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isine – 최초의 자전거와 여성

최초의 자전거를 가리는 건 쉽지 않지만 오늘날의 자전거에 큰 영향을 미친 물건으로 꼽는 것이 사진에 보이는 ‘드레이지네’라는 물건이다. 당시에는 이렇게 굴러가는 물건들, 즉 인력거나 풍력거등의 개발이 붐을 이루는 때였다. 비슷한 여러가지의 물건들이 참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드레이지네가 좀 다른 건 앞바퀴를 좌우로 비틀어 조향이 가능하다는 것.

드레이지네

"드레이지네(Draisine)" by Karl Friedrich Freiherr Drais von Sauerbronn (1817) - Courtesy of Deutsches Zweirad- und NSU-Museum
“드레이지네(Draisine)” by Karl Friedrich Freiherr Drais von Sauerbronn (1817) – Courtesy of Deutsches Zweirad- und NSU-Museum

독일의 삼림관리원인 ‘칼 폰 드라이스’가 만든 이 물건은 프랑스 빠리의 쎄느강 남쪽에 ‘룩셈부르크공원’에서 귀족들을 대상으로 1817년에 처음 시연되었다. 드라이스는 넓은 숲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여러가지의 ‘구루마’를 만들어 시험했다. 요즘에도 열차선로에 얹어서 쓰는 인력구동차량을 영어로 ‘Drasine’이라고 부르는데, 이름처럼 그가 발명한 것이다. 하지만 사진에 보이는 드레이지네라는 물건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진 못했고 재빠른 런던의 사업가들이 불법 복제해서 대 히트를 치게 된다. 특허를 내고 자전거 판매를 시도하던 드라이스는 결국엔 병에 걸려서 말년을 보내다 죽고 말았다.

귀족 출신의 드라이스는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는 바람에 발명품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최근의 연구들은 이 물건을 자전거의 시초라고 보고 있는데, 그동안 이탈리아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낙서를 근거로, 프랑스에서는 ‘시락’의 벨로시페드를, 영국에서는 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나온 구루마의 모습을 증거로 삼아 자기 나라가 자전거를 개발했다고 주장했으나 모조리 가짜로 판명되었다. 아직도 유럽 각국은 자기 나라가 처음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딱히 누군가가 발명했다기보다는 서서히 진화했다고 보는것이 옳다.

프리 휠Free-Wheel 이전의 위험한 자전거 사고들

페달을 계속 움직이지 않아도 바퀴가 굴러가는 장치를 ‘프리 휠(Free-wheel)’이라고 하는데 20세기에 들어와서야 개발되었다. 요즘은 프리 휠이 모두 적용되어 페달을 거꾸로 돌려도 바퀴는 그대로 앞으로 굴러가지만, 19 세기 후반의 영국에서 한창 자전거가 유행할 당시의 모습은 바퀴가 그대로 페달에 고정된 원초적인 자전거의 형태였다.  또한 상대적으로 각광받던 철도에 비해 도로들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 요즘과 같은 타이어 대신 철 바퀴를 그냥 쓰거나 통고무를 덧대어 쓰는 정도였던 초기의 자전거는 고르지 못한 길에서 흔들림을 줄이기 위해 앞쪽 바퀴가 대책 없이 커지기도 했다.

빈발하던 자전거 사고와 관련해 이런 저런 소문도 많았다. 실제로 영국의 국립기록원에서 ‘자전거’로 검색을 해보면 자전거 사고로 사망하거나 입원한 사람의 기록들이 꽤 많고, 자전거 개발자들 가운데 내리막에서 굴러 떨어져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있었을 정도였다. 당시 영국의 어떤 잡지는 “그렇게 페달을 쉴새없이 밟다보면 뼈의 형태가 변할것입니다.”라고 경고했다.

여성과 자전거, 그리고 바지

1897년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벌어진 여학생 학위 수여 반대 시위. 신여성에 대한 상징으로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여성 인형을 매달아놓았다. - Courtesy of Cambridge Daily News, 21 May 1897.
1897년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벌어진 여학생 학위 수여 반대 시위. 신여성에 대한 상징으로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여성 인형을 매달아놓았다. – Courtesy of Cambridge Daily News, 21 May 1897.

이런 자전거 역사에 빠지지 않는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여성 운동과 자전거의 관계. 자전거가 유행하던 19세기, 여성의 자전거 타기는 하나의 투쟁이었다. 다르게는 치마를 입고 타는 자전거를 만드느냐, 아니면 바지를 입고 똑같은 자전거를 타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었다.

드레이지네도 귀족의 놀잇감 정도로 소개되었지만, 당시의 자전거는 ‘천박한 장난감’으로 인식되었다. 그런 물건을 여성이 타고 즐기는 건 쉽게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발 빠른 자전거 공장들은 앞 바퀴가 큰 ‘오디너리’ 자전거를 개조해 여성이 치마를 입고 탈 수 있도록 페달이 한쪽으로만 달린 특수한 오디너리를 만들었다. 아얘 자동차처럼 사륜을 달아 ‘신사 숙녀용’의 품위 있는 자전거가 나오기도 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훗날 이 공장들은 대부분 자동차회사로 전업했다.

한편에서는 승마복과 같은 간편한 바지 복장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여성 자전거족이 등장했다. 복장을 편하게 하고 남성들과 똑같은 자전거를 타는 그들의 모습은 당시로서는 아주 충격적인 일이었다. 1897년 캠브리지 대학교에서는 여권 운동을 비판하는 대대적인 시위 자리에 자전거타는 여성을 인형으로 만들어 상징적으로 공중에 매달아놓기도 했다.

결국 자전거 형태를 아주 심하게 변형했던 모델들은 사라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가진 보통의 자전거들만이 살아남았지만 요즘에도 자전거와 여성성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남아있다. 여성이 자전거를 타면 성기능에 장애가 생긴다는 이상한 소문도 있지만, 직접 장시간 자전거를 타본 바로는 남성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적당히 타면 별 문제는 없을듯.

 

한국 전쟁기념관과 영국 제국전쟁박물관IWM

Front View
Front View

저번주에 한국의 전쟁기념관 + 영국의 제국전쟁박물관(IWM)의 비교 PT를 했는데요. 결과적으로 국수주의적인 한국전쟁기념관의 어두운 면이 많이 부각된 시간이었습니다. 한국 전쟁기념관을 설명하자니 구한말과 한국전쟁, 미군점유지였던 기념관부지에 대한 얘기도 하게 되었고요.

이름만 보자면 Imperial War Museum.. 제국주의적인 시각으로 재단된듯 보이지만, 그리고 말을 들어보니 80년대까지도 그러했지만, 최근 20년간에 걸쳐 이 영국 제국박물관의 전시들이 정말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헨리무어의 조각전(주로 인간, 기계, 폭력, 전쟁이 주제)이 2층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전쟁을 비판한 철 조각품들과 1층에 벌려져있는 2차대전 당시의 무기들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기념관과 영국 제국전쟁박물관IWM 더보기

두번째 국제 대장장이 워크숍 – 참가자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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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처음 개최되어 큰 호응을 얻었던 국제 대장장이 워크숍이 올해 두번째로 더 큰 규모로 개최됩니다. 올해는 5박 6일동안 숙식(혹은 출퇴근)을 하는 본격적인 워크숍으로, 많은 국제적인 작가들과 시간을 함께 할수 있는 기회입니다. 두번째 국제 대장장이 워크숍 – 참가자 모집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