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공예가 목록

한국 현대공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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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희 1945 서울대 서울대대학원수료
강찬균 1938 서울대 이태리_프로렌스미술대학수학
고승관 1943 경희대교육대학원수료
고창환 1952 홍익대 홍익대산미대학원수료
곽순화 1953 서울대대학원응용미술과수료
김승희 1947 서울대 미국인디애나대학원수료
김은선 1954 홍익대 홍익대산미대학원수료
김재영 1946 숙명여대 홍익대대학원수료
김종두 1948 중앙대
김종식 1949 홍익대산미대학원수료
김태호 1948 홍익대산미대학원수료
김화숙 1951 홍익대 홍익대대학원수료
김혜경 1953 서울대
남경숙 1950 홍익대산미대학원수료
노용(영)숙 1949 숙명여대 숙명여대미술대학원수료
민경운(은) 1951 국민대대학원재학
민병휘 1949 홍익대 홍익대산미대학원
박인철 1948 홍익대 홍익대대학원수료
박정자 1953 효성여대대학원수료
박종성 1947 홍익대
박호성 1950 홍익대산미대학원
배창숙 1955 서울대
백인자 1955 중앙대 중앙대대학원수료
변건호 1948 홍익대 홍익대산미대학원수료
송명수 —
신권희 1937 홍익대 홍익대산미대학원수료
안귀숙 1954 홍익대 홍익대대학원수료
안미형 1952 서울대
오영민 1948 홍익대대학원수료
오원택 1948 홍익대 홍익대산미대학원수료
오융경 1942 홍익개대학원수료
우진순 1948 서울대 서울대대학원수료 스웨덴국립디자인공예대학
유리지 1945 서울대 미국템플대학교타일러미술학교 서울대대학원수료
윤여옥 1945 원광대대학원수료
이경자 1953 중앙대
이규현 1946 오스트리아빈국립미술대학원수료
이성근 1953 홍익대 홍익대대학원
이성원 1946 서독뉴렌베르크국립미술대학 동대학원
이은규 1944 홍익대산미대학원수료
이필재 1954 서울대대학원수료
이충우 1952 홍익대산미대학원수료
이혜란 1953 서울대 서울대대학원수료
전영순 1946 서라벌예대 홍익대대학원수료
전용주 홍익대대학원수료
전용일 서울대, 미국 마이애미 대학원 금속공예
정량희 재 일본(1983)
주예경 1950 홍익대대학원수료
최정자 1946 홍익대대학원수료
최현칠 1939 홍익대 홍익대대학원수료
홍경희 1954 홍익대 홍익대대학원수료
홍정실 1947 서울대대학원수료
황인철 중앙대 홍익대산미대학원수료

논문자료목록

== 대안전시 신문, 잡지, 웹진 기사 ==
LDB. [HiddenArt_Article02] Designersblock, Interview
LDB. [Core77_Article01] 2003 런던디자인페스티벌 리뷰, 100%디자인전, LDB, 등에 대한 소개와 평가.
LDB. [http://www.google.com/custom?domains=designboom.com&q=designersblock&sitesearch=designboom.com&client=pub-1803347774687458&forid=1&ie=ISO-8859-1&oe=ISO-8859-1&cof=GALT%3A%23008000%3BGL%3A1%3BDIV%3A%23FFFFFF%3BVLC%3A663399%3BAH%3Acenter%3BBGC%3AFFFFFF%3BLBGC%3AFFFFFF%3BALC%3A0000FF%3BLC%3A0000FF%3BT%3A000000%3BGFNT%3A0000FF%3BGIMP%3A0000FF%3BLH%3A49%3BLW%3A228%3BL%3Ahttp%3A%2F%2Fwww.designboom.com%2Feng%2Fimg3%2F111logo.gif%3BS%3Ahttp%3A%2F%2Fwww.designboom.com%3BFORID%3A1%3B&hl=en DesignBoom_Article List] 디자인붐에는 런던 디자이너스블록과 관련한 2001년부터의 리뷰가 저장되어있음.
LDB. [Icon_Article01] _ Icon 매거진 LDB를 처음 생각한 사람과의 인터뷰,

TDB. [HiddenArt_Article01] “Anything Goes, Design Flows, Tokyo 2003”
TDB. [AsianWeek_Article01] “Patron To The Stars” 테루오쿠로사키 아시안위크 기사
TDB. [DesignBoom_Article01] 테루오쿠로사키 디자인붐기사
TDW. 도쿄디자이너스위크 디자인붐 사진기사 _ 프린트

DDNY. http://www.designboom.com/contemporary/downtown.html 디자인붐에 소개된 디자인다운타운 사진기사.

== 대안전시 주최측 자료와 공식 웹페이지 ==

LDF. 런던디자인페스티발 http://www.londondesignfestival.com
LDB. 런던디자이너스블록 http://www.designersblock.org.uk
LDB. 2003 런던디자이너스블록 브로슈어 : Risk IT이라는 기업연계 스폰서 프로그램 관련 텍스트와 참여자 프로필

TDB. 도쿄디자이너스블록 메인 웹사이트(블로그) http://www.tokyodesignersblock.com _ /2002~2004 _ 자료 저장요함..
TDB. 2003년 행사때 사용된 숨겨진 웹사이트 http://www.tokyodesignersblock.com/2003/designer/
TDB. 2004년 행사 모토 [TDB2004_AIM]
TDB. 2004년 기타 모집관련사항 [TDB2004_REG]
TDB. 2003년 언론홍보용 보도자료 [TDB2003_PRSKIT]
TDB. 2003년 행사 모토 [TDB2003_AIM]
TDB. 2003년 기타 모집 관련사항 [TDB2003_AWD] [TDB2003_REG]
TDB. 2002년 행사 모토 [TDB2002_AIM]

SDP. 2004년 서울 디자이너스플래닛 행사 프레스킷 ‘디자이너스플래닛 2004 성과보고서’
전체예산, 소요경비, 관객 추정치, 추정 효과 등의 내용이 포함된 텍스트자료. 별도의 CD에 행사 소개와 과정을 담은 디지털이미지 수록
SDP. 2004년 기획서(모집, 장소섭외시 사용한)
행사 진행에 관한 헛점을 많이 드러내고 있음. 동기가 사라지고 목표의식이 흐려진..
SDP. 2003년 행사 기획서 ‘Designers Planet Information’
첫 행사를 기획하게 된 동기에 대한 문서화된 자료.

DDNY. http://www.designdowntown.com/ 디자인다운타운 뉴욕 웹사이트
DDNY. 2004년 뉴욕 디자인다운타운 언론홍보용 프레스킷

DFT. DesignFesta http://www.designfesta.com 디자인페스타 도쿄 _ 제한 없는 실험장, 시장같은 디자인전, 창조성.. 등과 같은 검증과정은 실제 전시상황의 각각의 부스에서 이루어진다. 1600여부스 (참고: 세계디자인박람회디렉토리2003, 디자인네트, D745.2 디7169, p242 + LDB, TDB관련 리뷰 수록)

== 인터뷰 자료 ==
SDP. 박치동씨 인터뷰한 내용 : 행사 기획의도, 동기, 과정, 효과와 문제점들, 주로 파티문화에 관계된 감성적인 것이 동기였다는 내용..
LDB.TDB. 배수열이 인터뷰 : 1.디자이너스블록과 서울디자인페스티벌(디자인하우스)의 뒷관계들, 2.도쿄디자이너스블록의 IDEE관련 부분, 3.도쿄IDEE도산과 그에 따른 TDB의 문제점들.
DDNY. 정지원에게 부탁하여 행사 기획 동기에 관한 인터뷰중..

