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메모.
1. 박물관의 교육적 기능
2. 좋은 물건만이 박물관의 소장가치에 부합하는것은 아니다.
3. 한국 박물관에서 근대 소장품의 공백이 생기는 이유.
4. 디자인인가 응용미술인가, 전통공예품인가. 소장품은 어떻게 분류되고 활용되어야 하나.
5. 박물관은 가장 실용적인 디자인교육의 자료로써 이용되어야 한다.
6. 박물관을 활용한 디자인교육이 한국에서 가능하기 위한 박물관의 분류.
아이디어 메모.
1. 박물관의 교육적 기능
2. 좋은 물건만이 박물관의 소장가치에 부합하는것은 아니다.
3. 한국 박물관에서 근대 소장품의 공백이 생기는 이유.
4. 디자인인가 응용미술인가, 전통공예품인가. 소장품은 어떻게 분류되고 활용되어야 하나.
5. 박물관은 가장 실용적인 디자인교육의 자료로써 이용되어야 한다.
6. 박물관을 활용한 디자인교육이 한국에서 가능하기 위한 박물관의 분류.
Ozzyz님이 어디선가 가져온 광화문에서 분신한 그 분의 전단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선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가자! 광화문에 동학혁명 정신으로!
-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연구 중단사태 진실규명을 위하여.
-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연구 재개를 위하여.
- 황우석 박사의 세계적 줄기세포 연구업적 진실조작 및 음해 도적질 음모세력 처단을 위하여.
- 나는 위와 같은 사태를 두 눈을 뜨고서는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
- 저 한줌의 무리들을 처단하지 않고 서는 우리들은 물론이고 자녀들의 미래는 없다.
- 진실을 조작하고 국민을 기만한 mbc의 매국질을 처단하자.
- 친일 매국질 수구어용 나팔수 반민족 반통일 반민주 반개혁 친외세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를 처단하자.
?
한국에 있지 못해 뉴스만 가끔 보면서 내용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6개월 전에 이곳에 왔음) 뭔가 내용이 심각하게 뒤틀려져있다는 느낌이랄까, 상당히 묘한 느낌을 주는 내용이었다. 사람이 죽음을 결심하기까지의 진정성을?왈가왈부하는 것은 참 미안스러운 일이지만, 등장하는 정치적인 내용의 어구들이 서로 묶여있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천천히 살펴보면 위의 유서에는 (그나마)진보적이라는 MBC가 조중동과 한 배를 탔고, 줄기세포연구와 더 나아가 황우석이라는 인물 두 부분은 개혁과 진보성, 통일과 반외세의 민주적 요소로 떠올라있다.
나의 한국 정치판을 바라보는 인식이 잘못된 것일까?, 그것도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어찌보면 모든 일에 진보와 수구를 대입시켜야 뭔가 확실히 드러나보인다는 불안함이 내 머리속에서도 꿈틀대니까. 그야말로 Ozzyz님의 말대로 ‘어설픈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것은 나또한 예외가 아니다. 사실 내가 알고있는 여러가지 분야의 각 요소들에 드러나는?’진보’나 ‘수구’란 개념들이 완전히 통하는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런 진보와 수구성을 판단하는 건 어떤 기준에 따라야 할까. 노무현이 ‘진보’일까, 아니면 한나라당이 ‘수구’일까? 그리고 나는 진보적이기 때문에 어떤 ‘진보성’에도 찬성하고 지원해야만 하는 것일까?
짧은 기간이나마 외국에 떨어져서 한국을 보고있어서인지, 혹은 그 6개월이라는 해외체류중에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 관해 갑자기 무관심해졌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속칭 황까, 황빠간의?집단적인 여론몰이는 너무나 위험해보이고 그런 방식으로만 사안의 해결을 기대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나는 진보적이고 싶지만 진보의 탈을 쓴?집단적 생각몰이는 별로 관심 없다.
책장에 꼽혀있는 얼마안되는 책 중에 수전손택이 쓴 ‘타인의 고통’이란?책이 있는데,?이런 상황에 약간 들어맞는 구절이 있다.?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그것을 일종의 ‘구경꺼리로 소비’해버리고?말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저반의 특권에 저항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아야겠다. 어설픈 연민은 해결책이 아니다.
[한겨레] 미술을 아틀리에에서 미디어의 영역으로 끌어낸 거장 백남준씨가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라는 이름을 남긴 채 29일(미국 현지시각) 숨졌다. 국내 예술계와 화랑들은 그의 안타까운 별세 소식을 설 연휴 마지막 날 갑작스레 맞아야 했다.
