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기술도 많이 변했다. 예전처럼 JAVA 스크립트나 웹폰트를 직접 웹서버에 내장해서 페이지에 연결하는 무식한 짓보다는 대규모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공용 소스를 공유해서 쓰는 일이 보편화되는 추세.
구글이나 클라우드플레어와 같은 서비스를 통해 Jquery 정도는 편하게 얻어다 쓸 수 있고, 이렇게 웹으로 연동되어 공유되는 자산들을 이용하면 웹사이트의 억세스 속도도 빨라진다.
이 방식은 웹폰트에도 적용된다. 국내에도 모빌리스라는 업체에서 시험적으로 한글 웹폰트를 서비스하고 있다는 걸 웬만한 설치형 블로그 이용자들은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서버의 속도나 글꼴의 크기가 그리 최적화되지 않은 편이라 마음대로 쓰기엔 불편한 것이 사실. 그런데 구글에서 제공하는 600여 가지의 구글 웹 폰트 서비스에 나눔 글꼴이 추가될 (이미 시험 가동중) 예정이라고 한다.
글꼴의 적용은 아래와 같이 간단히 CSS에 ‘@import’로 시작하는 구문 하나와 ‘font-family’로 시작하는 구문을 해당 스타일에 지정해주면 된다. 위로부터 순서대로 나눔브러쉬스크립트, 나눔고딕, 나눔고딕코딩, 나눔명조, 나눔펜스크립트 서체의 사용법.
아래 스크린샷처럼 ssall.com에도 적용시켰다. 워드프레스는 요즘 기능이 너무 좋아져서 CSS 추가 정도는 JETPACK 플러그인의 CUSTOM CSS기능을 이용하면 너무 쉽다. 기존 파일들을 FTP로 직접 열지 않아도 해당 스타일의 Class를 알면 관리자창을 열어 추가시킬 수 있다.
1980년, 영국 왕립미술학교(Royal College of Art)와 임페리얼 칼리지(Imperial College)의 공업디자인공학(Industrial Design Engineering) 연합과정에 입학한 마크 샌더스(Mark Sanders)는 84년 졸업작품으로 스트라이다라는 이상한 모습의 접이식 자전거를 발표했다. 이후 30년이 지나는 동안 그는 회사를 차렸고 스트라이다 또한 여러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현재 스트라이다의 핵심을 이루는 디자인 부분의 저작권이 만료되었기 때문에 중국이나 한국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그냥 생산해서 판매하고 있다. 화면은 그가 1985년, BBC ‘Tomorrow’s World’라는 프로그램에서 스트라이다를 소개하는 모습.
형태와 기능(form and function)에 대한 고민은 모던 디자인 운동에서 빠지지 않는 화두였다. 더욱 정확히 하자면, 20세기 전반에 걸쳐 확산되어 오늘날의 현대적 풍광과 생활환경의 구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모던디자인운동의 초기, 기능주의(Functionalism)의 이념과 맞닿은 질문이었다. 20세기는 모더니즘, 혹은 모던디자인운동이 지배한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만 그 모더니즘만으로 설명하기에도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오늘날의 디자인이다. 실제로 요즘의 시장에서 팔려나가는 소비재들 가운데 기능 이외의 다른 특별함으로 성공하는 경우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고, 소비자의 요구 또한 날이 갈수록 복잡해져서 일련의 해석 과정을 필요로 한다.