=== 기타등등 ===
”’DesignersBlock”’
3-4. http://www.pepper-mint.com/designersblock_2001.html _ 참가한 한 업체/디자이너
3-4-1. http://www.loop.ph/new/dbmilan03.html _ 참가업체
3-4-2. http://www.mnodesign.nl/photopage/showsDB2001a.htm _ 참가업체 / 참가업체나 디자이너들이 주류 디자인전시와 함께 참가하는 경우 그 이유는?
3-4-3. http://www.bdmdesign.com/new%20files/designersblockpage.html _ 참가업체
3-6. http://www.blueverticalstudio.com/05/archives/001650.html _ 블로그
3-7. http://formexvar.stofair.se/common/press/ListPublishedPressreleases.asp?NEWS_ID=9326&TYPE=1&index=0 _ 기사
3-8. http://www.pokelondon.com/wire.php _ 레트로폰 블록 전시사례
3-9. http://www.100percentdesign.co.uk/page.cfm?Action=misctable&TableID=4&EntryID=9 _ 100%디자인전 관련 내용 수집용
3-10. http://www.dsmsomos.com/pressroom/press_releases/2003/somos2003-06-Future_Manufacturing/en/somospr2003-06_en.htm _ 디자이너스블록/100%디자인전 참여업체와 글인것같음. 검토요망
3-11. http://www1.britishcouncil.org/jp/japan-press-release-designersblock.htm _ 일영문화원+디자이너스블록 연계

5. http://www.massivechange.com/ 어느 디자인전 미국

”’Design Downtown Newyork”’
6-2. http://www.wallpaperfromthe70s.com/kundenfotos.html 참여업체 _ 텍스타일 월페이퍼
6-3. http://www.dutchdesignevents.com/design_academy.html 참여학교 _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디자인대학
6-4. http://www.eastman.com/News_Center/News_Archive/Product_News/2004/040411.asp 참여업체에 올라있는 소개글
6-5. http://www.buscaferias.net/ingles/noticias_newsletter/Downtown%E2%80%94New%20York%C2%B4s%20alternative%20design%20event%20announces%20its%202004%20shows%20dates.htm 국제이벤트 검색엔진에 올라있는 소개글임.
6-6. http://icff.com/icff_connected.cfm ICFF 국제현대가구페어에 올라있는 디자인다운타운정보

”’제품디자인 관련 국제전시들”’
7. http://www.sharedutchdesign.nl/internationaldesign/designevents.htm 제품디자인 국제전시 리스트
7-1. http://www.buscaferias.net 국제 페어 검색기
7-2. http://www.tsnn.com/ 국제 페어 검색기
7-3. http://www.tradeshowbiz.com 국제 페어 검색기 _ 검색어 _ design + home

”’정말 기타”’
8. http://www.sharedutchdesign.nl 네덜란드 디자인 소스
8-1. http://www.dutchdesignevents.com 뉴욕 내의 네덜란드 디자인이벤트 목록
9. http://www.core77.com/reactor/firstop/ FirStop 관련 Core77 기사

=== 검색엔진 검색용 URL ===
1. http://www.google.co.kr/search?q=designdowntown+New+York&hl=ko&lr=&newwindow=1&start=10&sa=N 요기는 디자인다운타운 뉴욕 관련 검색할 부분
2. http://www.google.co.kr/search?q=designersblock&hl=ko&lr=&newwindow=1&start=30&sa=N _ 요기부터 검색 다시
http://www.core77.com/reactor/firstop/ FirStop 관련 + 구글 FirStop 관련 검색할 것.
3. http://www.google.co.kr/search?hl=ko&q=teruo+kurosaki&lr= _ 테루오구로사키(TDB 프로듀서)관련 정보

=== 기타등등 2 ===
1. http://www.designhistorysociety.org/
2. 버밍엄 디자인 리서치 그룹 http://www.biad.uce.ac.uk/home.htm
3. http://www.sharpeworld.com/main/ 뉴욕의 과거 잡지자료, 문화관련자료 열람

= 디자인 컨설턴시, 익명의디자인 =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Adrian Forty : 컨설턴시, 익명성의 디자이너를 설명하는 근거
”'[“사회를 위한 디자인”]”’ 나이젤 휘틀리 : 디자인윤리, 그린디자인, 소비주의 디자인비판, 페미니즘과 디자인 ”’전체읽기”’
”'[“디자인사 연구”]”’ 강현주 : 한국의 컨설턴시, 독립디자이너에 대한 언급
”'[“20세기 디자인”]”’ 샬로트 & 피터 필 / 박혜수 역
”'[“열두 줄의 20세기 디자인사”]”’ 강현주 외 : 소비와 디자인, 이외 핫 이쓔들 ”’전체읽기”’
”'[“산업 디자인의 역사”]”’ 존 헤스켓 정무환 역 : 컨설턴시를 구분해서 기술 ”’전체읽기”’
”'[“현대 디자인의 전개”]”’페니스파크 외 / 편.역
”'[“산업디자인150년”]”’ 정시화
”'[“디자인의 역사”]”’ 페니스파크 : 개별 인물들을 비쥬얼하게 소개한 책, 도윈티그, 로위,, 등등
”'[“American design in the twentieth century”]”’ by Greg Votolato :
컨설턴시와 유명디자이너, 익명디자이너의 관계를 다룬 챕터가 있음. ”’전체읽기”’
”'[“Twentieth-Century Design”]”’ by Jonathan M. Woodham : 개설서 ”’전체읽기”’
”'[“현대 디자인의 역사”]”’ 레이몽 기도 : 약간은 생뚱맞은 프랑스의 모던디자인, 울름조형주의 설명
”'[“현대 디자인의 의미”]”’ 피터돌머, 김태원외 공역 : 공예, 디자인, 예술 + 자본주의, 중앙계획… 등의 교차비교, 공예에 대한 많은 분석 ”’전체읽기”’
”'[“History of Modern Design”]”’ David Raizman : 전과처럼 많은 양, 연대기별 디자인사. 컨설턴시, 일본.. 등
”'[“American Design Ethic”]”’ Arthur J. Pulos : 로위, 도윈티그에 대한 언급이 있음. 개괄서
”'[“Ulm Design”]”’ Herbert Lindinger
”'[“A History of Industrial Design”]”’ Edward Lucie-Smith : 베르크분트, 집안의 기계들, 비즈니스와 디자인..
”'[“Design since 1945″]”’ 피터돌머, 강현주외 공역 : 장르별로 나눈 디자인사, 초반에 컨설턴시 부분 참고
”'[“20세기 디자인과 문화”]”’ 페니스파크 외, 최범 역 : 컨설턴시등의 자세한 기술 + 개괄서 ”’전체읽기”’
”'[“디자인의_역사”]”’ 존 에이 워커, 정진국 역 :
익명디자인, 컨설턴시.. 등 자세한 기술, 미들섹스.. so 들어본 용어 많이 등장 디자인사 공부에 관한 기본지식 ”’전체읽기”’

—-
* Author / Gathered from : 최윤호
—-
CategoryStudyAndResearch

참고 가능한 웹사이트 검색 리스트 #
[edit]
지역 디자인전시 관련 임시 참고문헌 #
1. 도쿄디자이너스블록 http://www.tokyodesignersblock.com _ /2002~2004 _ 자료 저장요함..
1-1. 2003 TDB 가려진 사이트 http://www.tokyodesignersblock.com/2003/designer/

1. ?TDB2004_AIM b. ?TDB2004_REG c. TDB2003_PRSKIT d. ?TDB2003_AIM e. ?TDB2003_AWD f. TDB2003_REG g. ?TDB2002_AIM

1-2. 테루오쿠로사키 아시안위크 기사 http://www.timeinc.net/asiaweek/magazine/life/0,8782,178022,00.html
1-3. 테루오쿠로사키 디자인붐기사 http://www.designboom.com/snapshots/tdb04/1.html
2. 런던디자인페스티발 http://www.londondesignfestival.com
3. 런던디자이너스블록 http://www.designersblock.org.uk
3-1. http://www.core77.com/reactor/10.03_designersblock.asp
3-2. http://www.designboom.com/snapshots/milan03/designersblock.html
3-3. http://www.icon-magazine.co.uk/issues/october/designersblock.htm _ Icon 매거진
3-4. http://www.pepper-mint.com/designersblock_2001.html _ 참가한 한 업체/디자이너
3-4-1. http://www.loop.ph/new/dbmilan03.html _ 참가업체
3-4-2. http://www.mnodesign.nl/photopage/showsDB2001a.htm _ 참가업체 / 참가업체나 디자이너들이 주류 디자인전시와 함께 참가하는 경우 그 이유는?
3-4-3. http://www.bdmdesign.com/new%20files/designersblockpage.html _ 참가업체
3-5. http://www.hiddenart.com/venue.asp?ve_id=291 _ Hidden Art 웹진 _ 검색어검색- 기사 다수
3-6. http://www.blueverticalstudio.com/05/archives/001650.html _ 블로그
3-7. http://formexvar.stofair.se/common/press/ListPublishedPressreleases.asp?NEWS_ID=9326&TYPE=1&index=0 _ 기사
3-8. http://www.pokelondon.com/wire.php _ 레트로폰 블록 전시사례
3-9. http://www.100percentdesign.co.uk/page.cfm?Action=misctable&TableID=4&EntryID=9 _ 100%디자인전 관련 내용 수집용
3-10. http://www.dsmsomos.com/pressroom/press_releases/2003/somos2003-06-Future_Manufacturing/en/somospr2003-06_en.htm _ 디자이너스블록/100%디자인전 참여업체와 글인것같음. 검토요망
3-11. http://www1.britishcouncil.org/jp/japan-press-release-designersblock.htm _ 일영문화원+디자이너스블록 연계
4. 각 디자인 전시에 참가한 업체, 혹은 인물의 인터뷰 따기
5. http://www.massivechange.com/ 어느 디자인전 미국
6. http://www.designdowntown.com/ 디자인다운타운 뉴욕 웹사이트
6-1. http://www.designboom.com/contemporary/downtown.html 디자인붐에 소개된 이미지들.
6-2. http://www.wallpaperfromthe70s.com/kundenfotos.html 참여업체 _ 텍스타일 월페이퍼
6-3. http://www.dutchdesignevents.com/design_academy.html 참여학교 _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디자인대학
6-4. http://www.eastman.com/News_Center/News_Archive/Product_News/2004/040411.asp 참여업체에 올라있는 소개글
6-5. http://www.buscaferias.net/ingles/noticias_newsletter/Downtown%E2%80%94New%20York%C2%B4s%20alternative%20design%20event%20announces%20its%202004%20shows%20dates.htm 국제이벤트 검색엔진에 올라있는 소개글임.
6-6. http://icff.com/icff_connected.cfm ICFF 국제현대가구페어에 올라있는 디자인다운타운정보

