 공간이어야 하고 당시의 부르주아들이 가졌던 비어있음에 대한 공포와도 연관된다. p178그림 이런 이미지에서의 깊이는 사진이나 회화에서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또한 입체경에서의 이미지를 조직하는 것은 ‘평면’이다. 물체들 사이의 공간은 점진적인 후퇴가 아니며 형태는 불확실하게 분리되는데 이것은 고전적인 무대 디자인과도 유사하다.
입체경은 근본적으로 통합되지 않은 채 모여 있기만 한 장(場)을 드러낸다. 우리 눈은 3차원 전 영역을 완전히 파악하기보다는 분리된 지역에 대한 국지경험으로서 인식한다. 19세기 회화의 범위는 집단들과 평면들 간의 비일관성에 주목했는데, 입체경과 회화에서는 동일하게, 새로이 구축된 시각공간의 출현과 광범위한 관찰자의 변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p191

재현의 수단으로서 입체경은 ‘외설적’이다. 그것은 카옵의 극장적인 배치에서의 무대장치 같은 관계, 즉 눈과 이미지와의 거리를 파괴했고, 벤야민이 ‘근대성의 시각문화’에서의 핵심으로 보았던 것의 완성이었다.

1838년 휘트스톤의 문제는 ‘물체 그 자체’와 평평한 표면에 투사되는 ‘그것’에 관한 것이었다. 입체경을 통해 보는 것은 이미 재생산된 조각난 세상을 두 개의 비정체적인 모델이며 기계적인 재구축을 통한 것이었다. p193 탈중심화된 관찰자와 입체경의 분산-중복된 기호들의 제도화는 수세기동안 관찰자와 대상에 상호 부여되었던 ‘조망점’의 근절을 뜻한다. p193그림 ‘바르뜨의 준거적 환영??’p194

입체경은 육체적 ‘근접성’과 ‘부동성’을 요구했다. 19세기가 시작되면서 눈과 시각기구 사이의 관계는 하나의 ‘환유’가 된다. 둘은 동일한 활동 평면에 있는 인접한 장치였다. p195 시각장치는 맑스의 ‘도구’와 같은 변화를 겪는다. “적절한 도구가 인간에 의해 채택되는 순간, ….기계는 단순한 도구들을 대체한다.” p197 도구는 인간주체의 타고난 힘과 환유적인 관계였다. 19세기의 도구주의는 “인간의 본성은 도구가 되는 것, 그의 소명은 그의 지위에 의해 설정되고 일하기 위해 배치된다는 은연중의 가정”에 기초한다. p198

1830, 1840년대의 광학기구들의 결정적인 특징은 그들이 수반하는 억압의 형태와 작동구조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광학적인 경험은 기구 안의 이미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따라서 페나키스티스코프나 입체경들이 사라졌을 때 그것은 발명과 개선과정의 일부로서가 아니었으며, 그 초기의 형태들이 당대의 욕구와 용도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라짐의 이유 중 하나로 ‘요술환등기’를 들 수 있는데, 그것과 달리 입체경에서는 그 생산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생산이 엄폐되지 않는’ 입체경은 기구의 물리적 성질에 의존했다. 그 허상은 더욱 완전한 보전을 하는 형태에 자리를 내어준다. 카옵에서는 자유로운 주체가 아직 사실적이라는 허구를 재생산하고 지속하게 했다. 사진은 자연스러운 그림코드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여겨졌는데, 사진은 좁은 범위의 기술적 가능성에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카옵에서의 관찰자와의 관계성을 이미 없애고 단일한 것이 되었으며 새로운 카메라를 관찰자와는 기본적으로 독립된 별개로 취급했다. 그러나 카메라는 자신을 대상과 관찰자 사이의 비물질로 가장하고 있었다.

스펙터클의 앞선 역사, 그리고 모더니즘의 순수지각은 새롭게 발견된, 완전히 드러난 관찰자의 영역에 위치한다. 그러나 양자의 최종적 승리는 시각의 바탕으로서의 ‘육체의 부정’과 그 맥동 및 환영에 의존하고 있다.

* 관찰자의_기술을 요약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