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Curiosity의 건축물 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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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현대 컨셉슈얼 건축에서 ‘더욱 더 특별해지려고 하는 것’이나 ‘컨셉슈얼한?아이디어를 작품에 밀어넣으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일본 창작계의 ‘컨셉슈얼’이란, 아마도?언급된 바와 같은 부정적 의미들을 가지고있지 않은듯하다.?그들은 아직 컨셉슈얼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기 보다는 ‘개발하기 위한 객체’로서 생각한다. 일본 Curiosity의 건축물 C-1 더보기

Ozzyz님의 ‘어떤 분신자살’을 읽고

Ozzyz님이 어디선가 가져온 광화문에서 분신한 그 분의 전단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선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가자! 광화문에 동학혁명 정신으로!

  1.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연구 중단사태 진실규명을 위하여.
  2.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연구 재개를 위하여.
  3. 황우석 박사의 세계적 줄기세포 연구업적 진실조작 및 음해 도적질 음모세력 처단을 위하여.
  4. 나는 위와 같은 사태를 두 눈을 뜨고서는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
  5. 저 한줌의 무리들을 처단하지 않고 서는 우리들은 물론이고 자녀들의 미래는 없다.
  6. 진실을 조작하고 국민을 기만한 mbc의 매국질을 처단하자.
  7. 친일 매국질 수구어용 나팔수 반민족 반통일 반민주 반개혁 친외세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를 처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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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지 못해 뉴스만 가끔 보면서 내용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6개월 전에 이곳에 왔음) 뭔가 내용이 심각하게 뒤틀려져있다는 느낌이랄까, 상당히 묘한 느낌을 주는 내용이었다. 사람이 죽음을 결심하기까지의 진정성을?왈가왈부하는 것은 참 미안스러운 일이지만, 등장하는 정치적인 내용의 어구들이 서로 묶여있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천천히 살펴보면 위의 유서에는 (그나마)진보적이라는 MBC가 조중동과 한 배를 탔고, 줄기세포연구와 더 나아가 황우석이라는 인물 두 부분은 개혁과 진보성, 통일과 반외세의 민주적 요소로 떠올라있다.

나의 한국 정치판을 바라보는 인식이 잘못된 것일까?, 그것도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어찌보면 모든 일에 진보와 수구를 대입시켜야 뭔가 확실히 드러나보인다는 불안함이 내 머리속에서도 꿈틀대니까. 그야말로 Ozzyz님의 말대로 ‘어설픈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것은 나또한 예외가 아니다. 사실 내가 알고있는 여러가지 분야의 각 요소들에 드러나는?’진보’나 ‘수구’란 개념들이 완전히 통하는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런 진보와 수구성을 판단하는 건 어떤 기준에 따라야 할까. 노무현이 ‘진보’일까, 아니면 한나라당이 ‘수구’일까? 그리고 나는 진보적이기 때문에 어떤 ‘진보성’에도 찬성하고 지원해야만 하는 것일까?

짧은 기간이나마 외국에 떨어져서 한국을 보고있어서인지, 혹은 그 6개월이라는 해외체류중에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 관해 갑자기 무관심해졌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속칭 황까, 황빠간의?집단적인 여론몰이는 너무나 위험해보이고 그런 방식으로만 사안의 해결을 기대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나는 진보적이고 싶지만 진보의 탈을 쓴?집단적 생각몰이는 별로 관심 없다.

책장에 꼽혀있는 얼마안되는 책 중에 수전손택이 쓴 ‘타인의 고통’이란?책이 있는데,?이런 상황에 약간 들어맞는 구절이 있다.?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그것을 일종의 ‘구경꺼리로 소비’해버리고?말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저반의 특권에 저항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아야겠다. 어설픈 연민은 해결책이 아니다.

디자인저널 만들기

테크노크라티, 딜리셔스 이 두가지의 신기한 물건을 오가면서 한 일이주를 보낸것같다.?하는 공부와?관련된 검색어들을 찾아보며 분주히 마우스 버튼을 눌러본 결과, 특이한, 아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가 모니터에 덜렁 남고 말았다. 영어권의 Observer(다수의 그라픽디자인 칼럼니스트들이 줄창 써대는 문화비평 블로그)나 Things Magazine(영국 RCA디자인사과정 프로젝트)과 같은 블로그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정보의 공유와 그를 통한 지식의 재생산이 우리나라의 블로그에서는 관찰되지 않고, 딜리셔스나 테크노크라티 대부분의 링크들은 웹디자이너(현업 웹디자이너분들이 아무래도 블로그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의 링크가 대부분이라는 것. 검색중에 또하나 발견한 것은 디자인+이론+담론… 등과 같은 한글 검색어로 웹 정보들을 긁어보면 태반이 온라인 도서사이트의 책소개 페이지로 연결된다는 거다. 이점은 어찌보면 디자인도서 판매가 잘되는건가.. 하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온라인상에 띄워져있는 특정 정보의 양이 모자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지.?

온라인 정보는 나름의 단점과 장점을 가지고있다. 보관의 방법, 검색의 용이성, 자료의 정확도, 신뢰성과 관련된 수많은 논란들이 있지만,?비교적 온라인 정보교류의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들 중 하나로서?’담론 만들기와 나누기’의 기능을 들 수 있을것같다. 실제로 테크노크라티나 딜리셔스의 경우와 같은 툴들을 통해 그런 역할들은 증폭될 수 있음은 대형사건과 관련된 영어권 블로그의 사례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특히 디자인과 관련된 Observer나 Things Magazine과 같은 영어권 웹사이트들은 이미 딜리셔스나 테크노크라티와 같은 ‘인터넷 기술자’들의 전유물처럼 들리는 고차원적 서비스에 이미 단골 사이트로 수십, 수백명이상의 사용자에게 링크되어있다.

