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기업은 브랜드에 깊고 내밀한 의미를 담아내려고 하며 광고대행사는 자신이 제품을 선전해서 파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대신 참된 가치를 짜내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브랜드 구축자들은 지식경제에서 제 1의 생산자들인 셈이다. 고용 환경은 변화했다. 슈퍼 브랜드 기업들은 영혼을 세우고 성가신 육체를 잘라냈다. 슈퍼 브랜드 구축과 운영에 드는 엄청난 비용을 생산 관련 투자비의 축소로 해결했다. 기업의 우선순위가 바뀌자 공장 노동자와 장인으로 대표되는 실제 생산자들의 위치가 불안해졌다. 과거 생산가:소매가 1:1에 만족했던 기업들은 이제 1:4의 이윤율을 낼 정도의 저가생산처를 찾아다닌다. 생산과정과 생산자는 평가절하되고 있으며 브랜딩은 부가가치를 독차지한다.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배설물처럼 다뤄진다. 기업들은 제품 생산을 마치 자원 취급 기업이 구리나 나무를 조달하는 것처럼 제품을 조달한다. 생산 부문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제조업체가 노동 인력을 책임진다는 전통적 사고도 함께 빠져나간다. 세계적인 브랜드들은 근로 조건에 대한 책임을 하청 업체에게 떠넘긴다. 그리고 그저 물건을 아주 싸게 만들라고 말하면 끝이다. No Logo: 공장 폐쇄 더보기
다국적 기업들은 다양성에 대해 말하지만 실상 눈에 보이는 것은 마케터들의 말대로 유니폼을 입고 아무 생각 없이 쇼핑몰로 행진하는 10대 무리뿐이다. 다인종 이미지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시장 주도형 세계화는 다양성을 원하지 않는다. 만화경처럼 쏟아지는 ‘다양성이 통합된 거리’ 이미지부터 “어디로 가고 싶어요?”라고 묻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꼬임까지, 우리는 매일 광고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경제면에 나오는 세계는 검정색 하나뿐이고, 사방의 문은 모두 쾅 닫혀 있다. 새로운 회사 매입 소식도 있고, 갑작스런 부도 소식에 대규모 합병 이야기도 들린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선택지가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어디로 가고 싶어요?”라는 질문의 본 뜻은 “내가 원하는 곳에 당신이 가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이다. No Logo: 브랜드 폭격 더보기
지난 15년간(85’~90s) 다국적기업들이 쌓아올린 부와 문화적 영향력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1980년대, 경기 후퇴기(70’~80’) 이후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경영학자들: 제품보다 브랜드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
오랫동안 제조업은 산업경제의 핵심. 제조업체들은 모두 제품 생산에 주력할 시기 “…… 구매력은 공장과 땅 밑에서 나온다(1938년 포춘).”
기업들이 몸집을 불려오다 과고용을 감당 못하고 무너지고 있다는 여론 대두.
그런데 MS, Tommy Hilfiger, Intel 등은 이 때 제품 생산이 ‘지엽적’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내놓았고, 마케팅은 중요 실무, 생산은 하청에 맡기는 방식을 취했다. 강력한 이미지를 만드는 업체가 승리하는 시기가 되다.
90년대의 재계 합병 바람은 이상한 현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합병은 업체의 외형을 확대하면서 제조업 부문의 매각을 가속화하는 작업이었다. 유명한 제조업체들은 이제 제품을 구매하고 거기에 상품을 붙인다. 1부에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집착하는 기업이 공, 사적 공간에서 벌이는 치열한 전쟁에 대해 살펴본다.
브랜드 탄생 비화
대규모 마케팅 활동은 19세기 후반에 처음 시작되었다. 브랜드를 부각시킨 첫 번째 제품은 발명 자체를 활용한 광고와 거의 같은 시기에 등장했다. 기술적으로 ‘공장’이 탄생하고 대량생산이 처음 구현된 시기다. 같은 물건들이 시장에 넘치니 차별화된 “브랜딩 작업은 기계시대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하지만 이 때의 광고와 브랜딩은 딱딱한 과학적 설명에 가까웠다.
1920년대, 브루스 바터는 제너럴 모터스를 ‘개인적이지만 따뜻하고 인간적인’ 미국 가정을 상징하는 존재로 탈바꿈시켰다. 1940년대, 브랜드는 제품 라벨 수준에서 벗어나 총체적 브랜드 아이덴티티나 ‘기업의식’을 가지는 수준이 되었고 제품 자체의 속성에서 벗어나 인간 생활에서의 문화적 의미 등을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생산에 대한 집착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1988년, 필립모리스가 크래프트사를 126억 달러에 매입하면서 브랜드 가치에 대한 열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가격은 크래프트사의 장부상 가치의 6배에 달했는데, 달리 말해 6배의 브랜드 가치가 실제로 평가된 것. 이후 상표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브랜드 사망 선고 : 지나치게 과장됐던 루머
브랜드 가치에 대한 열광은 90년대 내내 지속되었다. 그런데 1993년 4월 2일, ‘말보로 금요일’이라 불리는 이 날에 필립모리스는 값싼 경쟁 브랜드들의 시장 잠식에 맞서서 담배값을 20퍼센트나 인하했다. 전문가들은 브랜드가 죽었다고 공언했고 월가와 기업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소비자들에게는 유명 상표 외면 현상이 나타났다. 가격에 눈을 돌린 소비자들을 상대할 저가 제품들이 범람했다.