7. http://www.sharedutchdesign.nl/internationaldesign/designevents.htm 제품디자인 국제전시 리스트
7-1. http://www.buscaferias.net 국제 페어 검색기
7-2. http://www.tsnn.com/ 국제 페어 검색기
7-3. http://www.tradeshowbiz.com 국제 페어 검색기 _ 검색어 _ design + home

8. http://www.sharedutchdesign.nl 네덜란드 디자인 소스
8-1. http://www.dutchdesignevents.com 뉴욕 내의 네덜란드 디자인이벤트 목록

9. http://www.core77.com/reactor/firstop/ ?FirStop 관련 Core77 기사

[edit]
추가 검색URL 요목 #
1. http://www.google.co.kr/search?q=designdowntown+New+York&hl=ko&lr=&newwindow=1&start=10&sa=N 요기는 디자인다운타운 뉴욕 관련 검색할 부분
2. http://www.google.co.kr/search?q=designersblock&hl=ko&lr=&newwindow=1&start=30&sa=N _ 요기부터 검색 다시
http://www.core77.com/reactor/firstop/ ?FirStop 관련 + 구글 ?FirStop 관련 검색할 것.
3. http://www.google.co.kr/search?hl=ko&q=teruo+kurosaki&lr= _ 테루오구로사키(TDB 프로듀서)관련 정보

[edit]
디자인사, 이론 관련 임시 참고문헌 #
1. http://www.designhistorysociety.org/
2. 버밍엄 디자인 리서치 그룹 http://www.biad.uce.ac.uk/home.htm _ 사회학적 디자인사 검색용 초기 URL
3. http://www.sharpeworld.com/main/ 뉴욕의 과거 잡지자료, 문화관련자료 열람

시각과_현대성_발제문

시각과 현대성 _ 주은우 #
3장 원근법과 현대성의 사회적 조건 20040418 수유+너머 _ 시각성 세미나 _ ‘시각과 현대성’ | 최 윤 호

3. 원근법과 권력의 응시

원근법은 초월적인 시각적 주체를 포함하며 이것은 구체적인 개인이 아니라 탈육화된 주체를 의미한다. 원근법적 시각양식에서의 주체는 개인의 주체성으로서의 측면도 있으나 그 이면에는 개인을 초월적인 주체에 종속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p323) 이 ‘종속으로서의 주체화’를 바로 원근법이 시각의 장에서 수행하는 것인데, 개별주체는 큰 타자의 응시의 위치에서 그 큰 타자의 시각으로 관찰하게 된다. 현대성의 주체가 텅 빈 형식일 때, 사회적 담론들은 그것을 채우게 되며, 푸코는 그것을 권력이 작동하는 통로로 보았고 라캉은 에고 형성을 위한 이미지의 제공통로로 생각했다. 하여간 그 둘 모두의 경우에서, 현대성의 시각 체제는 권력 체제이며 개별 주체의 시각은 큰 타자의 응시를 통해 권력의 시각에 종속됨으로써 구성된다. 17세기 이후의 절대 군주제에서 우리는 이런 권력의 응시가 작동하는 모습, 즉 원근법과 권력의 관계를 그 시대의 시각양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1) 군주권력의 응시

(1) <시녀들 _ Las meninas (Diego Velázquez, 1656, Prado, Madrid)> : 재현과 응시

푸코는 17세기 고전주의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을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시녀들’은 ‘고전주의 재현에 대한 재현’인데 그것은 그림에서 나타나듯 재현 자체를 묘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 재현의 과정들은 생략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시녀들’은 고전주의적 재현의 틀 안에서는 재현행위의 재현이 불가능함을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_-;;

http://15.165.94.34.xip.io/MT/archives/velazquez.meninas _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이 그림에서 특징적인 것은 거울 속에 스펙터클로서 위치하는 왕과 왕비이다. 그림 속에서 왕과 왕비, 관람자인 나, 그리고 화가의 응시가 서로 수렴되는데, 실상 왕과 왕비는 그림 속에서 실체로서 등장하지 않으며, 그 숨겨진 거울 속의 응시는 관람자인 나의 응시와 같게 되는 것이고 ‘주권적인 중심’이다. 푸코는 이 중심이 재현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라고 다루고 있다. 왕과 왕비가 관념적임과 동시에 실재하는 이 점에서 관람자는 재현과 연결되고, 연계성은 관람자 자신이 아닌 그림 내부로부터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그림은 그림의 구성 자체에서 연역되며 구체적인 관람자 개인에게 준거하지 않는다는 원근법의 원리도 확인된다.

이 그림에서 주체는 생략되어있다. 시녀들의 작가로서의 주체, 관람자 자신의 주체, 돌아선 캔버스의 등장인물로서의 주체는 그림에서 드러나지 않는데, 이 생략을 푸코는 재현의 순수성과 투명성의 획득을 위해 필연적이라고 생각했다. 설은 화행이론의 관점에서 그의 입장을 비판했는데, 모든 회화적 명제가 가진 “나는 본다.”는 함축적 능동형이 그 비판이다. 즉 왕과 왕비가 이미 위치해버린 그곳에서 작가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인데, 벨라스케스가 군주의 시점에서 그림을 그리면서도 뒤돌아선 캔버스 뒤의 어두컴컴한 곳에서 실체로 드러나는 역설을 말한 것이다. 이후의 광학적 분석과 슈나이더와 코헨의 반박에서는 그 거울 속의 환영이 뒤돌아선 캔버스의 인물을 나타낸다고 하였으나 그러한 논쟁은 ‘원근법의 구성이 그림 바깥의 실제적인 관람자의 시점에 준거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기 때문인데, 벨라스케스는 이런 원근체계의 선입견을 역이용하고 있으며 그림에서 드러나는 엄격한 기하학적 구성이 그 함정?을 가려준다. 결론적으로 ‘시녀들’의 구도는 재현이 기하학적 조직화와 상상적 구조간의 계산된 불일치로 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푸코는 문과 거울의 경쟁을 지적하고 있으며 위에서 말한 불일치의 구성을 정확히 인식하고있다. 주체는 왕의 위치인 그림 외부의 중심점에서 등장하는데 그것은 권력의 시점이기도 하며 17세기의 현대성의 시각은 바로 이 권력의 시각이다.

벨라스케스는 사실보다 어둡게 그림 속에 자신을 등장시킴으로써 궁정사회의 위계와 조직화를 묘사했으며 왕이 원하는 왕 스스로의 모습을 표현했다. 왕은 드러나지 않은 채 응시를 유지하는데 이로써 권력의 응시는 더욱 강력해진다.

(2) 스펙터클과 감시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군주의 권력을 가시성의 권력으로 이해하였고, 군주의 권력이 현시되는 처형장이나 프랑스 혁명 후의 길로틴과 같은 스펙터클 속에 잔존하였다. 그러나 군주의 권력을 가시성 하나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다. 앞의 그림에서도 드러나듯 권력의 응시는 근본적으로 비가시성의 영역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주의 권력은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결합, 즉 이미지 및 스펙터클의 동원과 응시 및 감시의 결합을 통해서 행사되는 것이다.

17세기 유럽의 군주제 국가들은 다양한 스펙터클들을 동원하는데, 프랑스의 궁정정원 _ 정형정원에서 드러나는 정치적인 예술형식의 이용이 대표적인 예이다. 극도로 정리된 방사형의 가로구조에서 우리는 군주의 시점과 통제를 확인한다. 가시성의 영역에 배치된 광기를 그 바깥에서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고전주의 시대의 이성의 눈, 바로 이것이 현대성의 시각이며 ‘시녀들’에서의 권력의 응시와도 같다. 그러므로 스펙터클은 감시와 분리되지 않으며 가시영역의 스펙터클은 비가시적 영역의 권력의 응시에 의해 조직된다. 17세기부터는 거리에 공공적인 조명등이 설치되는데, 그 불빛은 가시성을 부과하고 감시를 행사하는 수단이었다. 대혁명을 비롯한 19세기까지의 혁명들에서 거리의 등이 1차적인 파괴의 대상이 된 것도 그런 이유이다.

