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 걸쳐 ‘디자이너’라는 말은 명확하지 않고 혼란스러움에 둘러싸여있었다. 이른바 하나의 직업적 책임으로서, ‘디자이너’는 순수예술가, 건축가, 공예가, 기술자(엔지니어), 발명가, 기술자 그리고 낮게는 ‘고용자’로서 다뤄졌다. 19세기는 무자비한 변화의 시기였으며, 디자이너 ? 그 모든 변화들과 함께했던 – 는 패턴북을 만들어내던 18세기의 순수예술가들과, 디자인팀이나 메니지먼트 구조를 바탕으로 일하던 20세기의 산업디자이너들,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이 두 축은 그 정체성 – 19세기를 산업디자이너의 출현에 아주 중대한 기반형성기로 자리매김한 – 을 확립하기 위한 셀수없는 노력들 위에 놓여있다.
뉴라이트 교사연합 발족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입각 교육”
“현교육 평등주의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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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지향하는 뉴라이트 교사연합이 발족됐다.
뉴라이트교사연합 창립준비위원회는 23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실에서 회원 5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대회를 갖고 전국중등교사회 두영택(남성중학교 교사) 회장을 상임대표로 선출했다.
섞어찌개 영국
Great Britain은 지리적 표현이며 United Kingdom은 정치적 표현입니다. Great Britain은 영국의 여러 섬들 중 가장 큰 섬을 뜻하며 북대서양과 북해 사이에 위치합니다. Great Britain은 두번째로 큰 아일랜드(지리학적)의 약 2.5배이며 이 두 섬을 한꺼번에 British Isles이라고 부릅니다.
British Isles이란 말은 지리적으로 두 섬을 함께 부를 때 쓰며, 현재는 두개의 정치적 지역으로 나뉘어있습니다. 둘 중 작은 the Republic of Ireland의 수도는 Dublin이며, 큰 것인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의 수도는 런던입니다. 이 명칭은 줄여서 the United Kingdom, 혹은 UK라고 쓰여집니다.
지리적으로 Great Britain은 상당히 다른 역사적 기원을 가진 세개의 국가로 나뉘는데 그것이 바로 스코틀랜드, 웨일즈 그리고 잉글랜드입니다. 웨일즈는 16세기까지 잉글랜드의 통치를 받다 통합되었고, 스코틀랜드 또한 1707년에 잉글랜드와 정치적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지리적 구분인 Great Britain 전 지역의 정치체제들과 Ireland가 하나로 통합된 1801년, 이 새로운 정치체제는 하나의 왕국인 the United Kingdom으로 불려지게 됩니다.
1922년 the Republic of Ireland는 런던이 수도인 the United Kingdom에서 독립하여 더블린을 수도로 하는 독립국가가 되었습니다. Britain이나 British라는 말은 종종 큰 섬인 Great Britain과 그곳에 사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Northern Ireland를 포함한 Great Britain을 뜻할 때도 있습니다. England와 English라는 말은 가장 흔하게 오용되는데 이것은 전체 영국인을 말하기보다는 잉글랜드지역과 그곳의 사람만을 뜻하는 것입니다.
포털과 댓글
지율의 단식이 상식을 넘어 장기화되고있다. 신문들은 연일 그의 처량한 몰골을 비추느라 무엇이 둘 간의 문제였는지는 관심도 없다. 드러난 내용은 정부의 국책사업과 천성산의 보존문제가 만들어내는 갈등이다. 반대하는 이들이나 찬성하는 이들이나 미디어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한국처럼, 더군다나 인터넷에 접근하는 한국인처럼 뉴스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자동화’되어있는 경우는 드물것같다. 이미 주요 메이저 신문과 군소 인터넷 신문들의 기사는 네이버나 다음 등의 포털을 거쳐 절대다수의 인터넷 이용자에게 배급되고 있다. 논란이 된 적이 있지만 포털 뉴스편집의 기준이 아얘 없었을 때는 정보의 왜곡이 지금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다. 가령 ‘황우석 중대발표..’라는 링크를 눌렀더니 ‘황우석 중대발표 소문에 불과해….’라는 뉴스였다던지 하는 식의 방식은 지금도 포털뉴스에서 없어지지 않았고 가끔씩은 메이저 뉴스사이트에서도 똑같은 방식이 사용되곤 한다. 포털과 댓글 더보기
대중 : 정통 문화
잠깐 본 책, ‘문화연구와 문화이론'(현실문화연구 역)의 마르크스주의 / 프랑크푸르트학파 편을 읽다가 예술 민주화 – 디자인… 정도로 이해하던 생각의 틀에 의문이 생기는 문구를 발견했다. 마르크스적 대중예술의 해석과 정통예술의 해석에 있어 책의 한 부분은 대체로 대중예술을 계급의 유지를 위한 것으로 보며 정통예술을 지켜야 할 진보적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듯 한데, 그 이유는 대중예술은 어긋난 신화적 환상의 실재화를 통해 대중의 현실안주를 이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나의 아이디어로 다뤄지고 있는 부분이지만 생각 좀 해봐야겠다. 152페이지.
문화산업의 ‘동화작용이 역사적으로 미성숙한 것이며 스스로의 지배력은 유지시키면서 다른 문화는 평등하게 만들려고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짧게 말하면 문화의 민주화는 완전한 민주주의의 요구를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오며, 결국 기존 질서를 그대로 고수시키는 것이 된다.
잠깐
진보 실현이라는 것도 실제로는 기득권층에서만 가능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