모더니즘 디자인 논의에 자주 등장하는 두 개념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아돌프 루스가 1908년에 주장한 “장식은 범죄(ornament is a crime)”라는 개념, 그리고 미국의 조각가인 호레이쇼 그리너에 의해 처음 논의되고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이 1896년에 주장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ever follows function)”는 개념이 바로 그것. 기능이 없는 장식이 지닌 무의미함을 비판함과 동시에 기능성에 근거한 조형을 강조하는 이 두 가지 개념은 – 예컨대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건물의 장식은 건축주나 입주자의 목적과는 상관이 없는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거리를 지나는 행인은 장식을 통해 그 건물을 다른 건물과 구별할 수도 있는 등의 – 이견이 없지 않았음에도 기능주의의 원리로 정착되어 이후의 20세기 모던디자인 경향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철 골조로 디자인된 마천루건축을 처음 확립한 인물이었고,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모더니즘의 아버지’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루이스 설리번. 그는 19세기 말엽부터 미국에서 고층빌딩의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수행했던 인물이다. 당시의 미국은 엘리베이터와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 철과 같은 신소재의 대량생산, 새로운 취향에 대한 요구, 강성해진 경제력 등이 한꺼번에 융합되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도시는 보다 대규모의 건축물을 필요로 했다. 건축가였던 그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형태가 관습을 따라(form follows precedent)” 과거의 경향을 답습하던 당시의 건축에 반대하고, 목적에 근거한 건축디자인, 즉 건물의 사용목적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더도 덜도 없는 기능적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가 디자인한 웨인라이트 빌딩은 완전한 모더니즘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장식적 문양을 차용하는 등 절충적 형태를 취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합목적적 디자인’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이후 설리번의 합목적적 디자인상은 제자였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비롯한 수많은 건축가, 디자이너들에 의해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계승되었다. 예컨대 1950년대에 자동차나 기관차와 같은 운송수단의 디자인에 폭넓게 유행한 유선형(streamlining) 스타일에서도 공기역학적인 합목적성을 추구한 기능주의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여기서 시점을 현재로 옮겨보면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된 합목적성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의 주장이 되어버린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선언 대신 “형태는 재미를 따른다(form follows fun)”거나 “형태는 감성을 따른다(form follows emotion)”는 주장들, 혹은 “형태는 욕망을 따른다(form follows desire)”는 다소 비판적인 내용에 이르기까지, 현대사회 속에서 디자인의 의미를 이야기할 때마다 이 명제는 거듭 변형되고 있다. 달리 말해 이러한 현상은 모더니즘 이후의 디자인에서 어떤 ‘가치’들이 기능을 대신해 중요시되는지를 보여준다.
형태가 기능을 따르지 않는 경우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필립 스탁의 ‘주시 살리프(Juicy Salif)’를 꼽을 수 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즙 짜개’라는 엄연한 기능을 갖고 있는 주시 살리프. 알레시가 1990년부터 제조하기 시작한 베스트셀러 주시 살리프는 우리나라의 백화점에서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주시 살리프는 그 불합리성 때문에 더 유명해졌고 역으로 이러한 엉뚱함이 판매를 지속시키는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이다. 영국의 디자인학자 가이 줄리어(Guy Julier)가 다소 비꼬아 기술한 주시 살리프에 대한 해석은 그 불합리성을 잘 설명해준다.
가냘픈 세 다리는 섬세한 발목 위로 뻗어 올라간다. 이상하리만치 높은 무릎에서 꺾인 곡선은 세로로 홈이 파인, 중앙의 눈물 방울처럼 생긴 덩어리와 맞닿는다. 항공공학적인 형상을 지닌 거미 모양의 받침은 그것을 감탄의 시선이 향할 천상의 위치에 올려놓는다. 최상의 ‘외관’을 갖도록 완벽하게 만들어진 이 삼각대는 이 도구의 알뿌리 같고도 남성숭배적인 머리의 노골적인 모습을 하늘 위로 떠받들고 있다. 사용하려면 기술과 힘 모두 필요하다. 누군가 과일을 쥐고 비틀고 누르기를 반복할 때면 이 레몬스퀴저의 받침은 약간 기우뚱거린다. 레몬은 아래로 부서져 내리고, 손은 힘으로 쥐어짠 후 남겨진 찌꺼기로 범벅이 된다. 머리를 장식하는 홈들을 따라 흘러내린 과즙은 아래의 뾰족한 부분으로 천천히 흘러 모여든다. 그 후엔 반짝이는 흘러내림, 그리고 배설의 만족스러움이 깃든 소리와 함께 아래의 그릇으로 떨어진다.