백씨의 죽음은 가족 중에 아내 구보타 시게코만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백씨는 해마다 겨울 추위를 피해 부인과 함께 11월께부터 마이애미 아파트에 머물다 4~5월께 뉴욕의 자택으로 되돌아가곤 했다고 백씨를 아는 국내 지인들은 전했다. 그는 평소 뉴욕 맨해튼의 ‘백남준스튜디오’ 등에서 젊은 작가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일을 즐겼지만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선 극히 말을 아낀 것으로 지인들 사이에 기억되고 있다.
백씨는 타계하기 직전까지도 ‘마지막 작품’에 몰두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술사가 문인희씨는 “선생님은 최근까지도 늘 드로잉을 하시면서 마지막 비디오 아트를 준비하고 계셨다”며 “마지막 작품이 아직 구상 단계인지, 아니면 완성 단계인지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백씨의 유해는 한국시각으로 31일쯤 뉴욕 매디슨 애비뉴의 병원으로 옮기진 뒤 그곳에서 장지를 결정하고 장례를 치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지가 한국 땅이 될 가능성에 대한 말들도 국내 예술계에서 조심스럽게 오가고 있다. 백씨는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등 한국 미술계 인사들에게 ‘나는 서울 창진동에서 태어나 정릉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한국 땅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또 이종선 경기도박물관장은 30일 “백남준 선생은 평소 자신이 죽으면 한국에 돌아가 용인에 묻히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그는 “백 선생은 어머니와 조국에 대한 사랑을 작품 사이사이에 담아 표현했던 한국의 예술가”라며 “경기도 용인에 건립 중인 백남준미술관과 그의 안식처가 함께 있게 된다면 이 지역은 여러 추모전·기획전들이 열리는 미디어 아트의 중심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문화재단은 2001년부터 지상 2층, 연면적 1645평의 백남준미술관 건립에 들어갔으며 이미 67억원을 들여 백씨의 레이저 작품, 비디오 아트 작품 등 60여점을 구입해 김포 대한항공 물품보관창고에 보관 중이다. 경기문화재단의 송태호 대표이사는 “그동안 미술관 건립 문제는 백씨의 조카인 켄 하쿠다가 운영하는 뉴욕의 백남준스튜디오와 상의했기 때문에 (미술관 건립은) 백씨의 사망과 관계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르면 내일 중 미국을 방문해 조문한 뒤 백씨의 유택을 미술관에 모시는 문제 등을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
참 오래된 일인 것으로 기억된다. 북한의 김일성 생가 방문중에 방명록에다가 “만경대정신을 이어받겠다”는 투의 서명을 한 일로 불구속 기소된 동국대 강정구교수가 파면됐나보다.
알맹이가 가득한, 참된 사상일수록 대중들에게 가볍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상이 무엇이건 어떤 사람에게 강요되고 지켜나가야만 하는 것으로 무겁게 결정지어진다면 그때부터 사람은 없고 공허한 생각만이 떠도는 상황이 되기 쉽지않나 싶다.. “맥아더 동상 철거”반대의 이유를 “지나가던 갈매기가 똥이라도 쌀 수 있다”고 한 어느 아는 분의 얘기처럼 일반의 가벼운 사상토론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용인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정말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같다. 지금도 대충 살맛은 나지만..
아무튼, 한국의 예술과 디자인 분야에 상상력이 부족하다면, 그 이유중에는 부족한 생각의 다양성도 들어갈거다. 그야말로 공산주의는 커녕 사회주의의 벽도 넘지 못한 한국의 민주주의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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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한 글입니다.
강정구 교수가 컬럼비아대 교수였다면
[해외리포트] 학자의 학문적 발언에 대한 두 대학의 다른 태도
강인규 _ 미국 위스콘신대 언론학 강사
미국의 컬럼비아대학과 한국의 동국대학. 두 대학교 모두 각 사회에 큰 기여를 해 온 유서 깊은 명문사학이다. 특히 동국대학교가 지식인과 학생들을 배출함으로써 한국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바는 컬럼비아대학이 미국사회에 미친 영향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에 속한 학자의 발언을 둘러싸고 보인 두 학교의 태도는 여러 모로 상반된다. 의 저자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컬럼비아대학교 비교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사회적 발언에 소극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미국 대학사회에서 사이드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는 여러모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사이드는 미국의 중동정책을 맹렬히 비판했으며,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앞장섰다. 동양에 대한 서구사회, 특히 미국이 가지고 있는 인종적이고 문화적인 편견을 거리낌 없이 들춰내던 사이드의 연구와 발언은 미국 보수층의 심기를 대단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욕 먹어가면서 소속교수 보호한 컬럼비아대학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이드였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것은 그의 ‘돌팔매질’이었다. 그는 2000년에 레바논을 여행하던 중, 국경 넘어 이스라엘군 초소에 돌을 던졌다. 레바논 남부지역의 무력지배에 항의를 표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당시 학계에 일대 파문을 일으킨 그의 행동은 컬럼비아대학의 입장표명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당시 대학은 “그 돌은 특정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었기에 위법행위가 아니며, 당연히 학문적 발언의 하나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밝히며 징계를 거부했다. 학교 측의 이런 결정은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서 내려진 것이었다. 이 결정에 반발한 사람들은 컬럼비아대학을 ‘포이즌 아이비(사악한 아이비리그 학교)’라고 비꼬았다.
