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구는 ‘작은 미술’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 작음은 왜소함, 빈약함, 하찮음이기도 하지만 친근함, 예민함, 소중함이기도 하다. 장신구를 통한 발언은 대중 연설이 아니다. 마주앉아 나누는 귀엣말에 가깝다. 거기에는 메가폰이 아니라 찻잔이 있다. 예민하고 즉물적인 장신구는 뼈나 근육보다는 신경에 가깝다. 장신구의 영토 – 9인의 시각 _ 전용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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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 무네요시와 한국의 미 – 퍼온 글
야나기무네요시와 한국의 미 그리고 신간 ‘인간부흥의 공예’와 관련된 글
3.1운동 직후인 1919년 5월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당시로선 극히 이례적인 글이 실리게 된다. 일본 문화는 조선의 은혜를 입었다는 파격적 주장이었다. 나라(奈良)박물관의 전시품만 해도 그걸 증명하고 있지만,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 문화를 죽이고 있다는 개탄도 담겼다. 폭탄선언 ‘조선인을 생각한다’를 쓴 이는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였다. 도쿄대 출신의 종교철학자이자 휴머니스트가 그였다. 야나기 무네요시와 한국의 미 – 퍼온 글 더보기
공예와 지자체의 진정한 만남 _ 이인범
청주의 국제공예 비엔날레 개최와 공예산업단지 조성, 광주·이천·여주의 도자박물관 건립, 국제도자엑스포·비엔날레프로젝트, 그리고 공예진흥원 설립, 국립현대미술관의공예부문 전시, 서울 시립미술관의, 그 밖에 목포 등 각 지방자치단체들에 의해 추진되는 공예관련 프로젝트들…. 공예와 지자체의 진정한 만남 _ 이인범 더보기
전환기의 공예, 자기 성찰의 시대 _ 최공호
80년대에 극단으로 치닫던 이른바 탈기능의 조형주의 경향을 나는 러시안 룰렛 게임에 비유한 적이 있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공예판 전체를 볼모삼아 자신들끼리만 즐기면 그만이라는 소아적·가학적 태도가 그 게임의 심리와 크게 다를바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전환기의 공예, 자기 성찰의 시대 _ 최공호 더보기
1919년 7월호 내셔널 지오그라피
어설픈 예술가 의식을 버려라 _ 최범
만일 누군가 한국의 현대공예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공예의 개념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개념의 혼란, 한국 현대공예의 현실은 한마디로 이것이다.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오늘날 이곳에서 공예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들을 통해 우리가 발견하는 것이 바로 공예의 부재와 소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한국 현대공예라 함은 단일한 개념이나 장르 또는 존재방식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차라리 급격한 산업화와 전통의 단절, 개념의 혼란, 제도의 지배와 소외된 존재방식 등을 공통된 배경과 특성으로 삼으면서 전통공예, 미술공예, 순수공예, 오브제공예, 산업공예 등 온갖 불투명한 개념들이 바벨탑과 같은 양상을 보이면서 전개되는 현실을 전체적으로 이르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설픈 예술가 의식을 버려라 _ 최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