가이 줄리어는 주시 살리프의 기능적 불완전함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금속(알루미늄)으로 제작된 이 도구는 실제 사용에 있어서 특징적인 형태로 인해 사용자에게 과도한 집중을 요구한다. 또한 개방된 구조나 강산성인 레몬과 화학적으로 반응하는 재질 때문에 비위생적이기도 해서 부엌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물건이다. 그렇지만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알레시가 꾸준히 주시 살리프를 판매할 수 있는 이유는 다름아닌 형태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담긴 독특한 상징성 때문이다. 가이 줄리어의 말대로 주시 살리프는 “성 도착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디자이너인 필립 스탁 스스로 주시 살리프의 “또 다른 기능”이라고 이야기한 ‘스타가 디자인한 물건 써보기’ 정도의 의미를 떠올릴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재미 삼아 사용해보려고 이 물건을 구입할 것이다. 변형된 설리번의 명제들로 이 제품을 설명하자면, 주시 살리프는 “형태가 욕망을 따른” 경우이거나 “형태가 재미를 따라” 디자인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가이 줄리어는 비판적인 시각이긴 해도 이러한 주시 살리프의 다양한 ‘변태적 의미들’ 자체가 이 제품의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듯 하다.
이미 형태와 기능을 고민하는 디자인은 ‘공식적’으로 폐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걸까?
산업혁명 이래로 지속된 세계의 산업화는 거의 대부분 석탄과 석유 등 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들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진행되어왔다. 이러한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켜 지구 온난화를 불러온다. 실제로 아열대성 기후로 변화한 한반도뿐만 아니라, 남태평양의 소국 투발루제도가 물에 잠겨 없어지는 등, 전 세계의 각 지역마다 급속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는 이유도 바로 화석연료의 과다한 이용 때문이다. 이렇듯 급변하고 있는 지구환경 속에서 환경친화적 도시디자인 개념은 호불호를 떠나 지역의 발전을 지속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건으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에 집계된 각종 통계치들은 전지구적 환경위기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인위적으로 배출된 온실가스의 양은 1970년부터 2004년까지 약70%가 증가했고, 이산화탄소 하나를 놓고 보아도 약80%나 증가했다. 그 결과 지구의 평균기온은 지난 100년간 0.74°C나 높아졌는데, 그래프에서 나타나듯 최근의 증가추세는 1900년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상승한 온도만큼 지구상에 존재하는 얼음의 양도 늘어나, 북극의 빙하 면적은 1978년 이후 매 10년마다2.7%씩 감소하였고, 해수면의 높이 또한 지난 40여 년간 매년1.8m상승하였다.
심각한 문제는, 현재와 같은 추세로 화석연료를 사용할 경우, 세기말까지 지구의 평균기온은 약6.4°C, 해수면은 59cm나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는 등 현재의 개발방식으로는 지구의 지속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세계 각국은 리우 기후변화협약(92), 교토의정서(97) 등의 다자간 협의를 통해 선진국, 개발도상국 등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할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2005년 2월에 공식 발효된 교토의정서(지구온난화 규제와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는 조약에 서명한 선진 38개국이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에 견줘 평균 5.2% 감축하도록 규정했다.