미국에서 중동문제는 한국사회의 남북문제에 비견될 만큼 민감한 주제일 뿐 아니라, 유태계 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욕시의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파장은 더욱 컸다. 그가 이스라엘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진이 미국언론에 공개되자, 보수언론은 물론 일부 동료교수와 학생들까지 그의 행동에 경악하며 파면을 요구했다. 그의 위험한 경거망동은 교수직을 박탈할 만한 충분한 사유가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상황은 사이드에게 대단히 가혹했다. 미국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일부 아랍 언론까지 비판에 가담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는 “아랍인들이 폭력적이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애써 온 존경받는 교수가 이런 행동을 한 데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썼다.
컬럼비아대학 측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사이드 교수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두고 교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회의와 토론을 벌여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대학은 학자의 발언을 보호해야 한다”는 결정이었다. 당시 교수대표였던 조나단 콜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대학의 역할 가운데 학자 개인의 자유로운 발언을 보호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학자는 사회의 다수가 믿고 있는 정치적 신념에 억눌려 자유로이 의사를 표현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황 교수와 강 교수에 대한 이중적 태도
컬럼비아대학의 결정이 사이드의 행동을 지지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니듯이, 적어도 이 순간 글의 목적은 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옹호하는 데 있지 않다. 이 글이 말하고 있는 바는 단 하나, 대학 내에서 지식인의 발언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자들의 발언마저 법의 이름으로 처벌하는 사회가 일반대중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한국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밝히는 작업은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만큼이나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접근이 필요한 영역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인 근대사 연구는 줄기세포 연구보다 훨씬 큰 위험부담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대학의 역할이 사회의 통념을 재생산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학자들의 발언에는 일상적 담론 이상의 자율성과 관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맹목적 민족주의 담론이 황우석 교수를 성급하게 영웅으로 만들었듯이, 한국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반공주의는 한 지식인을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 ‘매국노’로 만들었다. 한국 언론이 줄기세포의 근본적 한계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황 교수팀의 업적을 찬양하기에 여념이 없었듯이, 강정구 교수의 견해를 객관적으로 고찰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매도하기에 바빴다.
보수언론과 정계는 ‘국가를 위협하는 발언까지 학문적 발언으로 보호해줄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를 위협하지 않는 학문적 발언’이 어디까지인지를 누가 판단할 것인가? 논문이나 강의록 초고를 들고 국회나 법원, 혹은 신문사 편집부로 먼저 달려가라는 주문이 아니라면, 그 판단은 온전히 학계에 맡겨져야 한다.
사이드가 돌을 던진 뒤 5년 후 한국
에드워드 사이드는 2003년 9월, 오랫동안 앓아 온 백혈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가 사망했을 때 모든 언론은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며 그의 ‘돌팔매’와 컬럼비아대학의 지지발언을 함께 거론했다. 이후로도 사이드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컬럼비아는 그의 지성을 지켜 낸 자유의 정신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국대학교는 법원이 강 교수에 대해 국가보안법 기소결정을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강 교수를 직위해제했다.
강정구 교수를 둘러싼 ‘논란’의 주범은 강 교수 자신만이 아니다. 오히려 학자의 발언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진지한 성찰과 토론을 이끌어 낼 인내심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회가 일으킨 소란이다. 한나라당의 의원도 말하지 않았던가. ‘한국이 성숙한 사회라면 강 교수의 주장을 무시했어야 한다’고 말이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학자 한 명의 발언으로 ‘전복’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도리어 체제에 대한 확신이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동국대학교는 이번 논란의 ‘주범’인 한국사회와 맞서기보다는 한 사람을 대학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간편한 길을 택했다. 물론 동국대학교로서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특정 교수의 수업을 들은 졸업생들에게 취업상의 불이익을 준다’는 기상천외의 발상(이야말로 반민주적인 발언이 아닌가)이 통용되는 사회 속에서 학교 측이 겪어야 했을 고통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어 낼 미래의 한국사회가 동국대학의 이번 조처를 어떻게 기억할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동국대학교 측의 현명한 재고를 기대한다.