우리나라에서 정보화에 관한 논의는 어느 분야에서건 서서히 증가되어왔지만 효과적인 도구로서의 의미라기보다는 고차원적인 장난감이나 선전도구로서 받아들여져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줄창 선전해왔듯 세계최고품질의 기간통신망과 하드웨어시설을 곳곳에 구비한지 이미 오래이며, (관련분야 종사자로서 확언하건데) 제일 많은 수의 웹디자이너들이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대표적인 디자인 학술저널이 없다는건 불균형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딜리셔스인지 뭔지는 솔직히 별로 중요한 얘기가 아니다. 디자인과 관련된 사람으로서 무언가 말하려한다면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찾아야만 할거같다는거다. 이미 인터넷은 잡탕밥처럼 뒤섞여가고 있는데, 아직까지 미적거리고만 있는건 정말 위험한 일.?한 공부한다는 학자분들이 학회나 세미나 대신 체신머리없이 인터넷에 뛰어들기를 주저한다면 디자이너들이라도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생각했다.

앞으로 할일에 “인터넷에 디자인저널 만들기”를 포함.

생각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건 생각이 없는거다.

옛 서구의 공예는 어떤 사회적 기능을 가졌었을까?

서구공예가 영국에서의 그것만을 일컫는 것은 아닐테지만, 자본주의의 본류를 이곳에서 찾듯,?그 변화의 대표성을 영국에서 찾는 것도 최악의 방법은 아닌 듯 하다.

아직까지 새로운 문헌이나 자료를 접한 것은 아니지만, 기존에 알고 있었듯이 산업자본의 폭증기에 들어선 영국의 모습은 예전의 왕실직영체제의 주류 장식물제작체계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생산기반의 변화였다.?수요의 증가에 기여한 요소들은 여러가지인데, 간단히 보자면 부르주아계층이 증가한 것과?식민개척으로인한 시장확대를 들 수 있다.?이런 변화는 생산체계의 변화를 요구하였고?이후 공장들은 대량생산체계를 도입하게 된다. 당시 영국의 사업가였던 웨지우드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업적 성공을?핵심적인 생산체계의 개편으로부터 일궈내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전문화된 산업디자이너의 개념이 서서히 만들어져갔다고 볼 수 있다.

왕실공방 이외에 존재했던 하층민들의 물건들처럼, 산업혁명기?공장들에서 만들어졌던 시민계급(부르주아)들을 위한 물건들 이외에도 노동자들이 주로 소비했던 물건들의 그룹이 존재했을 것이다. (이 점은 찾아봐야겠다.)

사회적으로 깊숙한 연관성을 가지는 예로서 미술공예운동을 들 수 있다. 이 운동은 잘 알려진바와 같이 윌리엄모리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벌어졌지만, 그 사상적 뿌리는 칼라일-러스킨과 같은 반 자유주의, 반 산업주의에 있다. 이를 표면적으로, 한 시기의 디자인사조로만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정치활동에서부터 생활용품 제작에 이르기까지 윌리엄모리스와 그 추종자들이?행한 일련의 활동들은, 앞서 언급되었듯 반산업주의적인 시각에서?대안적 생활방식으로서의 예술을 찾는데 집중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를 만드는 일”이 당시 사람들의 예술적 취미를 바꾸는 것보다 더 급선무라고 말한 점은 그런 그의 활동을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당시의 일반적 물건들이 기능하는 모습은 현재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대부분의 물건들은 – 윌리엄모리스의 그것마저도 -?부유한 시민계급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런 예술의 부정적 이용?!을 막으려 했던 것도 또한 미술공예운동과 같은 반 산업주의적 문예운동의 방향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소비의 틀 속에서 노동자계층이 차지하는 부분은 예전과 달리 너무나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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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 현대?영국의 공예와 디자인. 영국에도 현대공예와 전통공예의 구분이 있는가?

듣는것을 도와주는 도구가 안경처럼 패셔너블해질 수 있을까?

Hearware

그것이 영국에서 가장 큰 청각장애인 지원단체인 RNID의 목표다. 이 단체는 어떻게 청각보조제품이 발전해나갈지를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국립 자선단체는 블루프린트 디자인잡지, 울프 올린스 디자인 에이전시, 그리고 15명의 영국 현대 제품디자이너들과 함께 청각 보조도구의 미래를 다시 생각하는 일련의 팀을 꾸려왔다. 결과들은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서 이번주에 전시된다. 듣는것을 도와주는 도구가 안경처럼 패셔너블해질 수 있을까? 더보기

19세기 초기산업의 디자이너들

19세기에 걸쳐 ‘디자이너’라는 말은 명확하지 않고 혼란스러움에 둘러싸여있었다. 이른바 하나의 직업적 책임으로서, ‘디자이너’는 순수예술가, 건축가, 공예가, 기술자(엔지니어), 발명가, 기술자 그리고 낮게는 ‘고용자’로서 다뤄졌다. 19세기는 무자비한 변화의 시기였으며, 디자이너 ? 그 모든 변화들과 함께했던 – 는 패턴북을 만들어내던 18세기의 순수예술가들과, 디자인팀이나 메니지먼트 구조를 바탕으로 일하던 20세기의 산업디자이너들,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이 두 축은 그 정체성 – 19세기를 산업디자이너의 출현에 아주 중대한 기반형성기로 자리매김한 – 을 확립하기 위한 셀수없는 노력들 위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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