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사회주의 / Art and Socialism

현재상태 : 번역중

친구들이여, 나는 당신이 상업으로의 예술의 관계들에 대하여 심사숙고하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상업은 일반적인 의미 바로 그것입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늘날 상업이 취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는 오직 하나뿐인 형식, 즉 시장에서의 경쟁체계인 것이지요.

예술이 상업보다 큰 권력을 가졌을 때가 있었습니다. 예술이 정말 필요했고 우리가 이해하는 단어인 상업이 별것이 아니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반대로 상업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 되고 예술이 별것 아닌 것이 될 것입니다. 이점은 내가 예상하는 것이지만, 모두에 의해서 받아들여질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리라 봅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 견해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에 대하여 다른 의견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것이 좋건 나쁘건 상관없이 다른 의견을 가질 것입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에 관하여 내가 당신들에게 꼭 하고싶은 말은, 당신이 예술과 상업 사이의 관계들 속에 존재하는 악마적 요소들을 없애기 위한 일종의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봐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확실히, 우리가 하나의 단어로 이해하고있는 이 상업의 득세는 하나의 악마로 생각되어집니다. 그리고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섞이지 않은 악마 그 자체라고 부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사건들에 걸쳐 계속되는 이 낮선 삶의 지속성 때문이라도, 그 악마들은 그들 스스로 종말에 이를 것입니다.

하나의 매우 불공정하게 분배되어진 물질의 가치를 얻기위한 조급함 속에서, 근대문명의 세계는 대중예술을 완전히 억제해왔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예술은 소수의 – 우리가 아마도 그것을 줄이고 노동자들보다 많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할 대상들일 – 부자들이나 고위층들의 손들 위에서 향유되어져야만 하듯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의 나눔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악마들이나 그들중 가장 악질적인 것; 그 이유로서, 예술의 빈곤은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전과 같이 장시간의 육체노동에 의해 전 문명세계에 걸쳐 일하는 반면, 그들은 당연한 노동으로부터의 위안 – 그들이 한번 가졌던 위안, 그리고 언제나 가져야만 하는 위안, 그들주위의 사람들에게 매우 노동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매일마다의 일들(기본적이거나 관습적인, 혹은 당연한 것이 당연히 그들을 필요로 하지만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 끔찍한 문제들일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제외하는.)과 같이 그들 자신을 표현할 기회 – 을 잃어왔다는 –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 예술, 그리고 사람들을 위했던 예술의 상실 – 것입니다.

… 중, 후략.

윌리엄모리스

출처: http://www.marxists.org/archive/morris/works/1884/as/as.htm

글쓴이

최 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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