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원제 <No Logo>, 나오미 클라인 지음, 2000년 초판 발행)>의 9장을 요약한 메모.
이제 기업은 브랜드에 깊고 내밀한 의미를 담아내려고 하며 광고대행사는 자신이 제품을 선전해서 파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대신 참된 가치를 짜내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브랜드 구축자들은 지식경제에서 제 1의 생산자들인 셈이다. 고용 환경은 변화했다. 슈퍼 브랜드 기업들은 영혼을 세우고 성가신 육체를 잘라냈다. 슈퍼 브랜드 구축과 운영에 드는 엄청난 비용을 생산 관련 투자비의 축소로 해결했다. 기업의 우선순위가 바뀌자 공장 노동자와 장인으로 대표되는 실제 생산자들의 위치가 불안해졌다. 과거 생산가:소매가 1:1에 만족했던 기업들은 이제 1:4의 이윤율을 낼 정도의 저가생산처를 찾아다닌다. 생산과정과 생산자는 평가절하되고 있으며 브랜딩은 부가가치를 독차지한다.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배설물처럼 다뤄진다. 기업들은 제품 생산을 마치 자원 취급 기업이 구리나 나무를 조달하는 것처럼 제품을 조달한다. 생산 부문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제조업체가 노동 인력을 책임진다는 전통적 사고도 함께 빠져나간다. 세계적인 브랜드들은 근로 조건에 대한 책임을 하청 업체에게 떠넘긴다. 그리고 그저 물건을 아주 싸게 만들라고 말하면 끝이다.
자체 공장을 운영하지 않는 나이키가 이제 생산 부문에서 자유로운 브랜드들의 모델이 되었다. 기업들은 나이키의 마케팅 방식만이 아니라 싼 가격에 외주를 주는 생산 구조까지 모방하고 있다. 반스와 아디다스의 경우가 그러했고 브랜드와 이미지를 창출할 시간과 돈을 얻었다. 이제 공장 폐쇄는 북미와 유럽에서 흔한 일이 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이후까지의 공장폐쇄는 조직 개편, 즉 실적 저하에 따른 대량 해고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량 해고는 전략적 차원에서 광고비를 늘려 매출을 상승시킬 목적으로 이뤄진다. 사라 리의 사례는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혹투성이 식료품상’으로 불리며 월가에서 저평가되던 사라 리는 16억 달러짜리 생산 구조조정을 통해 광고비를 두배로 늘린 후 주가가 15%나 급등했다. 사라 리의 ‘새로운 마케팅 기법’을 두고 <비즈니스 위크> 등의 경제지는 브랜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리바이스의 경우도 유사하게 감원과 광고비 증가 수순을 밟았다.
일자리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다.
(유엔으로부터 직원 복지 향상의 공로로 상을 받기도 했던) 리바이스의 로버스 하트 회장은 ‘마케팅 기업’으로 거듭나려고 공장 폐쇄를 결정했으며 이것이 단순히 일자리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렇게 강력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지닌 회사가 단행하는 해고는 무언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장이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을 실제로 다시 볼 일이 없어지는,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현재 다국적 기업들은 대부분 제조 공장이 어디인지 ‘사업상 비밀’이라며 절대 밝히지 않는다. 그저 가장 싼 값에 거래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닐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디자인, 소재, 기일, 가격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제시하지만 어떻게 하청업체들이 그리 낮은 가격과 조건에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문제의 핵심은 가장 돈 많이 버는 기업들이 목을 꼿꼿이 세우고 고용 시장에서 달아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을 수 없는 카비테의 가벼움 : 자유무역 지대의 내막