이렇듯 위기가 현실이 된 상황에서 준비되고 있는 대응책은 당연히 온실가스 감축이다. 현대의 국가체제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왔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인간사의 모든 분야는 영향을 받게 된다. 산업, 경제 분야에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구조로 국가의 산업구조를 재편하고 제품의 디자인, 생산, 개발에 있어서도 친환경적 기술과 방법론을 적용하는 동시에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제품의 수입과 수출을 규제하고 있다. 또한 시민의 일상 생활 전반에 걸쳐 탄소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차량보다 자전거 이용을 장려하고 행정관서의 탄소배출량을 규제하는 등, 환경친화적 삶의 분위기 조성과 기반 인프라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의 기후변화방지 대책
영국 : ‘50년까지 ‘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 80% 감축(’07.11) / ※ UK Climate Change Bill 상정(’07.6)
미국 : ´25년경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 후 감소 추진(´08.4.17. Bush). 2017년까지 휘발유 소비량 20% 감축을 위한 대체에너지 비중 확대(3%→15%) 등 대책 발표(‘07.1) / ※ 캘리포니아주는 온실가스 배출을 ’20년까지 25% 감축하는 법안 제정(’06), 그밖에 버몬트, 뉴욕 등 29개 주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
일본 : 지구 온난화 대책의 추진에 관한 법률 제정(’98) 및 개정(‘06) ‐ 내각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지구온난화대책 추진본부」설치. 2050년까지 현재수준 대비 60~80% 감축계획 발표(‘08.6), ’20년까지 ‘05년 대비 14% 감축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
중국 : 『National Climate Change Programme』발표(‘07.6) ‐ ‘10년까지 ’05년 대비 GDP당 에너지 소비량 20% 감축, 신재생 에너지 10% 확대 목표 설정
멕시코 : 『National Climate Change Strategy』발표(‘07.5) ‐ 주요 산업별로 ’07년~’14년까지 약 1억CO2톤 감축잠재량 제시
*출처: “기후변화대응 종합기본계획.” 대한민국 정부 국무총리실, 2008.
사실 온실가스 감소를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더 필요한 부분은 공공서비스나 일상생활과 관련된 분야다. <그림: 온실가스 배출요인>에서 자세히 구분하고 있듯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 총량에서 운송(13.5), 전기/전열(24.6), 기타 연료의 연소(9) 등 공공, 일상 영역에서의 에너지사용이 4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 달리 말해 이것은 인구가 밀집된 도시들이 얼마나 환경친화적으로 개발되었는지가 한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독일의 녹색수도 프라이부르크Freiburg시의 도시디자인 정책을 예로 들어 어떤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형태의 도시가 만들어지는가를 점검해보자.
프라이부르크시는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심부임과 동시에 독일의 남서부에 위치해있는 도시다. 1986년 독일에서 가장 먼저 ‘환경국’을 만든 이래로, 1992년에는 독일의 환경수도로 선정되었고, 그 이후에도 환경친화적 도시개발, 솔라‐에너지solar‐energy 관련 산업과 지식의 연구 개발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그 결과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그린시티가 되었다. 이 도시가 내세우는 지속 가능한 도시발전모델(FNP2020)은 아래의 여섯 분야로 나뉘어 추진 중이다.
토지의 절약: 한정된 토지를 보다 환경친화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대지이용계획(FNP2020)을 수립하고 지속적으로 대지의 사용을 줄여나간다.
생태적 도시환경: 도시의 자연, 경관, 환경, 휴양과 관련한 개발이 천연적인 자연환경을 파괴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시 전체가 하나의 생태적 공간이 되도록 관리한다.
균형 잡힌 도시조경: 과거 호수공원이나 소공원과 같은 구역별 도시조경 개념에 주력하던 것에서 벗어나 종합적인 미래도시경관계획을 수립해서 공공성, 문화, 역사, 미학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도록 전체를 통합적으로 관리한다.
국지기후 조절: 시 전역의 기후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건축물에 적용하여 도심과 시 외곽의 공기 유입과 순환이 시민의 건강에 유익하도록 만든다.
저에너지 건축: 친환경 건축 지침, 의무규정 등을 통해 위해 건축물의 저에너지화를 지향한다.
시민 참여: 크게 친환경성, 사회적 공정성, 산업성이라는 도시개발의 선도목표는 시민에 의해 만들어져 FNP2020의 기틀이 되었으며 모든 주요 규정들은 19개의 시민그룹이 참여한 토론을 통해 도출되었다.
이러한 프라이부르크의 환경 친화적 개발은 지역의 경제, 산업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누구보다도 앞서 진행된 환경도시의 구축은 최근 들어 새로운 시장으로 대두된 환경에너지산업 분야에서 도시가 선도적인 위치에 서도록 이끈 원동력이 된 것이다.
