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일기 1

제주살이에서 시원한 풍경을 빼놓을 수는 없을 거다. 그런데, 날마다 풍경을 보며 취해 살 수는 없는 일이고, 그래서 이곳으로 힘들게 들어온 것 같지도 않다. 살아온 서울에서 꽤 먼 거리인 이곳으로 이주를 하게 되다니 …… 큰 탈 없이 마무리가 되어가는 걸 보면 운이 꽤 좋은 셈인 건 맞겠다.

낯선 곳에 왔으니 배워야 살 수 있다. 우선 쓰레기를 먼 곳에 버려야 한다.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지만 집 안에 텔레비전을 두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덜 버리게 되고 버릴 때 좀 더 긴장한다. 한 눈금에 2,400원 정도 한다는 LPG 가스는 샤워를 할 때에도 영향을 미친다. 머리를 적시면서 온수를 틀면 샴푸를 바른 후엔 잠시라도 끄는 습관이 생겼다. 함덕 해변까지 가야 10리터 짜리 쓰레기 봉투를 살 수 있는데 그러려면 7킬로미터를 운전해야 한다. 연비는 14킬로미터/리터 정도이니 대략 1000원은 써야 하고, 운전은 아직 나만 할 수 있다. 어떤 것이 달라졌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운다.

오늘 아침엔 8킬로미터 거리 어린이집에 큰 아이를, 거기서 7킬로미터 떨어진 어린이집에 작은 아이를 등원시킨 후 하나로마트에 가서 우유를, 그 옆 약국에서 살충제를 샀고,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집에 돌아왔다. 몇일 전 집 둘레에 가루형 지네 퇴치약을 뿌렸는데 이번엔 창문마다 곤충을 막는 액체약을 뿌렸다. 마을 옆엔 곶자왈과 너른 밭이 있어 눈은 시원하고 푸르른 모습이지만 그만큼 온갖 종류의 곤충과 함께 살아야 한다. 익충은 그냥 둬야 하고 해충은 죽여야 한다지만 글쎄다. 그냥 사람들은 벌레를 다 싫어하는 거 아닐까.

아이들은 아직 마을 – 정확히는 마을 내부로 만든 콘크리트 길바닥 – 안에서 노닌다. 길 밖이 그들에겐 거칠게 느껴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너무 연약한 것인지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어떤 이사

정말 엄청난 호사. 계획부터 함께 시작한 집의 완공이 코앞이다.

이곳을 가자고 모인 서른 남짓의 가구들, 가족들 사이엔 몇 번의 요동이 있었다. 나이에 따라, 여건에 따라, 이해 관계에 따라. 나부터 돌아보아도 나 아닌 다른 가족의 이해와 우리 가족의 이해가 상충하는 지점이 어딘지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과분한’ 집이 눈 앞에 있지만, 그것이 온전히 우리 것인지, 그것을 감당하기에 우리 역량과 태도가 부족하지 않은지 미심쩍은 눈초리로 되돌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언젠가 그런 과정을 찬찬히 살필 수 있을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집은 하드웨어, 삶은 소프트웨어. 결국 살아가며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 엄연히 있고, 하드웨어가 영향을 주긴 하겠지만 본질적인 변화를 끌어내거나 비전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겨우 한 해를 집과 씨름하면서 솔직히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잘 마무리가 되겠지.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