2) 부르주아 감시권력의 응시

부르주아의 시대에서 감시의 권력은 그물망을 펼친 것과 같이 보편화된다. 예전의 스펙터클과 같은 것을 넘어서 개별적인 인간들의 신체에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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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제레미벤담이 제안한 판옵티콘은 구조적으로 원형의 개별적인 방과 그 중심의 감시자를 두고 있다. 완전한 개인화와 편리한 감시, 특별히 감시되는 수감자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 감시되고 있음’을 느낄 때 그것은 상당히 경제적이다. 모든 다양한 기능들이 모두 이러한 감시를 위한 것이며 이곳에서도 역시나 관찰자인 간수는 중앙에서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벤담은 이러한 도식을 사회전체로 확산하려 몽상했는데 이것을 푸코는 훈육적 사회의 형성이라고 규정했다. 나중에 언급되지만, 심지어 벤담은 공중개방의 방법으로 이런 통제를 더욱 공고히 하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 판옵티콘에서의 권력의 응시는 원근법적인 기하구조에 기초하며, 계몽주의에 기초한다. 벤담은 루소의 꿈에서의 개개의 완벽한 소통을 통한 투명한 사회에 더해 지배적인 응시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상태를 조직했던 것이고 그것은 즉 권력의 행사라는 것이었다. 판옵티콘에서 체화된 권력의 시선은 원근법적인 시각공간에서 작동하며 그 가시성의 배치는 ‘시녀들’에서의 절대군주의 시선 및 가시성의 배치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다만 그림에서 군주가 자신의 흔적을 거울에 남겼다면, 판옵티콘에서의 응시에서는 그것마저 사라지고 그 비인격성이 전면화되어있다.

판옵티콘에서 수감자는 중앙의 감시자의 위치에서 스스로 자신을 봄으로써 훈육된 주체, 길들여진 신체, ‘정신예방적인 주체‘가 된다. 한편 주체는 자신의 에고 역시 필요한데 ’시녀들‘에서 거울에 반영된 군주의 이미지가 그것이며 19세기 이후에 부르주아 체제가 스펙터클을 배제하지 않는 것은 판옵티콘에서는 그런 대칭적인 응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판옵티콘은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설득하는 학교로서 고안되기도 했는데, 그런 점에서 ‘감시의 옆에서는 그것과 나란히 상징적인 의미의 스펙터클이 계몽의 이름으로 ….’라는 말도 설명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위의 논의를 통해 이성은 감시, 현대성의 시각은 곧 권력의 시각이었다고 이해될 수 있다. 또한 그 권력의 응시는 원근법적인 기하공간의 구도 속에 자리를 잡고 가시성의 배치를 조직하는 중심축으로서 기능했으며, 그것은 시각의 문제를 사회 정치적인 문제와 나누어 생각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시각적 권력은 교묘하다.

* Author / Gathered from : 최윤호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발제문

4. 인상주의 (2) _ 최윤호 발제 (수유연구실 예술세미나 자료)

영국에서의 모더니즘

1660년의 왕정복고 이후의 영국에서, 19세기의 마지막 4반세기처럼 프랑스의 영향이 강했던 시기는 없었다. ‘대불황(1870)’을 거치면서 영국의 시민계급은 자신감을 상실했고 부르주아지들에게 있어 확고했던 경제적 자유주의가 쇠퇴했으며 사회주의 운동이 힘을 얻게 된다. 이런 변화들 – 경쟁력 있는 외국과 대립하고 있다는 의식 – 은 외국으로부터 정신적 영향을 받아들이게 되는 근거가 되었다. 특별히 프랑스의 문학은 당시 영국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으며 러시아소설, 바그너, 입센, 니체 등의 영향이 프랑스로부터의 자극을 보완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부르주아지들의 자기의식이 동요되었다는 점인데, ‘영국만이 유일한 신의 사명을 가졌다는 믿음’이 흔들린 점과 ‘1880년대의 새로운 사회주의운동의 대두’가 그것이다. 이후 영국의 정신적 태도는 모든 면에서 개인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 시기, 젊은 세대의 미학적·도덕적 표어는 모더니즘이었다. 이들이 부르짖는 자기실현이라는 말이 매우 불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세계의 도덕적 안정은 무너지고 말았으며, 사회생활의 모든 규범은 구속력을 상실했고 모든 것은 문젯거리가 되었고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1880년대 영국 문예의 자유주의적 경향은 비정치적인 개인주의적 성격을 띠었다. 이들은 철저히 반부르주아적이었지만 결코 민주주의자들이거나 사회주의자들은 아니었다. 때때로 그들의 향락적인 감각주의와 쾌락주의는 반사회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그들이 말하는 반속운동(反俗運動)이라는 것은 자본주의적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닌,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들에 대한 반대였다. 이러한 속물혐오는 인습이 되고 마는데 영국의 모더니즘을 온통 지배하는 것은 바로 이 속물혐오의 경향이며 인상주의가 영국에서 겪는 많은 변화는 바로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속물혐오는 이미 과거의 일이었고, 상징주의자들은 보수적인 부르주아지에 대해 일종의 공감마저 느꼈다. 그에 반해 영국의 데까당스 문학은 – 프랑스에서 낭만주의와 자연주의가 각각 나누어 행했던 – 파괴 작업을 해야만 했다. 이 시기의 영국문학은 ‘경박스런 표현방법에 대한 집착’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이 현상은 단순한 반항 심리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 본래의 목적은 부르주아를 놀라게 하려는데 있었다.

댄디즘

댄디즘 예술가의 언사나 사고방식, 그리고 특이성과 매너리즘은 예술의 멋을 모르는 위선적인 속물적 세계관에 대한 항의로 해석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댄디가 보헤미안의 대응현상 이었듯이, 영국에서는 댄디의 일부가 보헤미안의 지위를 차지한다. 보헤미안이 프롤레타리아트로 떨어진 예술가라고 한다면, 댄디는 상층계급 쪽으로 탈락해나간 부르주아 지식인인 셈이다. 둘 다 기계적이고 천박한 부르주아지의 삶에 대한 항의의 표현인데, 영국인에게는 댄디의 모습이 더 선호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보들레르의 댄디즘에 있어 중요한 것은 내면적인 탁월함과 독립이며, 일체의 존재와 행동에 있어 아무런 실제적인 목표나 동기를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들레르는 댄디를 예술가보다도 상위에 두었는데, 그 이유는 예술가들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일종의 장인이었던 것과는 반대로, 댄디는 추구하는 것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댄디의 이런 태도는 예술가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명예마저 던져버리겠다는 태도였던 것이다. 오스카와일드 가 자신의 생활을 예술작품화하고 자신의 문학작품보다 더 높게 평가한 것을 보면, 그가 어떤 효용이나 동기,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 보들레르의 댄디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태도가 자만심과 교태가 가득하다는 점이 영국 데까당스의 특색인 딜레땅띠즘과 유미주의의 결합에서 드러난다. 이 시기에서는 예술의 장식적인 면과 정교하고 화려한 면이 부각되며, 예술은 그 어느 때 보다 더 현란한 기교를 과시하며 완성된다. 프랑스에서 회화가 모든 예술의 표본이었다면 영국에서는 귀금속 세공이 표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체험의 결실이 아니라 체험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다…. 이 황홀경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의 성공을 의미한다.”라고 페이터는 그의 저서에서 말하는데, 이 몇 마디에 모든 유미주의 운동의 강령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월터 페이터는 러스킨에서 시작하여 윌리엄모리스로 이어지는 발전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그는 이미 선구자들의 사회적 목적에는 관심이 없고 심미적 체험의 강도를 높이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으며, 그의 경우, 인상주의는 향락주의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유미주의 운동과 프랑스 인상주의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비어즐리의 미술인데, 그의 작품에서 주로 사용되는 공예적·장식적인 필법은 프랑스의 거장들이 피했던 방법이며, 부르주아지들이 애호하는 세속적인 삽화화가와 무대장식가들을 낳게 되는 일련의 발전, 인상주의와는 전혀 반대되는 발전의 시발점인 것이다.

지성주의

프랑스 문학에서 직관주의의 흐름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지배적인 경향을 이루는 지성주의는 영국에서도 새로운 문학의 주된 특징으로 나타난다. 와일드는 비평가를 예술가보다 상위에 두어, 세계를 비평가의 눈으로 보고자 했다. 동시대인들의 딜레땅뜨 적 인상은 여기서 연유한다. 이 지성주의의 기반 위에 메레디스와 헨리제임즈가 있다. 영국 문학사에서, 죠지엘리어트가 지적 수준은 높으나 훨씬 광범위한 계층의 사람들을 포섭하고 있는데 반하여, 메레디스와 헨리제임즈의 작품은 극소수의 지식층만이 읽었을 뿐이었고, 박진감 넘치는 줄거리나 다양한 인물들보다는 흠잡을 데 없는 문체와 인생에 대한 원숙하며 권위 있는 판단을 요구했다. 두 작가 중 헨리제임즈의 경우, 흔히 지적 정열에까지 도달한다는 차이가 있으나, 두 작가 모두가 현실에 대해 본질적으로 추상적인 관련을 갖는 예술을 대표했다는 점은 동일하다.