프라이부르크는 유럽에서 가장 큰 프라우언호프 태양에너지시스템 연구소(ISE), 국제 태양에너지 학회 (ISES) 등의 연구기관들을 비롯해, Solar‐factory, Concentrix Solar GmbH, SolarMarkt AG 등의 관련 기업들을 유치했고, 연계된 대학 교육에도 힘쓴 결과 시의 전체 고용인력에서 3%에 가까운 만 여명이 1500여 개의 환경 관련 산업체에서 근무하고 이를 통해 5백만유로의 수익을 창출해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프라이부르크는 도시디자인/개발 정책 전반에 걸쳐 에너지 사용을 억제하고 기존의 환경자원을 보전하며,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친환경에너지의 개발, 이용에 앞장섬으로써 결과적으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자전거를 가리는 건 쉽지 않지만 오늘날의 자전거에 큰 영향을 미친 물건으로 꼽는 것이 사진에 보이는 ‘드레이지네’라는 물건이다. 당시에는 이렇게 굴러가는 물건들, 즉 인력거나 풍력거등의 개발이 붐을 이루는 때였다. 비슷한 여러가지의 물건들이 참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드레이지네가 좀 다른 건 앞바퀴를 좌우로 비틀어 조향이 가능하다는 것.
드레이지네
독일의 삼림관리원인 ‘칼 폰 드라이스’가 만든 이 물건은 프랑스 빠리의 쎄느강 남쪽에 ‘룩셈부르크공원’에서 귀족들을 대상으로 1817년에 처음 시연되었다. 드라이스는 넓은 숲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여러가지의 ‘구루마’를 만들어 시험했다. 요즘에도 열차선로에 얹어서 쓰는 인력구동차량을 영어로 ‘Drasine’이라고 부르는데, 이름처럼 그가 발명한 것이다. 하지만 사진에 보이는 드레이지네라는 물건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진 못했고 재빠른 런던의 사업가들이 불법 복제해서 대 히트를 치게 된다. 특허를 내고 자전거 판매를 시도하던 드라이스는 결국엔 병에 걸려서 말년을 보내다 죽고 말았다.
귀족 출신의 드라이스는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는 바람에 발명품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최근의 연구들은 이 물건을 자전거의 시초라고 보고 있는데, 그동안 이탈리아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낙서를 근거로, 프랑스에서는 ‘시락’의 벨로시페드를, 영국에서는 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나온 구루마의 모습을 증거로 삼아 자기 나라가 자전거를 개발했다고 주장했으나 모조리 가짜로 판명되었다. 아직도 유럽 각국은 자기 나라가 처음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딱히 누군가가 발명했다기보다는 서서히 진화했다고 보는것이 옳다.
프리 휠Free-Wheel 이전의 위험한 자전거 사고들
페달을 계속 움직이지 않아도 바퀴가 굴러가는 장치를 ‘프리 휠(Free-wheel)’이라고 하는데 20세기에 들어와서야 개발되었다. 요즘은 프리 휠이 모두 적용되어 페달을 거꾸로 돌려도 바퀴는 그대로 앞으로 굴러가지만, 19 세기 후반의 영국에서 한창 자전거가 유행할 당시의 모습은 바퀴가 그대로 페달에 고정된 원초적인 자전거의 형태였다. 또한 상대적으로 각광받던 철도에 비해 도로들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 요즘과 같은 타이어 대신 철 바퀴를 그냥 쓰거나 통고무를 덧대어 쓰는 정도였던 초기의 자전거는 고르지 못한 길에서 흔들림을 줄이기 위해 앞쪽 바퀴가 대책 없이 커지기도 했다.
빈발하던 자전거 사고와 관련해 이런 저런 소문도 많았다. 실제로 영국의 국립기록원에서 ‘자전거’로 검색을 해보면 자전거 사고로 사망하거나 입원한 사람의 기록들이 꽤 많고, 자전거 개발자들 가운데 내리막에서 굴러 떨어져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있었을 정도였다. 당시 영국의 어떤 잡지는 “그렇게 페달을 쉴새없이 밟다보면 뼈의 형태가 변할것입니다.”라고 경고했다.