2005-12-27 15:50
ⓒ 2005 OhmyNews
[Captured Article] The Hindu News Update Service
Seoul, Nov. 18.(AP): South Korea plans to bring home about one-third of its troops from Iraq next year, the Defense Ministry said Friday.
Defense Minister Yoon Kwang-ung reported the plan to withdraw about 1,000 troops from Iraq to the ruling Uri Party on Friday, the ministry said. About 3,200 South Korean troops are stationed in northern Iraq to help rehabilitate the country, making Seoul the second-largest U.S. coalition partner contributing forces after Britain.
The announcement comes a day after South Korean President Roh Moo-hyun met U.S. President George W. Bush in the South Korean city of Gyeongju, where the leaders insisted their countries’ alliance was strong and agreed to work together to curb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ambitions.
South Korea’s move caught the White House by surprise. “They have not informed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of that,” said National Security Council spokesman Frederick Jones.
Jones said Roh didn’t raise the subject of troop withdrawals with Bush when they met Thursday in Gyeongju.
“This issue was not raised,” Jones said. “Just the opposite.”
He said Bush expressed appreciation for the South Korean troops and Roh expressed pride in the accomplishments of the South Korean forces.
걸리적 거리던 몇가지를 꼽아보자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별 이유없는 몰아치기가 참 많다는거다. 광기? 라고 할 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황우석박사의 줄기세포 연구는 그 도덕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우리나라 사람들도 과학연구를 참 잘들 하는구나..’싶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거야 어떤 국적을 가지고 한반도에 살던 사람으로서 처음 생각한 동물적인 것이었다. 이후 논쟁이 벌어졌던 윤리적 문제점들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고, 그만큼이나 당장 막막할 환자들의 의견도 쉽게 무시할 내용은 아닌 듯 싶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들 하는 그 몰아주기의 결과란 어떤 것일까. 언론과 정부까지 나서서 그 연구를 무한정 지원하기 시작했을 때는 역시나 또…. 일이 벌어지는구나 싶었다. 과학자의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나 그 연구성과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것이나 이미 정해진 규칙과 공간에서 이뤄져야 한다. 누구 한 사람이 잘한다고 그때마다 ‘특별한’사례들을 만들어낸다면 한 나라의 조직과 정책은 부서질 수 밖에 없을거다. 그 황우석 박사만큼이나 같은 처지에 있을 수많은 과학자들은 ‘젠장 나는 딸리니까 접어야겠다.’라며 손가락이나 빨라는 것이니까.
이제 뉴스마다 황우석박사의 윤리적 문제를 논하는 분위기가 한창이지만, 더욱 문제는 이미 황우석박사의 연구는 보편적인 방법에 의해 논의되어지고 합의되어질 수 있는 수위를 넘어가버린 걸로 보인다는거다. 순식간에 띄워진 한사람의 과학자를 또한번의 깎아내리기로 무참하게 사살하는 걸 보는 건 참 우울한 일이 될 것 같다. 만약 황우석박사의 사례가 우울하게 마무리되었을 때, 그제서야 “과학자를 다 그렇게 보지 말자!”고 한들 누가 그걸 들어줄까…
한류라는 단어를 볼때에도 마찬가지다. 물론 내가 연예인도 아니도 일반적으로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보다 주류 예술에 가까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나라의 ‘문화’라는 것이 어디 그리 쉽게 뜨고 지고 할 수 있다고 과연 정부는, 언론은 생각하는 건지,,, 한심한 생각이 든다. 미국의 스크린쿼터 압박에는 당연한 반기를 들면서도 주변국에는 우리 문화에 대한 복종을 당연시하는, 그런 이기적 ‘문화 선진화’는 정말 허깨비같은거다.
문화에 ‘선진화 : 후진화’란 것이 말이 되는건가. 그 다른 차이를 찾고 즐기는 것이 ‘문화’란 것, ‘문화적’인 것 아니었나. 우월성을 따져서 1등 문화 되면 그걸로 뭘 할런지 모를 일이다. 문화적 혜택이란 건 돈으로 살 수 있는 자동차가 주는 즐거움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와 함께 잘 섞일 때 그 중에서 우리의 문화적 독특함도 공평하게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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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새튼 박사, 황우석 박사와 결별
[연합뉴스 2005-11-13 00:57]
(워싱턴=연합뉴스) 박노황 특파원=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줄기세포 연구자이자 황우석 박사와 1년여 동안 호흡을 맞춰온 피츠버그 대학의 제럴드 새튼 박사가 연구에 사용된 난자 취득 과정의 윤리적 문제를 들어 황 박사가 추진중인 세계 줄기세포 허브 설립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12일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