‘제품이 아닌 브랜드’라는 전략은 기발해 보이지만 생산을 완전히 초월하는 건 불가능하며, 누군가는 그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인도네시아, 중국, 멕시코, 베트남, 필리핀 등이 주요 생산지로 떠오르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의 카비테 수출 가공 지역(자유무역 지대)은 작은 브랜딩 창고라 할 수 있다. 카비테 안의 공장들은 한정된 공간에서 생산량을 최대한 짜내도록 설계되었다. 싸구려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으로 지은 작업장에는 창문도 없고, 각 작업장은 30센티미터 간격으로 붙어 있다. 카비테는 순전히 노동을 위한 공간이다. 공장에 들어가려는 노동자들은 무장 경비원에게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어찌보면 카비테는 어느 지방 정부에도 속하지 않은, 민주 정부 안에 있는 작은 군사정부다. 80년대 이후 자유무역 지대의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에는 1000여개의 수출 가공 지역에서 2700만 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 수출 가공 지역은 위치와는 상관없이 대체로 비슷한 노동 환경을 갖고 있다. 평균 근무시간을 보면, 스리랑카는 14시간, 인도네시아는 12시간, 중국 남부는 16시간, 필리핀은 12시간으로, 대부분은 젊은 여성이다. 공장들은 한국, 대만, 홍콩 등의 계약, 하청 업체에 속해 있으며, 이들은 미국, 영국, 일본, 독일, 캐나다의 기업으로부터 주문을 받는다. 군대식 경영 방식을 따르고 관리자들의 권력 남용 사례가 많다. 수출 가공 지역에는 두려움이 번지고 있다. 정부는 외국 공장을, 공장은 유명 바이어를,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직장이나마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수출 가공 지역은 산업화의 약속 위에 건설되었다. 외국 투자자를 끌어들여 영세할지라도 공장이 생기면 결국엔 기술이전과 국내 산업으로 전환되어 국가 발전을 이끌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금과 각종 유인책을 쓰면 쓸수록 기업은 장기적 투자보다는 잠시 머무는 경제 관광객이 될 뿐이다. 경제특구 안의 공장들은 해당 국가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고 특구 바깥에서는 빈곤이 심화될 뿐이다. 사스키아 사센은 <통제의 상실>에서 이를 가리켜 ‘땅덩어리의 국적을 박탈하여’ 국가를 분할하는 과정이라고 썼다. 오늘날에는 수출 가공 지역을 유치하기 위해 70개 국가가 경쟁을 벌인다. 모든 국가가 산업 빈민가 겸 저임금 노동 빈민가로 바뀌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는 98년 WTO에서 “제 3세계 대부분이 … 드넓은 자유무역 지대로 바뀌길 원합니까?”라고 물으며 이런 상황을 꼬집었다. 카비테가 위치한 로사리오의 시장 호세 리카프린테는 공생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다국적 기업들이 로사리오로부터 수익을 얻으면 당연히 필리핀 정부도 그들로부터 수입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수출 가공 지역의 노동문제
앞서 살펴본 수출 가공 지역의 산업화 논리는 “트리클 다운 이론”, 즉 일자리를 창출해서 지역 경제를 지속 성장시킬 것이라는 생각이다. 문제는 임금이 너무 낮아서 대부분이 기숙사비와 교통비, 식비로 지출된다는데 있다. 필리핀 정부는 이곳 공장들의 근로조건을 노동권의 문제가 아닌 외국과의 무역 문제로 대하며 외국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댓가로 그들의 위반행위를 눈감아주고 심지어 조장하기까지 한다. IBM 모니터를 만드는 어느 공장은 초과근무 수당 대신 도넛과 펜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엄청 부유하고 당연히 법을 지킬 것 같은 다국적 기업이 왜 19세기 수준의 임금 착취 문제로 반복 지적을 받는지를 알려면 하청의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제조업체는 주문을 유치하려고 서로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계약 업체와 하청 업체는 각 단계마다 자기 몫의 수익을 요구한다. 결국 이 경쟁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노동자들이다. 97년 중국의 나이키, 리복 운동화 공장에 대한 보고서에서는 “다국적 기업들이 하청 업체를 착취하면 하청 업체는 노동자를 착취한다.”라고 적고 있다.
무노조 무파업
카비테의 노동자 지원 센터 운영자 제난 톨레도의 말에 의하면, 수출 가공 지역 밖에서는 자유롭게 노조 조직이 가능하지만 안에서는 피켓을 만들거나 시위를 할 수 없다. 공장에서는 집단 토의도 금지되어 있으며 지원 센터 인원은 경제특구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이렇게 보상과 예외를 인정하는 구역의 문화는 정부에 의해 단계적으로 폐지될 계획이었지만 실제로는 정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새 투자자는 물론이고 이미 노조가 결성된 필리핀 공장에서 생산하던 기업들마저 기존 공장을 폐쇄한 뒤 카비테에 들어와 다시 무노조 공장을 열었다. 막스 앤 스펜서는 카비테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단지 트럭 10대만으로 노조를 없앨 수 있었다.