국제적 인상주의

19세기말에 이르러 인상주의는 유럽 전역에 걸쳐 주도적인 양식이 된다. 시인들의 관심사는 객관적 현실이 아닌 자신의 감정적인 반응이었으며 이런 기분과 분위기의 예술이 문학의 모든 형식을 서정위주, 혹은 이미지와 음악, 색조와 뉘앙스로 변하게 한다.

프랑스 이외의 경우 묘사의 인상주의적 특징들은 상징주의보다 더 뚜렷이 부각되나, 프랑스 문학만을 염두에 둔다면 인상주의는 상징주의와 동일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상주의는 근본적으로 물질주의적이요 감각주의적인 데 반해, 상징주의는 어디까지나 관념론적이며 정신주의적이다. 결정적으로 프랑스의 상징주의는 항상 행동주의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으나, 빈·독일·러시아·이탈리아의 인상주의는 수동적이며 환경에 무저항적인 탐닉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양자 모두가 가진 비합리적 요소는 수동성마저도 분별없는 행동주의로 변하게 하기도 했다. 일체의 행동성을 외면하는 인상주의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대표하는 것은 빈의 시인들인데, 빈의 인상주의가 그 특유의 섬세하고 수동적인 성격을 갖게 된 데에는 도시가 가진 특성이 한 몫을 했다. 빈의 문학은 부르주아지의 자식들을 비롯한, 제2세들의 신명 없는 쾌락주의를 표현하는 문학인데, 회의적이고 자기 풍자적이며 인상주의의 잠재적 내용인 ‘먼 것과 가까운 것의 합치’, ‘주변의 일상적인 사물들의 서먹서먹함’, ‘세계로부터 영원히 단절되어있다는 느낌’ 등이 그 기본적 체험이 된다.
“어찌 된 일인가, 바로 어제 같은 나날들이 영원히 흘러가서 완전히 없어져버린 것은?”이라는 호프만스탈의 물음과, “우리는 누구나 남에게 알려지지 않고 죽는다.”는 발자끄의 말에서, 소외와 고독의 의식이 1830년 이후의 유럽사회에 지배적으로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체호프

유럽의 인상주의 역사에서, 러시아가 인상주의를 받아들여서 인상주의운동의 가장 순수한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체호프와 같은 작가를 낳았다는 사실은 특별하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까지는 계몽주의적인 분위기였으며, 유미주의나 데까당스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러시아에서 그런 인물을 대하게 되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는데, 그것은 기술발달로 인하여 사상이 빠르게 전파되었고, 서구의 산업화된 경제형태가 도입되었으며, 그로 인해 서구와 유사한 지식인에 해당하는 계층과 ‘권태‘ 비슷한 생활감정을 낳는 여건이 조성되었기 때문이었다.

드가가 중요한 부분을 그림의 가장자리로 몰아내어 액자에 의해 끊어지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체호프는 그의 소설과 희곡을 ‘발단’에서 끝맺음으로써 작품이 도중에 중단되었거나 우연히 아무렇게나 끝맺었다는 인상을 주고자 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정공법과는 반대되는 우연의 형식원리를 따르고 있다. ‘잘 만들어진 각본’의 경우 중요한 특색이던 여러 효과들을 포기하기에 이르는데, 과거 무대에 잘 맞는 희곡이 플롯의 통일성, 완결성, 균형성의 형식원리를 따름으로써 성공했던 데 비해, 체호프의 인상주의 희곡은 사건이 적고 극적인 갈등조차 전무했다. 등장인물은 스스로 몰락하면서 서서히 망해가며, 아무 사건도 시간도 없는 삶의 일상성 속에 휩쓸려 들고 만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인생을 고스란히 내맡기는데, 이 운명은 파국을 통해서가 아니라 환멸을 통해 완성된다.

자연주의 연극의 문제

플롯이나 극적 진전이 없는 이런 연극의 존재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의문을 품어왔다. ‘잘 만들어진 각본’의 연극은 비록 그것이 자연주의의 어떤 요소들을 흡수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희곡의 무대기술적 관습과 영웅적 주인공의 이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자연주의가 극예술을 정복하는 것은 1880년대, 즉 소설에서의 자연주의가 이미 쇠퇴하기 시작한 다음이다. 앙리베끄와 그의 후계자들은 발자끄나 플로베르에 의해 이미 문학의 공유재산이 된 것을 무대에 써먹은 것에 불과했지만 부르주아 관객들의 반응은 전적으로 부정적이었다. 따라서 엄격한 의미에서의 자연주의 연극은 프랑스 바깥에서, 즉 스칸디나비아제국과 독일 및 러시아에서 형성되었다. 자연주의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관객들은 자연주의 연극의 관습을 받아들였으며 적어도 입센, 브리외, 쇼 등의 희곡에 한해서는 그들의 부르주아 도덕에 대해 공격적인 그 태도를 탓할 뿐, 연극양식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드디어는 반부르주아적인 희곡 자체도 부르주아 관객들을 사로잡아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자신의 생존능력을 스스로 증명한 자연주의 연극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비평가와 미학자들은 고전주의적인 희곡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고전주의 연극에서의 간결성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는 점, 공연시간에 제한이 없는 점, 그리고 극중 대화가 잡다해지는 것을 묵과할 수 없었다. 그들은 ‘운명, 성격, 행동의 고찰이 아니라 현실의 세부적인 복사’라면서 자연주의 연극을 비판했다. 하지만 실제로 자연주의 연극에서 달라진 것은, 현실 자체가 구체적 제약과 더불어 ‘운명’으로 느껴지게 되었고, 등장인물의 ‘성격’이라는 것이 다면적이고 복잡하며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기에 이르렀다는 것뿐이다.

연극에서 사건의 줄거리가 사라져가는 것은, ‘이야기적 요소가 제거되어가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경향은 모든 예술분야의 전면에 부각되는 것이었는데, 미술 분야에서 일화적 회화를 옹호하던 평론이 거의 없었던데 반해, 연극에서는 플롯 경시에 대한 격렬한 비난이 있었다. 특히 독일에서 가장 심했던 자연주의 연극에 대한 반대에는 여러 가지의 상이한 동기가 작용하고 있었다. 정치적인 반동의 경향은 간접적인 것에 불과했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념비적 연극’이라는 구상이 갖는 유혹이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함께 자라난 자연주의보다도, 과거의 귀족 및 부르주아지의 고전주의 쪽을 장래의 민중연극을 위한 양식으로 생각했던 것은 당시의 개념혼란을 여실히 보여준다.
새로운 연극에 가해진 가장 격렬한 비판은 그 결정론과 상대주의에 대한 것이다. 내적 자유·외적 자유가 없고 절대적 가치나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도덕률이 없는데 어떻게 진정한 희곡(비극적인 희곡)이 가능하겠냐고 새로운 연극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말했다. 윤리적 규범이 상대적인 것이고 서로 모순되는 입장이 인정된다면 진정한 극적 갈등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이런 일련의 논의는 개념의 혼동, 사이비문제들과 궤변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서는 비극적 희곡을 희곡 전체와 혼동하거나 적어도 이상적 희곡의 형식으로 전제하고 있는데, 이런 판단은 그 자체가 역사적, 사회적으로 규정된 상대적인 가치로서, 상대주의적 세계관과 얼마든지 일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옳지 않다. 비극적 효과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어떤 절대적 가치를 신봉하는 관중에게 그러한 가치위협의 현상을 꼭 보여주어야 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관중 자신이 그러한 가치에 대한 신념이 없다면 말이다.

입센

입센은 당대의 세계관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가장 강렬하게 희곡으로 표현한 사람이었다. 입센의 윤리적 정열, 선택과 결단해야만 한다는 의식, 자신에 대한 심판으로써의 작품 활동 등, 이 모든 것은 키에르 케고르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며, 전적으로 비 낭만적이요 일체의 유미주의와 결별한 그의 윤리관 자체가 키에르 케고르의 영향인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은 그들이 천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키에르 케고르는 이러한 낭만주의에 반대하여 종교적·윤리적 체험이 미나 천재와 전혀 무관하며, 신앙상의 영웅이란 예술적인 천재와 전혀 별개의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낭만주의자들의 비현실주의란 것은 당대의 일반적 과제들 중 하나로서, 이 문제와의 대결을 위해서 특별한 자극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의 자연주의 전체가 이상과 현실, 시와 진실, 시와 산문의 갈등을 중심과제로 삼고 있었으며 19세기의 중요한 사상가들은 누구나 현대문화의 치명적 불행이 현실감각의 결여에 있음을 지적했다. 이 점에서 입센은 여러 선구자들의 싸움을 계속했을 뿐이었다. 입센이 이 공동의 적에 가한 치명타는 바로 낭만주의적 이상주의에 내재하는 희비극성의 폭로였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에서 그 주인공에게 동정으로 대했던 것에 비해, 입센은 브란드나 페르귄트와 같은 그의 인물들을 도덕적으로 철저히 파멸시킨다. 이런 낭만주의적 인물들의 이상적 요구는 이기주의이며, 그 냉혹성은 순진함 만으로 완화되지는 않는다. 돈키호테의 이상주의가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해서 준열했던 데 반해 입센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상주의자들은 오로지 남에 대해서만 준엄한 것으로 특징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입센이 당시의 젊은이에게 깊은 감명을 주게 된 것은 그의 개인주의에서 비롯된다. 그는 근본적으로는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자로서 개성적 자유를 인생의 최고 가치로 삼았으며, ‘개인은 그 자신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나 사회는 개인에게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라고도 했다. 그는 사회문제 자체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했다. 그의 사고는 개인적 윤리문제를 중심과제로 삼았고, 사회 자체는 그에게 있어 ‘악의 원리의 한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사회에서 어리석음과 편견과 폭력의 지배를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 그의 성향은 결국 귀족적, 보수적 영웅주의 윤리에 도달하게 된다.