여성과 자전거, 그리고 바지
이런 자전거 역사에 빠지지 않는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여성 운동과 자전거의 관계. 자전거가 유행하던 19세기, 여성의 자전거 타기는 하나의 투쟁이었다. 다르게는 치마를 입고 타는 자전거를 만드느냐, 아니면 바지를 입고 똑같은 자전거를 타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었다.
드레이지네도 귀족의 놀잇감 정도로 소개되었지만, 당시의 자전거는 ‘천박한 장난감’으로 인식되었다. 그런 물건을 여성이 타고 즐기는 건 쉽게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발 빠른 자전거 공장들은 앞 바퀴가 큰 ‘오디너리’ 자전거를 개조해 여성이 치마를 입고 탈 수 있도록 페달이 한쪽으로만 달린 특수한 오디너리를 만들었다. 아얘 자동차처럼 사륜을 달아 ‘신사 숙녀용’의 품위 있는 자전거가 나오기도 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훗날 이 공장들은 대부분 자동차회사로 전업했다.
한편에서는 승마복과 같은 간편한 바지 복장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여성 자전거족이 등장했다. 복장을 편하게 하고 남성들과 똑같은 자전거를 타는 그들의 모습은 당시로서는 아주 충격적인 일이었다. 1897년 캠브리지 대학교에서는 여권 운동을 비판하는 대대적인 시위 자리에 자전거타는 여성을 인형으로 만들어 상징적으로 공중에 매달아놓기도 했다.
결국 자전거 형태를 아주 심하게 변형했던 모델들은 사라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가진 보통의 자전거들만이 살아남았지만 요즘에도 자전거와 여성성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남아있다. 여성이 자전거를 타면 성기능에 장애가 생긴다는 이상한 소문도 있지만, 직접 장시간 자전거를 타본 바로는 남성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적당히 타면 별 문제는 없을듯.
여행은 나를 벗어나 나를 보게 되는 기회였다. 나는 또래의 다른 이들에 비해서 스스로 감내해야할 고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문제와 마주했을 때 떠난 여행을 매번 후회하게 되었지만, 그 여행이 가져다 준 경험도 만만치 않게 나의 부분을 이루어나갔음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비슷한 여행을 거듭할수록, 나는 여행이 순간의 고통을 피하는 도피가 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비참한 여행이란건 바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어딘가를 향하는 행위는 나와 잠시나마 결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아직까지 나는 현실로부터 떠나오지 않은 ‘즐거운’ 여행에 대해 들어보지를 못했다.
도미토리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진다. 폐쇄적인 내부가 되어버리는 싱글 룸에 비해서 처음에는 생소하기만 했던 도미토리는 나의 여행에서 하나의 문화적 공간이었다. 만약 어느 투숙객이 가진 것이 너무도 많다면 그는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어떤 종류의 가치이건 일단 소유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것을 지켜내기 위한 나의 투쟁도 시작된다.
내가 어떤 가치를 소유한다는 건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는 ‘불행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고, 누가 나의 가치를 빼앗을 것이라는 믿음은 내가 소유한 가치의 절대적 효용마저 잊어버리도록 끊임없이 유혹했다. 어떤 이유에서이건 일상과 거리를 두게 마련인 여행을 하면서도, 그 일상과의 거리를 좁히는 가치들을 끊임없이 찾으려는 건 여정에서 심각한 모순의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여행하면서 자주 여행지에서의 삶과 나의 실제 위치를 뒤섞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보다 못 먹는 것에 대한 연민, 나보다 잘 사는 것에 대한 부러움, 나와는 다른 가치에 대한 불신, 나와는 다른 얼굴에 대한 거부감들까지, 사소한 어느 것 하나도 비교되고 비교하기를 거듭하다보면 결국 총체적으로 다른 그들과 나의 간극을 확인하는 것으로 여행은 끝이 나버린다. 그 즈음이 되면 여행 이전의 그 떠나온 곳에 서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