카멜리타의 죽음, 여성 노동자 착취, 새로운 부류의 공장 노동자
카멜리타는 초과 근무로 죽었다. 생산 부문 이전을 둘러싼 환상 중 하나는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동한 일자리가 북반구에서 이뤘던 일을 똑같이 이뤄 줄 거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생산 부문이 제 3세계 하청 업체로의 주문으로 바뀌었듯이 정규직은 계약직, 임시직으로 바뀌었다. 이런 임시 고용 풍토는 수출 가공 지역의 목적인 부의 재분배를 이루기는 커녕 근로 조건과 임금 수준에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고향을 떠나온 10대의 소녀들을 공장 관리자가 선호하는 데는 다루기 쉽다는 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다. 이 곳의 공장들은 20대 후반 이후의 여성, 즉 자녀를 둔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과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임신한 여성에 대한 채용 거부, 인격 모독, 근로 불평등은 심각한 상태다.
이전하는 공장들
노동자들만 가벼운 존재가 된 건 아니다. 공장들 또한 최대한의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게끔 세워졌다. 93~95년 사이 미국에서는 노조 인정 선거에 대항해 공장 폐쇄를 하겠다고 위협한 사례가 50%나 되었고 실제로 15%가 공장을 전부, 혹은 일부 폐쇄했다. 이 수치는 북미 자유무역 협정 체결 이전인 80년대의 3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한국의 경우도 80년대 한국 기업이 리복과 LA기어, 나이키 공장을 운영했지만 80년대 말 노조 운동이 발생하자 92년까지 총 3만여명의 노동자가 수출 가공 지역에서 해고되었고 3년 사이에 일자리의 3분의 1이 없어졌다. 한국과 대만에서 없어진 이런 일자리는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이동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이전한 공장은 여전히 한국이나 대만 업체들이 소유하고 운영한다는 것이다. 카비테는 사실 공장이 아니라 노동 창고일 뿐이다. 미국이나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저임금이면서도 숙련공을 보유한 국가에서 생산된 자재들이 옮겨와서 그보다 저임금인 필리핀의 노동자들에 의해 조립될 뿐인 것이다. 생산되는 제품은 무척 다양하다 자동차 시트 조립 공장 옆에는 운동화 공장, 길 건너에는 알루미늄 쾌속정을 조립하는 공장이 있다. 지역의 산업 개발에 대한 희망은 신기루일 뿐이다.
날아다니는 구매자
다국적기업이 주문을 철회하고 옮겨갈 거라는 공포는 수출 가공 지역의 모든 일들에 영향을 끼친다. 바이어의 힘은 너무 강력해서 공장들은 이들이 하달하는 대형 계약에 완전히 의존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더더욱 열악한 환경에 처한다.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마르크스의 이분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다국적기업은 귀찮은 생산수단을 이미 양도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공장을 없앰으로써 더 큰 권력을 갖게 된 셈이다. 이들은 뻔뻔스럽게도 수출 가공 지역이 위치한 국가의 공공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자신들 덕에 후진국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다며 비난을 무마하려고도 한다. 그러나 이런 발전 모델을 따라 혜택을 입은 국가들이 최근 들어 하나 둘씩 힘들어지게 되면서 노동 착취 공장을 변호하는 논리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멕시코, 태국,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 나라의 노동자들은 모국에 ‘경제 기적’이 일어났던 수년 전보다 더 가치가 낮은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자유무역 지대라는 천에 짜인 일시성은 노동의 세계에서 기업이 분리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극단적인 표현이다. 이제 카비테의 비정규직화는 어디에서는 일어날 수 있고 외주 계약은 빈국에서 부국으로 옮아가고 있다. 아웃소싱은 80년대 초엔 제조업에서 시작되었지만 기업들이 인사부서에서 컴퓨터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원을 서둘러 감원하면서 모든 산업 분야로 확장되었다. 브랜드와 제품의 갈등, 계약과 직업의 갈등 뒤에 숨은 힘은 고용 형태의 변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북미와 유럽에서도 정규직에서 임시직, 비상근, 프리랜서, 부업으로 고용 형태가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