유럽에서 그가 진보적 인사로 통했던 것과는 달리, 그의 조국 노르웨이에서는 비외론슨의 급진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파의 대작가로 알려졌다. 그의 영향력은 작품에서보다는 그의 선동가적·교훈자적 역할에 힘입은 바가 컸고, 사람들은 그를 불굴의 투사로서 존경했지만 정치가로서의 입센은 적극적인 무언가를 전혀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는 부르주아적 편견과 기존의 사회에 맞섰지만 자유의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그 스스로가 믿지 않았고, 종국에 가서는 서글픈 숙명론자로서의 정체가 드러나고 마는 개혁가였다. 그의 마지막 작품의 주인공인 루베크는 예술가에 대한 입센의 생각을 가장 순수하게 구현한 인물이다. “이레네여, 그대와 함께, 아 그대와 함께 비다에서 하루의 여름밤을 보낼 수 있었더라면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었을 것을!” 하고 부르짖는 이 절규야말로 현대예술 전체에 대한 심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버나드 쇼

버나드 쇼는 낭만주의에 대한 입센의 투쟁을 보다 효과적으로 계속하고, 유럽이 당면한 중대한 문제에 관한 토론을 심화시킨 유일한 작가이다. 이때에 이르러 낭만주의적 영웅들의 극적이고 비극적인 거창한 제스처에 대한 신앙이 깨뜨려진다. 순전히 장식적인 것, 거창하게 영웅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것들이 모두 회의의 대상이 되고, 일체의 감상성과 비현실주의가 속임수요 엉터리 수작임이 폭로된다. 자기기만의 심리학은 쇼 문학의 근원이다.
그는 거짓말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다시 말해 경제적 이해와 사회적 욕망에 의해 제약되어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 사람들이 지나친 합리적 사고로 인해서 현실감각을 결여하고 있다고 보았는데, 따라서 쇼의 목표는 합리주의가 아니라 현실주의이며 그의 주인공들의 주요 정신능력은 이성이 아닌 의지였던 것이다. 그가 극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문학형식 중 제일 동적인 장르에서 그의 사상에 가장 알맞은 형식을 발견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본질적으로 지성주의적·주지주의적 성격을 띠었는데 그것은 비극적인 효과를 만들기 위한 측면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의 연극을 ‘극적 토론’이라고 불렀는데, 그의 연극이 소화하기 어렵다는 인상을 주었던 것은 사람들이 인기 있는 오락적 작품들에 둘러싸여있었기 때문이며, 비평가와 관객이 모두 이런 새로운 연극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작품들이 과거의 선구자들보다도 더 엄격한 지성주의를 유지했던 반면에,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수준 높은 관객들은 그의 연극들을 즐기기에 더없이 적당했다. 그들은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쇼의 공격이 그들의 돈을 빼앗아가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린 순간, 쇼의 현란한 지적 곡예조차 안심하고 즐겼던 것이다. 결국에 가서 밝혀진 일이지만, 쇼는 본질적으로 부르주아계급과의 연대감에서 움직인 작가였고, 예로부터 이 계급의 정신적 습성의 하나인 ‘자기비판의 메가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폭로의 심리학

전환기에 있어 세계관의 기본 방향을 규정해주는 심리학은 ‘폭로의 심리학’이다. 니체와 프로이트는 정신생활의 표면이 감정 및 행위의 진정한 동기를 은폐하거나 왜곡한 것이라는 인식을 했었는데, 이런 기만의 기원은 그리스도교 창시 후의 인간타락에 있었으며, 이런 인간의 나약함과 원한을 윤리적 가치와 이타적·금욕적 이상으로 내세우려는 결과를 낳았다고 보았다.
그들의 폭로작업에 동원된 사고방식은 역사적 유물론에서 처음 쓰인 방식이었는데, 맑스가 강조하는 것 역시 ‘인간의 의식은 왜곡되고 상처 입은 것이며, 의식은 그 자체의 편향된 시각에서 세계를 본다.’는 것이었다. 정신분석에서의 ‘합리화’의 개념은 맑스와 엥겔스가 말하는 이데올로기의 형성, ‘허위의식’의 개념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맑스의 역사철학 전체의 기초가 되는 것은 ‘계급적으로 분화된 사회에서는 올바른 사유가 불가능하다는 통찰’이다.

한편으로, 이런 역사적 유물론 자체는 그 폭로의 대상이었던 부르주아적·자본주의적 세계관의 한 소산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제가 서구의 의식에 있어 절대적인 위치가 되기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이래의 새로운 사고방식의 근본원칙은 바로 ‘의심의 태도’였는데, 이미 널리 퍼져있었던 만큼 개개인의 사상가와 학자가 자신이 역사적 유물론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이런 폭로의 이념은 이 세기의 공통의 재산으로서, 니체와 맑스, 프로이트간에 누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느냐를 말하기에 앞서, 모든 사람들이 시대의 위기적 분위기에 지배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옳다. 유럽이 그 넘치는 자신감을 상실한 심리상태의 표현이었다.

프로이트

프로이트의 이론 또한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론 형성이 상당히 진전되어서야 정신분석의 여러 문제들의 근원이 된 기본적 체험을 의식하게 되었는데, 그 기본적 체험이란 바로 ‘문명에 대한 거북스러움’이었다. 그는 그 ‘불안한 균형의 느낌’이 인간의 본능생활, 특히 성애충동에 가해진 억압에서 연유한다고 보았다.
노이로제는 삶의 요소들 중에서 경제·사회·정치적 부분들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없지만, 프로이트는 철저히 자연과학적인 그의 세계관으로 인해서 사회학적 요인들을 올바로 포착하지 못했다. 그에 의하면 문명의 형태는 역사적·사회적 형성물이 아닌, 여러 충돌들의 기계적 발현이다.
성욕충동을 모든 창조적·정신적 원천으로 삼는 그의 이론은 ‘인간본성’이라는 불변의 설정으로 인해서 보수적 관념론의 잔재를 보존하고 있다며 맑스주의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는데 그 비난은 타당하다. 반면에 정신분석이 부르주아지들의 퇴폐적 산물이요, 이 계급과 동시에 사라질 운명이라고 하는 맑시스트들의 비난은 독선이다.
토마스만은 프로이트가 세기말의 비합리주의에 연루되어있음을 강조하지만, 단지 인간내면의 어두움에 집중한 신낭만주의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만이 아니라, 문명과 이성 이전의 경지를 논하려는 낭만주의적 사고 전체의 시작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정신분석의 위험은 원시적 인간에 대한 공감이 아니라 그것이 근본적으로 충동과 생물학적 본성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험적으로 주어져 변화가 불가능한 모든 비변증법적 인간개념에는 비합리주의적 보수주의적 경향이 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비관주의자이거나 보수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이성에 대한 회의를 품었지만 동시에 충동을 지배하는 수단으로서 우리의 지성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강조했다.

그의 폭로의 심리학은 인상주의적 생활감정이나 상대주의적 세계관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기만의 개념은 하나의 인상주의적 사상이며 프로이트가 말한 ‘인간은 타인과 자기 자신에게 모두 숨겨진 삶을 산다.’는 이론은 인상주의가 나오기 이전에는 아마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인상주의는 이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사고방식이기도 한 것이다.