1990년대 초의 말보로 금요일 이후 광고비는 감소했고 대신 기업들은 판촉 활동에 열을 올렸다. 브랜드의 전성기는 끝나는 듯 했다. 그런데 어째서 타이드나 말보로 브랜드의 부고를 접한 우리가 토미 힐피거나 나이키, 캘빈 클라인을 선전하는 대대적인 지원군을 다시 맞이하게 된 걸까? 그 복귀를 가능케 한 건 누군가?
브랜드의 귀환
타이드나 말보로와는 다르게, 나이키, 애플, 바디샵 등의 성공 기업들은 브랜딩 작업을 총체적이고도 완벽하게 실행해왔다. 이들은 브랜딩이라는 개념을 진정한 기업 조직으로 통합시켰다. 뼛속까지 브랜딩이 되어 있었다. 말보로 금요일 이후 이런 90년대식 마케팅과 소비자 주권 주의 둘은 동시에 발전하게 된다.
마케팅 비용은 공통적으로 증가했다. 나이키는 스타 운동선수와 결합해 사이비 과학을 선전했고, 베네통과 캘빈클라인은 외설, 혹은 진보정치와 결합된 라이프스타일 마케팅을 실행했다. 앱솔루트 보드카는 더욱 추상적인 방법으로 일명 ‘문화 스펀지’처럼 그들의 브랜드를 재창조했다. GM은 소비자를 초대해 공장에서의 저녁식사를 주선했고 MS와 애플은 인간과 기계의 새로운 관계를 상품으로 팔았다. 갭, 이케아, 바디샵, 스타벅스 등도 단순한 광고가 아닌 복합적으로 소비자와의 관계를 끌어내는 마케팅 기법을 활용해서 완벽한 브랜드를 창조했고 그걸 팔았다.
이쯤 되자 제품 생산자가 아닌 ‘의미 중개자’임을 자각하고 내세우는 전혀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해서 브랜드를 외치며 마케팅 르네상스를 촉구했다. 나이키와 같은 회사는 파는 대상이 제품이 아니라고 공언했고,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 기업, 온라인 브랜드가 등장하자 이런 개념은 훨씬 더 설득력을 얻는 단계로 발전했다. 회사들은 제품을 생산하지 않고 덩어리째 납품만 받으며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재계가 일용품 시장이라는 제단에 엎드려 기도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제 기업들은 오로지 미디어라는 우상만 숭배한다. 톰 피터스의 말대로 “브랜드 브랜드 브랜드!!! 90년대 후반 이후에는 …… 이것이 핵심이다.”
글 : 영국 <가디언>지 2010.3.22일자 기사 _ 환경 전문 에디터 존 바이달John Vidal
전 세계의 대형 도시들이 거대한 ‘거대 광역mega-regions’을 형성하기 위해 통합되고 있으며, 그 결과로 도시는 국경을 가로질러 수 백 킬로미터나 확장되는 동시에 1억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게 될 것이라고 국제연합UN의 리포트가 전했다. 세계 최대의 도시들, ‘거대 광역 도시’를 형성 _ 국제연합UN 리포트 더보기
전례없는 도시화 경향의 와중에서, 디자이너는 도시가 쾌적한 환경의 수용 뿐만 아니라 그것을 거주민에게 제공해야 할 이들임을 증명해야만 한다.
“국제연합UN, 도시화는 멈추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지난 주의 가디언지 헤드라인으로 등장했다. 당신은 이 헤드라인에서 어떤 걱정의 분위기를 감지해낼 수 있는가? 이건 거의 “지구 온난화는 멈추지 않는다.”라거나 “평화로운 주말과의 작별”이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 쓰여야 더 나을 것 같다. “도시화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거대한 디자인 과제다.”
기사는 국제연합-하비타트(UN-Habitat : 국제연합의 거주 문제 해결 프로그램)가 최근 세계 도시들의 상황을 정리해 발표한 자료에 관한 것으로, 몇몇 도시들이 “거대 지역mega-reigion”을 형성하기 위해 마치 수은 방울처럼 모여 통합될 것이라고 예측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개중엔 서부 아프리카의 라고스Lagos, 이바단Ibadan, 롬Lome, 아세라Accera 등 도시들이 통합을 선전포고하고 있는 내용도 있었다. 다 괜찮다. 하지만 이 통합과정이 나이지리아, 베닌, 토고, 가나 등의 국경선을 가로지르며 제멋대로 퍼져나갈 것이라는 점은 문제다.