실용주의

니체는 ‘진리가 어떤 절대의 팔에 매달려 있던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진리라고 일컫는 것들은 실상 삶을 촉진시키고 삶이 지속되기 위해 필요하며 권력을 고양시키는 거짓말 들이라고 그는 주장하는데, 실용주의의 진리개념 역시 본질적으로 이와 같은 행동주의적·공리주의적 성격의 것이다.
효과적이고 유용하고 쓸모 있는 것, 세월에 견뎌내는 것, 윌리엄 제임즈의 표현대로 ‘수지가 맞는’ 것이 곧 진리라는 것인데, 인상주의와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인식이론은 상상하기 어렵다. 모든 진리는 일정한 현실성을 지닐 뿐이며 특정한 상황에서만 통용된다. 그것 자체로서는 정당한 주장이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그것이 어느 것과도 무관하기 때문에 전혀 무의미한 주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실이란 떼어놓을 수 없는 주체와 객체의 관계로서 그 개별적인 구성요소는 서로서로의 의존관계를 떠나서는 규명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한마디로 실용주의는 예술가의 인상주의적 체험에서 나왔다. 예술의 영역에서 체험이 진리에 대해 갖는 관계야말로 실용주의 철학이 경험 일반에 대해 설정하는 관계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베르그쏭과 프루스트

인상주의적 사고는 베르그쏭의 철학에서, 특히 인상주의의 본질에 밀착된 모체인 ‘시간’에 대한 베르그쏭의 해석에서 가장 순수한 표현을 얻는다.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되풀이되지 않을 ‘순간의 일회성’이라는 것이 19세기의 기본적 체험이었다. 그리하여 자연주의 소설 전체가, 그중에서도 특히 플로베르의 작품은 이러한 체험의 묘사이자 분석이었다. 그러나 플로베르와 베르그쏭의 세계관을 가르는 중요한 차이는, 플로베르는 아직도 인생의 이상적 실체를 갉아먹는 하나의 ‘파괴요인’으로 시간을 파악했다는 점이었다.

우리의 시간관, 그리고 체험적 현실 전체에 대한 평가의 변화는 서서히 일어난 것으로서 먼저 인상파의 그림에서, 다음에는 베르그쏭의 철학에서, 끝으로 프루스트의 작품에서 일어났다. 프루스트에 이르면 시간은 이미 분해와 파괴의 원리가 아니며 우리는 시간이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의 정신적 존재, 생명 없는 물체와 기계작용에 반대되는 우리 삶의 본질을 포착하고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 삶의 개개의 순간의 총화일 뿐 아니라 이러한 순간들이 모든 새로운 순간을 통해 획득하는 모든 새로운 국면들의 귀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은 오히려 지나가버림으로써 비로소 우리 생활에 내용을 부여한다. 이런 프루스트의 소설에 와서 베르그쏭의 시간관은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최선의 것이 고뇌임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두려움 없이 죽음을 열반으로 생각하리라.

사람들은 낭만주의가 나타난 이후, 거듭 되풀이하여 인생의 상실에 대한 책임을 예술에게 물어왔고, 플로베르가 말하는 인생의 소유와 표현간의 선택을 비극적인 양자택일로 보아왔다. 이에 반해 관조, 회상, 예술의 길이 우리가 인생을 소유하고 체험하는 오직 단 하나의 가능한 형식이라고 본 최초의 인물이 프루스트이다. 버뜨,,,, 그러나 이런 새로운 시간관이 이시대의 유미주의 자체를 본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런 것은 외관상의 온순함일 뿐, 왜냐 하면 프루스트에 의한 인생가치의 전도는 병든 한 인간의, 생매장된 한 인간의 자위와 자기기만이었기 때문이다.

* Author / Gathered from : 최윤호가 ?문학과_예술의_사회사 부분을 요약함

나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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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나를 벗어나 나를 보게 되는 기회였다. 나는 또래의 다른 이들에 비해서 스스로 감내해야할 고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문제와 마주했을 때 떠난 여행을 매번 후회하게 되었지만, 그 여행이 가져다 준 경험도 만만치 않게 나의 부분을 이루어나갔음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비슷한 여행을 거듭할수록, 나는 여행이 순간의 고통을 피하는 도피가 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비참한 여행이란건 바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어딘가를 향하는 행위는 나와 잠시나마 결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아직까지 나는 현실로부터 떠나오지 않은 ‘즐거운’ 여행에 대해 들어보지를 못했다.

도미토리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진다. 폐쇄적인 내부가 되어버리는 싱글 룸에 비해서 처음에는 생소하기만 했던 도미토리는 나의 여행에서 하나의 문화적 공간이었다. 만약 어느 투숙객이 가진 것이 너무도 많다면 그는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어떤 종류의 가치이건 일단 소유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것을 지켜내기 위한 나의 투쟁도 시작된다.

내가 어떤 가치를 소유한다는 건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는 ‘불행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고, 누가 나의 가치를 빼앗을 것이라는 믿음은 내가 소유한 가치의 절대적 효용마저 잊어버리도록 끊임없이 유혹했다. 어떤 이유에서이건 일상과 거리를 두게 마련인 여행을 하면서도, 그 일상과의 거리를 좁히는 가치들을 끊임없이 찾으려는 건 여정에서 심각한 모순의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여행하면서 자주 여행지에서의 삶과 나의 실제 위치를 뒤섞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보다 못 먹는 것에 대한 연민, 나보다 잘 사는 것에 대한 부러움, 나와는 다른 가치에 대한 불신, 나와는 다른 얼굴에 대한 거부감들까지, 사소한 어느 것 하나도 비교되고 비교하기를 거듭하다보면 결국 총체적으로 다른 그들과 나의 간극을 확인하는 것으로 여행은 끝이 나버린다. 그 즈음이 되면 여행 이전의 그 떠나온 곳에 서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여행의 목적이라면 어설픈가?

관찰자의 기술

4. 관찰자의 기술 _ 최윤호 발제 (수유연구실 예술세미나 자료)

19세기 초의 괴테에 이르러 잔상과 같은 주관적 시각현상은 과거의 소외된 위치에서 벗어나 광학적 진리의 위치를 획득한다. 이런 ‘주관적 현상에 일치하는 새로운 객관성’이 갖는 의미는 아래와 같다.

# 잔상의 특권화로 인하여, 인간은 감각적 지각을 외부지시체와 어떤 필연적인 연계가 단절된 것으로 여기게 된다.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의 감각의 출현, 잔상과 그것이 수반하는 변조는 주체에 의해서 생산되고, 주체 안에서 생산된 자발적인 시각의 이론적이고 경험적인 본보기가 되었다.
# 시간성이 관찰의 구성요소가 되다.”’

그 당시, 시간 속에서 경험한 자기 자신의 주관성이 전환되는 과정은 ‘보는 행위’와 동의어가 되었다. 이는 대상에 완전한 초점을 두고 있는, 관찰자에 대한 데카르트적 이상을 해체시켜갔다. 잔상과 주관적 시각의 시간성의 문제는 19세기에 큰 인식론적 이슈가 되었다.

# 셀링(Schelling)의 ‘일시적 중첩에 기초한 시각’의 묘사 : … 단편적인 방식으로 조각조각 생산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 스스로 완성하기 위해서 각각의 사물은 특정 순간들을 통과해 간다. – 서로를 따라가는 과정들의 계열이, 뒤의 것들이 언제나 앞의 것을 포함하며 각각의 사물들을 성숙시키는 것이다.
# 헤겔 : 로크적 지각을 거부하고 일시적이고 역사적인 펼쳐짐 안에 지각을 전개. “진실은 조폐국에서 틀에 맞춰 발행되는 동전과 같지 않으며 … ” 감각지각의 명백한 확실성을 공격.
# 괴테 : “일종의 대립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눈은 극단과 극단을, 중간적인 것과 중간적인 것을 대조시키는 속에서 이런 대립적인 인상들을 조합한다. 인상이 연속적이건 동시적이건 전체를 구성하여 하나의 이미지를 이룬다.”

로크와 꽁디악이 관찰을 감각들의 연속체로 이해했다면 괴테와 헤겔은 관찰을 힘과 관계들의 상호작용이라고 보았다. p154 당시의 다른 작가들은 지각을 연속적 과정, 일시적으로 퍼져있는 내용들의 흐름으로 묘사했다. 앙페르 : “연속적인 차이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결과”

허바트(Johann Friedrich Herbart)는 정신적 경험을 지배하는 수학법칙을 공식화함으로써 “자극-반응 심리학의 정신적 아버지”가 되었다. 칸트가 경험을 종합하고 배열하는 정신의 수용능력을 고려했다면, 그는 주체의 내적 비일관성과 탈조직화에 대한 경계를 드러냈다. 그에게 있어 의식은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무질서한 흐름으로부터 시작한다. 관념들은 이전이나 동시에 발생한 관념들 또는 ‘현시’와 융합되고 희석되며 뒤섞인다. 그는 관념들의 충돌과 융합의 과정에서 진실을 추출해낸다. 이런 지각을 수학화, 계량화하려는 복잡한 시도는 이후의 수량적 감각 연구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으며 한편으로 그의 작업은 훈육적, 도덕적인 관념의 주입과 관련한 그의 교육학적 이론과도 결부되어있었다.

1820년대까지 유럽 전역에서는 잔상에 대한 계량적 연구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독일의 푸르기니에는 잔상의 지속과 변조에 관한 괴테의 연구를 이어가게 되는데, 그의 연구는 잔상의 지속시간과 조건에 따른 변화와 관련한 것이었다. 다음세대의 연구자들은 푸르기니에의 경험적 연구와 허바트의 수학적 방법을 병행할 것이었다. p158,159그림 푸르기니에는 최초로 잔상의 상이한 형태를 구분했는데 그의 그림은 주관적인 시각현상이 역설적으로 객관적인 것임을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연구는 17-8세기의 굴절계의 투명성에 관한 담론이 아니라, 유효성과 적합성이라는 다양한 영역을 가진 생산적 영토로서 눈을 재배치했다.

1820년대 중반부터는 그동안의 경험적인 잔상연구의 결과로 수많은 광학기구와 기술들이 발명되었다. 초기에 그것은 과학적 관찰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곧 대중의 오락물이 되었다. 그런 기구와 기술들은 지각이 순간적이지 않다는 개념과 대상 사이가 분리되었다는 개념을 사용했는데, 잔상연구는 감각이 혼합되거나 융합되는, 그런 ‘보는 행위와 얽힌 지속성’을 통해 지각의 변조와 통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p161,162그림 회전판(thaumatrope, 1825 John Paris) _ “… 1/8초 동안 잔상이 지속된다. …” 이런 “철학적 장난감”의 단순함은 이미지의 직조되고 환각적인 본성과 지각과 그 대상 사이의 단절 모두를 명확하게 해주었다.

로제트(1825)와 물리학자 패러데이(Michel Faraday)는 회전하는 바퀴의 착시현상을 연구했으며 1820년대 후반에 벨기에의 플라토(Joseph Plateau)도 잔상의 실험을 실시했다. 그는 매우 유력한 “시각의 잔존” 이론을 만들었다. p166 1830년대 초 그는 페니키스티코프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로제트와 페러데이 등의 연구와 그의 연구를 통합한 것이었다. p164,166그림 이후의 쉬탐페의 스트로보스코프아래그림와 호너의 주트로프도 유사하다.

이런 장비의 영화사적 맥락에서의 접근은 각각의 장치가 가진 개념적이고 역사적인 특이성들을 무시한다. 시각의 잔존이라는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설명력을 갖고 작동하는 조건과 환경들, 그리고 그것이 가정한 역사적 주체/관찰자이다. p169 모든 연구들에서 조사의 대상은 관찰자 자신의 자기-관찰과, 생활에서의 경험들이었다.

페니키스티스코프는 19세기에 “기술이 복잡한 훈련들로 인간의 감각중추를 지배해왔다.”는 벤야민의 주장을 구체화시킨다. 이 도구가 관찰자에게 요구한 물리적 위치는 ‘즉시 구경꾼이 되어버리는 개별적 육체’, ‘경험적 연구와 관찰의 주체’, ‘기계 생산의 한 요소’라는 세 가지의 혼재였다. 이점이 스펙터클과 감시가 대립하는 푸코의 주장이 미치지 못하는 지점이다. p171 19세기 관찰자의 생산은 규율과 규제의 새로운 절차와 일치했다.

# 디오라마 : 움직이지 않는 관찰자를 기계 속에 통합. 자발성 제거 p172,173

1815년 브루스터경이 발명한 만화경은 페니키스티스코프의 훈육적인 구조와는 급진적으로 달라보였는데 그것은 보들레르에게는 근대성 그 자체와 부합되는 것이었다. “의식을 부여받은 만화경”이 되는 것은 “보편적인 삶을 사랑하는 사람”의 목표였다. 한편 맑스와 엥겔스에게 만화경에서의 다중성은 거울의 속임수에 불과했다.

사진술을 제외하면 19세기 시각이미지의 가장 중요한 형태는 입체경이었는데 그것은 공간이 천부적인 것인지에 관한 당시의 공간지각 논쟁과 관련이 깊다. 1830년대에 과학자들은 보는 육체를 양안적이라고 규정하고 두 시각축의 각도상의 차이를 양화했으며 생리학적 근거를 설명했다. 특별히 1833년에 휘트스톤은 ‘근접한 대상’에 있어서의 시각축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의 이론에 의하면 지각경험은 본질적으로 ‘두 눈의 차이에 대한 이해’이다. 브루스터도 그런 차이에 대해서 ‘그건 마술과 같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라고 확신했다. p183@ 휘트스톤은 입체경을 통해 회화와 같은 것과는 다른 시각에서 물리적 물체의 존재를 ‘흉내’내려고 했다. 그는 이미지와 대상의 완전한 등치를 추구했고, 그런 면에서 디오라마에서 이용된 회화의 기술들과 달리 입체경의 ‘가까운 대상’이 더 생생하다고 생각했다. ‘만질 수 있는..’ 19세기의 어떠한 재현의 형태들도 실제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을 그만큼 융합시키지 못했다.

입체경의 조사

이미지 안의 두 시각축이 수렴하는 각도에서 중요한 변화를 요구하는 지점들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이것은 물체로 가득 찬 공간이어야 하고 당시의 부르주아들이 가졌던 비어있음에 대한 공포와도 연관된다. p178그림 이런 이미지에서의 깊이는 사진이나 회화에서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또한 입체경에서의 이미지를 조직하는 것은 ‘평면’이다. 물체들 사이의 공간은 점진적인 후퇴가 아니며 형태는 불확실하게 분리되는데 이것은 고전적인 무대 디자인과도 유사하다.
입체경은 근본적으로 통합되지 않은 채 모여 있기만 한 장(場)을 드러낸다. 우리 눈은 3차원 전 영역을 완전히 파악하기보다는 분리된 지역에 대한 국지경험으로서 인식한다. 19세기 회화의 범위는 집단들과 평면들 간의 비일관성에 주목했는데, 입체경과 회화에서는 동일하게, 새로이 구축된 시각공간의 출현과 광범위한 관찰자의 변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p191

재현의 수단으로서 입체경은 ‘외설적’이다. 그것은 카옵의 극장적인 배치에서의 무대장치 같은 관계, 즉 눈과 이미지와의 거리를 파괴했고, 벤야민이 ‘근대성의 시각문화’에서의 핵심으로 보았던 것의 완성이었다.

1838년 휘트스톤의 문제는 ‘물체 그 자체’와 평평한 표면에 투사되는 ‘그것’에 관한 것이었다. 입체경을 통해 보는 것은 이미 재생산된 조각난 세상을 두 개의 비정체적인 모델이며 기계적인 재구축을 통한 것이었다. p193 탈중심화된 관찰자와 입체경의 분산-중복된 기호들의 제도화는 수세기동안 관찰자와 대상에 상호 부여되었던 ‘조망점’의 근절을 뜻한다. p193그림 ‘바르뜨의 준거적 환영??’p194

입체경은 육체적 ‘근접성’과 ‘부동성’을 요구했다. 19세기가 시작되면서 눈과 시각기구 사이의 관계는 하나의 ‘환유’가 된다. 둘은 동일한 활동 평면에 있는 인접한 장치였다. p195 시각장치는 맑스의 ‘도구’와 같은 변화를 겪는다. “적절한 도구가 인간에 의해 채택되는 순간, ….기계는 단순한 도구들을 대체한다.” p197 도구는 인간주체의 타고난 힘과 환유적인 관계였다. 19세기의 도구주의는 “인간의 본성은 도구가 되는 것, 그의 소명은 그의 지위에 의해 설정되고 일하기 위해 배치된다는 은연중의 가정”에 기초한다. p198

1830, 1840년대의 광학기구들의 결정적인 특징은 그들이 수반하는 억압의 형태와 작동구조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광학적인 경험은 기구 안의 이미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따라서 페나키스티스코프나 입체경들이 사라졌을 때 그것은 발명과 개선과정의 일부로서가 아니었으며, 그 초기의 형태들이 당대의 욕구와 용도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라짐의 이유 중 하나로 ‘요술환등기’를 들 수 있는데, 그것과 달리 입체경에서는 그 생산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생산이 엄폐되지 않는’ 입체경은 기구의 물리적 성질에 의존했다. 그 허상은 더욱 완전한 보전을 하는 형태에 자리를 내어준다. 카옵에서는 자유로운 주체가 아직 사실적이라는 허구를 재생산하고 지속하게 했다. 사진은 자연스러운 그림코드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여겨졌는데, 사진은 좁은 범위의 기술적 가능성에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카옵에서의 관찰자와의 관계성을 이미 없애고 단일한 것이 되었으며 새로운 카메라를 관찰자와는 기본적으로 독립된 별개로 취급했다. 그러나 카메라는 자신을 대상과 관찰자 사이의 비물질로 가장하고 있었다.

스펙터클의 앞선 역사, 그리고 모더니즘의 순수지각은 새롭게 발견된, 완전히 드러난 관찰자의 영역에 위치한다. 그러나 양자의 최종적 승리는 시각의 바탕으로서의 ‘육체의 부정’과 그 맥동 및 환영에 의존하고 있다.

* 관찰자의_기술을 요약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