역사상 처음으로 교외보다 도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게다가 2050년 까지는 인류의 75% 이상이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도시의 휘황찬란한 전등 불빛을 향해 이동하지만 그곳엔 끔찍한 부분이 존재한다. 이런 확장 경향이 있는 도시들 대부분은 이미 수백만이 거주하는 빈민지역을 갖고 있는 것이다. 뭄바이Mumbai, 델리Delhi, 카라치Karachi, 상해Shanghai, 사웅파울루Sao Paulo, 킨샤샤Kinshasa 등 세계적으로 급속히 성장하는 도시들, 이런 도시들 대부분은 2025년 까지 2000만 이상의 인구를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 시간에도 라고스라는 도시는 시간 당 67명 분의 주거지를 확보해야만 한다. 만일 이들 이주민을 위한 디자인을 지금 시작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비극은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예컨대 런던, 파리, 로마 등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도시들은 긴 역사에 걸쳐 서서히 성장해왔다. 마치 다른 종류의 제품인양,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은 새로운 도시 공간을 ‘제조’하고 있는 지점이다. 1960년대,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공간은 새로운 상품”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런 상황을 예견했었다. 그는 단지 추측만 하는 주식이나 지분이 아닌 도시의 파편들에 주목했다. 요약하자면, 그의 이론은 150여년 간의 산업화 과정이 도시화로 대체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산업화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의 이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또한 도시의 시대로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도시공간의 상품화는 르페브르가 살던 시기로부터 급속하게 진행되어왔다.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그 어떤 죄책감으로부터도 벗어나게 했던 규제의 철폐는 마찬가지로 도시의 얼굴 또한 변하게 만들고 있다. 자유무역이라는 허울은 수많은 도시의 공적인 공간들을 그저 체인형 상점에서 쇼핑을 하거나 코스타 커피에서 음료를 마시는 장소가 되도록 강요하고, 때로는 사설 경비원들의 감시 아래에서 그 짓을 하도록 만든다. 공공 서비스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적 공간의 사유화는 정부가 민주적인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틈새를 열어주는 하나의 술수일 뿐이다.
르페브르도 도시가 이 정도로 상품이 되는 상황을 예측하지는 못했다. 요즘엔 어떤 고객이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달라고 유명한 건축가에게 고작 전화 한 통을 걸어 주문을 할 수가 있다.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아부다비Abu Dhabi의 친환경 도시 마스다Masdar나, 런던의 아럽Arup사가 디자인한 인기있는 친환경 도시 동탄, 그리고 천진이 그러하다. 향후 20년 간 3억의 도시 거주민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에서, ‘그냥 지으면 사람이 온다’는 따위의 방식 이외에는 답이 없다.
물론 도시의 생산은 역사를 갖고 있다. 지난 세기의 전환기에 있었던 에베네처 하워드Ebenezer Howard의 공원도시 운동Garden Cities movement의 결과로 레치워스Letchworth라는 도시가 만들어졌고, 미국에서는 뉴 어버니즘New Urbanism이 트루먼 쇼The Truman Show의 배경이 되었던 플로리다 주의 시사이드Seaside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사례들은 도시를 혐오하던 사람들이 디자인한 회피론자들의 판타지에 불과했다. 더 들어맞는 사례들로는 정치적인 염원을 영웅적으로 그려낸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Astana, 그리고 이 모두를 짬뽕한 두바이가 있다. 경제 침체 이후로 두바이가 폐기된 건 한 줄기 빛이었지만, 제품이나 브랜드로서의 도시를 확연히 보여주는 사례로는 두바이만한 곳도 사실 없었다.
브랜드 컨설턴시는 근대 도시의 숨은 실력자이다. 그들은 시장의 역할을 자임하기도 하는데,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앨범 표지를 디자인한 광신적 디자이너 피터 사빌Peter Saville에게 그런 임무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는 몇 년 전 맨체스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캐나다의 디자인 구루 브루스 마우도 그러하다. 그는 “메카(성지)의 미래 비전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등장했고, 이제 그것은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라는 명제가 되었다. 고수익을 보장하는 행사들인 올림픽, 유럽 문화 수도, 세계 디자인 수도 등이 선정되는 전지구적인 경쟁체제 속에서, 그의 명제는 도시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세계의 부를 만들어내는 엔진과도 같은 도시, 그것은 본 바탕인 국가들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묻고자 하는 것은 이거다. 우리는 빽빽이 사람들이 들어찬 컨테이너와 같은 곳이 아니라 쾌적하고 공평한 삶의 공간으로 도시를 창조할 것인가? 도시로의 값싼 이동 수단을 제공하는 이지젯과 같은 것 때문에 수많은 수도들 간이 바로 연결되는 도시문화 특유의 상황을 누군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신이 꿈 꾸고 있는 이상향이 이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도시에서의 차별과 사회적 양극화는 점점 더 극단화로 치닫고 있고,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이 될 것이 분명하다. 국제연합UN의 자료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제 도시 구축은 우선적인 과제가 되었다. 정치인들은 디자이너들에게 믿음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마지막 사반세기로부터 우리가 배운 점은 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평등이라는 가치를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